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안 에스쿠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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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드리안 에스쿠데로는 스페인의 축구 선수로, 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활약했다. 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13시즌 동안 뛰며 라 리가 2회 우승을 이끌었고, 통산 330경기에서 169골을 기록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3경기에 출전했으며, 1954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터키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코치로 활동했으며, 2011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드리안 에스쿠데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본명: 아드리안 에스쿠데로 가르시아
출생일1927년 11월 24일
출생지스페인, 마드리드
사망일2011년 3월 7일
사망지스페인, 마드리드
신장1.81m
포지션공격수
유소년 클럽방코 이스파노 아메리카노
별칭El Chava
주로 쓰는 발오른발
선수 경력
1945CD 메디오디아
1945–1958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287경기 150골
국가대표 경력
1949스페인 B
1952–1956스페인
스페인 B1경기 1골
스페인3경기 1골
감독 경력
1963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67–1968바다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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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에스쿠데로는 1945년 말 지역 아마추어 클럽인 클루브 데포르티보 메디오디아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입단했다. 당시 리그 규정 중 하나인 "최고 리그 출전 가능 연령은 18세부터"라는 규정 때문에, 당시 17세였던 에스쿠데로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데뷔전은 이듬해 1월 28일 FC 바르셀로나전까지 미뤄졌다. 첫 시즌에 라 리가에서 10경기 2골을 기록했지만, 이후 10번의 시즌 중 8번이나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특히 1950년대 초반 콜초네로스가 2연속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할 때 28골을 합작하며 기여했다.

아틀레티코에서 총 13시즌을 뛰며 1949-50 시즌과 1950-51 시즌 리그 2연패를 경험했다. 공식전 통산 330경기 169골을 기록했다. 또한, 현재의 수페르코파의 전신 대회인 "코파 프레시덴테 데 라 페데라시온"과 1951년 "코파 에바 두아르테"에서도 각각 1번의 우승을 달성했다. 이 시대 아틀레티코 공격진에는 헨리 칼손과 랄비 벤바레크 등이 있었고, 에스쿠데로를 포함하여 강력한 공격진을 형성했다.

1953년 3월 8일, 에스쿠데로는 셀타 데 비고와의 원정 경기(2-3 패)에서 페널티킥으로 아틀레티코의 1부 리그 1000번째 골을 기록했다. 1957-58 시즌이 끝난 후, 계약 갱신을 하지 못했고 불과 30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청소년팀 코치, 수석 코치로 활동했다. 1963-64 시즌 초반 라파엘 가르시아 레풀로(그의 전 동료)가 해임된 후, 1963년 12월 29일 발렌시아 CF전(1-2 패)을 포함하여 한 라운드 동안 임시 감독을 맡았다.

3. 국가대표 경력

에스쿠데로는 3년 반 동안 스페인에서 3번의 출전을 기록했으며, 1952년 12월 7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하여 0-1로 패했다. 1954년 3월 17일 1954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터키를 상대로 득점하였으나, 로마에서 열린 세 번째 플레이오프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고, 스페인은 추첨으로 탈락했다.

3.1. 국가대표 득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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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장소상대점수결과대회
1.1954년 3월 17일스타디오 올림피코, 로마, 이탈리아Türkiye튀르키예어2–22–21954년 월드컵 예선

4.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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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 리가1949–50, 1950–51
코파 에바 두아르테1951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준우승: 1956
개인
트로페오 몬친 트리아나스페인어1956–57

4.1. 클럽

에스쿠데로는 1945년 말 지역 아마추어 클럽인 클루브 데포르티보 메디오디아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입단했다. 당시 리그 규정상 "최고 리그 출전 가능 연령은 18세부터"였기 때문에, 당시 17세였던 에스쿠데로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데뷔전은 이듬해 1월 28일 FC 바르셀로나전까지 미뤄졌다. 그는 첫 시즌을 라 리가에서 10경기 2골로 마쳤지만, 이후 10번의 시즌 중 8번이나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특히 1950년대 초반 콜초네로스가 2연속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할 때 28골을 합작하며 기여했다.

아틀레티코에서 총 13시즌을 뛰며 1949-50 시즌과 1950-51 시즌 리그 2연패를 경험했다. 공식전 통산 330경기 169골을 기록했다. 또한, 현재의 수페르코파의 전신 대회인 "코파 프레시덴테 데 라 페데라시온"과 1951년의 "코파 에바 두아르테"에서도 각각 1번의 우승을 달성했다. 이 시대 아틀레티코는 헨리 칼손, 랄비 벤바레크 등을 포함하여 강력한 공격진을 보유했다.

1953년 3월 8일, 에스쿠데로는 셀타 데 비고와의 원정 경기(2-3 패)에서 페널티킥으로 아틀레티코의 1부 리그 1000번째 골을 기록했다. 1957-58 시즌이 끝난 후, 그는 계약 갱신을 하지 못했고 불과 30세의 나이로 선수 은퇴를 결정했다.

4.2. 개인

트로페오 몬친 트리아나스페인어 195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