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누샤 무함마드
1. 개요
아누샤 무함마드는 아불 가지 바하두르 칸의 아들로, 1663년 또는 1664년에 칸의 직위를 물려받았다. 1681년부터 1685년까지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을 침공하여 부하라와 사마르칸드를 점령했으나, 마지막 원정에서 실패하여 에미르들에게 살해당했다. 이후 히바 칸국은 내분으로 혼란을 겪다 아랍샤히드 왕조가 멸망했다. 그는 아버지 아불 가지 바하두르 칸이 쓰다 미완성한 《튀르크의 계보》를 1655년에 완성했다.
| 칭호 | 히바 칸국의 칸 |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름 | 아불 무자파르 아누샤 무함마드 바하두르 |
|---|---|
| 종교 | 이슬람교 |
| 사망일 | 1685년 |
| 부친 | 아불 가지 바하두르 칸 |
| 왕조 | 아랍샤히드 왕조 |
| 재위 기간 | 1663년 또는 1664년 ~ 1685년 |
|---|---|
| 전임자 | 아불 가지 바하두르 칸 |
| 후임자 | 후다이다드 칸 |
| 자녀 | 무함마드 아랑(또는 아르내크) 후다이다드 칸 |
|---|
-
1685년 사망 -
정명공주
정명공주는 조선 선조와 인목왕후의 딸로, 영창대군과 함께 사랑받았으나 광해군과의 대립으로 유폐되었고, 인조반정 이후 공주로 복권되어 홍주원과 혼인하여 7남 1녀를 낳았으며, 서예에 능하고 종친의 어른으로 존경받았으며, 조선 시대 공주 중 가장 장수한 인물이다. -
1685년 사망 -
야마가 소코
야마가 소코는 에도 시대 초기의 유학자이자 병법가로, 주자학을 비판하며 고학을 주창하고 무사도를 재정립했으며, 《무가사기》와 《중조사실》 등의 저서를 통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히바 칸국의 칸 -
압둘라 칸
-
히바 칸국의 칸 -
일바르스 1세
일바르스 1세는 16세기 초 호라즘 지역을 다스린 아랍샤 왕조의 창시자로, 우즈베크족의 지지를 받아 칸으로 옹립되어 우르겐치를 정복하고 호라즘 지방을 통치하며 왕조를 세웠다. -
우즈베키스탄의 역사 -
히바 칸국
히바 칸국은 16세기 초에 건국되어 1920년까지 존속한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크 칸국으로, 초기 혼란과 수도 이전, 러시아 제국의 보호국 시기를 거쳐 소비에트 혁명으로 붕괴되었으며, 농업 기반 경제와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
우즈베키스탄의 역사 -
코칸트 칸국
코칸트 칸국은 1709년 샤흐룩이 부하라 칸국에서 독립하며 건국되어 18세기 후반 최대 영토를 확장했으나, 19세기 러시아 제국의 남진과 내부 분열로 쇠퇴하여 1876년 러시아에 의해 멸망, 러시아 투르키스탄에 편입되었으며 청나라와 조공 관계를 맺고 갈등과 분쟁을 겪었다.
2. 생애
아불 가지 바하두르 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663년 또는 1664년에 아버지로부터 칸위를 물려받았다.
2.1. 트란스옥시아나 원정
아누샤 무함마드는 아불 가지 바하두르 칸의 아들로, 아불 가지는 1663년 또는 1664년에 칸의 직위를 아누샤 무함마드에게 양위했다. 1681년부터 1685년까지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 대한 파괴적인 원정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짧은 기간 동안 부하라와 사마르칸드를 점령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최후의 원정에서 실패를 경험했고, 이에 아누샤 무함마드의 에미르들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후 히바 칸국은 오랜 기간 동안 불안정한 내부 갈등의 시기를 경험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아랍샤히드 왕조의 종말로 이어졌다.
2.2. 히바 칸국의 내분과 왕조의 몰락
아누샤 무함마드는 아불 가지 바하두르 칸의 아들로, 아불 가지는 1663년 또는 1664년에 칸의 직위를 아누샤 무함마드에게 양위했다. 아누샤 무함마드는 1681년부터 1685년까지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 대한 파괴적인 원정을 수행하여 여러 차례 부하라와 사마르칸드를 점령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후의 원정에서 실패하자 아누샤 무함마드의 에미르들이 그를 살해했다. 이후 히바 칸국은 오랜 기간 동안 불안정한 내부 갈등을 겪었고, 이는 결국 아랍샤히드 왕조의 종말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