쇼니 사다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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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쇼니 사다쓰네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부터 남북조 시대에 걸쳐 활약한 무장이다. 1272년 쇼니 모리쓰네의 아들로 태어나, 가마쿠라 막부의 호조 사다토키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다쓰네라 칭했다. 1333년 기쿠치 다케토키를 토벌하고, 로쿠하라 탄다이가 멸망한 후 아시카가 다카우지에게 호응하여 막부를 공격, 지쿠젠, 부젠, 지쿠고 3개국의 슈고로 임명되었다. 1335년 나카센다이의 난 이후 아시카가 다카우지에게 협력했으나, 1336년 기쿠치 다케토시 등의 공격을 받아 우치야마 성에서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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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니 사다쓰네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씨명 | 쇼니 씨 |
이름 | 쇼니 사다쓰네 |
원어이름 | 少弐 貞経 |
시대 | 가마쿠라 시대 후기 ~ 난보쿠초 시대 |
출생 | 1272년 |
사망 | 1336년 4월 11일 |
개명 | 사다쓰네(貞経) → 묘에 고칸(妙恵高鑑, 법명) |
정치 | |
막부 | 가마쿠라 막부 |
주군 | 호조 씨 → 아시카가 다카우지 |
가족 관계 | |
아버지 | 쇼니 모리쓰네 |
형제 | 사다쓰네, 스케노부, 쓰네키요, 아사히 시호 |
자녀 | 요리히사, 바바 쓰네카즈 |
2. 생애
1272년 쇼니 모리쓰네의 아들로 태어나, 가마쿠라 막부의 싯켄 호조 사다토키에게서 이름 한 글자를 받아 사다쓰네라 불렸다. 1333년 기쿠치 다케토키의 거병에 동조하지 않고 진압에 참여했으며, 이후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막부에 반기를 들자 그에게 협력하여 겐무 신정에서 지쿠젠국, 부젠국, 지쿠고국의 슈고로 임명되었다. 1335년 다카우지가 고다이고 천황에게 반기를 들자 이에 호응하였으나, 1336년 왕실 지지 세력의 공격을 받고 우치야마 성에서 자결하였다. 가독은 아들 요리히사가 이었다.
2. 1. 가마쿠라 막부 시대
1272년 쇼니 모리쓰네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마쿠라 막부의 싯켄(執権) 호조 사다토키로부터 이름자 한 자를 받아 '''사다쓰네'''(貞経)라 하였다.1333년 3월 13일, 기쿠치 다케토키가 막부에 반기를 들고 거병했을 때 협력을 요청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진제이 단다이 호조 히데토키, 오토모 사다무네 등과 함께 다케토키를 진압하였다.[6] 같은 해 5월, 로쿠하라 단다이가 아시카가 다카우지에게 함락되자, 반막부 세력이 우세함을 깨닫고 다카우지에게 호응, 오토모 사다무네, 시마즈 사다히사와 함께 막부에서 이반하여 진제이 단다이를 공격, 호조 히데토키를 자결로 몰아갔다.[7] 이러한 공으로 겐무 신정 체제에서 지쿠젠국 ・ 부젠국 ・ 지쿠고국의 슈고로 임명되었다.
2. 2. 남북조 시대
1335년 나카센다이의 난을 계기로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고다이고 천황에게 반기를 들자 이에 호응하였다. 이듬해인 겐무 3년/엔겐 원년(1336년) 2월, 규슈로 내려온 다카우지를 맞이하고자 아들 요리히사에게 5백 기를 주어 원군으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주력군이 원정을 나간 틈을 타 기쿠치 다케토시, 아소 고레나오 등 왕실 지지 세력이 쳐들어왔고, 쇼니 사다쓰네는 이를 필사적으로 막다가 중과부적으로 일족 100여 명과 함께 우치야마 성에서 자결하였다.[8] 향년 65세였다.가독은 요리히사가 이었으며, 요리히사의 동생 쓰네카즈(経員)는 바바 씨(쇼니 바바 씨)를 칭하였다.
참조
[1]
서적
史料綜覧
[2]
서적
大日本史料
[3]
서적
大日本史料
[4]
서적
武藤少弐興亡史
海鳥社
1989
[5]
서적
武藤少弐興亡史
海鳥社
1989
[6]
서적
史料綜覧
[7]
서적
大日本史料
[8]
서적
大日本史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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