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수후부
1. 개요
숙수후부는 건주여진의 주요 성채들을 의미하며, 투룬성, 사르후성, 마르둔성, 기야무후성, 잔비라채, 안투구왈기야성, 구러성, 샤지성 등이 있다. 이 성채들은 『유변기략』, 『만주원류고』, 『태조고황제실록』, 『만주실록』 등 다양한 역사 기록에 등장하며, 누르하치의 세력 확장과 건주여진 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르후성은 사르후 전투가 벌어진 장소이며, 구러성은 구러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각각 후금의 성장과 건주여진 통일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
랴오닝성의 지리 -
보하이 해협
보하이 해협은 랴오둥반도와 산둥반도 사이에 있는 해협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은 자국 영토로 간주하며 해저 터널 건설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
랴오닝성의 지리 -
랴오시
랴오시는 몽골계통의 동호와 산융의 영역이었으며, 여러 왕조와 민족의 지배를 거쳐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랴오닝 성의 일부가 되었다. -
건주여진 -
후금
후금은 17세기 초 누르하치가 만주 지역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세운 국가로,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팔기제를 기반으로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었으나, 1636년 홍타이지가 국호를 대청으로 바꾸면서 청나라로 계승되었다. -
건주여진 -
이지란
이지란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으로, 건주여진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고 왜구 토벌과 조선 건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고 청해군에 봉해졌으며 태조 묘정에 배향되었다. -
여진 -
청나라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중국 최후의 통일 왕조로, 후금에서 국호를 변경하여 시작되었고 명나라를 멸망시킨 후 중국 대륙을 통일하여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나, 서구 열강의 침략과 내부 반란, 근대화 개혁 실패 후 신해혁명으로 멸망,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다민족 국가로서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
여진 -
완풍대군
완풍대군 이원계는 고려 말 무신이자 이성계의 이복 형으로, 위화도 회군에 반대하다 사망 후 대군으로 추봉되었으며 홍건적과 왜구 격퇴에 공을 세워 완산군에 봉해졌고 조선 개국 후 완산백에 추봉, 여러 사당에 배향되었다.
2. 주요 성채
2.1. 투룬성 (圖倫城)
투룬성(圖倫城, turun i hotonmnc)은 건주여진의 초기 근거지 중 하나였다. 『만주원류고』, 『태조고황제실록』, 『만주실록』등의 사료에서 나타난다. 누르하치는 투룬성을 발판 삼아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2.2. 사르후성 (薩爾滸城)
사르후성은 1619년 사르후 전투가 벌어진 현장으로, 누르하치가 이끄는 후금군이 명나라와 조선 연합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곳이다. 이 승리는 후금의 성장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주요 성채는 다음과 같다.
2.3. 마르둔성 (瑪爾墩城)
마르둔성(瑪爾墩城)은 『만주실록(滿洲實錄)』에 등장하는 성채이다. 누르하치의 초기 정복 활동과 관련된 곳으로, 건주여진 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2.4. 기야무후성 (嘉木瑚城)
기야무후성(嘉木瑚城)은 건주여진의 주요 성채 중 하나였다. 『만주원류고』, 『태조고황제실록』, 『만주실록』, 『manju i yargiyan kooli』등의 사료에서 언급된다.
2.5. 잔비라채 (沾河寨)
잔비라채(沾河寨)는 누르하치의 건주여진 통일 과정에서 언급되는 주요 성채 중 하나이다.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태조고황제실록(太祖高皇帝實錄)』, 『만주실록(滿洲實錄)』, 그리고 manju i yargiyan koolimnc 등의 사료에 등장한다. 잔비라채는 jan ni bira i gašanmnc으로 표기된다.
2.6. 안투구왈기야성 (安圖瓜爾佳城)
안투구왈기야성은 건주여진의 주요 성채 중 하나였다. 『만주실록(滿洲實錄)』에는 안투구왈기야채(安圖瓜爾佳寨, antu gūwalgiya i hoton)로 기록되어 있다.
2.7. 구러성 (古勒城)
누르하치가 이끄는 후금군과 예허부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구러 전투는 구러성(gure i hoton)에서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누르하치는 승리하여 예허부를 멸망시키고 건주여진 통일을 완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