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미 고이타
1. 개요
아시미 고이타는 말리의 군인으로, 2020년과 2021년 두 차례의 쿠데타를 주도하여 말리의 과도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는 군 장교의 아들로 말리 군사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말리군 특수 부대에서 대령으로 복무하며 말리 내전에도 참여했다. 2020년 쿠데타를 통해 이브라힘 부바카르 케이타 대통령을 축출하고 국민 구제 위원회 위원장이 되었으며, 이후 과도 부통령을 거쳐 2021년 두 번째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여 임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2024년 육군 장군으로 진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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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함 | 제네랄 다르메 |
|---|---|
| 이름 | 아시미 고이타 |
| 출생 연도 | 1983년 |
| 배우자 | (라라 디알로) |
| 자녀 | 3명 |
| 직책 | 임시 대통령 |
|---|---|
| 임기 시작 | 2021년 5월 28일 |
| 전임 | 바 은다우 |
| 수상 | 쇼겔 코칼라 마이가(임시), 압둘라예 마이가(임시) |
| 임기 시작 2 | 2020년 9월 25일 |
| 임기 종료 2 | 2021년 5월 24일 |
| 대통령 2 | 바 은다우 |
| 전임 2 | 말리크 디아우 |
| 후임 2 | 공석 |
| 임기 시작 3 | 2020년 8월 18일 |
| 임기 종료 3 | 2020년 9월 25일 |
| 전임 3 | 이브라힘 부바카르 케이타 (대통령) |
| 후임 3 | 바 은다우 (대행 대통령) |
| 소속 | 말리군 |
|---|---|
| 복무 | 자치 특별 부대 대대 |
| 참전 | 말리 전쟁, , |
| 최종 계급 |
| 출신 학교 | , Prytanée militaire de Kat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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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의 군인 -
아마두 투마니 투레
아마두 투마니 투레는 말리의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1991년 쿠데타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과도 정부를 이끌었으며,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인프라 개선 등의 정책을 추진하다 2020년 사망했다. -
말리의 군인 -
무사 트라오레
무사 트라오레는 1968년 쿠데타로 말리 대통령이 되어 1991년까지 권력을 잡은 군사 지도자이자 정치인으로, 단일 정당 체제를 구축했으나 쿠데타로 축출되었고 그의 통치 기간은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어려움, 민주화 운동으로 특징지어진다. -
쿠데타로 집권한 지도자 -
헨리 7세
헨리 7세는 1485년 보즈워스 전투에서 승리하여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후 튜더 왕조를 창시하고, 요크 가문과의 결혼을 통해 장미 전쟁을 종식시키며 왕권을 강화하고 잉글랜드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한 인물이다. -
쿠데타로 집권한 지도자 -
피델 카스트로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혁명가이자 정치가로서, 쿠바 혁명 이후 47년간 최고 지도자로 군림하며 사회주의 체제 구축과 미국과의 대립을 심화시키는 등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그의 통치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
1983년 출생 -
김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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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출생 -
이세돌
2. 초기 생애 및 군 경력
아시미 고이타는 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카티의 프뤼타네 밀리테르와 쿨리코로에 있는 합동 군사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말리군 특수 부대인 자율 특수 부대 대대 대령으로 복무했으며, 말리 중부에서 특수 부대를 지휘하며 말리의 지하디스트 반군에 참여했다. 2018년에는 미래의 기니 쿠데타 지도자이자 대통령인 마마디 둠부야를 만났다.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미국 육군 특수 부대와 함께 일한 경험도 있다.
2.1. 초기 생애
고이타는 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카티의 프뤼타네 밀리테르와 쿨리코로에 있는 합동 군사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말리군 특수 부대인 자율 특수 부대 대대 대령으로 복무했으며, 말리 중부에서 특수 부대를 지휘하며 말리의 지하디스트 반군에 참여했다. 2018년에는 미래의 기니 쿠데타 지도자이자 대통령인 마마디 둠부야를 만났다.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미국 육군 특수 부대와 함께 일한 경험도 있다.
2.2. 군 경력
고이타는 말리군 장교의 아들로, 말리의 군사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카티의 프뤼타네 밀리테르와 쿨리코로에 있는 합동 군사 학교를 다녔다.
말리군의 특수 부대인 자율 특수 부대 대대 대령으로 복무했으며, 말리 중부에서 특수 부대를 지휘하며 말리의 지하디스트 반군에 참여했다. 2018년에는 미래의 기니 쿠데타 지도자이자 대통령인 마마디 둠부야를 만났다.
미국, 프랑스, 독일로부터 추가적인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미국 육군 특수 부대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3. 쿠데타 주도 및 대통령 집권
고이타는 두 번의 쿠데타를 통해 말리의 권력을 장악했다. 2020년 말리 쿠데타에서는 국민 구원 위원회의 지도자로서 이브라힘 부바카르 케이타 대통령을 축출하고 새로운 선거를 약속했다. 이후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의 압력으로 민간인 출신 바 느다우가 임시 대통령, 고이타는 임시 부통령이 되었다.
2021년, 고이타는 두 번째 쿠데타를 일으켜 은다우 대통령과 모크타르 우안 총리를 구금하고 다시 권력을 잡았다. 그는 은다우가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방해하려 했다고 주장하며, 내각 개편 과정에서 자신과 상의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특히 사디오 카마라 대령의 국방부 장관 해임이 쿠데타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 5월 28일, 헌법 재판소는 고이타를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했으며, 그는 초구엘 코칼라 마이가를 총리로 임명하여 내각을 구성하게 했다.
2021년 7월, 고이타는 바마코 대모스크에서 기도 중 암살 시도의 대상이 되었으나 실패했다.
2023년에는 헌법 국민 투표를 통해 새 헌법이 채택되었으나, 민주적 개혁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외적으로 고이타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2023년 러시아-아프리카 정상 회담에 참석하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으며, 말리에 대한 제재를 비판하며 러시아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또한 2023년 니제르 쿠데타 이후 쿠데타 세력을 지지했다.
3.1. 2020년 쿠데타와 부통령 취임
고이타는 2020년 말리 쿠데타에서 이부라힘 부바카르 케이타 대통령을 몰아낸 군부 세력인 국민 구원 위원회의 지도자였다. 그는 새로운 선거를 치르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 때문에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는 말리 군사 정부에 민간인이 나라를 이끌도록 압력을 넣었다.
2020년 8월 18일, 고이타는 자신이 케이타 대통령을 구금하고 권력을 장악했으며, 말리 국민 구제 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고 발표했다.
2020년 9월 21일, 17명의 선거인단에 의해 바 은다우 전 국방부 장관이 과도 정부 대통령으로 지명되었고, 고이타는 과도 부통령으로 임명되었다. 이들은 새로운 선거가 열릴 때까지 18개월 동안 직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고이타는 9월 25일에 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2020년 10월 1일, ECOWAS의 요청에 따라 부통령은 "국방 및 안보 문제를 담당"하며 바 느다우 대통령을 교체할 수 없다는 내용의 "말리 전환 서한"이 발표되었다.
3.2. 2021년 쿠데타와 임시 대통령 취임
고이타는 2021년 5월 24일 두 번째 쿠데타에 연루되어 권력을 장악했다. 대통령 은다우와 총리 모크타르 우안이 구금되었다. 고이타는 은다우가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방해"하려 했다고 주장하며 2022년에 선거를 치르겠다고 약속했다. 이 쿠데타는 은다우가 내각 개편에 대해 자신과 상의하지 않았다는 고이타의 주장에 의해 촉발되었다. 최근 쿠데타의 동기 중 하나는 사디오 카마라 대령의 국방부 장관 해임이라고 알려졌으며, 카마라는 고이타가 정권을 잡은 후 국방부 장관으로 복귀했다.
2021년 5월 28일, 헌법 재판소는 그를 말리의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했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고이타는 "전환 과정을 그 결론으로 이끌" "전환 대통령, 국가 원수"라는 직함을 가져야 했다. 같은 날 그는 M5-RFP 연합에서 총리를 지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초구엘 코칼라 마이가가 내각을 구성하도록 지명되었다.
2021년 7월 20일, 고이타는 이드 알 아다 축제 중 바마코의 바마코 대모스크에서 기도하던 중 칼을 든 남자의 공격을 받았다. 공격자는 대통령을 찌르는 데 실패한 후 즉시 체포되었다. 총 2명이 보안군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그 중 한 명은 공격자의 공범으로 오인된 특수부대 군인으로 밝혀졌다. 칼을 든 남자는 교사로 신원이 확인되었으며, 공격 후 5일 만에 구금되어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3.3. 임시 대통령 재임 기간
고이타는 2021년 5월 두 번째 쿠데타에 연루되어 권력을 장악했다. 이 쿠데타는 은다우 대통령이 내각 개편에 대해 자신과 상의하지 않았다는 고이타의 주장에 의해 촉발되었다. 사디오 카마라 대령의 국방부 장관 해임이 쿠데타의 주요 동기 중 하나로 알려졌으며, 카마라는 고이타 집권 후 국방부 장관으로 복귀했다.
2021년 5월 28일, 헌법 재판소는 고이타를 말리의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했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고이타는 "전환 과정을 그 결론으로 이끌" "전환 대통령, 국가 원수"라는 직함을 가져야 했다. 같은 날, 고이타는 M5-RFP 연합에서 총리를 지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초구엘 코칼라 마이가가 총리로 지명되어 내각을 구성하게 되었다.
2021년 7월 20일, 고이타는 이드 알 아다 축제 기간 중 바마코의 바마코 대모스크에서 기도하던 중 칼을 든 남자의 공격을 받았다. 공격자는 대통령을 찌르는 데 실패하고 즉시 체포되었다. 보안군에 의해 총 2명이 체포되었으나, 그 중 한 명은 공격자의 공범으로 오인된 특수부대 군인으로 밝혀졌다. 칼을 든 남자는 교사로 신원이 확인되었으며, 공격 5일 후 구금 중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2023년 6월 23일, 헌법 국민 투표가 실시되어 유권자의 97%가 제안된 헌법 채택을 지지했다. 등록 유권자의 39.4%가 국민 투표에 참여했다. 새 헌법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비평가들은 국민 투표가 위협적인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고 새 헌법이 민주적 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1년, 고이타의 이름을 딴 연례 아시미 고이타 대령 슈퍼컵 축구 토너먼트가 시작되었다.
2024년 10월, 고이타는 말리 육군 장군으로 진급했다.
3.3.1. 대외 관계
고이타는 2021년 5월 24일 두 번째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그는 은다우 대통령과 모크타르 우안 총리를 구금하고, 은다우가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방해하려 했다고 주장하며 2022년에 선거를 치르겠다고 약속했다.
2023년 7월, 고이타는 2021년 쿠데타 이후 첫 해외 방문으로 2023년 러시아-아프리카 정상 회담에 참석하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났다. 이 회담에서 말리에 대한 러시아의 지속적인 경제적, 인도적 지원에 대해 논의했다. 크렘린이 발표한 속기에 따르면 고이타는 회담에서 말리에 제재를 가하는 국가들을 "신식민주의적 행위"에 연루되었다고 비난했다.
2023년 10월, 고이타는 푸틴과 두 달도 안 돼 세 번째 통화를 하여 무역 및 안보 관계에 대해 논의했다. 고이타는 "러시아가 말리에 제공하는 모든 지원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고이타는 2023년 니제르 쿠데타 이후 조국 수호 국가 위원회(CNSP) 군부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으며, CNSP는 이후 말리군에게 니제르 진입을 허가했다.
2023년 7월 25일, 고이타는 2022년 12월에 선고받은 코트디부아르 군인 46명을 사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