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우송 두스 산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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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지우송 두스 산투스는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로, 수비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1997년 프로 데뷔 후 브라질, 세르비아, 중국, 대한민국 등 다양한 리그에서 뛰었다. 특히 중국 다롄 스더에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보냈으며, 2006년부터 2013년까지 FC 서울에서 활약하며 K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았다. FC 서울 소속으로 K리그 베스트 11에 5회 선정되었으며, 2014년 은퇴 후 FC 서울의 코치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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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우송 두스 산투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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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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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아지우송 두스 산투스 (Adilson dos Santos) |
출생일 | 1976년 5월 12일 |
출생지 | 브라질 세르지피주 아라카주 |
신장 | 182cm |
포지션 | 레프트 윙백,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
선수 경력 | |
유소년 클럽 | 1990년대: 아푸카라나 |
클럽 경력 | 1997–1998: 파라나 클루베 1998–1999: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2000: 레알 베티스 2000: 세비야 2000: → 다롄 스더 (임대) 2001–2005: 다롄 스더 2006–2013: FC 서울 |
클럽 출전 및 득점 |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12경기 0골 다롄 스더 (임대): 25경기 4골 다롄 스더: 119경기 4골 FC 서울: 226경기 15골 |
총 출전 및 득점 | 382경기 23골 |
지도자 경력 | |
코치 | 2014–: FC 서울 (수석 코치) |
2. 클럽 경력
아지우송은 1997년 브라질 파라나 주의 아푸카라나 아틀레치쿠 클럽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여, 1998년 세르비아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거쳐 스페인의 레알 베티스, 세비야 FC에서 뛰었다. 2000년부터 중국의 다롄 스더에서 활약하며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2006년 FC 서울로 이적하여 K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2014년 FC 서울에서 은퇴 후 코치로 임명되었다.[7][8]
구단 | 기간 | 비고 |
---|---|---|
아푸카라나 아틀레치쿠 클럽 | 1997년 | 데뷔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 1998년-1999년 | 유고 내전으로 계약 중도 해지 |
레알 베티스, 세비야 FC | 1999년-2000년 | 주전 확보 실패, 2군팀 활약 |
다롄 스더 | 2000년-2005년 | 임대 후 완전 이적, 리그 우승 |
FC 서울 | 2006년-2014년 | K리그 베스트 11 선정, 은퇴 후 코치 임명 |
2. 1. 브라질과 유럽
1997년 브라질 파라나 주의 축구 클럽 아푸카라나 아틀레치쿠 클럽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였다. 1998년 세르비아 리그의 최고 명문 클럽인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진출하여 유럽에서 해외 경력을 시작하였지만, 1999년 나토의 공습 등 격화된 유고 내전으로 인해 자진해서 계약을 중도해지 하였다.[9]이후 6개월간 리버풀, 첼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셀틱 등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으며 입단을 타진했지만 워크 퍼밋 문제로 성사되지 못하였다.[9]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베티스와 세비야 FC에서도 몸담았으나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2군팀에서 활약하였으며, 2000년 중국 슈퍼리그의 다롄 스더로 임대된 후 완전 이적하여 리그 우승의 주역이 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9]
1998-99 시즌 동안 유고슬라비아 연방 1부 리그에서 11경기에 출전했다. 1999년 레알 베티스로 이적했지만 데뷔하지 못하고 세비야 FC로 이적했다. 그러나 세비야는 이적료를 지불할 돈이 부족했고, 레알 베티스는 세비야 FC에 항의하여 아지우송은 세비야 FC에서 뛸 수 없었다. 이적료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그는 너무 어린 선수로 여겨졌고, 클럽은 강등의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세비야의 B팀에서 뛰었다.
2001년 다롄 스더로 이적하여 아시아 챔피언 1회, 중국 챔피언 4회, 중국 FA컵 우승 2회를 달성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2. 2. 중국에서의 성공
2000년 아지우송은 다롄 스더로 임대되었다가 이후 완전 이적하여 리그 우승의 주역이 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9] 2001년에는 다롄 스더에서 아시아 챔피언 1회, 중국 챔피언 4회, 중국 FA컵 우승 2회를 달성하였다.[9]2. 3. FC 서울
2006년 3월 이장수 감독의 의해 FC 서울로 이적하였다.[10] 초창기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다가 왼쪽 풀백으로 활약하였다.2010 시즌 현영민이 이적해오면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하였고, 후반기부터는 중앙 수비수로 다시 보직을 변경하여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을 과시하였다. 챔피언 결정전 1차전 제주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기도 하며 서울의 리그 우승에 기여하였다.
2012년 4월 29일 강원 FC와의 리그 경기에 출장하며 K리그 역사상 최초로 한 구단에서 리그 200경기를 출장한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11]
2014년 서울로부터 코치직 제안을 받고 선수 경력을 이어가는 것과 지도자로서 새 출발 하는 것을 두고 고심하다 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코치가 되었다.[12] 2014년 3월 8일, 은퇴 기념 스페셜 유니폼 발매 등[13] 다양한 행사와 함께 공식 은퇴식이 거행되었다.
그는 2007년, 2008년, 2010년에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그는 뛰어난 활약으로 K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고 있다.
3. 경력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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