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어 카우프만
1. 개요
아르투어 카우프만은 1923년 독일에서 출생하여, 법철학 및 형법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법학자이다.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법학을 연구하고 구스타프 라트부르흐의 영향을 받았으며, 1960년 자르브뤼켄 대학교에서, 1969년 뮌헨 대학교에서 정교수로 재직했다. 카우프만은 책임 원리에 대한 연구와 법철학 저술을 통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대한민국 형법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
형법학자 -
황산덕
황산덕은 1917년 출생하여 법학을 전공하고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성균관대학교 총장과 법무부 장관, 문교부 장관을 지낸 법학자이다. -
형법학자 -
에른스트 폰 벨링
에른스트 폰 벨링은 독일의 법학자로서 형법과 형사소송법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으며, 구성요건론을 정립한 《범죄론》을 통해 형법학 발전에 기여하고 한국 형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
법철학자 -
플라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테네에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하여 철학, 수학 등을 가르치고 이데아론, 영혼론 등을 주요 사상으로 삼아 서양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
법철학자 -
함병춘
함병춘은 법학자, 외교관, 정치인으로서 연세대학교 법학과 교수, 박정희 정부의 외교안보담당 특별보좌관 및 주미 한국 대사, 전두환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하며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했으나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순직했다. -
독일의 저술가 -
카를 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는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역사가, 언론인, 혁명가이자 공산주의 사상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 등을 통해 역사적 유물론, 계급 투쟁, 자본주의 비판 이론을 체계화하여 사회주의 운동과 현대 사회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독일의 저술가 -
마르틴 루터
마르틴 루터는 1483년 독일에서 태어난 신학자이자 종교 개혁가로, '오직 믿음으로' 칭의 교리를 확립하고 95개 논제를 발표하여 종교 개혁을 촉발했으며, 독일어 성경 번역과 성직자 결혼 허용에 기여했으나 후기에는 반유대주의적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2. 생애
1923년 5월 10일 남독일의 호엔트비엘/Hohentwiel독일어의 징겐/Singen (Hohentwiel)독일어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국민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인 에드문트 카우프만이다. 징겐의 초등학교 과정을 수료한 후, 마인츠의 김나지움에 다녔다.
1941년 대학 입학 자격을 취득,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 입학 등록을 했으나 곧 병역에 들어갔다. 1941년 - 1945년 병역. 덴마크 상공에서 격추되었다。
카우프만은 병역 중 "기구적 관찰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애"를 입어 물리학의 길을 걷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제대 후 자신을 받아줄 대학을 찾아 대학 도시들을 떠돌아다니던 중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라트부르흐를 만났다.
1945년 - 1949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법학을 연구, 라트브루흐를 만났다. 1948년 법조인을 위한 제1차 국가시험 합격. 1949년 라트브루흐 아래에서 법학 박사 학위 수여 ("형법 책임론에서의 불법 의식"). 1951년 법조인을 위한 제2차 국가시험 합격.
1952년 - 1957년 카를스루에 지방 법원 판사로 취임. 1957년 - 1960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연구. 1960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형법, 형사소송법 및 법철학을 위한 교수 자격 취득 (교수 자격 논문 "책임 원리")
1960년 - 1969년 자르브뤼켄의 자르란트 대학교 정교수. 법 및 사회철학 연구소 소장. 1969년 - 카를 엔기슈의 후임으로 뮌헨 대학교(루트비히 막시밀리안) 정교수가 되었다。법철학 및 법정보학 연구소 소장.
1989년 - 뮌헨 대학교 명예 교수 (후임은 로타 필립스 교수, 베른트 쉴레만 교수)
2.1. 초기 생애 및 교육 (1923-1945)
아르투어 카우프만은 병역 중 "기구적 관찰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애"를 입어 물리학의 길을 걷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제대 후 자신을 받아줄 대학을 찾아 대학 도시들을 떠돌아다니던 중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라트부르흐를 만났다.
2.2. 라트부르흐와의 만남과 법학 연구 (1945-1960)
아르투어 카우프만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며 구스타프 라트부르흐를 만났다. 카우프만은 라트부르흐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이는 그의 학문적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카우프만은 병역 중 "기구적 관찰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애"를 입어 물리학의 길을 걷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제대 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라트부르흐를 만나게 되었다.
1948년 법조인을 위한 제1차 국가시험에 합격하고, 1949년 라트부르흐의 지도 하에 "형법 책임론에서의 불법 의식"이라는 논문으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51년 법조인을 위한 제2차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1952년부터 1957년까지 카를스루에 지방 법원 판사로 재직했다. 1957년부터 1960년까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철학을 연구했고, 1960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형법, 형사소송법 및 법철학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교수 자격 논문은 "책임 원리"였다.
2.3. 대학교수로서의 활동 (1960-1989)
아르투어 카우프만은 1960년부터 1969년까지 자르란트 대학교 정교수 및 법 및 사회철학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다. 1969년에는 카를 엔기슈의 후임으로 뮌헨 대학교 정교수가 되었으며, 법철학 및 법정보학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2.4. 은퇴 이후 (1989-)
1989년 뮌헨 대학교 명예 교수가 되었다. 후임은 로타 필립스 교수와 베른트 쉴레만 교수였다. 명예 교수가 된 이후에도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