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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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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에서 기원전 423년 사이에 아테네 또는 아이기나에서 태어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그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으며, 삼십인 정체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겪으며 정치에 환멸을 느껴 철학에 몰두했다. 플라톤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받았고, 아테네에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하여 철학, 수학, 정치학 등을 가르쳤다. 그의 주요 사상은 이데아론, 영혼론, 인식론, 윤리학, 정치학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스승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서양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은 다양한 저작을 남겼으며, 그의 저술들은 초기, 중기, 후기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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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플라톤
로마자 표기Platōn
출생일기원전 428/427년 또는 424/423년
출생 장소아테네
사망일기원전 348년 (약 75-80세)
사망 장소아테네
학문 및 사상
학파플라톤 아카데미
주요 관심사인식론
형이상학
정치 철학
주요 제자아리스토텔레스
주요 저서에우티프론
변론
크리톤
파이돈
메논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향연
파이드로스
파르메니데스
테아이테토스
국가
티마이오스
법률
주요 사상동굴의 비유
4원덕
선의 이데아
이데아론
영혼의 구분
플라토닉 러브
플라톤의 입체
영향을 받은 인물소크라테스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아리스토파네스
아이소포스
프로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오르페우스교
영향을 준 인물많은 서양 철학 후속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신플라톤주의
키케로
플루타르코스
스토아학파
안셀무스
마키아벨리
데카르트
홉스
라이프니츠

쇼펜하우어
니체
하이데거
아렌트
가다머
이맘 호메이니
러셀
카잔차키스
그 외 수많은 철학자와 신학자
특기할 개념이데아
선의 이데아
철인왕
밤의 회의
이미지
기원전 370년경 조각상 로마 사본
기원전 370년경 로마 조각상 사본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에 그려진 플라톤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에 묘사된 플라톤(1509년)

2. 생애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에서 기원전 423년 사이에 아테네 또는 아이기나에서 태어났다.[12] 그의 아버지는 아리스톤, 어머니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기초를 놓은 솔론의 후손인 페리크티오네였다.[18][19][20] 형제로는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있었고, 포토네라는 여동생과[21] 이복형제 안티폰이 있었다.

플라톤이라는 이름은 "넓다"는 뜻의 별명으로, 레슬링 코치였던 아르고스의 아리스톤이 그의 넓은 가슴과 어깨 때문에 붙여준 것이라는 설과, 웅변이 뛰어나거나 이마가 넓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5][6] 그의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Ἀριστοκλῆς|아리스토클레스grc)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79]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젊은 시절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철학과 대화술을 배우며 정치가를 꿈꿨다. 그러나 삼십인 정체와 민주정 하에서의 혼란, 특히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기원전 399년)을 겪으며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81][82] 이후 정치와 철학을 결합하는 구상과 아카데메이아 학원 설립을 구상하게 된다.

플라톤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이집트, 키레네 등지를 여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81] 기원전 388년경, 플라톤은 피타고라스 학파를 접하며 실천적 정신과 실생활에 대한 관심을 얻었고, 이는 그의 독자적인 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이상 국가를 실현하고자 시켈리아의 참주 디오니시오스 1세의 초청을 받았으나, 그의 과두 정치를 비판하여 노예로 팔릴 뻔하기도 했다. 퀴레네 사람의 도움으로 구출된 후 귀국하여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건립하고 제자 양성과 저술에 몰두했다.

기원전 387년 40세 무렵,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하고, 천문학, 생물학, 수학, 정치학, 철학 등을 가르쳤다.[84] 아카데메이아기원전 84년 술라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존속했다.

기원전 357년 디오니시오스 2세의 간청으로 다시 시켈리아로 가서 이상 정치를 펼치려 했으나 실패하고 1년 만에 귀국했다.

플라톤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이야기는 그가 침대에서 죽었고, 젊은 트라키아 소녀가 그에게 플루트를 불어 주었다고 한다.[23] 다른 이야기는 플라톤이 결혼식 잔치에서 죽었다고 하며, 테르툴리아누스는 단순히 잠자는 중에 죽었다고 전한다.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견된 두루마리에 따르면, 플라톤은 죽기 전 "리듬이 부족한 음악가를 비판할 만큼 충분한 명료함을 유지했다"고 하며, 아테네 아카데메이아의 지정된 정원에 묻혔다고 한다.[23]

2. 1. 소년, 청년기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 아테네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78]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Ἀριστοκλῆςgrc)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79] 건장한 체격 덕분에 레슬링 스승에게 "플라톤"(Πλάτωνgrc)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후 이 이름으로 불렸다.[73] (πλατύς|플라튀스|넓다grc)

젊은 시절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철학과 대화술을 배우며 정치가를 꿈꿨다. 그러나 삼십인 정체와 민주정 하에서의 혼란, 특히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기원전 399년)을 겪으며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81][82] 이후 정치와 철학을 결합하는 구상과 아카데메이아 학원 설립을 구상하게 된다. (『7번째 서한』 참고)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보다 먼저 크라틸로스에게 헤라클레이토스의 자연 철학, 특히 "만물 유전" 사상(감각적인 것은 끊임없이 변하므로 진정한 인식은 성립될 수 없다는 사상)을 배웠고, 이는 평생 그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83]

플라톤의 초기 저작인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라케스』, 『뤼시스』 등은 30대 후반(기원전 388년-387년) 첫 시칠리아 여행 전에 쓰여졌다.[104]

『메논』, 『향연』, 『파이돈』 등 중기 작품들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이 짙어 첫 시칠리아 여행 후, 아카데메이아 학원 설립(기원전 387년) 후인 40대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105][106][107][108]

『고르기아스』는 초기와 중기의 경계에 있는 작품으로, 첫 시칠리아 여행 전[109] 또는 후, 『메논』과 비슷한 시기[110]에 쓰여졌다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2. 2. 시칠리아 여행

플라톤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이집트, 키레네 등지를 여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81]

기원전 388년(-기원전 387년), 플라톤은 39세 무렵 아테네를 떠나 이탈리아와 시칠리아(1차 시칠리아 여행) 등을 여행했다. 이때 이탈리아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엘레아 학파와 교류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대 초반의 청년 디오니시오스(디오니소스) 1세를 처음 만난 것도 이때였다.[81]

『그리스 철학자 전기』 제3권 제1장 18절-21절에는 플라톤이 시라쿠사의 폭군 디오니시오스 1세(후술하는 디오니시오스 2세의 아버지)와 교류했으나, 언쟁으로 그의 심기를 건드려 라케다이몬(스파르타) 인에게 팔려 아이기나 섬에서 사형 또는 노예 매매 위기에 처했으나, 키레네 학파의 안니케리스에게 구출되었다는 설이 소개되어 있지만, 진위는 불분명하다.

기원전 367년(-기원전 366년), 60세 무렵, 디온[85] 등의 간청으로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로 갔다(두 번째 시칠리아 여행). 시라쿠사의 젊은 폭군 디오니시오스 2세를 가르쳐 철인 정치[86]를 실현하려 했으나, 플라톤 도착 4개월 후 유언비어로 디온이 추방당해 실패했다.[81]

플라톤의 저술 시기에 관해서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라케스』, 『뤼시스』 등 초기 저작들은 플라톤이 30대 후반 무렵, 즉 기원전 388년-기원전 387년의 제1차 시칠리아 여행 에 쓰여졌다는 견해[104]가 대체로 일치한다.

『테아이테토스』는 기원전 368년-기원전 367년경, 플라톤이 60세 전후, 즉 기원전 367년-기원전 366년의 두 번째 시칠리아 여행에서 시라쿠사의 정쟁에 휘말리기 전후에 쓰여졌다고 추정된다.[113]

2. 3. 아카데메이아 설립

기원전 387년, 40세 무렵, 플라톤(Πλάτων)은 시칠리아 여행에서 귀국한 직후 아테네 교외 북서쪽 아카데메이아 부근에 학원을 설립했다.[84] 그곳은 아테네 성곽 밖 숲 속에 공공 체육장이 설치된 영웅 의 신성한 장소였으며, 플라톤은 이곳에 작은 정원을 소유하고 있었다. 장소의 이름인 아카데메이아가 그대로 학원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아카데메이아에서는 천문학, 생물학, 수학, 정치학, 철학 등이 가르쳐졌다. 그곳에서는 대화가 중시되었고, 교사와 학생의 문답을 통해 교육이 이루어졌다.

기원전 367년, 플라톤 60세 무렵에는 아리스토텔레스(Ἀριστοτέλης)가 17세에 아카데메이아에 입문하여 이후 플라톤이 사망할 때까지 20년간 학업 생활을 보냈다. 플라톤 사후 그의 조카인 스페우시포스(Σπεύσιππος)가 뒤를 이어 학두가 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메이아를 떠났다.

2. 4. 죽음

플라톤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훼손된 사본에 기반한 한 이야기에 따르면, 플라톤은 침대에서 죽었고, 젊은 트라키아 소녀가 그에게 플루트를 불어 주었다고 한다.[23] 다른 전승에 따르면 플라톤은 결혼식 잔치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3세기 알렉산드리아인 헤르미푸스의 기록에 대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언급에 기반한다. 테르툴리아누스에 따르면, 플라톤은 단순히 잠자는 중에 죽었다.

2024년,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견된 두루마리가 해독되었는데, 이는 이전의 몇몇 이론을 확인해 주었다. 파피루스는 플라톤이 죽기 전에 "리듬이 부족한 음악가를 비판할 만큼 충분한 명료함을 유지했다"고 말하며, 그는 "아테네 아카데메이아의 지정된 정원에" 묻혔다고 말한다.[23] 필로데무스에 따르면, 플라톤은 아테네의 그의 아카데미아 정원, 뮤즈의 신성한 사당 근처에 묻혔다고 한다.[22]

3. 철학

플라톤의 철학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으며, 이데아론, 영혼론, 인식론, 윤리학, 정치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로부터 변증법(問答法)과 정의, 덕, 선을 지적으로 추구하는 철학자(愛知者)로서의 주지주의적 태도를 배웠다. 첫 시칠리아 여행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와 교류한 후 수학·기하학을 중시했는데, 이는 감각을 초월한 진실 존재로서의 "이데아" 개념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중기와 후기에 걸친 대화편에서는 "이데아"론을 세계·우주 전체에 적용하는 형태로 자연학적 고찰이 시도되었다. 『티마이오스』에서는 데미우르고스에 의해 이 우주가 그의 모습을 닮아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법률』에서는 무신론에 대한 반박과 함께 여러 천체가 신들의 "최선의 영혼", 그 지성(누스)에 의해 움직이며, 신들은 인간을 배려하고 우주 전체의 선을 목표로 한다는 "신학론"을 제시한다.[90] 이처럼 플라톤에게 자연·세계·우주와 신들은 불가분의 일체적인 것이며, 그 배후에는 선과 이데아가 자리 잡고 있다.

플라톤의 사상에서 “이데아”와 “영혼”(psyche)은 밀접하게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메논』에서는 “(불멸의) 영혼의

플라톤은 "덕은 지식이다"라는 주지주의적 사상을 바탕으로, 문답을 통해 "'''선의 이데아'''"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보았다.

젊은 시절부터 정치, 국가 제도, 법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탐구를 계속했던 플라톤은 초기부터 정치와 철학의 통합을 모색했으며, 중기 이후 "철인왕" 사상과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통한 동지 양성 구상을 제시했다.

플라톤에게 교육은 철학·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된 중대한 관심사였다. 그는 40세에 아카데메이아에 자신의 학원을 설립하고, 수학·기하학문답법(변증법)을 중심으로 "선의 이데아"를 간파하고 목표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철학자들에게 제공했다.

플라톤은 몇몇 대화편에서 예술, 특히 수사학과 랩소디(시 낭송)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며, ''국가''에서는 호메로스의 시와 웃음까지 금지하려 한다.

3. 1. 이데아론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의 사상에서 독립하여 이데아론이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학설을 제창하였다. 우리가 삼각형을 생각할 때 현실적으로 삼각형을 아무리 정확하게 그린다고 해도 어느 하나도 완전하게 그려 낼 수 없다. 그것은 이미 한 변의 직선마저 완전하게 긋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완전한 직선, 완전한 삼각형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으며 그 존재를 인정하고 계산도 하여 해답한다. 결국 현실에서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현실의 삼각형은 이 이데아를 인정하기 때문에 삼각형으로 인식할 수 있다.[34]

수학의 대상뿐만 아니라 선(善), 미(美), 용기의 이데아도 생각해 낼 수 있다. 현실에서는 완전한 선을 찾기 어렵지만 완전한 선의 이데아는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것보다 저것이 낫다고 비교할 수 없다. 아름다운 꽃은 시들고 아름다운 경치는 폐허가 되어도 아름다움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미의 이데아이다. 이 미의 이데아에 현실의 개체가 의탁될 때 비로소 아름다운 개체가 된다. 즉 미의 이데아는 아름다운 개체의 원인이다.[34]

사람의 영혼은 원래 이러한 이데아계(界)에 있었는데 육체를 갖추고 이데아를 망각하여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그러므로 진·선·미를 인식하는 것은 영혼이 원래 살던 이데아계를 상기하는 것과 같다는 상기설을 주장하였다.[34]

일반적으로 플라톤의 철학은 이데아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한다.

30대에 초기 대화편을 집필하던 플라톤은 “무지의 지”, “아포리아(교착상태)”를 거치면서, 문답을 통해 정의, 덕, 선의 “단일한 양상”을 목표로 악전고투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그리며, “덕은 지식이다”라는 주지주의적인 태도를 제시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40세 무렵의 첫 번째 시칠리아 여행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와 교류함으로써, 초기 말기의 ⟪메논⟫부터 “생각 없음”(사견, 억견, doxa 독사)과 “지식”(episteme 에피스테메)의 구별, 수학, 기하학 및 “영혼”과의 연관성을 명확히 제시하기 시작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감각을 초월한 진실된 존재로서의 “이데아” 개념이 중기 대화편부터 제시되기 시작했다.

생성 변화하는 물질계 배후에는 영원 불변의 이데아라는 이상적인 범형이 있으며, 이데아야말로 진정한 실재이고, 이 세계는 불완전한 허상의 세계에 불과하다. 불완전한 인간의 감각으로는 이데아를 포착할 수 없고, 이데아의 인식은 과거 그것을 신들과 함께 관상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불멸의 영혼이 수학, 기하학 및 문답을 통해 그 기억을 “상기”(anamnêsis, 아남네시스)함으로써 접근할 수 있으며, 그러한 영혼이 진실된 존재로서의 이데아의 모습(에이콘)에 과거의 기억을 자극받음으로써 이데아에 대한 지향, 사랑·열정(erôs, 에로스)이 환기된다고 했다.

이러한 발상은 ⟪국가⟫, ⟪파이돈⟫에서 전형적으로 묘사되며, ⟪국가⟫에서는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 “동굴의 비유” 등으로 비유된다. 플라톤은 최고의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이며, 존재와 지식을 초월하는 최고 원리라고 했다. 철학자는 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대상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독사(생각 없음, 생각의 오류)를 품고 있는 자의 사랑의 대상은 “있고, 또한 없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논하여 플라톤은 존재론지식을 연결하고 있다.

파르메니데스⟫, ⟪테아이테토스⟫, ⟪소피스트⟫, ⟪정치가⟫ 등 중기 말기부터 후기에 걸쳐서는 엘레아 학파의 영향도 현저해진다.

티마이오스⟫에서는 이 세계·우주가 선한 창조자(데미우르고스)인 신에 의해 영원한 이데아를 범형으로 하여 모방·제작된 것임이 이야기된다. ⟪법률⟫에서는 여러 천체가 신들의 “최선의 영혼”의 지성(누스)에 의해 움직이고 있음을 설명한다.

3. 2. 영혼론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결합하여 충동적이며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는 정욕과, 육체와 결합되지 않으며 불사(不死)적인 순수한 이성으로 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성'은 매우 순수한 것이지만, 이 세계의 배후에 있는 완전 지성 실체계인 이데아를 직관할 수 없으며, 세상에 탄생하여 육체 속에 듦으로써 이데아를 잊고 있다고 한다. 이 잊었던 이데아를 동경하는 마음이 에로스이며, 현상을 보고 그 원형인 이데아를 '상기'하여(상기설) 인식하는 것이 진리라고 한다. 인간의 이성적 부분의 덕은 지혜이며, 정욕적 부분의 덕은 절제, 이성의 명령에 복종하여 정욕을 억압하는 기개의 덕은 용기라고 한다. '올바름(dikaiosyne, 또는 '정의')'이란 여러 덕이 알맞게 그 기능을 발휘할 때를 말한다.[34] 그는 이러한 덕론을 통하여 인간 개인의 윤리학을 논하였다. 그러나 정의의 실현은 개인의 덕을 달성하는 것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사회 전체의 윤리설을 주장하였는데, 그것이 그의 '국가(Politeia)'이다.

플라톤에게 영혼은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었다.[35] 플라톤은 영혼 불멸을 주장하며, 여러 대화편들은 사후 세계를 상상하는 긴 연설로 끝맺는다. 『티마이오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인체 내 영혼의 부분들을 다음과 같이 위치시킨다. 이성은 머리에, 정신은 몸통의 상부 1/3에, 욕망은 배꼽까지의 몸통 하부 1/3에 위치한다.[36]

플라톤은 여러 대화편(예: 『파이돈』과 『티마이오스』)에서 윤회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37] 그는 지식이 관찰이나 연구가 아니라 태어나기 전에 알고 있던 것들을 상기하는 문제임을 보여주기 위해 윤회 개념을 이용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주제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건망증을 자주 불평한다. 『메논』에서 소크라테스는 기하학적 예시를 사용하여 플라톤의 견해, 즉 지식은 상기함으로써 얻어진다는 것을 설명한다. 소크라테스는 교육받지 못한 노예 소년에게서 기하학적 구조에 관한 사실을 이끌어낸다. 소크라테스는 그 지식이 영원하고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형상에 대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플라톤의 사상을 논할 때 “이데아”와 “영혼”(psyche)은 빠질 수 없는 요소이자 관점이다. 그리고 둘은 밀접하게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초기 저작인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등에서도 “영혼을 훌륭하게 하는 것”이나 죽음 이후 “영혼”이 가는 곳으로서 저승 등에 대해 언급되었지만, 시칠리아로의 첫 번째 여행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와 교류한 후의 『메논』 이후의 작품에서는 본격적으로 “영혼”(psyche)이 “이데아”와 함께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고, 그 성격과 자세한 내용이 이야기되기 시작한다.

『메논』에서는 “(불멸의) 영혼의 상기]”(anamnēsis)가 처음으로 언급되고, “배움이란 상기하는 것이다”라는 명제가 제시된다. 중기의 『

3. 3. 인식론

플라톤은 인식론의 여러 측면을 논의했는데, 여러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알 수 있는 것과 실재하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사람들의 직관을 뒤집는다. 그는 현실은 감각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접근할 수 없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눈으로 보는 자는 장님이라고 말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각 대상을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손으로 잡을 수 있어야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테아이테토스''에서 그는 그러한 사람들을 "εὖ ἄμουσοι"(eu amousoi), 즉 "행복하게도 뮤즈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는데,[38] 이는 그들이 신성한 영감과 현실에 대한 더 높은 통찰력에 접근하지 않고 무지한 채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은 플라톤이 지식을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는 인식론의 미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에서 '정당화된 참된 믿음' 정의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정당화(또는 "이유")는 '차이'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므로 지식의 정의는 순환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39]

''소피스트'', ''정치가'', ''국가'', ''티마이오스'', ''파르메니데스''에서 플라톤은 지식을 변치 않는 이데아와 그 상호 관계(그는 이를 변증법적 "전문성"이라고 부른다)의 파악과 관련짓고, '수집'과 '분류' 과정을 통해서도 설명한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지식은 항상 그것이 얻어지는 영역에 비례한다고 주장한다. 즉, 경험적으로 얻은 견해는 감각 세계의 끊임없는 변화로 인해 단순한 의견에 불과하며, 필연성과 안정성이 부족하다. 반면, 비감각적인 이데아를 통해 얻은 설명은 이데아가 불변하기 때문에 불변한다. 지식에는 이데아의 파악이 필요하다는 것은 ''테아이테토스''와 ''메논''에서 플라톤의 이론과 일치한다. 이데아의 파악은 정당화에 필요한 설명의 기초가 되며, 그 자체로 설명이 필요 없는 기초적인 지식을 제공하여 무한 회귀를 피할 수 있게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국가''의 핵심적인 의문 중 하나를 형성한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로부터 변증법을 계승했다. 초기 대화편에서는 소피스트들의 변론술이나 논쟁술과 대비되어 타당성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졌지만, 중기부터는 대상을 자연 본성에 따라 "다에서 하나로" 특정하기 위한 추론 기술로 정교해지면서,[89] 수학, 기하학과 함께 "이데아"에 다가가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 되었다.

국가』에서는 수학적 여러 학문과 함께 "철인왕"이 수학해야 할 교육 내용으로 언급된다. 『메논』부터 중기까지는 "가설(ヒュポテシス)법", 후기부터는 "분할(ディアイレシス)법"이라는 수법도 등장한다. 이러한 변증법은 후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논리학"으로 발전하게 된다(『오르가논』).

플라톤은 첫 시칠리아 여행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와 교류하면서 『메논』 이후로 수학·기하학을 중시하여 자주 다루게 되었으며, 이것들은 감각을 초월한 진실 존재로서의 "이데아" 개념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그의 학원인 아카데메이아에서도 수학·기하학이 특히 중시되었으며, 『국가』나 『법률』에서도 국가 지도자에게 필수적인 교육 내용으로 언급되었다.

3. 4. 윤리학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결합된 충동적이며 감각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정욕과, 육체와 결합되지 않으며 불사(不死)적인 순수한 이성으로 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성'은 매우 순수한 것이지만 이 세계의 배후에 있는 완전 지성 실체계인 이데아를 직관할 수 없으며, 세상에 탄생하여 육체 속에 듦으로써 이데아를 잊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잊었던 이데아를 동경하는 마음이 에로스이며, 현상을 보고 그 원형인 이데아를 '상기'하여(상기설) 인식하는 것이 진리라고 한다. 인간 이성 부분의 덕은 지혜, 정욕 부분의 덕은 절제, 이성의 명령에 복종하여 정욕을 억압하는 기개의 덕은 용기라고 한다. '올바름(dikaiosyne, 또는 '정의')'이란 여러 덕이 알맞게 그 기능을 발휘할 때의 상태를 말한다. 플라톤은 이러한 덕론을 통하여 인간 개인의 윤리학을 논하였다. 그러나 정의의 실현은 개인의 덕을 달성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사회 전체의 윤리설을 주장하였는데, 그것이 그의 '국가(Politeia)'이다.[34]

몇몇 대화편에서는 덕과 악, 쾌락과 고통, 범죄와 처벌, 정의와 의학을 포함한 윤리에 대해 논의한다. 소크라테스는 같은 이름의 대화편에서 유명한 에우튀프론의 딜레마를 제시한다. "경건한 것(τὸ ὅσιον)이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신들)에게 사랑받는가, 아니면 신들에게 사랑받기 때문에 경건한 것인가?" (10a) '프로타고라스' 대화편에서는 소크라테스를 통해 덕은 타고나는 것이며 배울 수 없다는 것, 아무도 고의로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선을 아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 즉 지식이 덕이라는 것이 주장된다. '국가'에서 플라톤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개인의 정의와 사회를 구성하는 정의를 모두 검토함으로써 형이상학뿐만 아니라 윤리와 정치에도 "도덕적, 사회적 의무의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플라톤은 지혜를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책임, 즉 선의 형상에 대한 이해로 이끄는 지혜에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선"을 최고의 형상으로 보고, 어떤 의미에서는 "존재 너머"에도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에서 자신의 도덕적,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 실천될 때 정의가 실현된다.[40]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로부터 "덕은 지식이다"라는 주지주의적 사상과, 문답을 통해 그것을 집요하게 추구해 나가는 애지자(철학자)로서의 자세를 배웠다. 초기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정의·덕·선과 같은 "단일한 형상"을 목표로 악전고투를 계속하는 모습을 묘사했지만, 시칠리아 첫 번째 여행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와의 교류를 거쳐 중기 이후의 대화편에서는, 그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 "'''선의 이데아'''"라는 방향으로 확립되었다.

『국가』에서는 국가의 수호자인 "철인왕"이 목표로 삼아야 할 것으로 "선의 이데아"가 제시되고, 그 설명을 위해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 "동굴의 비유"가 제시되었다.

후기 말의 『법률』 제10권에서는 신들은 인간을 배려하고 있으며, 그 배려는 우주 전체의 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 논증되고, 제12권에서는 "철인왕"을 대신하여, 국제·법률 보전 및 그 목적인 "선" 달성을 위한 기구로서 "밤의 회의"의 구성원에게도 "철인왕"과 같은 교육과 자질이 요구된다고 서술한다.

이처럼 플라톤은 인간이 "자연"(퓌시스)도 "사회법습"(노모스)도 관통하는 "선의 이데아"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윤리관을 정립했다.

이러한 윤리관은 『국가』, 『법률』에서 "철인왕", "밤의 회의"와 관련지어 서술되고 있는 것처럼 플라톤의 정치학·법학의 기초가 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형이상학』에서 『윤리학』을, 『윤리학』에서 『정치학』을 이끌어내는 형태로, 그리고 "최고의 공동체"인 국가의 목적은 "최고선"이라고 하여 플라톤의 이러한 구성을 그대로 계승·답습하고 있다.

3. 5. 정치학

플라톤은 국가를 개인의 확대된 형태로 보았다. 그는 개인의 욕망, 기개, 이성이 각각 농·공·상업에 종사하는 서민, 군인·관리, 통치자에 대응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이성이 선의 이데아를 인식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해야 한다"는 유명한 철인 정치론을 주장했다.[81] 이러한 통치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제도와 방법에서 그의 교육학을 엿볼 수 있다.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엘리트에 의한 지배를 옹호하며, 귀족정이 평등 사회가 아닌 신분 사회를 옹호하는 것처럼, 플라톤 또한 신분사회를 옹호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귀족정의 궁극적인 목적과 실현 양태는 일반적인 귀족정과 다르다. 플라톤이 말하는 귀족정에서의 왕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이 높은 신분에 걸맞는 도덕적 의무를 중시해야 하며, 왕의 사유재산은 오직 공익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 일선의 '귀족'들은 세습 귀족이 아니라 철학 지식이 풍부한 철학자들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지식인에 의한 독재'를 주장했으며, 시민 계급에 의한 토론 정치인 아테네의 민주정을 '우민 정치'라고 비판했다.[91]

플라톤은 '세 가지 주된 덕'에서 '조화'를 강조했다. 네 가지 주된 덕에 맞는 각각의 신분이 각자 맡은 일만을 해야 하며, 그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은 플라톤의 관점에서 '사회적 부조화'를 야기한다고 보았다.

플라톤의 저술 중에서도 분량이 많은 중기의 『국가』와 후기 말의 『법률』은 모두 국가, 국체, 법률에 관한 저술이다.[91] 이 두 저술은 모두 "논의에서 이상 국가를 처음부터 건설하는 시도"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국가』에서는 "철인왕" 사상이 제시되며, 다음과 같은 5가지 국체의 변천을 보여준다.

  • "우수자 지배제"(아리스토크라티아) - "이성" 우위[92]
  • "명예 지배제"(티모크라티아) - "기개" 우위[92]
  • "과두정"(올리가르키아) - (부에 대한) "욕망" 우위[95]
  • "민주정"(데모크라티아) - (자유에 대한) "욕망" 우위[96]
  • "폭군독재정"(튀란니스)


『국가』와 『법률』 사이에는 과도기적인 대화편인 후기의 『정치가』가 있다. 여기서는 현실의 국체로서 다음과 같은 국체들이 제시된다.

  • "왕정"(바실레이아) - 법률에 근거한 단독자 지배
  • "폭정"(튀란니스) -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 단독자 지배
  • "귀족정"(아리스토크라티아) - 법률에 근거한 소수자 지배[97]
  • "과두정"(올리가르키아) -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 소수자 지배
  • "민주정"(데모크라티아) - 다수자 지배 (법률에 근거하는지 여부에 따른 구별 없음)


그리고 다음과 같은 현실적인 국체들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법률 준수시법률 경시시
최량단독자 지배(왕정)다수자 지배(민주정)
중간소수자 지배(귀족정)소수자 지배(과두정)
최악다수자 지배(민주정)단독자 지배(폭정)



법률』에서는 이상 국가 "마그네시아"의 건설이 진행된다. 제3권에서는 아테네를 대표하는 민주정과 페르시아를 대표하는 군주정이라는 "양극"의 국체가 모두 쇠퇴를 초래한 것을 들어, 스파르타크레타처럼 양자를 절충한 "혼합제"가 바람직하다고 언급된다. 마지막 제12권에서는 국체·법률의 보전과, 그것들의 목적인 "선"의 보호·탐구를 위해, 『국가』에서의 "철인왕"을 대신하여, 여러 명의 철인 겸 실무자로 구성된 "'''밤의 회의'''"가 제시된다.

3. 6. 수사학과 시에 대한 비판

플라톤은 몇몇 대화편에서 예술, 특히 수사학과 랩소디(시 낭송)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소크라테스는 시가 뮤즈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며 이성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파이드로스''에서 시와 다른 형태의 신성한 광기(술 취함, 에로티시즘, 꿈)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41] ''국가''에서는 호메로스의 위대한 시와 웃음까지 금지하려 한다.

학자들은 플라톤의 철학이 ''고르기아스''에서 수사학을 비판하고 ''파이드로스''에서 수사학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인 것 때문에 수사학과 상충된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현대 연구자들은 플라톤이 수사학을 멸시했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며, 그의 대화편을 복잡한 수사적 원칙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한다.[42][43][44]

플라톤은 자신의 작품에서 아틀란티스 이야기, 에르의 신화, 동굴의 비유와 같은 신화적 서술을 풍부하게 사용했다.[45] 그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철학적 담론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철학적 추론의 결론을 전달하기 위해 신화를 사용했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46][47]

플라톤은 경험론과 같이 인간의 감각이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사상을 부정했다. 감각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올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에서는 예술(시가·연극)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100] 시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불완전하며, 완전한 삼각형이나 완전한 원, 구 그 자체는 항상 변치 않는 이데아라고 생각했다. 예술은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한 현실의 사물을 다시 모방하는 것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사물의 모방에 불과한 것에 돌리게 하는 것이라고 낮게 평가했다.

4. 저작

플라톤의 저작 대부분은 《대화편》 형식을 취하며,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주요 해설자로 등장한다.[123][124][125][126]

35편의 《대화편》과 13편의 서간은 전통적으로 플라톤의 것으로 여겨졌으나, 현대 학자들은 최소한 일부 저작의 진위 여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플라톤의 저작은 여러 방식으로 간행되었기 때문에, 그의 글을 칭하고 배열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플라톤의 글을 분류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16세기 앙리 에티엔(헨리쿠스 스테파누스)의 플라톤 판본에서 비롯되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플라톤의 글을 4부극으로 배열하는 방식을 티베리우스 황제의 궁정 점성가였던 트라쉬불로스가 고안했다고 기록했다.

다음은 플라톤의 저작 목록이다. 학자들 사이에 플라톤이 쓴 글인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책은 (1)로, 일반적으로 플라톤의 저작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책은 (2)로 표시했다. 표시가 없는 저작은 플라톤이 쓴 것으로 여겨진다.

4부극 순서저작 목록
I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II크라튈로스, 테아이테토스, 소피스트, 정치가
III파르메니데스, 필레보스, 향연, 파이드로스
IV알키비아데스 1 (1), 알키비아데스 2 (2), 히파르코스 (2), 에라스타이 (2)
V테아게스 (2), 카르미데스, 라케스, 뤼시스
VI에우튀데모스,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메논
VII대 히피아스 (1), 소 히피아스, 이온, 메넥세노스
VIII클레이토폰 (1), 국가,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IX미노스 (2), 법률, 에피노미스 (2), 편지들 (1)



그 밖의 저작은 플라톤의 이름을 빌렸으나 상당수는 고대에 이미 위작으로 여겨졌으며, 트라쉴로스는 자신의 4부극식 저작 배열에서 이런 류를 넣지 않았다. 아래 작품은 "위작"(Notheuomenoi) 또는 "위서"(Apocrypha)라 불린다.

: 악시오코스 (2), 정의 (2), 데모도코스, 시, 에뤽시아스 (2), 할퀴온 (2), 올바름에 대하여 (2), 덕에 대하여 (2), 시쉬포스 (2)

플라톤의 ''향연''의 한 장면을 그린 그림 (안젤름 파이어바흐, 1873)


플라톤은 자신의 대화편 어디에서도 자신을 참여자로 제시하지 않았으며, ''변명론''을 제외하고는 그가 어떤 대화편이라도 직접 들었다는 암시가 없다. 어떤 대화편에는 서술자가 없고 순수한 "극적" 형식을 취하는 반면, 어떤 대화편은 1인칭으로 말하는 소크라테스 자신이 서술한다. ''향연''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아폴로도로스가 글라우콘에게 서술하는 형식을 취한다. 아폴로도로스는 자신이 아직 유아였을 때 일어난 이야기를 자신의 기억이 아니라, 여러 해 전에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아리스토데무스의 기억을 바탕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청중에게 확신시킨다. ''테아이테토스'' 또한 특이한 경우다. 극적 형식의 대화가 다른 극적 형식의 대화 안에 삽입되어 있다.

대부분의 대화편에서 주요 화자는 소크라테스이며, 그는 변증법이라고 불리는 대화 형식을 통해 질문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1578년 스테파누스 판 플라톤 저서 3권 32~33페이지. 장 드 세르의 라틴어 번역과 주석이 포함된 티마이오스의 일부를 보여준다.


르네상스 초기, 비잔티움 학자들에 의해 그리스어와 함께 플라톤의 저술이 서유럽에 다시 소개되었다. 현재 알려진 플라톤 저서 사본은 약 250개에 달한다.[50] 1484년 9월 또는 10월, 필리포 발로리와 프란체스코 벨링기에리는 산 야코포 디 리폴리 교회의 산 야코포 디 리폴리 인쇄소를 사용하여 마르실리오 피치노의 번역본 1025부를 인쇄했다.[51] 앙리 에스티엔느가 제네바에서 출판한 1578년판[52] 플라톤 전집에는 장 드 세르의 병렬 라틴어 번역과 주석이 포함되어 있다. 이 판본은 오늘날까지도 사용되는 표준 스테파누스 페이지 번호를 확립했다.[53]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플라톤의 저술은 기원 1세기 멘데스의 트라실루스의 편집에 기반한 플라톤의 완전한 저술로 여겨진다.[54] 현대 표준 영어판 전집으로는 존 M. 쿠퍼가 편집한 1997년 해킷 출판사의 ''플라톤 전집''이 있다.[55]

플라톤에게 전통적으로 35편의 대화편과 13편의 편지(''편지들'')가 귀속되어 왔지만, 현대 학자들은 이 중 적어도 일부의 진위를 의심하고 있다.

고대에는 진품으로 여겨졌지만 현대 학자들 사이에서 적어도 일부가 의심받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알키비아데스 1세'' (*), ''알키비아데스 2세'' (‡), ''클리토폰'' (*), ''에피노미스'' (‡), ''편지'' (*), ''히파르쿠스'' (‡), ''메넥세누스'' (*), ''미노스'' (‡), ''애인들'' (‡), ''테아게스'' (‡)

다음 작품들은 고대에 플라톤의 이름으로 전해졌지만, 이미 1세기경에는 위작으로 간주되었다: ''악시오쿠스'', ''정의론'', ''데모도쿠스'', ''묘비명'', ''에릭시아스'', ''할키온'', ''정의에 관하여'', ''덕에 관하여'', ''시시포스''.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어떤 순서로 쓰였는지, 어느 정도로 나중에 수정되고 다시 쓰였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저술들은 일반적으로 초기, 중기, 후기로 분류되는데, 다음은 발달주의 학자들 사이에서 비교적 흔히 사용되는 분류 중 하나이다.[56]

시기저작 목록
초기변명론, 카르미데스, 크리톤, 에우튀프론, 고르기아스, 히피아스 소, 히피아스 대, 이온, 라케스, 뤼시스, 프로타고라스
중기크라튀로스, 에우튀데무스, 메논, 파르메니데스, 파이돈, 파이드로스, 국가, 향연, 테아이테토스
후기크리티아스, 소피스트, 정치가, 티마이오스, 필레보스, 법률


5. 영향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로부터 변증법과, ("무지의 지"나 "막다름"(아포리아)을 거치면서) 정의, 덕, 선을 지적으로 추구하는 철학자(애지자)로서의 주지주의적 태도를 배웠다.[81] 또한, 국가 공공에 종사하는 정치가를 목표로 했지만, 삼십인 정권과 그 후의 민주파 정권의 참상을 목격하고 현실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피했다. 소크라테스 사후 30대부터는 대화편을 집필하면서 철학의 추구와 정치와의 통합을 모색하게 된다.[81] 이 무렵 이미 철학자에 의한 국가 통치 구상(철인왕 사상)과 그 동지 획득·양성의 구상(후의 아카데메이아 학원)은 준비되고 있었다.[81]

40세 무렵의 첫 번째 시칠리아 여행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와 교류를 가짐으로써 수학, 기하학과 윤회전생하는 불멸의 영혼(프쉬케)의 개념[74]을 중시하게 되고, 그것들과 대비되는 감각을 초월한 진실된 존재로서의 "이데아" 개념을 발전시켜 나간다.

피타고라스의 추종자들의 수학적이고 신비적인 가르침은 플라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피타고라스 또는 더 넓은 의미에서 아르키타스와 같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 또한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는 모두 플라톤의 철학이 피타고라스 학파의 가르침을 밀접하게 따랐다고 주장했다.[26][27] R. M. 헤어에 따르면, 이러한 영향은 세 가지 측면으로 구성된다.

# 플라톤의 『국가』는 피타고라스가 크로톤에 설립한 것과 같은 "뜻이 같은 사상가들의 엄격하게 조직된 공동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 수학과 일반적으로 추상적 사고가 철학적 사고뿐만 아니라 "과학과 윤리의 실질적인 명제"에 대한 확실한 기반이라는 개념.

# 그들은 "영혼과 물질 세계에서의 영혼의 위치에 대한 신비주의적 접근 방식"을 공유했다.[28][29]

귀국 후 아카데메이아에 학원을 설립하고 초기·중기 대화편을 집필한다. "영혼의 상기(아남네시스)", "영혼의 삼분설[75]", "철인왕", "선의 이데아" 등의 개념을 표명한다. 또한 파르메니데스 등의 엘레아 학파에도 관심을 가지고 중기 후반부터 후기 대화편에서는 엘레아 학파의 인물을 자주 등장시키고 있다.

후기가 되면 이 세계 그 자체가 신에 의해 이데아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76] 주장이나, 여러 천체는 신들의 "최선의 영혼"의 지성(누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77] 등의 장대한 우주론·신학적 묘사가 나오는 한편, 첫 번째 시칠리아 여행 때 시라쿠사의 디온과 알게 된 것을 계기로 폭군 디오뉘시오스 2세가 지배하는 시라쿠사의 국정 개혁·내분에 관여하게 됨으로써 현실적인 "차선의 국정"을 모색하는 자세도 현저해진다.

플라톤의 서양 철학에 대한 영향은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절대적이다.[118]

플라톤의 영향의 한 예로 네오플라토니즘이라고 불리는 고대 로마 말기,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들을 들 수 있다. "일자(一者)"로부터 만물이 유출된다는 네오플라토니즘의 사상은 성립기의 기독교와 르네상스 시대 철학, 더 나아가 낭만주의 등에 영향을 주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프레스코화에는 플라톤(왼쪽)이 중심 인물로 등장하여 그의 『티마이오스』를 들고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는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손에 들고 지구를 가리키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게오르기오스 플레톤은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세기 동안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플라톤의 원본 저술을 피렌체로 가져왔다. 플라톤 사상의 지지를 받은 로렌초(코시모의 손자)의 지원을 받아 스콜라 철학과 결별한 많은 위대한 초기 근대 과학자와 예술가들은 플라톤 철학을 예술과 과학의 발전의 기초로 보았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 속 이야기에서, 창조자 "데미우르고스"가 이데아계를 본떠 현실계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 "데미우르고스"의 존재를 "신"으로 대체함으로써, 1세기의 유대인 사상가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은 유대교와 플라톤을 연결시켜 플라톤을 그리스의 모세라고 했다. 『티마이오스』는 서유럽 중세에 유일하게 전해진 플라톤의 저서이며, 플라톤의 사상은 네오플라토니즘의 사상을 경유하여 중세의 스콜라학에 계승된다.

칼 포퍼는 플라톤의 『폴리테이아』 등에 보이는 설계주의적인 사회 개혁 이론이 사회주의국가주의의 기원이 되었다고 하여, 플라톤 사상에 잠재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했다.[119]

6. 한국어 번역

플라톤의 저작들은 고대부터 사본 형태로 전해져 왔으나, 르네상스 시대인 15~16세기에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특히 1578년 스위스 제네바의 앙리 에티엔(라틴어명 앙리쿠스 스테파누스)이 출판한 스테파누스판 플라톤 전집은 그리스어 원문과 라틴어 번역문을 대조하여 싣고, 각 페이지에 10행마다 알파벳을 표기하여 현재까지도 표준적인 저본으로 사용되고 있다.[102] 현대의 번역 출판에서는 영국의 고전학자 존 버넷이 1900~1907년에 옥스퍼드 고전총서의 일부로 출판한 버넷판 등이 저본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플라톤 저작의 한국어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저작번역
소크라테스의 변명
카르미데스유혁 역, 《카르미데스》, 아카넷, 2021년.
크리톤
에우튀프론
고르기아스
소 히피아스
대 히피아스
이온천병희 역, 《이온》, 숲, 2014년
라케스
뤼시스
프로타고라스
크라튈로스
에우튀데모스
메논
파르메니데스천병희 역,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 - 테아이테토스 / 필레보스 / 티마이오스 / 크리티아스 / 파르메니데스》, 도서출판 숲, 2016년.
파이돈
파이드로스
국가박종현 역, 《국가·정체(政體)》, 서광사, 2005년 개정보증판.
향연
테아이테토스
메넥세노스
소피스트
정치가김태경 역, 《정치가》, 한길사, 2000년.
필레보스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법률
편지들
알키비아데스 1
알키비아데스 2김주일, 정준영 역, 《알키비아데스 2》, 이제이북스, 2007년.
에라스타이
미노스강철웅 역, 《미노스·사랑하는 사람들》, 아카넷, 2021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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