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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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싱가라는 고대 도시로, 오늘날 이라크 니네베 평야의 신자르와 신자르산 일대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 제국 시대에 로마군에 점령되었다가 파르티아 원정 이후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으며, 콜로니아 지위를 얻었다. 3세기 동안 로마 제국의 동방 전진 기지 역할을 했으며, 사산 제국과의 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344년과 360년에 공방전이 벌어졌으며, 360년에는 페르시아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싱가라
지리 정보
일반 정보
위치현재 이라크의 신자르 근처
유형도시
이름
그리스어τὰ Σίγγαρα (타 싱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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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치

니시비스 남동쪽에 있다고 하는 싱가라의 위치는 보통 고대 저술가들이 정의내린 것으로, 비잔티움의 스테파누스는 ‘에데사 근처’ 아라비아 도시라 하였고 프톨레마이오스티그리스강에 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싱가라와 싱가라와 인접한 산(ὸ Σίγγαρας ὄρος고대 그리스어)이 오늘날 이라크의 니네베 평야에 있는 신자르와 신자르산의 전신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3. 역사

싱가라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동방 원정 때인 114년 겨울, 루시우스 퀴에투스가 전투 없이 점령하면서 처음으로 로마군에 점령되었다. 117년에 로마군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철수하면서 버려졌지만, 197년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파르티아 원정으로 다시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세베루스는 싱가라를 콜로니아로 승격시켰는데, 이는 고르디아누스 3세 통치 기간에 주조된 동전에 새겨진 "Aurelia Septimia Colonia Singara"라는 도시의 라틴어 이름을 그리스어로 표기한 ΑΥΡ. ϹΕΠ. ΚΟΛ. ϹΙΝΓΑΡΑ.고대 그리스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싱가라는 3세기 동안 로마 제국의 최동단 전초 기지 중 하나였으며, 사산 제국과의 잦은 분쟁을 겪었다. 344년 샤푸르 2세가 이끄는 포위전에서는 양측 모두 승리를 주장할 정도로 격렬한 야간 전투가 벌어졌다. 359/360년에는 또 다른 공방전이 벌어졌는데, 주민과 두 군단의 용맹한 방어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군에게 함락되었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와 테오필락토스 시모카테스는 싱가라 주변 지역이 매우 건조하여 공략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기록했다.

3.1. 로마 제국 시대

이곳은 트라야누스의 동방 원정 기간에 루시우스 퀴에투스가 114년 겨울에 교전 없이 점령하면서 처음으로 로마군에 점거되었다. 117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로마군이 철수하면서 싱가라는 버려졌지만, 197년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파르티아 원정으로 로마 제국의 일부가 다시 되었다. 세베루스는 싱가라를 콜로니아 지위로 상승시켰는데, 이는 고르디아누스 3세 치세 기간 동안 이곳에서 발행된 주화들 일부에서 발견된 문구[도시의 라틴어 이름(Aurelia Septimia Colonia Singara)에 대한 그리스어 표기(ΑΥΡ. ϹΕΠ. ΚΟΛ. ϹΙΝΓΑΡΑ.고대 그리스어)]에서 확인되었다. 이곳은 3세기 동안에 로마 제국의 극동쪽에 위치한 전진 기지 중 하나로 있었다. 이곳은 사산 제국의 왕 샤푸르 2세가 이끄는 344년의 포위전 기간에 일어난 유명한 야간 전투가 일어난 장소이기도 했는데, 이때의 전투 결과는 양 측이 승리를 주장하는 등 서로에게 아주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 뒤, 콘스탄티우스 2세 치세 기간인 359/360년에, 싱가라가 거주민들과 두 개 군단이 용맹하게 지키고 있었음에도, 유명한 공방전을 치렀고, 결국엔 페르시아군의 맹공격 끝에 점령되었다라고 기록되었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와 테오필락토스 시모카테스 등은 싱가라 주변 일대가 극도로 건조하며, 이런 점이 이곳을 먼거리에서 차지하거나 해방시키기 어렵게 하였다고 언급했다.

3.2. 사산 제국과의 분쟁

루시우스 퀴에투스트라야누스의 동방 원정 기간인 114년 겨울에 교전 없이 싱가라를 점령하면서 처음으로 로마군에 점거되었다. 117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로마군이 철수하면서 버려졌지만, 197년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파르티아 원정으로 로마 제국의 일부가 다시 되었다. 세베루스는 싱가라를 콜로니아 지위로 상승시켰는데, 이는 고르디아누스 3세 치세 기간 이곳에서 발행된 주화들 일부에서 발견된 도시의 라틴어 이름(Aurelia Septimia Colonia Singara)에 대한 그리스어 표기(ΑΥΡ. ϹΕΠ. ΚΟΛ. ϹΙΝΓΑΡΑ.고대 그리스어)에서 확인되었다. 이곳은 3세기 동안 로마 제국의 극동쪽에 위치한 전진 기지 중 하나였다. 사산 제국의 왕 샤푸르 2세가 이끄는 344년의 포위전 기간에 유명한 야간 전투가 일어났는데, 이때의 전투 결과는 양 측이 승리를 주장하는 등 서로에게 아주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후 콘스탄티우스 2세 치세 기간인 359/360년에, 싱가라가 거주민들과 두 개 군단이 용맹하게 지키고 있었음에도, 유명한 공방전을 치렀고, 결국 페르시아군의 맹공격 끝에 점령되었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와 테오필락토스 시모카테스 등은 싱가라 주변 일대가 극도로 건조하며, 이런 점이 이곳을 먼 거리에서 차지하거나 해방시키기 어렵게 하였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