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마사코토
1. 개요
아베 마사코토는 시라카와 번의 다이묘 아베 마사히사의 아들로, 보신 전쟁 이후 다나구라 번의 마지막 당주가 되었다. 그는 1868년 가독을 상속받아 번지사를 거쳐 폐번치현으로 면관된 후, 게이오기주쿠에서 수학하고 자작 작위를 받았다. 아자부 지역의 대지주이자 제15은행의 대주주였으며, 고고학 연구에도 매진했다. 1925년에 사망했으며, 사후에는 수집품이 기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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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위 | 자작 |
|---|---|
| 이름 | 아베 마사코토 |
| 원어 이름 | 阿部正静 |
| 출생 | 안세이 7년 1월 23일 (1860년 2월 14일) |
|---|---|
| 출생지 | 에도 |
| 사망 | 다이쇼 14년 (1925년) 9월 11일 |
| 사망지 | 도쿄 |
| 묘소 | 도쿄도다이토구구라마에의 사이후쿠사 아오야마 영원 |
| 계명 | 쇼도쿠인덴엔요키도마사코 |
| 관위 | 종2위자작 |
|---|---|
| 번 | 무쓰다나구라번 번주 |
| 씨족 | 아베 씨 |
|---|---|
| 아버지 | 아베 마사히사 |
| 배우자 | 도쿠다이지 긴이토의 딸, 데루코 |
| 자녀 | 요코 나오코 |
| 재임 기간 | 1868년 ~ 1869년 |
|---|---|
| 전임 | 아베 마사키요 |
| 후임 | 폐지 |
| 재임 기간 | 1869년 ~ 187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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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이름 | 미쓰노스케 모토노스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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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시라카와번 사람 -
오키타 소지
오키타 소지는 에도 시대 말기 신센구미의 1번대 대장으로, 콘도 이사미, 히지카타 토시조와 함께 신센구미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뛰어난 검술 실력으로 '천재 검사'라 불렸지만 폐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한 인물이다. -
후다이 아베씨 -
오다와라번
오다와라번은 1590년 오다와라 정벌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쿠보 다다요를 성주로 임명하며 시작되어 오쿠보 가문이 주로 다스렸으나 아베 가문과 이나바 가문이 잠시 통치하기도 했고, 후지산 분화와 외국인 경비 임무로 어려움을 겪다 1871년 폐번치현으로 폐지되어 가나가와현에 통합된 에도 시대의 번이다. -
후다이 아베씨 -
후쿠야마번 (빈고국)
후쿠야마번은 1619년 미즈노 가쓰시게에게 하사되어 시작되었으며, 미즈노 가문과 아베 가문을 거쳐 메이지 유신까지 존속하다가 폐번치현으로 후쿠야마 현이 되었다. -
다나구라번주 -
마쓰다이라 다케치카
마쓰다이라 다케치카는 히타치국 후츄번주의 아들로 태어나 다테바야시번을 계승한 후 다나구라번으로 이봉되었으며, 로쥬 수좌로서 도쿠가와 요시무네, 이에시게, 이에하루 3대 쇼군을 섬기며 타누마 오키쓰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유력한 귀족 가문들과 혼인 관계를 맺은 에도 시대의 다이묘이다. -
다나구라번주 -
다치바나 무네시게
다치바나 무네시게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로, 다치바나 도세쓰의 양자가 되어 다치바나 가문을 이었으며, 임진왜란, 세키가하라 전투 등에 참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신임을 얻어 옛 영지에 복귀하는 등 문무를 겸비한 명장으로 평가받았다.
2. 생애
아베 마사코토는 시라카와 번의 6대 다이묘인 아베 마사히사의 아들로, 번의 에도 저택에서 하녀에게서 태어났다. 낮은 신분으로 태어났고,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그는 갓난아이에 불과했기 때문에, 다이묘 자리는 아베 마사키요를 통해 가문의 분가로 넘어갔다. 아베 마사키요는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시라카와 번에서 다나구라 번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보신 전쟁 동안 오우에쓰 열반 동맹이 패배한 후, 승리한 메이지 정부는 다나구라의 고쿠다카를 10만 석에서 6만 석으로 줄이고 아베 마사키요를 은퇴시켰다.
일곱 살의 아베 마사코토는 다나구라의 다이묘로 임명되었으나, 1869년 폐번치현으로 다이묘의 자리는 폐지되었고, 그는 다나구라의 지사가 되었다. 짧은 재임 기간 동안 그는 번교 설립을 승인했다.
1871년, 다나구라는 새로운 후쿠시마현에 병합되었고, 아베 마사코토는 도쿄로 이주했다. 1873년부터 게이오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또한 도쿄의 아자부 지역에 토지에 대규모 투자를 했고, 제15 은행의 주요 주주였다. 그는 또한 영어를 배웠고 열렬한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다. 1884년, 그는 가족의 자작 지위를 받았다. 그의 아내는 도쿠다이지 킨이토의 딸이었다.
1925년 9월 11일에 사망했으며, 향년 66세였다. 구 사도하라 번주 시마즈 타다아키의 삼남을 사위 양자로 맞아 아베 마사히로로 후사를 잇게 했다. 묘소는 도쿄도 다이토구 쿠라에 있는 사이후쿠지이다. 법명은 쇼토쿠인덴 엔요 키도 쇼코이다.
2.1. 어린 시절과 가독 상속
아베 마사히사의 아들로, 에도 저택에서 아베 마사토시와 여종 츠루오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이름은 미츠노스케, 모토노스케였다.
아버지 마사토시가 노령이 되어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수 없어 분가에서 아베 마사토모가 가독을 상속받았고, 이어서 그의 아들 마사야스에게 계승되었다. 그러나 게이오 4년(1868년) 보신 전쟁에서 마사야스가 구 막부 측에 가담했기 때문에 강제 은거하게 되었고, 같은 해 12월 14일에 4만 석 감봉된 6만 석으로 가독 상속을 허가받았다. 7세에 무츠국 타나구라 번 마지막 당주가 되었다.
2.2. 번주 및 지번사 시절
아베 마사코토는 시라카와 번의 6대 다이묘인 아베 마사히사의 아들로, 번의 에도 저택에서 하녀에게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이름은 미츠노스케, 모토노스케였다. 낮은 신분으로 태어났고,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그는 갓난아이에 불과했기 때문에, 다이묘 자리는 아베 마사키요를 통해 가문의 분가로 넘어갔다.
게이오 4년(1868년) 보신 전쟁에서 마사야스가 구 막부 측에 가담하여 강제 은거하게 되자, 같은 해 12월 14일에 4만 석이 감봉된 6만 석으로 가독 상속을 허가받았다. 그리하여 7세에 무츠국 다나구라 번 마지막 당주가 되었다.
메이지 2년(1869년) 6월 반적봉환으로 번지사가 되어 다나구라로 돌아와 번교인 수도관에 통학했고, 메이지 4년(1871년) 7월 14일 폐번치현으로 면관되었다.
2.4. 고고학 연구
1873년 게이오기주쿠에서 배우고, 1877년에는 미쓰쿠리 슈헤이의 영어 학원 "산차학사"에 입학하는 등 학문에 힘썼다. 1882년 지학 협회, 1890년 쓰보이 쇼고로의 인류학회에 입회하여 시바마루야마 고분 발굴 등에 참여했다. 자택에 진열관을 만들어 수집한 유물을 공개하는 등 고고학 연구에도 열심이었다. 지학에 흥미를 가진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의 학우로 취임하여 궁가에 출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