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야스오
1. 개요
스즈키 야스오는 일본의 축구 선수로, 1934년과 1936년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활약했다. 와세다 대학 축구부에서 활동했으며, 1934년 극동 선수권 대회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다. 1936년 이탈리아와의 올림픽 경기에 출전했으며, 은퇴 후에는 일본 축구 협회 기술 지도 위원 등을 역임했다. 2000년 8월 시점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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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다케우치 데이조
다케우치 데이조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하며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 우승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본 첫 승리를 이끌었고, 사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다케우치 데이조상'이 제정되었다. -
1936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김용식 (축구인)
김용식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대한민국 축구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하며 일본 국가대표로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 겸 감독으로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1954년 FIFA 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서 대한민국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은퇴 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
남자 축구 수비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남자 축구 수비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와세다 대학 동문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와세다 대학 동문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2. 선수 경력
와세다 대학 축구부에 입부하여 호리에 타다오, 타치하라 모토오 등과 함께 선수 생활을 했다. 1934년 5월 제10회 극동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에 선출되어 필리핀 대표팀과의 경기에 출전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이탈리아 대표팀과의 경기에 출전했다.
2.1. 클럽 경력
스즈키는 1913년 4월 30일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 대학교 선수와 졸업생으로 구성된 와세다 WMW에서 뛰었으며, 다쓰하라 모토오, 호리에 타다오 등 많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도쿄부립 제8중학교(현: 도쿄도립 고야마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여 축구부에 들어갔다. 호리에 타다오나 타치하라 모토오 등이 동기였다. 1936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스즈키는 와세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34년 5월, 1934년 마닐라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5월 15일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36년에는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비록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호리에 타다오가 오른팔 골절 부상을 당하면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 대신 출전하게 되었다. 그는 1936년까지 일본 대표팀에서 총 2경기에 출전했다.
3. 은퇴 후 경력
현역 은퇴 후에는 다카시마 산업에서 근무하면서 일본 축구 협회 기술 지도 위원 등을 역임했다. 1959년에는 머데카 대회 일본 대표팀 코치를 맡았고, 1964년에는 같은 대회 일본 대표팀 단장을 맡았다. 1982년 2월에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본 대표였던 김용식 감독의 할렐루야 FC 방일 리셉션에 참석했다.
사망 연도는 불분명하지만, 2000년 8월 시점에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4.1. 국가대표팀 통계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 연도 | 출전 | 골 |
| 1934 | 1 | 0 |
| 1935 | 0 | 0 |
| 1936 | 1 | 0 |
| |2||0 |
스즈키 야스오는 1934년부터 1936년까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A매치 2경기에 출전했다.
4.2. 출전 대회
스즈키는 와세다 대학 학생 신분이던 1934년 5월, 1934년 마닐라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이 대회에서 5월 15일,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1936년에는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일본은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첫 경기에서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올림픽에서의 일본의 첫 승리이자 강호팀을 상대로 거둔 역사적인 승리로, 훗날 일본에서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리게 되었다. 2016년, 이 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스즈키는 스웨덴과의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오른팔 골절 부상을 입은 호리에 타다오를 대신하여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와의 다음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1936년까지 일본 대표팀에서 2경기에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