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피사노
1. 개요
안드레아 피사노는 1290년경 피사에서 태어나 1348년 오르비에토에서 사망한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건축가이다. 그는 금세공을 배우고 미노 디 조반니의 도제가 되었으며, 조토 디 본도네의 영향을 받아 피렌체에서 활동하며 주요 작품을 제작했다. 피렌체 세례당의 청동 문을 제작했으며, 조토의 종탑을 위한 부조를 제작했다. 1347년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건설 책임자가 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비잔틴 미술에서 근대 미술로의 전환에 기여했다. 그의 아들 니노 피사노와 톰마소 피사노는 그의 뒤를 이어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책임자 직을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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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290년 |
|---|---|
| 출생지 | 피사 공화국 폰테데라 |
| 사망일 | 1348년 |
| 사망지 | 교황령 오르비에토 |
| 국적 | 이탈리아 |
| 직업 | 조각가, 건축가 |
| 알려진 작품 | 건축, 조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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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0년 출생 -
가자 마다
가자 마다는 14세기 마자파힛 제국의 재상으로서, 자야네가라 왕 구출 및 반란 진압에 기여하고 팔라파 선서를 통해 제국 확장을 목표로 삼았으며, 부밧 전투 이후 강등되어 생을 마감했다. -
1290년 출생 -
이사벨 드 프랑스 왕녀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와 나바라 여왕 잔 1세의 딸인 이사벨 드 프랑스 왕녀는 잉글랜드 왕비가 되어 남편의 총신들과 갈등하고 귀족들과 반목했으며, 로저 모티머와 연합하여 잉글랜드를 침공해 아들 에드워드 3세의 섭정으로 4년간 통치했다. -
피사도 출신 -
루차노 키아루지
루차노 키아루지는 빠른 속도와 드리블로 "미친 말"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ACF 피오렌티나, AC 밀란 등에서 뛰며 세리에 A 우승, UEFA 컵위너스컵 우승 등을 기록했고, 선수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 활동하며 ACF 피오렌티나의 감독 대행을 세 차례 역임했다. -
피사도 출신 -
안드레아 보첼리
안드레아 보첼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테너 가수로, 시각 장애를 극복하고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였지만,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Time to Say Goodbye'와 같은 히트곡을 내며 클래식과 팝을 넘나드는 활발한 활동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
이탈리아의 조각가 -
안토니오 카노바
안토니오 카노바는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조각가로, 로마에서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아 활동하며 《키스로 깨어나는 프시케》,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르스》 등의 대표작을 남겼고, 나폴레옹의 후원을 받으며 유럽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이탈리아의 조각가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로, 파리에서 활동하며 가늘고 긴 목과 달걀형 얼굴의 인물화를 주로 그렸으며, 34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으나 사후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2. 생애
안드레아 피사노는 금세공을 배우고 미노 디 조반니의 제자로 피사에서 조각가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피렌체에서는 피렌체 세례당의 청동 문을 제작하고, 피렌체 대성당과 조토의 종탑에서 조각 작업을 하는 등 중요한 작품을 남겼다. 조토 디 본도네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1347년부터는 오르비에토 대성당 건설 책임자로 일했다. 비잔틴 미술에서 벗어나 근대 미술 발전에 기여한 그는 1348년에 사망했다. 조르조 바사리는 '미술가 열전'에 그의 생애를 기록했다. 피사노의 제자로는 안드레아 오르카냐와 조반니 디 발두키오가 있었다. 그의 아들 니노와 톰마소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르비에토 대성당 건설 책임자 직을 계승했다.
2.1. 초기 생애와 교육
피사노는 초기에 금세공을 배웠다. 이후 1300년경 미노 디 조반니의 제자가 되었고, 피사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스피나 성당 조각상을 비롯하여 그와 함께 작업을 했다. 조토 디 본도네가 피사노의 초기 스승보다 그의 스타일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추정된다.
2.2. 피렌체에서의 활동
피사노는 피렌체에서 주요 작품을 만들었다. 조토 디 본도네가 피사노의 초기 스승보다 그의 스타일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1330년-1336년에 피사노는 피렌체 세례당의 청동 문 세 짝 중 하나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문은 수많은 작은 네잎 무늬 장식 패널로 이루어졌으며, 하단에는 미덕에 관한 인물들을 담고 있는 8개의 패널이 있고, 나머지 패널에는 세례자 요한의 생애를 담고 있다.
피사노는 피렌체에 거주하는 동안 조토의 영향을 받은 많은 중요한 대리석 조각상들을 제작했다. 1340년에 그는 조토의 뒤를 이어 피렌체 대성당 작업 책임자를 맡았다. 그는 종탑을 위해 '4대 예언자', '칠주선', '칠성사', '칠형애긍', '칠행성'을 주제로 한 이중 패널 부조를 제작했는데, 이는 그의 옛 스승이 설계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오모에는 피사노의 가장 중요한 대리석 작품들이 있다.
2.3. 오르비에토 대성당
1347년, 안드레아 피사노는 로렌초 마이타니가 설계하고 진행 중이던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건설 책임자가 되었다. 그가 맡은 이 성당의 작업과 대성당의 문은 현재 남아있는 피사노의 유일한 작품이다. 그의 아들인 니노와 톰마소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건설 책임자 직을 계승했다.
3.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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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피렌체 세례당 남쪽 청동 문
피사노는 1330년부터 1336년까지 피렌체 세례당의 청동 문 세 개 중 첫 번째 문(남쪽 문)을 제작했다. 이 문은 여러 개의 작은 사엽형 패널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래쪽 여덟 개 패널에는 덕목을 나타내는 인물상이 하나씩 있고, 나머지 패널에는 세례자 요한의 생애 장면이 담겨 있다.
3.2. 조토의 종탑 부조
피사노는 조토의 설계를 바탕으로 조토의 종탑에 부조를 제작했다. 이 부조들은 '4대 예언자', '칠주선', '칠성사', '칠형애긍', '칠행성'을 주제로 한다.
3.3. 기타 작품
피렌체 대성당에는 대리석으로 된 피사노의 중요한 작품들이 있다. 1347년 그는 로렌초 마이타니가 이미 설계하고 시작한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건축 감독이 되었다. 이 작품들과 대성당의 문이 피사노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4. 유산과 영향
안드레아 피사노는 비잔틴 미술의 영향에서 벗어나 근대 미술을 해방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제자로는 안드레아 오르카냐로 더 잘 알려진 안드레아 디 초네와 밀라노의 산테우스토르조를 건설한 조반니 디 발두키오가 있었다.
피사노는 니노와 톰마소 두 아들을 두었으며, 이들은 모두 조각가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특히, 두 아들은 아버지의 오르비에토 대성당 책임자 직을 이어받았다.
조르조 바사리는 저서 '미술가 열전'에 안드레아 피사노의 생애를 포함시켰다.
5.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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