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니제르 쿠데타
1. 개요
2023년 니제르 쿠데타는 2023년 7월 26일, 압두라하마네 치아니 장군이 이끄는 대통령 경호대가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억류하면서 발생했다. 이는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니제르에서 발생한 여러 쿠데타 시도 중 하나로, 경제난, 부패, 이슬람 테러 단체의 위협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서아프리카 국가 경제 공동체(ECOWAS)는 바줌 대통령 복귀를 요구하며 제재를 가했고, 국제 사회는 쿠데타를 비난하며 바줌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쿠데타는 사헬 지역에서 프랑스의 영향력 약화와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으며, 니제르의 우라늄 생산 차질은 국제 에너지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분쟁 명칭 | 2023년 니제르 쿠데타 |
|---|---|
| 시기 | 2023년 7월 26일 - 2023년 7월 28일 |
| 장소 | 니제르 니아메 |
| 결과 | 쿠데타 성공 |
| 상세 결과 | 우후무두 마하마두 정부 전복 니제르 헌법 정지 조국수호국민평의회 군사 정부 수립 국경 폐쇄, 통행 금지령 선포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 대통령궁에 억류된 채 사임 거부 압두라하마네 치아니 장군, 과도 정부 수반으로 선포 군사 정부, 알리 라민 제인 총리 주도 하에 21명의 장관을 임명하여 새 정부 구성 니아메 전역에서 심각한 소요 발생 니제르 위기 시작 미국 및 프랑스의 니제르 군사 개입 종료 니제르와 러시아 간의 새로운 군사 협력 시작 |
| 교전국 1 | 니제르 정부 PNDS-타라야 |
|---|---|
| 지지 세력 1 | ECOWAS 프랑스 유럽 연합 미국 아프리카 연합 국제 연합 |
| 교전국 2 | 조국수호국민평의회 M62 운동 |
| 지지 세력 2 | 부르키나파소 말리 기니 러시아 와그너 그룹 |
| 지휘관 1 | 모하메드 바줌 우후무두 마하마두 하수미 마수두 하마두 술리 |
|---|---|
| 지휘관 2 | 압두라하마네 치아니 아마두 압드라만 살리푸 모디 압두 시디쿠 이사 무사 살라우 바르무 |
| 병력 1 | 서방 추정: 최소 5,000명의 ECOWAS 대기군 |
|---|---|
| 병력 2 | 30,000명 |
| 피해 1 | 최소 1명의 민간인 지지자 부상 |
|---|---|
| 피해 2 | 여러 명의 민간인 지지자 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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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니제르 -
니제르 위기
2023년 7월 26일 쿠데타로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이 축출되고 군사 정부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촉발된 니제르 위기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며 국제 사회의 규탄과 제재, 군사 개입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
반불 감정 -
샤를리 에브도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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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불 감정 -
시칠리아 만종 사건
시칠리아 만종 사건은 1282년 팔레르모에서 프랑스 지배에 반대하여 일어난 봉기로, 프랑스인 학살과 아라곤 왕국의 시칠리아 지배를 초래했으며, 이후 시칠리아 만종 전쟁으로 이어졌다. -
2023년 분쟁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오랜 갈등의 최신 국면으로, 양측의 군사 작전과 가자 지구의 인도적 위기를 초래하며 국제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
2023년 분쟁 -
2023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
2023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는 2023년 10월 하마스 공격에 대응하여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대한 전기, 물, 식량, 연료 공급을 전면 차단한 사건이다.
2. 배경
니제르는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네 차례의 군사 쿠데타를 경험했으며, 가장 최근의 쿠데타는 2010년 니제르 쿠데타였다. 그 사이에도 여러 차례 쿠데타 시도가 있었는데, 2021년에는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이틀 전에 군부 반대 세력이 대통령궁 점거를 시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줌 대통령은 니제르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전임자로부터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받은 지도자였다.
2020년대 들어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기니,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에서 연이어 쿠데타가 발생하며 이른바 '쿠데타 벨트'가 형성되고 있었다. 니제르 역시 회원국으로 있는 서아프리카 국가 경제 공동체(ECOWAS)는 이미 쿠데타가 발생한 기니, 말리, 부르키나파소의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킨 상태였다. 2023년 7월 ECOWAS 의장으로 선출된 나이지리아의 볼라 티누부 대통령은 서아프리카 내 추가적인 쿠데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니제르는 유엔의 인간 개발 지수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사헬 지역 전반에 걸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알 카에다, ISIL, 보코 하람 등)의 활동으로 인한 불안정 역시 국가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줌 정부는 프랑스,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군사 협력을 유지하며 극단주의 세력에 대응하고자 했다.
그러나 인접국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서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 정권들이 반프랑스 정서를 내세우며 프랑스군을 축출하면서, 니제르는 사헬 지역에서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마지막 주요 협력 파트너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니제르 내 반프랑스 정서 고조와 맞물려, 러시아와 민간군사기업 바그너 그룹의 역내 영향력 확대 시도와 같은 지정학적 변화의 배경이 되었다.
2.1. 쿠데타의 원인
쿠데타의 배경에는 니제르 국민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 특히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비 부담 증가와 정부의 부패 및 무능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니제르는 유엔이 발표하는 인간 개발 지수에서 세계 최하위 수준을 기록할 정도로 빈곤 문제가 심각하다.
또한, 사헬 지역 전반에 걸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확산도 니제르의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요인이었다. 알 카에다, IS, 보코 하람 등 극단주의 단체들의 활동으로 인해 치안 상황이 악화되었으며, 이는 군부가 쿠데타의 명분으로 삼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쿠데타를 주도한 압두라흐마네 치아니 장군은 지하디즘으로 인한 국가 불안정을 쿠데타의 이유로 내세웠으나, 일각에서는 쿠데타 당시 지하디스트에 의한 폭력은 오히려 감소 추세였다는 분석도 제기되었다.
국제 관계 측면에서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 국가에 대한 반감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니제르에는 프랑스군과 미군이 주둔하며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었지만, 이는 동시에 반서방, 특히 반프랑스 정서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다.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은 서아프리카에서 몇 안 되는 친서방 지도자로 평가받았으나, 주변국인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서 반프랑스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니제르는 사헬 지역에서 프랑스의 마지막 주요 협력국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러시아와 민간군사기업 바그너 그룹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공간을 열어주었다는 분석도 있다. 러시아는 바그너 그룹을 통해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등지에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군 내부의 갈등 역시 쿠데타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서아프리카 국가 경제 공동체(ECOWAS)의 역내 군사 정권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두고 바줌 대통령과 군부 일부 사이에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바줌 대통령이 쿠데타 직전 자신을 경호하던 대통령 경호대장 압두라흐마네 치아니 장군을 해임하려던 움직임이 쿠데타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3. 전개
2023년 7월 26일,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이에서 압두라하마네 치아니 장군이 이끄는 대통령 경호대가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대통령궁에 억류하면서 쿠데타가 발발했다. 처음에는 군부 내 혼선이 있었으나, 같은 날 저녁 아마두 압두라만 공군 대령이 국영 방송을 통해 바줌 정부의 종식과 '국가수호위원회' 설립을 선언하며 쿠데타를 공식화했다.
이튿날인 7월 27일, 니제르 군 사령부는 유혈 사태 방지를 명분으로 쿠데타 지지를 선언했으며, 대통령 경호대 사령관이었던 압두라하마네 치아니 장군이 군사 정권의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수도에서는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위가 열렸고, 일부 시위대는 반프랑스 감정을 드러내며 러시아 국기를 흔들기도 했다. 7월 28일, 치아니 장군은 공식적으로 국가수호위원장으로 취임하고 헌법 정지를 재확인하며 외부 개입에 대해 경고했다.
이에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는 7월 30일 긴급 정상회의를 열고 군사 정권에 일주일 내 바줌 대통령 복귀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ECOWAS는 요구 불응 시 무력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며 즉각적인 경제 및 금융 제재를 단행했다.
7월 31일부터 8월 초까지 국제 사회의 규탄과 제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니제르 군사 정권은 프랑스와의 군사 협정을 파기하고 우라늄 및 금 수출 중단을 선언하는 등 반서방적인 입장을 강화했다. 또한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 주변국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프랑스, 미국 등 여러 국가는 자국민 대피를 시작하거나 권고했다.
8월 10일, ECOWAS는 군사 개입 준비를 계속하기로 결정했으며, 감금 상태에 있던 바줌 대통령은 워싱턴 포스트 기고를 통해 쿠데타의 위험성을 알리며 국제 사회의 도움을 호소했다.
3.1. 2023년 7월 26일: 쿠데타 발발
2023년 7월 26일 아침, 압두라하마네 치아니 장군이 이끄는 대통령 경호대가 "반공화국 시위"를 벌였다는 발표가 니제르 대통령실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나왔다. 경호대는 수도 니아메이의 대통령궁에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과 그의 가족을 억류했다. 당시 영부인 하디자 바줌과 아들 살렘 바줌도 함께 구금되었으며, 딸들은 파리에 머물고 있었다. 하마두 술레이 내무장관 역시 대통령궁에 억류되었다.
쿠데타 배경에는 바줌 대통령이 10년 이상 경호대장직을 맡아온 치아니 장군 해임을 고려했다는 분석이 있다. 바줌 대통령 측 소식통은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되어 7월 24일 내각 회의에서 치아니 해임이 결정되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아침, 대통령궁 인근의 정부 부처들은 군에 의해 출입이 차단되었다. 바줌 대통령 지지자 약 400명이 대통령궁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호대의 발포로 해산되는 과정에서 1명이 부상했다.
한편, 니제르 군부는 초기에 바줌 대통령 지지를 표명하며 대통령궁을 포위하고 주요 전략 거점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영국방송공사(BBC)는 대통령 충성파 군대가 국영 방송국 ORTN을 포위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26일 저녁, 공군 대령 아마두 압두라만은 국영 텔레비전에 등장하여 쿠데타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바줌 정부의 종식과 '국가수호위원회' 구성을 발표하고, 헌법 정지, 모든 국가 기관 기능 정지, 국경 폐쇄를 선언했다. 또한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야간 통행 금지령을 발령하고 외국의 개입을 경고했다.
3.2. 2023년 7월 27일: 군부의 정권 장악 시도
7월 27일, 니제르 군 사령부는 성명을 통해 쿠데타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군은 이러한 결정이 군대 내부의 충돌로 인한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함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같은 날 새벽, 대통령궁에 감금되어 있던 바줌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저항 의사를 밝혔다. 그는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적) 성과는 지켜질 것"이며, "민주주의와 자유를 사랑하는 니제르 국민들이 그것을 확실하게 해줄 것"이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이와 별개로, 하수미 마수두 외무장관은 자신이 합법적인 대통령 권한대행임을 주장하며 쿠데타 세력에 맞서는 정부를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수도 니아메에서는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집권당인 니제르 민주 사회주의당 본부에 불을 지르는 등 과격한 양상을 보였다. 수천 명의 시위대는 러시아 국기를 흔들고 러시아 용병 기업인 바그너 그룹의 개입을 촉구하며 행진했다. 이들은 "프랑스는 물러가라!", "바르칸 작전을 끝내라!", "푸틴 만세!"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반프랑스 감정을 드러냈다. 시위대는 프랑스 대사관으로 몰려가 문과 벽에 불을 지르고 시설을 훼손했으며,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며 해산에 나섰다.
한편,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는 대통령 경호대 사령관이었던 압두라하마네 치아니 장군을 새로운 국가 원수인 '조국수호국민평의회' 의장으로 추대했다. 군부는 헌법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발표했으며, 치아니 장군은 국영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국제 사회에 현 상황에 대한 이해와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외부의 군사적 개입은 "니제르 국민의 학살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3.3. 2023년 7월 28일: 치아니의 국가수호위원장 취임
7월 26일 저녁, 공군 대령 아마두 압드라만은 국영 방송 텔레 사헬에 출연하여,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이 축출되었으며 국가 조국 수호 위원회(CNSP)가 구성되었음을 발표했다. 그는 다른 9명의 제복을 입은 장교들과 함께 등장하여 "악화되는 안보 상황과 나쁜 통치"를 이유로 군대가 정권을 장악했다고 밝혔으며, 헌법 정지, 모든 국가 기관 활동 중단, 국경 폐쇄, 그리고 현지 시간으로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전국적인 통행 금지령을 내리는 동시에 외국의 개입에 대해 경고했다. 당시 발표 현장에는 특수부대 사령관인 무사 살라우 바르무 장군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음 날인 27일, 니제르 군 사령부는 유혈 충돌을 피하기 위해 쿠데타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감금된 바줌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민주주의 수호를 호소했으며, 하수미 마수두 외무 장관은 자신이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고 선언했다. 수도 니아메에서는 쿠데타 지지자들이 집권 여당인 니제르 민주 사회주의당 본부에 방화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일부 시위대는 러시아 국기를 들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대통령 경호대장이었던 압두라하마네 치아니 장군이 국가 조국 수호 위원회(CNSP) 의장으로 취임했다. 치아니 장군은 국영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국제 사회에 현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며 "우리 나라가 당면 과제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외부의 군사적 개입은 "니제르 국민의 학살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헌법 정지 또한 재확인되었다.
이후에도 감금 상태에 있던 바줌 대통령은 미국의 신문 『워싱턴 포스트』 8월 3일 자 전자판에 기고문을 보내 쿠데타가 성공할 경우 "니제르와 주변 지역, 나아가 전 세계에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국제 사회의 도움을 호소했다. 한편, 7월 26일 발표되었던 야간 통행 금지령은 8월 4일에 해제되었다.
3.4. 2023년 7월 30일: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의 최후통첩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는 7월 30일, 니제르 군사 정권에 1주일 이내로 바줌 대통령을 복귀시키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ECOWAS 위원장 오마르 투레이는 나이지리아의 수도 아부자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니제르 공화국의 헌법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무력 사용을 포함한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이전 말리나 부르키나파소 등에서 발생한 쿠데타에 대한 ECOWAS의 대응과는 다른 강경한 태도였다.
또한 ECOWAS는 니제르에 대한 즉각적인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회원국과의 국경 폐쇄, 니제르 상공의 비행 금지 구역 설정, 니제르와의 모든 상업 및 금융 거래 중단 등이 포함되었다. 이에 더해, 서아프리카 중앙은행(BCEAO)은 니제르 국영 기업의 자산을 동결했으며, 이로 인해 약 30 규모의 채권 발행이 취소되었다.
3.5. 2023년 7월 31일 ~ 8월: 국제사회의 반응과 니제르의 대응
7월 31일, 마하마트 데비 이트노 차드 대통령이 니제르를 방문하여 군사 정권의 지도자 압두라하마네 치아니와 구금된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만났다. 차드 대통령실은 이 만남의 사진을 공개했다. 같은 날, 니제르 군사 정권은 프랑스에 대한 우라늄과 금 수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군사 정권 대변인 아마두 압드라만은 하수미 마사우두 외무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자처하며 프랑스에 바줌 대통령 구출을 위한 군사 개입을 요청했다고 비난했으나, 프랑스 외무부는 이를 즉각 부인했다. 또한, 바줌 정권의 석유장관, 광산장관 및 여당 니제르 민주사회주의당(PNDS) 국가집행위원장이 체포되었다. 이는 이전에 교통장관과 국방장관이 체포된 데 이은 조치였다.
8월 1일, 군사 정권은 알제리, 부르키나파소, 말리, 리비아, 차드와의 국경을 다시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외무부는 니아메에서의 소요 사태와 영공 폐쇄를 이유로 자국민 및 유럽 국민의 대피 계획을 발표했으며, 독일과 스페인도 자국민에게 대피를 권고하거나 계획을 세웠다.
8월 2일, 니제르 여러 도시에서 정전이 보고되었으며, 국영 전기회사는 나이지리아가 전력 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는 볼라 티누부 나이지리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조치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날 첫 대피 비행이 시작되어 이탈리아 군용기가 87명을 로마로, 프랑스 항공기가 262명을 파리로 이송했다. 이후 약 1,000명이 추가로 프랑스로 대피했다. 미국 국무부는 비필수 대사관 직원과 가족의 철수를 명령했고, 영국도 대사관 인력을 감축했다.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는 군사 정권과의 협상을 위해 압둘살라미 아부바카르 전 나이지리아 대통령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했다. ECOWAS는 군사 개입이 마지막 수단임을 강조하면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회원국 군 참모총장들이 나이지리아 아부자에서 회의를 가졌다. 나이지리아는 군사 작전을 위한 준비 움직임을 보였고, 코트디부아르는 ECOWAS의 제재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살리푸 모디가 이끄는 니제르 군사 정권 대표단은 말리의 바마코와 부르키나파소의 와가두구를 방문했는데, 이는 바그너 그룹의 지원을 얻기 위한 행보라는 추측이 제기되었다. 치아니 장군은 TV 연설을 통해 국제사회의 제재가 부당하며 니제르를 모욕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하고,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국민들에게 국가 방어를 호소했다.
8월 3일, 니제르의 제63주년 독립기념일에 수도 니아메에서는 다시 쿠데타 지지 시위가 열렸다. 군경은 프랑스와 미국 대사관으로 향하는 도로를 봉쇄하여 공공기물 파손을 막았다. 세네갈과 베냉 외무장관은 ECOWAS가 승인할 경우 군사 개입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군사 정권은 프랑스 24와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나쇼날(RFI)의 방송을 중단시켰으며, 프랑스와 체결했던 다수의 군사 협정을 파기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니제르 주둔 프랑스군 철수를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되었다. 또한 프랑스, 나이지리아, 토고, 미국 주재 자국 대사의 철수도 발표했다. 같은 날, 구금 상태인 바줌 대통령은 워싱턴 포스트 기고를 통해 쿠데타가 성공하면 니제르와 주변 지역, 나아가 전 세계에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 사회의 반응은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세계은행, 아프리카 연합,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 국제 연합, 알제리, 유럽 연합, 프랑스, 미국 등은 쿠데타를 규탄하고 바줌 대통령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반면, 러시아의 민간 군사 기업 바그너 그룹의 대표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쿠데타를 "식민주의자들과의 싸움"이라며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8월 10일, ECOWAS는 니제르에 대한 군사 개입 가능성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며, 주로 나이지리아와 세네갈 군대로 구성될 병력 동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3.6. 2023년 8월 이후
바줌 대통령은 감금된 상태에서, 미국의 신문 『워싱턴 포스트』 전자판 (8월 3일자)에 기고하여, 쿠데타가 성립되면 "니제르와 주변 지역, 세계 전체에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4. 국제사회의 반응
세계은행, 아프리카 연합,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 유엔, 알제리, 유럽 연합,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국제 사회는 쿠데타를 비난하며 바줌 대통령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유엔 인권 최고 대표 볼커 튀르크 역시 바줌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파트리스 탈롱 베냉 대통령은 이를 "잘못된 군사적 행동"이라 비판했고,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은 아프리카의 "심각한 차질"이라고 평가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쿠데타를 비난하며 바줌의 안전 보장과 헌법 질서로의 신속한 복귀를 촉구했다. 이트노 차드 대통령은 중재를 위해 니제르를 방문하여 치아니, 살리푸 모디, 바줌을 만났다.
7월 30일, ECOWAS는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일주일의 기한을 주며 바줌에게 권력을 반환하지 않으면 국제 제재와 무력 사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COWAS는 즉시 니제르와의 국경을 폐쇄하고 영공을 비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했으며, 회원국들에게 니제르와의 모든 상업 및 금융 거래 중단을 지시했다. 또한 쿠데타 관련 인물들에 대한 자산 동결 및 여행 제한 조치를 시행했다. 이로 인해 서아프리카 중앙은행(BCEAO)은 니제르의 30 (51) 규모 채권 발행 계획을 취소했다. 기한 만료 후, ECOWAS는 개입 군대의 "즉각적인 발동"을 명령하면서도 평화적 해결을 선호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8월 18일에는 외교적 노력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군사 개입을 위한 비공개 "D-데이"에 합의했다고 발표하며, 과도 정부와의 무한정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이번 사태를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헌법을 파괴하려는 노력"이라고 규정하면서도, 경제 및 군사 지원 중단 가능성을 고려해 '쿠데타'라는 공식적인 명명을 피했다. 미국은 ECOWAS를 지지하며 쿠데타 지도부에 바줌과 구금된 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것을 경고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다만, 8월 15일 펜타곤 대변인은 이 사건을 "쿠데타 시도"라고 언급했다.
유럽 연합과 프랑스는 니제르에 대한 재정 및 개발 원조를 보류하고 모든 안보 협력 협정을 중단했다. 프랑스는 바줌을 유일한 합법적 대통령으로 계속 인정했으며, ECOWAS 역시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7월 30일 니아메에서 시위대가 프랑스 대사관 진입을 시도하자, 프랑스 정부는 자국민이나 이익에 대한 위협 시 즉각적이고 강력한 대응을 경고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3년 9월 24일, 실뱅 이테 대사를 포함한 프랑스 군대와 외교 인력을 연말까지 니제르에서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8월 2일, 세계은행은 추가 통보 시까지 니제르에 대한 기금 지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유엔은 7월 28일 인도주의적 활동 중단을 발표했으나, 이후 원조는 계속하되 군부와는 접촉하지 않겠다고 정정했다. 아프리카 연합은 군부에 15일 내 원대 복귀와 문민 통치 회복을 요구했으며, 8월 22일 니제르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다.
반면,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의 군사 정권은 니제르 군사 정권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외부의 군사 개입은 전쟁 선포로 간주될 것이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두 나라는 ECOWAS의 제재를 "불법적이고 비인도적"이라며 거부했다. 마마디 둠부야 기니 대통령도 비슷한 이유로 제재를 비난했다. 알제리 역시 니제르에 대한 군사 개입을 경고했으며, 이탈리아는 서방의 군사 개입이 신식민주의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얀마의 군사 정부도 쿠데타 지지를 표명했다.
러시아 민간 군사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쿠데타를 니제르와 식민주의자 간의 싸움의 일부라며 칭찬했다. 이는 쿠데타를 "심각한 우려"로 표명하고 조속한 법질서 복귀를 촉구한 러시아 정부(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의 공식 입장과 대조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이후 외부 세력의 개입을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고문 미하일로 포돌랴크는 쿠데타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는 바줌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지만, 쿠데타를 직접 비난하거나 쿠데타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군부가 문민 통치 복귀 일정 제시와 민주적 선거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옹호할 것을 촉구했다.
5. 분석
니제르는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네 차례의 쿠데타를 겪었으며, 2010년 니제르 쿠데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가장 최근의 쿠데타 시도는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 취임 이틀 전인 2021년에 발생했다. 바줌은 니제르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전임자로부터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받은 대통령이었다. 이번 쿠데타는 기니, 말리, 수단, 부르키나파소 등 인근 국가에서 연이어 쿠데타가 발생하며 이 지역이 '쿠데타 벨트'로 불리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쿠데타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비 부담 증가와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니제르는 유엔의 인간 개발 지수에서 세계 최하위 수준을 기록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알카에다, 이슬람 국가, 보코 하람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활동이 계속되면서 안보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쿠데타 지도자인 압두라흐마네 치아니는 이러한 안보 불안을 쿠데타의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쿠데타 당시 지하디스트에 의한 폭력은 감소 추세였다는 분석도 있다.
군 내부의 불만도 쿠데타의 중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니제르군은 지하디스트 세력과의 전투에서 미국, 프랑스, 튀르키예 등으로부터 훈련 및 물류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지원 수준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어 왔다. 또한, 서아프리카 국가 경제 공동체(ECOWAS)의 역내 군사 정권에 대한 강경 노선을 지지하는 바줌 대통령과 군부 내 일부 세력 간의 갈등도 존재했다. 특히 바줌 대통령이 자신의 경호대장이었던 치아니 장군을 해임하려던 계획이 쿠데타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제 관계 측면에서 니제르는 사헬 지역에서 서방 국가들의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였다. 특히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서 프랑스군이 철수한 이후, 니제르는 프랑스의 대테러 작전의 핵심 거점이자 이 지역에서 몇 안 남은 친서방 국가로 여겨졌다. 그러나 니제르 내에서도 반프랑스 감정이 고조되고 있었으며, 이는 러시아와 바그너 그룹의 영향력 확대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러시아는 이미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서 바그너 그룹을 통해 영향력을 넓히고 있었다.
쿠데타 발생 이후, ECOWAS와 아프리카 연합은 즉각적인 헌정 질서 복구를 요구하며 군사 개입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니제르 군사 정권은 외부 세력의 개입 시도에 강력히 맞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쿠데타가 니제르 및 사헬 지역 전체의 안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CSIS의 캐머런 허드슨 선임연구원은 쿠데타가 지하디스트와의 싸움에 임하는 니제르군의 사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의 울프 레싱 사헬 프로그램 책임자는 친서방 지도자였던 바줌의 축출이 서방 국가들에게 "악몽"과 같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ICG은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의 사례처럼 쿠데타 이후 지하디스트 폭력이 심화될 가능성을 경고했으며, 전직 지하디스트 군인 부바카르 무사 역시 쿠데타로 인해 지하디스트 세력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적으로는 니제르의 풍부한 우라늄 자원을 둘러싼 국제적 역학 관계 변화 가능성이 제기된다. 안보 컨설팅 회사 드래곤플라이의 플라비엔 바움가르트너 분석가는 바줌 정권 붕괴 이후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바그너 그룹이 니제르의 우라늄 산업에 개입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또한, 쿠데타 당시 건설 중이던 니제르 디파주의 아가뎀 오아시스 유전과 베냉의 포르트 세메 터미널을 잇는 1980km에 달하는 대규모 송유관 프로젝트 및 유럽과 나이지리아를 연결하는 트란스 사하라 가스 파이프라인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