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릉 (공혜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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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순릉은 조선 성종의 왕비인 공혜왕후 한씨의 능이다. 공혜왕후는 계유정난의 공신 한명회의 막내딸로, 1467년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잘산군과 혼인하여 천안군부인으로 불렸다. 1469년 잘산군이 성종으로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으나, 1474년 19세의 나이로 소생 없이 승하하였다. 성종은 공혜왕후에게 공혜라는 시호를 내리고 순릉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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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릉 (공혜왕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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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릉 (順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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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사적 |
지정 번호 | 205 |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
제작 시기 | 조선 1474년 |
2. 생애
공혜왕후는 계유정난의 공신 한명회의 막내딸로 1456년 태어났다. 1467년 12세의 나이로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잘산군(성종)과 혼인하여 천안군부인으로 불렸다. 1469년 잘산군이 예종의 뒤를 이어 성종으로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언니 장순왕후가 17세의 나이로 요절한 뒤, 1474년 4월 15일 공혜왕후도 19세의 나이로 소생 없이 창덕궁 구현전에서 승하하였다.[1]
성종은 공혜왕후가 승하하자 시호를 공혜(恭惠), 능호를 순릉(順陵)이라 하고, 같은 해 6월 7일 언니 장순왕후의 공릉 근처에 안장하였다. 순릉은 왕비의 능이므로 전체적인 상설제도는 공릉과 같지만, 석물은 더 많이 있다.[2]
한명회는 계유정난으로 단종을 숙청하고 집권하여, 두 딸 (장순왕후, 공혜왕후)을 왕비로 만들었으나, 두 딸 모두 19세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였다.[3]
2. 1. 혼인과 왕비 책봉
공혜왕후는 계유정난 공신 한명회의 막내딸로 1456년 태어났다. 1467년 12세에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잘산군(성종)과 혼인하여 천안군부인(天安郡夫人)으로 불렸다. 1469년 잘산군이 예종의 뒤를 이어 성종으로 즉위하자 14세에 왕비로 책봉되었다.[1]한명회는 계유정난으로 단종을 숙청하고 집권하여,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두 딸 (장순왕후, 공혜왕후)을 왕비로 만들며 막강한 권력을 누렸으나, 두 딸 모두 19세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였다.[3]
2. 2. 이른 죽음과 순릉 조성
계유정난의 공신 한명회의 막내딸로 1456년 태어났다. 1467년 12세의 나이로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잘산군(乽山君)과 혼인하여 천안군부인(天安郡夫人)으로 불렸다. 1469년 14세의 나이로 잘산군이 예종의 뒤를 이어 성종에 오르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장순왕후가 17세의 나이로 요절한 뒤, 공혜왕후도 성종 5년(1474년) 음력 4월 15일 19세의 나이로 창덕궁 구현전(求賢殿)에서 소생 없이 승하하였다.[1]성종은 공혜왕후가 승하하자 시호를 공혜(恭惠), 능호를 순릉(順陵)이라 하고, 같은 해 6월 7일 언니 장순왕후의 공릉 근처 현재의 위치에 안장하였다. 세자빈으로 세상을 떠난 장순왕후의 공릉과는 달리 왕비의 능이므로 전체적인 상설제도는 공릉과 같지만, 순릉은 공릉에 비해 석물이 많이 있다.[2]
단종을 숙청하며 계유정난으로 집권한 한명회는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두 딸을 왕비로 만들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지만, 두 딸(셋째 장순왕후, 넷째 공혜왕후) 모두 19세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였다.[3]
3. 가계
공혜왕후는 계유정난의 공신 한명회의 막내딸로 1456년에 태어났다. 언니는 예종의 비 장순왕후이다.[1] 1467년 12세의 나이로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잘산군(乽山君)과 혼인하여 천안군부인(天安郡夫人)으로 불렸다.[1] 1469년 잘산군이 성종에 오르자 왕비에 책봉되었으나,[1] 1474년 19세의 나이로 소생 없이 승하하였다.[1]
3. 1. 아버지 한명회와 관련된 논란
계유정난으로 단종을 숙청하며 집권한 한명회는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두 딸을 왕비로 만들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지만, 두 딸(장순왕후, 공혜왕후) 모두 19세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였다.[3]4. 갤러리
참조
[1]
문서
공혜왕후 참조
[2]
웹인용
파주삼릉, 공혜왕후(恭惠王后) 한씨
http://paju.cha.go.k[...]
문화재청
2009-05-21
[3]
웹인용
파주삼릉, 인물이야기
http://paju.cha.go.k[...]
문화재청
200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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