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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마카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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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자마카샤리는 1074년 자마크샤르에서 태어나 1144년 크와레즘의 알유르야니야에서 사망한 이슬람 학자이다. 꾸란에 정통하여 알카샤프를 저술했으며, 아랍어 문법과 수사학 연구에 기여했다.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학문을 탐구했으며, '신의 친구'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알 카샤프》, 《알-모파쌀 피 시나아트 알-이랍》, 《아사스 알-발라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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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마카샤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아부 알 카심 마흐무드 이븐 우마르 알 자마크샤리 (1144년 사망); 알-무파쌀, 근동, 1253년 8월 13일 수요일
알-자마크샤리의 알-무파쌀 원고; 1253년 8월 13일 사본
이름알-자마크샤리
원어 이름الزمخشري
출생일1074년 3월 18일
출생지자마크샤르, 호라즘
사망일1143년 7월 12일
사망지구르간지, 호라즘 제국
시대이슬람 황금시대
종교
종교이슬람교
법학하나피
신조무타질리

2. 생애

알자마카샤리는 카와레즈미아의 자마크샤르에서 태어나 이슬람 학교의 저명한 학자가 되었다. 그는 저서를 페르시아어로 기록했으며 아랍어를 잘 사용했다.[29] 동상으로 한쪽 다리를 잃자 그는 사고가 아니라 법적인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했다.[30]

꾸란에 정통한 학자로서 알카샤프(''Al-Kashshaaf'')로 불렸으며 언어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시구로 유명하나 철학적으로는 조금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수년동안 메카에서 머물렀으며 그때 "신의 친구"(Jar-Allah)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크와레즘으로 돌아갔다가 죽었다.

그는 1144년 크와레즘의 알유르야니야(al-Jurjaniya)에서 죽었다. 그는 부카라와 사마르칸트에서 공부했으며 바그다드의 율법자이기도 했다.

그의 전체 이름은 아부 알-카심 마흐무드 이븐 오마르 이븐 모하메드 이븐 오마르 알-카와리즈미 알-자마크샤리였다.[4] 그는 또한 "파크르 카와라즘"( "카와레즘의 자부심")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에게서 코란과 아랍어에 대해 배우기 위해 큰 오아시스인 카와레즘으로 여행했기 때문이다.[2] 그는 1074년 3월 18일 당시 카와레즘의 큰 도시였던 자마크샤르에서 태어났다.[4]

2. 1. 초기 생애와 교육

알자마카샤리는 카와레즈미아의 자마크샤르에서 태어나 이슬람 학교의 저명한 학자가 되었다. 저서를 페르시아어로 기록했으며 아랍어를 잘 사용했다.[29] 그는 꾸란에 정통한 학자로서 알카샤프(''Al-Kashshaaf'')로 불렸으며 언어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시구로 유명했다. 수년 동안 메카에서 머물렀으며 그때 "신의 친구"(Jar-Allah)라는 칭호를 얻었다.

알자마카샤리는 다리가 하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렸을 때 새의 다리에 밧줄을 묶었다가 새가 날아가면서 다리가 잘렸고, 이를 본 어머니가 똑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6] 다른 이야기로는 혹독한 호라즘의 추운 날씨에서 그가 끊임없이 여행한 것이 다리를 잃은 이유라고도 한다.[3] 동상으로 한쪽 다리를 잃자 그는 사고가 아니라 법적인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했다.[30]

그는 부카라와 사마르칸트에서 공부했으며 바그다드의 율법자이기도 했다. 자마크샤르에서 성장하여 잠시 그곳에서 공부했으며, 그 후 중앙아시아, 호라산과 이스파한을 포함한 이란 도시, 그리고 바그다드 등 여러 지역을 여행했다.[5] 그의 여행의 주요 이유는 시, 종교, 아랍어 문법에 대해 더 많이 배우기 위해서였다.[5]

그는 당시 유명한 스승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의 스승 중 한 명은 아부 무다르 마흐무드 이븐 자리르 알-다비 알-아스파하니였으며, 그는 알자마카샤리에게 통사론과 문학을 가르쳤다.[7] 알자마카샤리는 이 스승을 매우 존경했으며, 그가 1113년에 사망했을 때 큰 슬픔에 잠겼다.[8] 또한 알자마카샤리는 아부 알리 알-하산 빈 알-무다파르 알-니사부리로부터 문학과 운율을 배웠다.[9] 그는 또한 그의 스승들인 아부 만수르 나스르 알-하르티, 아부 사아드 알-샤가이, 아부 알-카타브 빈 알-바타르로부터 철학적-종교적 아이디어를 얻었다.[3]

2. 2. 메카 순례와 학문적 성숙

알자마카샤리는 카와레즈미아의 자마크샤르에서 태어나 이슬람 학교의 저명한 학자가 되었다. 그는 저서를 페르시아어로 기록했으며 아랍어를 잘 사용했다.[29] 꾸란에 정통한 학자로서 알카샤프(''Al-Kashshaaf'')로 불렸으며 언어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시구로 유명하나 철학적으로는 조금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수년동안 메카에서 머물렀으며 그때 "신의 친구"(Jar-Allah)라는 칭호를 얻었다.[5] 그는 시, 종교, 아랍어 문법에 대해 더 많이 배우기 위해 중앙아시아부하라, 호라산과 이스파한을 포함한 이란 도시, 그리고 바그다드 등 여러 지역을 여행했다. 메카에서는 아랍 산문과 운율 원리에 대해 광범위하게 저술한 아비 알하산 알리 빈 함자 빈 와하스 알-샤리프 알-하사니 왕자를 만났다.[2] 2년 후 호라즘으로 돌아갔지만, 메카, 성스러운 모스크, 그곳의 스승들에 대한 향수를 느껴 다시 메카로 여행을 떠나 3년 동안 머물렀다.[5]

알자마카샤리는 다리가 하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렸을 때 새의 다리에 밧줄을 묶었다가 새가 날아가면서 다리가 잘렸고, 이를 본 어머니가 똑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븐 할리칸과 같은 다른 사람들은 혹독한 호라즘의 추운 날씨에서 그가 끊임없이 여행한 것이 다리를 잃은 이유라고 주장했다.[3] 동상으로 한쪽 다리를 잃자 그는 사고가 아니라 법적인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했다.[30]

2. 3. 다리 절단

알자마카샤리는 다리가 하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생애에 대한 문헌은 이를 다양하게 설명한다.[3][6] 알다마가니가 알자마카샤리에게 그의 다리에 대해 묻자, 그는 어렸을 때 새의 다리에 밧줄을 묶었는데 새가 날려고 시도하면서 다리가 잘렸다고 말했다.[6] 알자마크사리의 어머니는 이것을 보고 그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나 새의 고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나중에 부하라로 가는 길에 그는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고, 결국 절단되었다.[6] 이븐 할리칸 등은 혹독한 호라즘의 추운 날씨에서 그가 끊임없이 여행한 것이 다리를 잃은 이유라고 주장했다.[3] 동상으로 한쪽 다리를 잃자 그는 사고가 아니라 법적인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했다.[30]

2. 4. 말년과 죽음

알자마카샤리는 카와레즈미아의 자마크샤르에서 태어나 이슬람 학교의 저명한 학자가 되었다. 그는 저서를 페르시아어로 기록했으며 아랍어를 잘 사용했다.[29] 동상으로 한쪽 다리를 잃자 그는 사고가 아니라 법적인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했다.[30] 꾸란에 정통한 학자로서 알카샤프(''Al-Kashshaaf'')로 불렸으며 언어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시구로 유명하나 철학적으로는 조금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수년동안 메카에서 머물렀으며 그때 "신의 친구"(Jar-Allah)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크와레즘으로 돌아갔다가 죽었다. 그는 부카라와 사마르칸트에서 공부했으며 바그다드의 율법자이기도 했다. 알-자마크샤리는 1143년 7월 12일(월요일, 538년 8일 두 알히자 이브)에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인 구르간지 (현재의 쾨네우르겐치)에서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4][9]

3. 주요 업적 및 저서

알자마흐샤리의 명성은 꾸란에 기초한 해석에 따른 것이었으며 여러 학자의 주목을 받았다.[31]

자마흐샤리가 주석한 꾸란(1346년 또는 1347년)


; 《알 카샤프》(Al-Kashshaf)

''알 카샤프''(کشاف , 일명 '계시자; 꾸란 해석')는 12세기에 쓰여진 알자마흐샤리의 가장 잘 알려진 저작이다.[12] 이 책의 이름은 '밝히다'라는 동사 카샤프에서 파생되었으며, 꾸란 표현의 통사적, 의미적 모호성을 밝히려고 시도한다. 알자마흐샤리는 텍스트에서 저술 동기, 추진력 및 목표를 설명하면서, 꾸란을 적절하게 해석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집필을 망설였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꾸란 구절을 언급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배우는 것 같았고, 학생들이 다른 과목보다 꾸란 해석에 더 관심을 갖게 되자, 그는 그들에게 그 모든 의미에 대한 책을 쓸 것이라고 말했고, 그들은 그를 격려했다.[3][12]

이 책은 알-자마흐샤리가 독자들에게 간략한 자서전과 텍스트를 구성한 이유를 제공하는 서문, 이 책에 사용된 자료, 꾸란에 나타나는 정확한 순서대로 꾸란 구절에 대한 해석, 편집자가 알-자마흐샤리에 대한 전기를 제공하고 그의 기여가 삶의 종교적, 언어학적, 문학적 측면으로 확장된 존경받는 인물로 그를 칭찬하는 두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13]

이 책은 무타질라의 접근 방식과 관계없이 언어학자뿐만 아니라 아랍어와 꾸란 학습자에게 주요 자료였다.[9] 대부분의 후대 학자들은 저작을 구성할 때 알-자마흐샤리의 문체, 의미론적 및 통사적 접근 방식을 사용했다.[3][7] 알-자마흐샤리는 이 책에서 아랍어의 아름다움과 풍부함을 보여주고, 속담을 도출하며, 여러 의미를 가진 표현을 설명하고, 수사학의 과학을 탐구하려고 노력했다.[12]

이 책을 구별하는 특징 중 하나는 아랍어 학습자에게도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중복성이 없다는 점이다.[12] 또 다른 특징은 아랍어 사용자들이 의미를 전달하고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방식에 의존한다는 것이다.[9] 게다가 설명 방식은 ‘만약 내가 너에게 말한다면… 뭐라고 말하겠니?’로 시작하여 ‘나는…이라고 말하겠다’로 끝나는 질문/답변 패턴을 따랐다. 이븐 할둔(1332–1406)은 ''알 무카디마'' ‘서론’(1377)에서 이 질문 방식이 다양한 교육 배경을 가진 독자들이 따라가기 쉽게 만들었다고 말한다.[13]

이 책이 큰 명성을 얻은 후, 많은 학자들이 해설서를 쓰거나 요약했다.[9][13]

; 《알-모파쌀 피 시나아트 알-이랍》(Al-Mofassal Fi Sina’at Al-E’rab)

알-자마크샤리의 ''알-모파쌀 피 시나아트 알-이랍''(1120-1122년)은 아랍 문법학자들이 아랍어 통사론(및 형태통사론)에 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로 여긴다.[14] 일부 문법학자들은 이 책이 시바와이흐의 아랍어 문법 서적 다음으로 두 번째로 중요한 통사론 서적이라고 평가하는데, 알-자마크샤리가 아랍어의 모든 통사론적 및 형태론적 측면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이다.[9]

알-자마크샤리는 꾸란을 해석하는 것은 순수한 아랍어를 구사하고 다양한 구조가 가질 수 있는 여러 통사론적 및 의미론적 관계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춘 교육받은 언어학자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언어학적 지식 없이 꾸란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고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믿었다.[14]

알-자마크샤리는 1년 4개월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책을 썼는데, 513 AH 말에 이 책을 쓰기 시작하여 515 AH(1122 AD) 초에 완성했다.[14] 이 작품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언어학자들로부터 칭송받았으며, 1873년에는 독일어를 비롯한 다양한 현대 언어로 번역되었다.[2]

그는 다른 훌륭한 문법학자들의 몇몇 통사론 서적을 살펴보고 그것들이 체계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여, 아랍어 문법의 통사론적 및 형태론적 측면에 대한 더 나은 구성을 제공하고자 했다.[9] 그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시작하여, 책을 네 개의 주요 장으로 나누었다.[14]

Grodzki(2011)는 ''알-모파쌀 피 시나아트 알-이랍''이 다른 아랍어 통사론 서적과 구별되는 점은 알-자마크샤리가 독자들이 매끄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지엽적인 내용을 피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그는 알-자마크샤리의 문체를 명확하고 단순하며 간결하다고 평가했다.[15]

이 언어학적 저서는 빛을 본 이후부터 주목을 받았다.[14] 주르지 자이단은 1943년 저서 ''타리흐 아답 알-루가 알-아라비야''('아랍어 문학사')에서 이사 이븐 아요브 왕이 이 책을 존경하여 이 책을 암송하는 사람에게 100디나르와 집을 하사했기 때문에 알-자마크샤리의 ''알-무파쌀''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고 썼다. 또한 이 책은 7세기와 8세기 AH(1204 – 1301 AD) 동안 알-샴(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집트, 이라크, 알-히자즈(사우디 아라비아 서부) 및 예멘에서 가르쳐진 (몇 안 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였다. 그 영향은 아랍어에 관심이 많았던 알-안달루스(이베리아 반도)에까지 미쳤다.[15]

; 《아사스 알-발라가》(Asas Al-Balaghah)

''아사스 알-발라가''(أساس البلاغةar, 웅변의 기초) (1998년 초판)는 아랍어 단어의 유의어 사전이자 사전이다.[16] 알자마크샤리는 각 단어에 대해 그 의미, 꾸란, 무함마드의 말, 시 또는 격언에서의 용례를 제공했다. 또한, 그는 비유적 표현에서 이 단어의 용례를 나타내고 분석했으며, 일상 언어에서 이 단어가 사용될 수 있는 맥락을 제공했다. 이 텍스트의 내용은 알파벳순으로 정리되었다. 이 작품은 문자 그대로의 정의와 비유적인 내용을 결합한 최초의 완전한 알파벳식 사전 편찬법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9] 그는 희귀하거나 차용된 단어는 제외했다. 그의 목표는 단어 선택이 텍스트 또는 연설의 수사법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16]

; 기타 저서

  • ''Rabi al-Abrar''
  • ''Fasul-ul-Akhbar''
  • ''Fraiz Dar-ilm Fariz''
  • ''Kitab-Fastdar-Nahr''
  • ''Muajjam-ul-Hadud''
  • ''Manha Darusul''
  • ''Diwan-ul-Tamsil''
  • ''Sawaer-ul-Islam''
  • ''Muqaddimat al-Adab''[32]
  • ''자마흐샤리의 마카마트''는 ‘자마흐샤리의 원리’(1982년 초판)는 문학 작품이다. 이 책은 모든 축복에 대해 신을 찬양하고 독자들에게 이 책을 주의 깊게 읽고 각 단어 사용의 목적을 이해해 달라고 요청하는 서문으로 시작한다. 자마흐샤리는 종교 설교를 하고 나서 50가지 원리를 제시했다. 이 원리들은 관대함, 진지함, 용기, 감사, 조언, 죽음, 구문론, 운율, 그리고 과거 아랍인의 삶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9]

3. 1. 《알 카샤프》(Al-Kashshaf)

알자마흐샤리의 명성은 꾸란에 기초한 해석으로 인해 여러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31]

''알 카샤프''(کشاف , 일명 '계시자; 꾸란 해석')는 12세기에 쓰여진 알자마흐샤리의 가장 잘 알려진 저작이다.[12] 이 책의 이름은 '밝히다'라는 동사 카샤프에서 파생되었으며, 꾸란 표현의 통사적, 의미적 모호성을 밝히려고 시도한다. 알자마흐샤리는 텍스트에서 저술 동기, 추진력 및 목표를 설명하면서, 꾸란을 적절하게 해석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집필을 망설였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꾸란 구절을 언급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배우는 것 같았고, 학생들이 다른 과목보다 꾸란 해석에 더 관심을 갖게 되자, 그는 그들에게 그 모든 의미에 대한 책을 쓸 것이라고 말했고, 그들은 그를 격려했다.[3][12]

이 책은 알-자마흐샤리가 독자들에게 간략한 자서전과 텍스트를 구성한 이유를 제공하는 서문, 이 책에 사용된 자료, 꾸란에 나타나는 정확한 순서대로 꾸란 구절에 대한 해석, 편집자가 알-자마흐샤리에 대한 전기를 제공하고 그의 기여가 삶의 종교적, 언어학적, 문학적 측면으로 확장된 존경받는 인물로 그를 칭찬하는 두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13]

이 책은 무타질라의 접근 방식과 관계없이 언어학자뿐만 아니라 아랍어와 꾸란 학습자에게 주요 자료였다.[9] 대부분의 후대 학자들은 저작을 구성할 때 알-자마흐샤리의 문체, 의미론적 및 통사적 접근 방식을 사용했다.[3][7] 알-자마흐샤리는 이 책에서 아랍어의 아름다움과 풍부함을 보여주고, 속담을 도출하며, 여러 의미를 가진 표현을 설명하고, 수사학의 과학을 탐구하려고 노력했다.[12]

이 책을 구별하는 특징 중 하나는 아랍어 학습자에게도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중복성이 없다는 점이다.[12] 또 다른 특징은 아랍어 사용자들이 의미를 전달하고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방식에 의존한다는 것이다.[9] 게다가 설명 방식은 ‘만약 내가 너에게 말한다면… 뭐라고 말하겠니?’로 시작하여 ‘나는…이라고 말하겠다’로 끝나는 질문/답변 패턴을 따랐다. 이븐 할둔(1332–1406)은 ''알 무카디마'' ‘서론’(1377)에서 이 질문 방식이 다양한 교육 배경을 가진 독자들이 따라가기 쉽게 만들었다고 말한다.[13]

이 책이 큰 명성을 얻은 후, 많은 학자들이 해설서를 쓰거나 요약했다.[9][13]

3. 2. 《알-모파쌀 피 시나아트 알-이랍》(Al-Mofassal Fi Sina’at Al-E’rab)

알-자마크샤리의 ''알-모파쌀 피 시나아트 알-이랍''(1120-1122년)은 아랍 문법학자들이 아랍어 통사론(및 형태통사론)에 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로 여긴다.[14] 일부 문법학자들은 이 책이 시바와이흐의 아랍어 문법 서적 다음으로 두 번째로 중요한 통사론 서적이라고 평가하는데, 알-자마크샤리가 아랍어의 모든 통사론적 및 형태론적 측면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이다.[9]

알-자마크샤리는 꾸란을 해석하는 것은 순수한 아랍어를 구사하고 다양한 구조가 가질 수 있는 여러 통사론적 및 의미론적 관계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춘 교육받은 언어학자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언어학적 지식 없이 꾸란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고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믿었다.[14]

알-자마크샤리는 1년 4개월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책을 썼는데, 513 AH 말에 이 책을 쓰기 시작하여 515 AH(1122 AD) 초에 완성했다.[14] 이 작품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언어학자들로부터 칭송받았으며, 1873년에는 독일어를 비롯한 다양한 현대 언어로 번역되었다.[2]

그는 다른 훌륭한 문법학자들의 몇몇 통사론 서적을 살펴보고 그것들이 체계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여, 아랍어 문법의 통사론적 및 형태론적 측면에 대한 더 나은 구성을 제공하고자 했다.[9] 그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시작하여, 책을 네 개의 주요 장으로 나누었다.[14]

Grodzki(2011)는 ''알-모파쌀 피 시나아트 알-이랍''이 다른 아랍어 통사론 서적과 구별되는 점은 알-자마크샤리가 독자들이 매끄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지엽적인 내용을 피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그는 알-자마크샤리의 문체를 명확하고 단순하며 간결하다고 평가했다.[15]

이 언어학적 저서는 빛을 본 이후부터 주목을 받았다.[14] 주르지 자이단은 1943년 저서 ''타리흐 아답 알-루가 알-아라비야''('아랍어 문학사')에서 이사 이븐 아요브 왕이 이 책을 존경하여 이 책을 암송하는 사람에게 100디나르와 집을 하사했기 때문에 알-자마크샤리의 ''알-무파쌀''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고 썼다. 또한 이 책은 7세기와 8세기 AH(1204 – 1301 AD) 동안 알-샴(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집트, 이라크, 알-히자즈(사우디 아라비아 서부) 및 예멘에서 가르쳐진 (몇 안 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였다. 그 영향은 아랍어에 관심이 많았던 알-안달루스(이베리아 반도)에까지 미쳤다.[15]

3. 3. 《아사스 알-발라가》(Asas Al-Balaghah)

알자마크샤리의 명성은 꾸란에 기초한 해석에 따른 것이었으며 여러 학자의 주목을 받았다.[31] ''아사스 알-발라가''(أساس البلاغةar, 웅변의 기초) (1998년 초판)는 아랍어 단어의 유의어 사전이자 사전이다.[16] 알자마크샤리는 각 단어에 대해 그 의미, 꾸란, 무함마드의 말, 시 또는 격언에서의 용례를 제공했다. 또한, 그는 비유적 표현에서 이 단어의 용례를 나타내고 분석했으며, 일상 언어에서 이 단어가 사용될 수 있는 맥락을 제공했다. 이 텍스트의 내용은 알파벳순으로 정리되었다. 이 작품은 문자 그대로의 정의와 비유적인 내용을 결합한 최초의 완전한 알파벳식 사전 편찬법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9] 그는 희귀하거나 차용된 단어는 제외했다. 그의 목표는 단어 선택이 텍스트 또는 연설의 수사법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16]

3. 4. 기타 저서

알자마카샤리의 명성은 꾸란에 기초한 해석에 따른 것이었으며 여러 학자의 주목을 받았다.[31]

  • ''Al-Kashshaaf(کشاف )''[31]
  • ''Rabi al-Abrar''
  • ''Asasul-Balaghat dar-Lughat''
  • ''Fasul-ul-Akhbar''
  • ''Fraiz Dar-ilm Fariz''
  • ''Kitab-Fastdar-Nahr''
  • ''Muajjam-ul-Hadud''
  • ''Manha Darusul''
  • ''Diwan-ul-Tamsil''
  • ''Sawaer-ul-Islam''
  • ''Muqaddimat al-Adab''[32]
  • ''자마흐샤리의 마카마트''는 ‘자마흐샤리의 원리’(1982년 초판)는 문학 작품이다. 이 책은 모든 축복에 대해 신을 찬양하고 독자들에게 이 책을 주의 깊게 읽고 각 단어 사용의 목적을 이해해 달라고 요청하는 서문으로 시작한다. 자마흐샤리는 종교 설교를 하고 나서 50가지 원리를 제시했다. 이 원리들은 관대함, 진지함, 용기, 감사, 조언, 죽음, 구문론, 운율, 그리고 과거 아랍인의 삶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9]

4. 언어학적 접근

알자마카샤리는 바스라와 쿠파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의 가설에 따라 양쪽 모두에서 취하는 방식을 택했다.[9] 어떤 이들은 이러한 언어적 태도가 그의 무타질라 철학 사상에 기인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그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삶에 대한 포괄적인 관점을 갖도록 했다고 한다.[9] 만약 그의 이름을 특정 학파에 귀속시켜야 한다면, 그는 바그다드 학파를 따랐을 것이다. 바그다드 학파는 어떤 경우에는 바스라 학파를, 다른 경우에는 쿠파 학파의 방식을 따른다.

바스라 학파는 ((هل زيد قام؟ '자이드가 일어섰는가?')에서 동사 قام '일어서다'를 생략된 동사의 주어로 간주한다.[5] 반면 쿠파 학파는 명사를 주어로 간주하지 않고 주제라고 주장한다. 알자마카샤리가 쿠파 학파를 따른 또 다른 예는 동사 حدّث '말하다'를 세 개의 목적어를 취하는 동사로 분석한 것이다. 예를 들어, فمن حدثتموهـ له علينا العلاء '당신이 우선순위에 대해 말한 사람'에서 첫 번째 목적어는 '그 사람', 두 번째는 동사에 붙은 대명사 هـ, 세 번째는 전치사 구이다. 그러나 바스라 학파는 '말하다'를 이중 타동사로 간주한다.[9]

==== 의문 접두사 /ʔ-/에 대한 분석 ====

아랍어에서 의문문 접두사 /ʔ-/는 명사절과 동사절에 붙어 예/아니오 질문을 만들며, 정보 확인, 확인 또는 검증을 요청하는 데 사용된다.[17] 이 접두사는 문장에서 우선시되므로 접속사, 전치사, 보어 [ʔnna] 및 직접 목적어(동사절의 경우)보다 먼저 나올 수 있다.[17]

의문 결합 형태소 /ʔ-/는 일반적으로 접속사 앞에 온다.[18] 예를 들어 "그들이 계약을 할 때마다 항상 그랬습니까?"라는 (أو كلَما عاهدوا عهداً)와 같은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18]

이러한 현상에 대해 아랍어 문법 학자들은 서로 다른 분석을 제시했다. 시바와이는 의문문 접두사가 접속사 앞에 오면 기본 위치에 나타나지만, 때로는 접속사 다음에 올 수도 있다고 보았다.[4] 반면 알-자마크샤리는 의문사 입자의 기본 위치는 문장 시작 부분에 있지만, 접속사 다음에 오는 문장은 의문 접두사와 접속사 입자 사이에 생략된 문장에 연결된다고 주장했다.[17] 그는 ''알-카샤프''에서 "그들이 여행하지 않았는가?"(أفلم يسيروا؟)와 같은 질문은 "그들이 머물렀고 여행하지 않았는가?"(أمكثوا فلم يسيروا؟)와 같이 생략된 구조를 가진다고 설명했다.[3][18]

이븐 히샴은 알-자마크샤리가 이러한 분석을 처음 제시했다고 주장했지만,[9] 아부 하얀은 시바와이의 의견에 동의하며 알-자마크샤리의 분석을 "자마크샤리안 경향"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판했다.[17] 알-도수기는 알-자마크샤리가 이 분석을 처음 제시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초기 언어학자들의 논의를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17][19] 이븐 하얀은 무함마드 빈 마수드 알-가즈니가 의문 접두사와 접속사 입자 사이에 생략된 동사구를 주장했다고 언급했는데,[9] 알-가즈니는 1029년에, 알-자마크샤리는 1074년에 태어났으므로,[17] 알-자마크샤리가 이 분석을 처음 제시한 것이 아니라 따랐다는 것이 증명된다.[19]

==== '란(Lan)'에 대한 분석 ====

알 자마카샤리는 부정 입자 '란(lan)'을 현재와 미래를 모두 나타내는 동사를 부정하는 입자로 정의했다.[20] 그는 '란(lan)'을 영어의 'never'와 유사하게, 현재를 넘어 미래에 특정 사건이나 상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부정하는 지속적인 부정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예: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알 자마카샤리는 자신의 분석을 입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다양한 예시를 제시했다.[20]


  • 무사(Mousa) 예언자가 하나님께 자신을 볼 수 있는지 질문했을 때, 하나님은 "너는 결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꾸란 7:143)라고 대답했다.[18]
  •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분 외에 다른 존재를 섬기는 자들은 모두 함께 모여 파리를 만들려고 해도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결코 파리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꾸란 22:73) [18]


그러나 이븐 히샴(Ibn Hisham)과 같은 8세기 학자들은 알 자마카샤리가 '란(lan)'을 지속적인 부정 입자로 간주한 것은 그의 무타질라 접근 방식의 철학적 아이디어에 깊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6][9] 이는 무타질라 사람들이 꾸란을 해석하는 방식이며, 다른 모든 무슬림이 따르는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이다.[2] 예를 들어, 위의 첫 번째 예시는 무타질라 사람들이 내세에서 결코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믿는 방식을 보여주며, 이것은 알 자마카샤리가 꾸란의 의미론적, 문법적 분석에서 따른 접근 방식이다. 그러나 모든 무슬림(무타질라 접근 방식을 따르지 않는)은 그 반대로 믿는데, 실제로 꾸란에서는 신자들이 실제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2][6] "그 날, 어떤 얼굴들은 빛나고 아름다울 것이다. * 그들의 주님을 바라보며" (꾸란 75:22,23) [18]

'란(lan)'에 대해 이븐 히샴은 또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란(lan)'을 지속적인 부정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 일반적인 부정 입자로 간주했다.[6] 그는 다음과 같은 꾸란의 예시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옹호했다.

  •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에 대해 그들이 결코 죽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 "그들은 결코 그것을 갈망하지 않을 것이다" (꾸란 2:95) [18] 이븐 히샴은 만약 '란(lan)'이 지속적인 부정의 의미를 가진다면, 같은 구절에서 'abadanan' ('결코')라고 말하는 것은 중복될 것이기 때문에 알 자마카샤리의 견해를 반박했다.
  •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가장 자비로우신 분(알라)께 금식 서약을 했으니, 어떤 인간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2] "그러므로 오늘 나는 어떤 인간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꾸란 19:26) [18] 이븐 히샴은 '란(lan)'이 '결코'를 의미한다면, 왜 같은 구절에서 시간 부사 '오늘'에 의해 그 의미가 제한되겠는가 하는 점을 들어 알 자마카샤리의 견해를 반박했다.[2][3] 이는 알 잠크샤리의 '란(lan)'에 대한 분석이 지속적인 부정을 나타내는 것이 적용되지 않으며, 그의 신학적 아이디어에 주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했다.[11]

4. 1. 의문 접두사 /ʔ-/에 대한 분석

아랍어에서 의문문 접두사 /ʔ-/는 명사절과 동사절에 붙어 예/아니오 질문을 만들며, 정보 확인, 확인 또는 검증을 요청하는 데 사용된다.[17] 이 접두사는 문장에서 우선시되므로 접속사, 전치사, 보어 [ʔnna] 및 직접 목적어(동사절의 경우)보다 먼저 나올 수 있다.[17]

의문 결합 형태소 /ʔ-/를 사용할 때 일반적으로 접속사 앞에 온다.[18] 예를 들어 "그들이 계약을 할 때마다 항상 그랬습니까?"라는 (أو كلَما عاهدوا عهداً)와 같은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18]

이러한 현상에 대해 아랍어 문법 학자들은 서로 다른 분석을 제시했다. 시바와이는 의문문 접두사가 접속사 앞에 오면 기본 위치에 나타나지만, 때로는 접속사 다음에 올 수도 있다고 보았다.[4] 반면 알-자마크샤리는 의문사 입자의 기본 위치는 문장 시작 부분에 있지만, 접속사 다음에 오는 문장은 의문 접두사와 접속사 입자 사이에 생략된 문장에 연결된다고 주장했다.[17] 그는 ''알-카샤프''에서 "그들이 여행하지 않았는가?"(أفلم يسيروا؟)와 같은 질문은 "그들이 머물렀고 여행하지 않았는가?"(أمكثوا فلم يسيروا؟)와 같이 생략된 구조를 가진다고 설명했다.[3][18]

이븐 히샴은 알-자마크샤리가 이러한 분석을 처음 제시했다고 주장했지만,[9] 아부 하얀은 시바와이의 의견에 동의하며 알-자마크샤리의 분석을 "자마크샤리안 경향"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판했다.[17] 알-도수기는 알-자마크샤리가 이 분석을 처음 제시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초기 언어학자들의 논의를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17][19] 이븐 하얀은 무함마드 빈 마수드 알-가즈니가 의문 접두사와 접속사 입자 사이에 생략된 동사구를 주장했다고 언급했는데,[9] 알-가즈니는 1029년에, 알-자마크샤리는 1074년에 태어났으므로,[17] 알-자마크샤리가 이 분석을 처음 제시한 것이 아니라 따랐다는 것이 증명된다.[19]

4. 2. '란(Lan)'에 대한 분석

알 자마카샤리는 부정 입자 '란(lan)'을 현재와 미래를 모두 나타내는 동사를 부정하는 입자로 정의했다.[20] 그는 '란(lan)'을 영어의 'never'와 유사하게, 현재를 넘어 미래에 특정 사건이나 상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부정하는 지속적인 부정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예: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알 자마카샤리는 자신의 분석을 입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다양한 예시를 제시했다.[20]

  • 무사(Mousa) 예언자가 하나님께 자신을 볼 수 있는지 질문했을 때, 하나님은 "너는 결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꾸란 7:143)라고 대답했다.[18]
  •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분 외에 다른 존재를 섬기는 자들은 모두 함께 모여 파리를 만들려고 해도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결코 파리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꾸란 22:73) [18]


그러나 이븐 히샴(Ibn Hisham)과 같은 8세기 학자들은 알 자마카샤리가 '란(lan)'을 지속적인 부정 입자로 간주한 것은 그의 무타질라 접근 방식의 철학적 아이디어에 깊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6][9] 이는 무타질라 사람들이 꾸란을 해석하는 방식이며, 다른 모든 무슬림이 따르는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이다.[2] 예를 들어, 위의 첫 번째 예시는 무타질라 사람들이 내세에서 결코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믿는 방식을 보여주며, 이것은 알 자마카샤리가 꾸란의 의미론적, 문법적 분석에서 따른 접근 방식이다. 그러나 모든 무슬림(무타질라 접근 방식을 따르지 않는)은 그 반대로 믿는데, 실제로 꾸란에서는 신자들이 실제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2][6] "그 날, 어떤 얼굴들은 빛나고 아름다울 것이다. * 그들의 주님을 바라보며" (꾸란 75:22,23) [18]

'란(lan)'에 대해 이븐 히샴은 또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란(lan)'을 지속적인 부정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 일반적인 부정 입자로 간주했다.[6] 그는 다음과 같은 꾸란의 예시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옹호했다.

  •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에 대해 그들이 결코 죽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 "그들은 결코 그것을 갈망하지 않을 것이다" (꾸란 2:95) [18] 이븐 히샴은 만약 '란(lan)'이 지속적인 부정의 의미를 가진다면, 같은 구절에서 'abadanan' ('결코')라고 말하는 것은 중복될 것이기 때문에 알 자마카샤리의 견해를 반박했다.
  •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가장 자비로우신 분(알라)께 금식 서약을 했으니, 어떤 인간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2] "그러므로 오늘 나는 어떤 인간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꾸란 19:26) [18] 이븐 히샴은 '란(lan)'이 '결코'를 의미한다면, 왜 같은 구절에서 시간 부사 '오늘'에 의해 그 의미가 제한되겠는가 하는 점을 들어 알 자마카샤리의 견해를 반박했다.[2][3] 이는 알 잠크샤리의 '란(lan)'에 대한 분석이 지속적인 부정을 나타내는 것이 적용되지 않으며, 그의 신학적 아이디어에 주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했다.[11]

5. 평가 및 영향

7세기와 8세기의 일부 학자들은 알자마카샤리에 대해 다양한 주제에 관해 서로 다른 견해를 보였다.[17] 그러나 7세기의 일부 서적과 다른 역사적 증거는 그에게 귀속된 이러한 견해 중 일부가 근거가 부족하며 대부분의 판단에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17] 알자마카샤리에 대한 논쟁 중 하나는 아랍어, 특히 꾸란 구절에서 의문 접두사 /ʔ-/와 접속사의 동시 출현에 대한 그의 분석이다.[17]

6. 한국과의 관계

참조

[1] 간행물 al-Zamak̲h̲s̲h̲arī https://referencewor[...]
[2] 논문 "The Contextual Meanings of Grammatical Tense Meaning: Syntactical and semantic study" 2018
[3] 논문 Andrew J. Lane, A Traditional Muctazilite Qurcān Commentary: The Kashshāf of Jār Allāh al-Zamakhsharī (d. 538/1144) http://dx.doi.org/10[...] 2006
[4] 논문 The effect of recitation Al- A' mash on directing the Qur'anic text of Al- Zamakhshari in Al- kashaf: An analytical study 2021-02-28
[5] 서적 Moslem Women http://dx.doi.org/10[...] 2009-12-31
[6] 논문 Lifting the Illusion of Imam Al-Zamakhshari on Some Grammatical Issues 2020
[7] 서적 The venture of Islam : conscience and history in a world civilization. http://worldcat.org/[...]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7
[8] 서적 Aboriginal place names: charting our heritage. http://worldcat.org/[...] Geographical Names Section, Natural Resources Canada 2004
[9] 서적 Târîkh alAdab al'Arabiyyah 'History of Arabic Language Literature' Lebanon: Dâr al-Maârif
[10] 논문 Identifying Preface in the Quranic Surahs: A New Methodology of Quranic Interpretation 2014-06-01
[11] 논문 Khawarizmi Grammatical Objections in His Book ALTekhmer on AlZamakhshari (names Section) 2015
[12] 서적 Tafsir AlKashaf Beirut:DarAlKutub AlcIlmiyyah
[13] 서적 The Oxford Dictionary of Islam https://www.worldcat[...]
[14] 논문 The Grammatical Treatise Al-Mufaṣṣal fī ṣan'at al-i'rāb of Abū al-Qāsim az-Zamaḫšarī (Died 1144 A.D.) – a Masterpiece of Arab Grammar https://www.worldcat[...] 2011
[15] 논문 Sharh AlMufassal https://dx.doi.org/1[...] Oriens. Beirut: Dar Ul Kutub Il Ilmiya
[16] 서적 AlKalim AlNawābigh Egypt: AlTaba‘ Mahfuza
[17] 논문 A Comparative Study of Views of AlZamakhshari and Allama Tabataba'i on Comprehension of Qur'anic Interrogatives 2018
[18] 웹사이트 The Noble Quran https://quran.com/?l[...]
[19] 논문 The Semantics Links by Conjunctions in the Selected Quranic Chapters As Discussed by Al-Zamakhshari and Abu Hayyan From the First Chapter "Al-Fatiha" to the End of Surah "Al-Anas" 2019
[20] 서적 AlKashshaf: AlZamakhshari's Mu'tazilite Exegesis of the Qur'an Walter de Gruyter GmbH & Co KG
[21] 웹사이트 2.アッ=ザマフシャリーの注釈書 http://islam.ne.jp/q[...]
[22] 문서 岡崎「ザマフシャリー」『アジア歴史事典』4巻、58頁
[23] 문서 中村「ザマフシャリー」『新イスラム事典』、243-244頁
[24] 문서 小杉「ザマフシャリー」『岩波イスラーム辞典』、413頁
[25] 문서 Jane Dammen MacAuliffe, ''Quranic Christians: An Analysis of Classical and Modern Exegesis'',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pg 51
[26] 문서 By Norman. Calder, Andrew Rippin, ''Classical Islam: A Sourcebook of Religious Literature'', Routledge, 2003, pg 119
[27] 웹인용 Encyclopedia Iranica, "The Chorasmian Language", D.N.Mackenzie http://www.iranica.c[...] 2009-12-19
[28] 문서 "Zamakhshari" in Encyclopedia of Islam, by C.H.M. Versteegh, Brill 2007.
[29] 문서 1911 Encyclopedia Britannica, volume 1, al-Zamakhshari
[30] 문서 Samuel Marinus Zwemer, "A Moslem Seeker After God"
[31] 웹사이트 Salaam Knowledge http://www.salaam.co[...]
[32] 웹사이트 http://www.orient.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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