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렬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숭렬전은 백제 시조 온조왕과 남한산성 축성에 공을 세운 이서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청나라 군대에 대항할 때 온조왕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긴 것을 기려 건립되었으며, 1795년 정조가 '숭렬'이라는 현판을 내려 숭렬전으로 명명되었다. 현재 숭렬전은 사당, 전사청, 내문, 강당, 외삼문, 홍살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봄과 가을에 제향이 열린다.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의 민속경관의 주요 요소로, 경기도지사가 관리하고 있다.

숭렬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경기도의 사당 - 현절사
    현절사는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삼학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88년 남한산성에 건립되었으며 소중화 의식과 송시열의 삼학사전이 건립 배경이고, 김상헌과 정온의 위패가 추가로 모셔졌으며, 서원 철폐에도 유일하게 존속된 사당으로, 현재 광주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 경기도의 사당 - 여주 강한사
    여주 강한사는 조선 후기 문신 강한과 유학자 송시열의 학문과 사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정조의 명으로 김양행이 사당을 건립하고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속에서도 존속될 정도로 지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 광주시의 문화유산 - 현절사
    현절사는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삼학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88년 남한산성에 건립되었으며 소중화 의식과 송시열의 삼학사전이 건립 배경이고, 김상헌과 정온의 위패가 추가로 모셔졌으며, 서원 철폐에도 유일하게 존속된 사당으로, 현재 광주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 광주시의 문화유산 -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위치한 산성으로, 유사시 조선 왕조의 임시 수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며,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항전한 장소이자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수도권 시민들의 휴식처 및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 남한산성 - 남한산성 (드라마)
    1986년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조선과 청나라의 갈등과 인조, 소현세자, 최명길, 김상헌 등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양지운의 내레이션으로 다룬 문화방송 창사 25주년 특집 드라마이다.
  • 남한산성 - 남한산성 행궁
    남한산성 행궁은 1626년 이서의 계책으로 완성되었으며,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피난하여 항전했던 조선 시대 행궁으로, 유사시 도성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나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파괴되었다가 1998년부터 복원 사업을 통해 주요 건물들이 복원되었다.

2. 역사

세조 10년(1464년) 충청남도 천안에 사당이 있었으나 임진왜란(1592년~1598년)때 화재로 소실되었다. 제사는 음력 9월 5일에 지내고 있으며, 제례형식은 조선시대 국조오례의의 규정에 따라 중간 규모의 제례 형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2.1. 건립 배경

崇烈殿중국어조선 인조 16년(1638)에 지은 사당으로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을 모시고 있다. 뒷날 남한산성을 쌓을 당시 총책임자였고 병자호란(1636) 때 싸우다 죽은 이서의 위패를 함께 모셨다. 원래 건물 이름은 ‘온조왕사’였으나 정조 19년(1795)에 왕이 ‘숭렬’이라는 현판을 내려 崇烈殿중국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정조의 꿈에 온조왕이 나타나 정조의 인품과 성업을 칭찬하면서 혼자 있기가 쓸쓸하니 죽은 사람 중에서 명망있는 신하를 같이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에 정조는 남한산성을 쌓은 공로자인 이서를 같이 모시게 했다고 한다.

2.2. 연혁

1638년 (조선 인조 16년)에 백제의 시조 온조왕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뒷날 남한산성을 쌓을 당시 총책임자였고 병자호란(1636) 때 싸우다 죽은 이서의 위패를 함께 모셨다. 원래 건물 이름은 ‘온조왕사’였으나 1795년(정조 19년)에 왕이 ‘숭렬’이라는 현판을 내려 숭렬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정조대왕의 꿈에 온조왕이 나타나 정조의 인품과 성업을 칭찬하면서 혼자 있기가 쓸쓸하니 죽은 사람 중에서 명망있는 신하를 같이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에 정조는 남한산성을 쌓은 공로자인 이서를 같이 모시게 했다고 한다.

1464년(세조 10년) 충청남도 천안에 사당이 있었으나 임진왜란(1592년~1598년)때 화재로 소실됐고, 이후 1638년(인조 16년) 남한산성에 온조왕사를 건립했다. 1795년(정조 19년) 왕이 ‘崇烈(숭렬)’이라는 현판을 내려 숭렬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제사는 음력 9월 5일에 지내고 있으며, 제례형식은 조선시대 국조오례의의 규정에 따라 중간 규모의 제례 형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3. 건축

조선 인조 16년(1638)에 백제의 시조 온조왕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뒷날 남한산성을 쌓을 당시 총책임자였고 병자호란(1636) 때 싸우다 죽은 이서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 원래 건물 이름은 ‘온조왕사’였으나 정조 19년(1795)에 ‘숭렬’이라는 현판을 내려 숭렬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정조의 꿈에 온조왕이 나타나 정조의 인품과 업적을 칭찬하면서, 혼자 있기 쓸쓸하니 죽은 사람 중에서 명망 있는 신하를 같이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에 정조는 남한산성을 쌓은 공로자인 이서를 함께 모시게 했다고 한다.

3.1. 건물 구조

숭렬전의 건물 배치는 사당, 전사청, 내문, 강당, 외삼문, 홍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전인 숭렬전은 백제 시조 온조왕의 신위를 모신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초익공 형식 건물이며 겹처마 맞배지붕 형태이다. 부전(동재)은 본전 아래 동쪽에 위치하며, 남한산성 축성 책임자였던 이서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전사청(서재)은 부전 맞은편에 위치하며, 의례 및 제사 준비를 위한 건물이다. 부전과 전사청은 각각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 양 측면은 화방벽으로 되어있다. 이외에도 내문, 1998년에 복원된 강당, 솟을삼문 형식의 외삼문, 숭렬전 진입로에 설치된 홍살문이 있다. 숭렬전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의 민속경관 주요 요소 중 하나이다.

3.2. 건물 배치

건물 배치는 현재 사당·전사청·내문·강당·외삼문·홍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전인 숭렬전은 백제 시조 온조왕의 신위를 모신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초익공 형식 건물이며 겹처마의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부전(동재)은 본전 아래 동측에 위치하며, 남한산성 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의 신위를 모신 건물이다. 전사청(서재)은 부전 맞은편에 위치하며, 의례 및 제사 준비를 위한 건물이다. 부전과 전사청은 각각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양 측면은 화방벽으로 되어있다. 이외에도 내문, 강당(1998년 복원), 솟을삼문 형식의 외삼문, 숭렬전 진입로에 설치된 홍살문이 있다. 현재 숭렬전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의 민속경관의 주요 요소로 포함되어 있다.

4. 숭렬전 제향

숭렬전에서는 매년 봄, 가을(음력 9월 5일, 양력 10월 15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봄에는 하남시에서, 가을에는 광주시에서 문화원을 통해 3을 지원하고 있으며 진행은 각 유도회에서 맡고 있다. 유도회는 광주향교의 회원 50여 명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하남과 광주시의 행정구역 분할로 광주유도회와 하남유도회가 분리되어 있다. 제사는 음력 9월 5일에 지내고 있으며, 제례 형식은 조선시대 국조오례의의 규정에 따라 중간 규모의 제례 형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2008년 4월 21일 광주시의 향토유적(무형문화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

5. 건립 신화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정조의 꿈에 온조왕이 나타나 정조의 인품과 성업을 칭찬하면서 혼자 있기가 쓸쓸하니 죽은 사람 중에서 명망 있는 신하를 같이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에 정조는 남한산성을 쌓은 공로자인 이서를 같이 모시게 했다고 한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옮겨와 군사와 맞서 싸울 때였다. 인조는 밤이 깊도록 청나라 군사와 대치하면서 우리 군사들을 돌보다가 몹시 피곤하여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 웬 사람이 나타나 "적이 높은 사다리를 타고 북쪽 성을 오르는데 어째서 막지 않는가"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난데없는 사람의 출현에 놀란 인조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나는 성주 온조대왕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인조는 꿈에서 들은 대로 즉시 북쪽 성 근처를 살펴보게 했다. 그랬더니 과연 꿈속에서의 예시와 같이 청나라 군사가 북쪽 성벽을 오르는 것이었다. 인조는 즉시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몰래 성벽을 오르던 청나라 군을 물리쳤다.

인조는 온조대왕의 은혜를 입어 병자호란이 끝나 서울로 돌아온 이후, 남한산성에 온조대왕의 사당을 짓고 봄·가을로 정성껏 제사를 올렸다. 인조가 제사를 지낸 지 며칠 안 되어 온조대왕이 다시 꿈에 나타났다. 그리고 "대왕이 내 사당을 지으시니 진실로 감사하오. 그러나 혼자 있기 몹시 외로우니 대왕의 신하 중에서 명망 있는 신하 한 사람을 나에게 보내주시오"라고 말했다. 아침에 잠에서 깬 인조는 이 꿈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뜻밖에도 간밤에 남한산성의 총융사로 성을 쌓는 데 공을 세운 이서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인조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 여기고, 이서를 온조대왕 묘에 함께 모시도록 했다. 온조대왕이 이서를 선택해 데려간 것이라 여긴 것이다.

6. 관리

2016년 12월 20일부터 경기도지사가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