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뱌토슬라프 3세 (키예프 대공)
1. 개요
스뱌토슬라프 3세는 키예프 대공국의 대공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사망 이후 이쟈슬라프 2세를 지원하며 유리 돌고루키와 대립했으며, 체르니히우 공국을 둘러싼 분쟁에도 참여했다. 1176년 로스토베츠 전투 이후 키예프 대공위를 차지했으나, 류리크와 프세볼로트와의 갈등을 겪었고, 결국 류리크와 공동 통치하게 되었다. 그는 마리야 바실리코브나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딸 중 한 명은 랴잔 공작 로만과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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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스뱌토슬라프 3세 프세볼로도비치 |
|---|---|
| 다른 이름 | 스뱌토슬라프 프세볼로디치 |
| 로마자 표기 | Sviatoslav Vsevolodovich |
| 작위 | 키예프 대공 |
|---|---|
| 체르니고프 공 | 체르니고프 공 |
| 1차 | 1173년 |
|---|---|
| 2차 | 1176년 - 1181년 |
| 3차 | 1181년 - 1194년 |
| 재임 기간 | 1164년 - 1180년 |
|---|---|
| 선임 | 스뱌토슬라프 올고비치 |
| 후임 | 야로슬라프 2세 프세볼로도비치 |
| 가문 | 올고비치 가문 |
|---|---|
| 왕조 | 류리크 왕조 |
| 출생 | 1123년경 |
|---|---|
| 출생지 | 체르니고프 |
| 사망 | 1194년 7월 25일 |
| 사망지 | 키예프 |
| 아버지 | 프세볼로트 2세 |
|---|---|
| 어머니 | 마리야 므스티슬라브나 |
| 배우자 | 마리야 바실코브나 |
| 자녀 | 프세볼로트 4세 올레크 3세 스뱌토슬라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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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년 사망 -
기 드 뤼지냥
기 드 뤼지냥은 12세기 프랑스 귀족으로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 되었지만, 하틴 전투 패배 후 왕위를 잃고 키프로스 영주가 되어 뤼지냥 가문에 의한 키프로스 왕국 성립의 계기를 마련했다. -
1194년 사망 -
남송 효종
남송 효종은 북송 태조의 후손으로 고종의 양자가 되어 남송의 제2대 황제가 되었으며, 정치 개혁과 경제 안정, 금나라와의 화의를 통해 남송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만년에는 광종과의 불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
올레그가 -
미하일 프세볼로도비치
미하일 프세볼로도비치는 프세볼로트 4세의 아들이자 키예프 대공국의 여러 공국을 다스린 인물로,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키예프가 함락된 후 킵차크 칸국 군대에 의해 처형되었으며, 동방 정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추대했다. -
올레그가 -
올레크 스뱌토슬라비치
올레크 스뱌토슬라비치는 키예프 대공국의 공작이자 스뱌토슬라프 2세의 아들로, 볼로디미르볼린스키와 티무타라칸 공작을 역임하고 킵차크인의 지원을 받아 체르니히우를 점령했으며, 류베치 회의 후 노브호로드-세베르스키 공국을 다스리며 그의 후손들이 여러 공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스뱌토슬라프 3세는 1146년 아버지 프세볼로트가 사망한 후 키예프 대공 자리를 둘러싼 권력 투쟁에 참여했다. 이쟈슬라프 2세를 도와 유리와 싸웠으며, 이후 체르니히우 공국을 둘러싼 분쟁에도 관여했다. 1176년 폴로베츠족의 침입과 로스토베츠 전투 패배를 틈타 키예프 대공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1180년 류리크에게 키예프를 빼앗겼고, 랴잔 공국 관련 분쟁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류리크, 프세볼로트와 평화 조약을 맺고 키예프 대공위를 되찾았지만, 키예프 공국 영토는 류리크와 공동 통치하게 되었다.
2.1. 권력 투쟁과 동맹
1146년 아버지 프세볼로트가 사망하자 스뱌토슬라프는 키예프 대공 자리에 오른 이쟈슬라프를 도와 로스토프-수즈달 공작 유리와 싸웠다(1146년 - 1154년). 유리가 1157년에 사망한 후에는 체르니히우 공국을 둘러싼 이쟈슬라프와 올레그의 아들 스뱌토슬라프의 투쟁에 이쟈슬라프 편에 서서 참전했다(1157년 - 1161년).
2.2. 키예프 대공 즉위와 통치
1176년, 루스에 침입한 폴로베츠족에 대해 키예프 대공 로만이 보낸 요격군이 로스토베츠 전투에서 패배하자 스뱌토슬라프는 키예프 대공위 양도를 요구하여 공위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1180년에는 드네프르 강 연안에서 로만의 형제 다비드를 공격했지만, 로만, 다비드의 형제 류리크에게 키예프를 함락당했다. 스뱌토슬라프의 사위이자 동맹자인 랴잔 공작 로만이 블라디미르 대공 프세볼로트에게 공격받자 스뱌토슬라프는 아들 글레프를 원군으로 파견했지만 글레프는 패배하여 포로가 되었고, 랴잔 또한 프세볼로트에게 지배당했다. 스뱌토슬라프는 만회를 기대하며 원정을 반복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류리크, 프세볼로트와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키예프 대공위는 스뱌토슬라프에게 양도되었지만, 키예프 공국 영역은 류리크와의 공동 통치가 되었다.
2.3. 랴잔 공국과의 관계
1180년, 스뱌토슬라프의 사위이자 동맹 관계에 있던 랴잔 공작 로만(ru)이 블라디미르 대공 프세볼로트 3세에게 공격받았다. 스뱌토슬라프는 아들 글레프를 원군으로 보냈으나, 글레프는 패배하여 포로로 잡혔고, 랴잔은 프세볼로트 3세에게 지배당했다. 스뱌토슬라프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원정을 반복했지만, 결국 류리크, 프세볼로트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
2.4. 류리크, 프세볼로트와의 평화 조약
1176년, 폴로베츠족이 루스에 침입하자 키예프 대공 로만은 요격군을 보냈으나 로스토베츠 전투에서 패배했다. 스뱌토슬라프는 이를 기회로 키예프 대공위를 요구하여 빼앗았다. 1180년에는 드네프르 강 연안에서 로만의 형제 다비드를 공격했으나, 로만과 다비드의 형제인 류리크에게 키예프를 빼앗겼다.
스뱌토슬라프의 사위이자 동맹인 랴잔 공작 로만(ru)이 블라디미르 대공프세볼로트에게 공격받자, 스뱌토슬라프는 아들 글레프를 원군으로 보냈지만 패배하여 포로가 되었고, 랴잔도 프세볼로트에게 지배당했다.
스뱌토슬라프는 설욕을 위해 원정을 반복했지만, 결국 류리크, 프세볼로트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 스뱌토슬라프는 키예프 대공위를 돌려받았지만, 키예프 공국 영토는 류리크와 공동 통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