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로 스키아비오
1. 개요
안젤로 스키아비오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활약한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이다. 그는 볼로냐에서 선수 경력 전체를 보냈으며, 4번의 세리에 A 우승을 경험했다. 스키아비오는 세리에 A 통산 242골을 기록하여 이탈리아 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로, 1931-32 시즌에는 25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또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34년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1928년 하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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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안젤로 스키아비오 |
|---|---|
| 출생일 | 1905년 10월 15일 |
| 출생지 | 볼로냐, 이탈리아 왕국 |
| 사망일 | 1990년 9월 17일 |
| 사망지 | 볼로냐, 이탈리아 |
| 신장 | 1.78m |
| 포지션 | 축구 공격수 (스트라이커) |
| 유소년 클럽 | (정보 없음) |
|---|---|
| 클럽 | 볼로냐 (1922–1939) |
| 출장 (골) | 348 (242) |
| 국가대표팀 | 이탈리아 (1925–1934) |
|---|---|
| 출장 (골) | 21 (15) |
| 감독 | 볼로냐 (1933–1934) |
|---|---|
| 감독 | 볼로냐 (1946) |
| 감독 | 이탈리아 (1953–1958) |
| FIFA 월드컵 | 1934 이탈리아 우승 |
|---|---|
| 중앙 유럽 국제컵 | 1927–30 유럽 우승 |
| 중앙 유럽 국제컵 | 1933–35 유럽 우승 |
| 올림픽 축구 | 1928 암스테르담 동메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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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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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 -
호프 솔로
호프 솔로는 미국의 여자 축구 골키퍼로, 고등학교 시절 공격수로 활약하다 골키퍼로 전향하여 미국 여자 프로 축구 리그와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며 올림픽 금메달, 월드컵 우승 등을 기록했다. -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 -
미셸 에이커스
미셸 에이커스는 1966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미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FIFA 여자 월드컵 2회 우승과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고, FIFA 선정 20세기 최고의 여자 선수로 선정된 전직 축구 선수이다. -
193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마리오 피치올로
마리오 피치올로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34년 FIFA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이후 감독으로서 페스카라의 세리에 C 우승을 이끌었고 피오렌티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3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에티엔 마틀레
에티엔 마틀레는 프랑스 축구 선수로, FC 소쇼에서 스위퍼로 활약하며 1930년대 후반 프랑스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고, 프랑스 국가대표팀으로 46경기 출전, 세 번의 FIFA 월드컵 출전, 리그 1 2회 우승, 쿠프 드 프랑스 1회 우승을 기록했다.
2. 클럽 경력
스키아비오는 선수 생활 전체를 볼로냐에서 보냈으며, 1922년부터 1939년까지 16시즌 동안 활약하며 4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총 361경기에 출전하여 249골을 기록했고, 이탈리아 리그에서만 242골을 넣은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이다. 세리에 A 개편 후에도 109골을 기록했다.
2.1. 초기 경력 (1922-1929)
스키아비오는 현역 시절 전부를 볼로냐에서 보냈다. 1922-23 시즌에 1군 신고식을 치렀고, 같은 시즌에 리그 6경기(총 11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 1923년, 17세의 나이로 볼로냐 첫 경기를 치렀다. 당시 이탈리아 리그는 지역별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9세에 볼로냐의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1925년 볼로냐의 첫 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27경기에서 16골을 기록했다. 1928-29 시즌은 "조별전" 방식으로 진행된 마지막 시즌이었다. 이 시즌에 볼로냐는 통산 2번째 리그 우승을 거두었고, 스키아비오는 26경기에 출전해 30골을 기록하며 개인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2.2. 세리에 A (1929-1939)
1929-30 시즌은 세리에 A가 현재와 같은 단일 리그 방식으로 개편된 첫 시즌이었다. 스키아비오는 1929년 10월 6일에 라치오와의 원정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는데, 볼로냐는 0-3으로 완패했다. 그 해 11월 13일, 트리에스티나와의 홈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세리에 A 첫 득점을 기록했다.
1931-32 시즌에는 25골을 넣어 세리에 A 득점왕인 카포칸노니에리 상을 수상했다. 볼로냐는 1936년과 1937년에 스쿠데토를 두 번 더 차지했지만, 스키아비오는 1937년 우승 당시에는 단 2경기에만 출전했다. 1938-39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는데, 이 시즌에는 리그에서 6경기에 출전했지만 득점은 없었다.
2.3. 기록
스키아비오는 현역 시절 전부를 볼로냐에서 보냈다. 그는 1922-23 시즌에 1군 신고식을 치렀는데, 같은 시즌에 도합 6번의 리그 경기(총 11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득점했다. 1923년, 17세의 나이로 볼로냐 소속 첫 경기를 치렀다. 당시 이탈리아 리그는 지역 별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볼로냐의 경기에 출전(하고 득점)했고, 19세에 정식으로 1군 주전으로 등극해 1925년 볼로냐의 사상 첫 리그 우승을 이룩했고, 스키아비오는 27경기에서 16골을 득점한 수훈갑이었다. "조별전" 방식으로 진행된 마지막 시즌은 1928-29 시즌이었다. 이 시즌에 볼로냐는 통산 2번째 리그 우승을 거두었는데, 스키아비오는 26경기에 출전해 30골을 기록하며 경기당 1골 이상씩 득점했고, 이 시즌에 개인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1929-30 시즌에 세리에 A가 현재의 단일 리그 방식으로 개편되었다. 스키아비오는 1929년 10월 6일에 라치오 원정에서 개편된 리그의 첫 경기를 치렀는데, 볼로냐는 이 경기에서 0-3으로 완패했다. 그 해 11월 13일, 스키아비오는 트리에스티나와의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세리에 A 첫 득점을 기록했다. 1931-32 시즌에는 25골을 기록해 세리에 A 득점왕으로서 카포칸노니에리가 되었다. 볼로냐는 1936년과 1937년에 방패를 2번 더 달았지만, 스키아비오는 1937년 통산 4번째 리그 우승 당시 2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다. 1938-39 시즌을 끝으로 축구화를 벗었는데, 이 시즌에는 6번 경기에 출전했지만, 한 번도 골망을 흔들지 못했다.
구단 역사상 주요 인물인 스키아비오는 볼로냐 소속으로 16년을 보내며 4번의 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그는 볼로냐 경기에 도합 361번 출전하여 249골을 기록했고, 리그에서만 242골을 넣은 이탈리아 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이며, 이 중 세리에 A 개편 후에 넣은 골 수는 109골이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스키아비오는 1925년 11월, 20세의 나이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렀다. 파도바에서 열린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에서 혼자 2골을 넣어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1927-30년과 1933-35년 중부 유럽 국제컵에서 이탈리아가 우승하는 데 기여했다. 국가대표팀에서 총 21경기에 출전해 15골을 기록했다.
3.1. 1928년 하계 올림픽
스키아비오는 192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4경기에서 4골을 기록해 이탈리아 선수단과 함께 동메달을 획득했다.
3.2. 1934년 FIFA 월드컵
스키아비오는 1934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첫 우승을 이끈 주역이었다. 루이스 몬티, 주세페 메아차와 같은 선수들과 함께 출전한 그는 이 대회에서 총 4골을 기록하여 득점 2위에 올랐다. FIFA는 처음에 스키아비오를 체코슬로바키아의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독일의 에드문트 코넨과 함께 공동 득점왕으로 기록했었다. 그러나 2006년 11월에 네예들리의 5번째 득점을 인정하면서, 이 대회의 최다 득점자는 네예들리 단독으로 변경되었다.
결승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스키아비오는 대회 첫 경기인 미국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이탈리아의 월드컵 첫 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경기는 이탈리아의 7-1 완승으로 끝났다. 이후 두 경기에서는 득점하지 못했지만, 결승전에서 라이문도 오르시의 동점골 이후 연장전에서 엔리케 과이타의 패스를 받아 결승골을 넣었다. 이 골은 스키아비오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기록한 마지막 골이 되었으며, 이후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3.3. 기록
스키아비오는 20세였던 1925년 11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처음 출전했는데, 파도바에서 열린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에서 혼자 2골을 넣어 2-1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1928년 하계 올림픽 축구 종목에 참가해 4경기에서 4골을 기록하며 이탈리아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그는 1927-30년과 1933-35년 중부 유럽 국제컵 우승도 차지했다.
스키아비오는 1934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첫 우승을 이끈 주역이었다. 루이스 몬티, 주세페 메아차 등과 함께 출전한 그는 대회에서 총 4골을 기록해 공동 득점 2위에 올랐다. FIFA는 처음에 스키아비오를 체코슬로바키아의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독일의 에드문트 코넨과 함께 공동 득점왕으로 기록했지만, 2006년 11월 네예들리의 5번째 득점을 인정하면서 그를 단독 득점왕으로 정정했다. 스키아비오는 5월 27일 미국과의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이탈리아의 월드컵 첫 골의 주인공이 되었고, 경기는 이탈리아의 7-1 대승으로 끝났다. 그는 개막전에서 맹활약했지만, 이후 두 경기에서는 득점하지 못했다.
결승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가 먼저 득점했지만, 라이문도 오르시의 동점골로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연장전 시작 5분 만에 스키아비오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엔리케 과이타가 가운데로 연결한 공을 받아 2-1 결승골을 터뜨리는 투혼을 발휘했다. 득점 후, 그는 잠시 피로로 기절하기도 했다. 이 골은 스키아비오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기록한 마지막 득점이자 마지막 출전 경기였는데, 이후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지 못했다.
스키아비오는 국가대표팀에서 총 21경기에 출전해 15골을 기록했다.
4. 경기 방식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공격수 중 한 명이자 볼로냐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안젤로 스키아비오는 178cm, 69kg의 체격을 가진 선수였다. 그는 민첩하고 강력한 중앙 공격수로, 뛰어난 기술과 드리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빠른 발, 반사 신경, 그리고 공격적인 움직임 덕분에 수비수를 쉽게 따돌리고 수비 라인을 빠르게 돌파하여 패스를 받아 득점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양발 모두 정확하고 강력한 슈팅을 할 수 있었고, 몸싸움을 통해 득점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이타적이고 다재다능한 선수로, 측면 공격수나 당시 이탈리아에서 반(半)측면 선수(mezzala)로 불리던 안쪽 공격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수 생활 내내 잦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5. 경력 통계
안젤로 스키아비오는 선수 시절 동안 다음과 같은 경력을 쌓았다.
클럽
| 시즌 | 구단 | 리그 | 출장 | 득점 |
|---|---|---|---|---|
| 1922–23 | 볼로냐 | 프리마 디비시오네 | 11 | 6 |
| 1923–24 | 24 | 16 | ||
| 1924–25 | 27 | 15 | ||
| 1925–26 | 23 | 26 | ||
| 1926–27 | 디비시오네 나치오날레 | 25 | 15 | |
| 1927–28 | 30 | 26 | ||
| 1928–29 | 29 | 29 | ||
| 1929–30 | 세리에 A | 15 | 7 | |
| 1930–31 | 21 | 16 | ||
| 1931–32 | 30 | 25 | ||
| 1932–33 | 33 | 28 | ||
| 1933–34 | 19 | 9 | ||
| 1934–35 | 27 | 12 | ||
| 1935–36 | 26 | 10 | ||
| 1936–37 | 2 | 2 | ||
| 1937–38 | 6 | 0 | ||
| 통산 || 348 || 242 |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골 |
|---|---|---|
| 1925 | 1 | 2 |
| 1926 | 2 | 1 |
| 1927 | 1 | 0 |
| 1928 | 5 | 4 |
| 1929 | 3 | 0 |
| 1930 | 0 | 0 |
| 1931 | 0 | 0 |
| 1932 | 1 | 0 |
| 1933 | 4 | 4 |
| 1934 | 4 | 4 |
| | 21 || 15 |
5.1. 클럽
| 시즌 | 구단 | 리그 | 출장 | 득점 |
|---|---|---|---|---|
| 1922–23 | 볼로냐 | 프리마 디비시오네 | 11 | 6 |
| 1923–24 | 24 | 16 | ||
| 1924–25 | 27 | 15 | ||
| 1925–26 | 23 | 26 | ||
| 1926–27 | 디비시오네 나치오날레 | 25 | 15 | |
| 1927–28 | 30 | 26 | ||
| 1928–29 | 29 | 29 | ||
| 1929–30 | 세리에 A | 15 | 7 | |
| 1930–31 | 21 | 16 | ||
| 1931–32 | 30 | 25 | ||
| 1932–33 | 33 | 28 | ||
| 1933–34 | 19 | 9 | ||
| 1934–35 | 27 | 12 | ||
| 1935–36 | 26 | 10 | ||
| 1936–37 | 2 | 2 | ||
| 1937–38 | 6 | 0 | ||
| 통산 | 348 | 242 | ||
6. 수상
안젤로 스키아비오는 선수 시절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볼로냐 소속으로 세리에 A 4회, 미트로파컵 2회, 1937년 파리 세계박람회 국제 트로피 우승을 달성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는 1934년 월드컵 우승, 중부 유럽 국제컵 2회 우승, 1928년 하계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했다. 개인 수상 경력으로는 1931-32 시즌 세리에 A 득점왕(25골), 1934년 FIFA 월드컵 실버 부트, 2012년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이 있다.
6.2. 국가대표팀
스키아비오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1934년 월드컵과 1927-30년 중부 유럽 국제컵, 1933-35년 중부 유럽 국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28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6.3. 개인
| 수상 | 내용 |
|---|---|
| 1931-32 시즌 | 세리에 A 득점왕 (25골) |
| 1934년 FIFA 월드컵 | 월드컵 최다 득점 2위, FIFA 월드컵 실버 부트 |
| 2012년 (사후)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