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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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순성은 1878년 한성부에서 태어나,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 후 대한제국 해군 함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고종 황제의 명으로 양무함과 광제호의 함장을 맡았으며, 한일 병합 조약 직전 광제호에서 태극기를 내려 보관했다가 국가에 기증했다. 이후 상선 선장으로 활동하며, 인천 해원 양성소에서 훈련 교관으로 근무하다가 1944년 사망했다.

신순성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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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성
이름신순성 (愼順晟)
출생1878년 1월 27일
출생지한성, 경기도, 조선
사망1944년 2월 7일
사망지인천, 조선총독부
복무 기간1897년 – 1938년
최종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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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대령
지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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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신순성은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제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 대한제국 최초의 근대식 군함 양무함과 광제호의 함장을 역임했다. 한일 병합 조약 직전 광제호에서 태극기를 내려 보관했다가 국가에 기증했으며, 이 깃발은 현재 해군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1912년 조선제일주식회사가 창립되자 광제를 회사에 넘기고 상선 선장으로 활동했다. 1919년 인천 해원 양성소가 개원한 후 광제는 훈련선으로 재활용되었으며, 신순성은 1938년 은퇴할 때까지 훈련 교관으로 재직했다. 1917년 인천으로 이주하여 1944년 2월 7일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와 일본 유학

신순성은 1878년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한 후, 박영효의 추천으로 1895년 정부 장학생으로 일본 제국으로 유학을 갔다. 구마모토 상업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예비 항해사 자격을 취득했고, 1897년 도쿄고등상선학교에 입학했다.

2.2. 대한제국 해군 함장 시절

신순성은 1900년 대한제국이 최초의 근대식 군함인 양무함을 도입했을 때 고종 황제의 명으로 양무함의 함장이 되었다. 같은 해, 새로운 군함 광제호가 건조되자 다시 함장직을 맡았지만, 이 군함들은 일본 제국대한제국을 해체할 때까지 군함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1910년 8월 28일, 한일 병합 조약 직전에 신순성은 광제호에서 태극기를 내려 조심스럽게 보관했다가, 현재 해군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이 깃발을 국가에 기증했다.

2.3. 일제강점기 활동과 광제호 태극기

신순성은 1878년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박영효의 추천으로 1895년 정부 장학생으로 일본 제국에 유학, 구마모토 상업학교에서 예비 항해사 자격을 취득하고 1897년 도쿄고등상선학교에 입학했다.

1900년 대한제국 군대가 최초의 근대식 군함인 양무호를 도입할 때 고종의 명으로 양무함 함장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신형 군함 광제호가 건조되자 다시 함장을 맡았으나, 이 군함들은 일본 제국에 의해 대한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군함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1910년 8월 28일 한일 병합 조약 직전, 신순성은 광제호에서 태극기를 내려 보관했다가 후에 국가에 기증, 현재 해군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1912년 조선제일주식회사가 창립되자 광제를 회사에 넘기고 상선 선장으로 활동했다. 1919년 인천 해원 양성소가 개원한 후 광제는 훈련선으로 재활용되었고, 신순성은 1938년 은퇴할 때까지 훈련 교관으로 재직했다.

2.4. 사망

신순성은 1917년 가족과 함께 인천으로 이주했으며, 1944년 2월 7일 그곳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