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쓰하라 모토오
1. 개요
다쓰하라 모토오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도쿄고등사범학교 부속 중학교와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와세다 대학교 선수와 졸업생으로 구성된 와세다 WMW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34년 극동 선수권 대회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출전했으며, 특히 베를린 올림픽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하여 "베를린의 기적"을 이끌었다. 그는 1936년까지 일본 대표팀에서 총 4경기에 출전했다.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는 불가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불가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1994년 FIFA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 여러 클럽과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1936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다케우치 데이조
다케우치 데이조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하며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 우승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본 첫 승리를 이끌었고, 사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다케우치 데이조상'이 제정되었다. -
1936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김용식 (축구인)
김용식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대한민국 축구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하며 일본 국가대표로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 겸 감독으로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1954년 FIFA 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서 대한민국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은퇴 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
와세다 대학 동문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와세다 대학 동문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2. 선수 경력
다쓰하라는 와세다 대학 선수와 졸업생들로 구성된 와세다 WMW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가와모토 다이조, 호리에 타다오, 스즈키 야스오, 스에오카 구니타카, 가노 다카시 등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뛰었으며, 1940년 천황배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중단되었기 때문에 전쟁 전 마지막 천황배였다.
1934년 5월, 와세다 대학 학생 신분으로 1934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5월 13일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상대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이후 1936년 하계 올림픽 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1936년까지 일본 대표팀에서 총 4경기에 출전했다.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이 스웨덴을 상대로 거둔 첫 경기 역전승은 일본에서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린다. 일본의 올림픽 축구 첫 승리이자 강팀을 상대로 거둔 역사적인 승리였으며, 2016년, 이 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연도 | 출장 | 골 |
|---|---|---|
| 1934 | 2 | 0 |
| 1935 | 0 | 0 |
| 1936 | 2 | 0 |
| | 4 || 0 |
2.1. 클럽 경력
다쓰하라는 와세다 대학 선수와 졸업생들로 구성된 와세다 WMW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이 클럽에서 가와모토 다이조, 호리에 타다오, 스즈키 야스오, 스에오카 구니타카, 가노 다카시 등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1940년 천황배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대회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중단되었기 때문에 전쟁 전 마지막 천황배였다.
2.2. 국가대표 경력
1934년 5월, 다쓰하라는 와세다 대학 학생 신분으로 1934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5월 13일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상대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936년 하계 올림픽 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다쓰하라는 1936년까지 일본 대표팀에서 총 4경기에 출전했다.
2.2.1. 베를린의 기적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이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서 거둔 역전승은 일본에서 "베를린의 기적"(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린다. 이 승리는 일본의 올림픽 첫 승리이자 강팀을 상대로 거둔 역사적인 승리였다. 2016년, 이 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3. 출전 대회
다쓰하라 모토오는 와세다 대학교 재학 중이던 1934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어, 1934년 5월 13일 네덜란드령 동인도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36년 하계 올림픽에도 일본 대표팀으로 참가하여,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서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는 일본의 올림픽 축구 첫 승이자 강팀을 상대로 거둔 역사적인 승리로, 일본에서는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린다. 2016년, 이 대표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다쓰하라는 1936년까지 일본 대표팀 소속으로 총 4경기에 출전했다.
다쓰하라 모토오의 주요 출전 대회는 다음과 같다.
* 1934년 제10회 극동 선수권 대회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동아 경기 대회
3. 약력
쓰쿠바대학교 부속고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1933년 와세다 대학교에 입학, 축구부에 소속되었다. 1934년 제10회 극동 선수권 경기 대회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5월 13일 네덜란드령 동인도 (현: 인도네시아)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일본 대표로 첫 출전했다. 1935년에는 축구부 주장을 맡았다.
1936년 3월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이닛폰 인조 비료(현: 닛산 화학)에 입사했다. 같은 해 베를린 올림픽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8월 스웨덴 대표팀과의 경기 등 2경기에 출전했다(베를린의 기적 참조).
1942년 8월, 만주국 건국 10주년 경축 동아 경기 대회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주장으로서 3경기에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