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셀름 파얜
1. 개요
앙셀름 파얜은 프랑스의 화학자이다. 그는 붕사 정제 공정 개발, 활성탄을 이용한 설탕 탈색법 개발, 최초의 효소인 디아스타아제 발견, 셀룰로스 분리 등의 업적을 남겼다. 23세에 붕사 정제 공장 관리자가 되어 나트륨과 붕산으로부터 붕사를 합성하는 공정을 개발하여 네덜란드의 붕사 독점 시장을 무너뜨렸다. 사탕무에서 설탕을 정제하는 공정에 활성탄을 사용한 탈색법을 개발하여 설탕 생산 방식을 변화시켰으며, 맥아 추출액에서 디아스타아제를 발견하여 효소 연구에 기여했다. 또한, 식물 세포벽에서 셀룰로스를 분리하고 명명했다. 미국 화학회는 그의 업적을 기려 앙셀름 파얜 상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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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생화학자 -
루이 파스퇴르
루이 파스퇴르는 1822년에 태어나 1895년에 사망한 프랑스의 생물학자이자 화학자로서, 분자 키랄성을 입증하고 생물 속생설을 확립했으며, 저온 살균법과 백신 개발을 통해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프랑스의 생화학자 -
자크 모노
자크 모노는 프랑스의 생화학자이자 철학자로, 분자생물학 발전에 기여, 오페론 설 확립으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고 알로스테릭 조절 모델 제시, 과학 철학 저서 《우연과 필연》을 통해 과학적 세계관을 옹호했다. -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 -
샤를 메시에
샤를 메시에는 프랑스의 천문학자로, 혜성 발견과 메시에 천체 목록을 만들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달의 크레이터와 소행성에 이름이 붙여졌다. -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 -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조제프루이 라그랑주는 이탈리아 출신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서 변분법, 라그랑주 역학 등을 개발하고 미터법 제정에 참여하며 18~19세기 수학과 역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에펠탑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
에콜 폴리테크니크 동문 -
조르주 소렐
조르주 소렐은 프랑스의 사상가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며 신화와 직접 행동을 통한 자본주의 전복을 주장했고, 파시즘과 볼셰비즘에 양면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아나코생디칼리즘과 파시즘에 영향을 미쳤다. -
에콜 폴리테크니크 동문 -
알프레드 드레퓌스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독일 군사 기밀 판매 혐의로 기소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고 복권된 프랑스 육군 장교이다.
2. 생애
파얜은 파리에서 태어나 13세에 아버지로부터 화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미셸 외젠 슈브뢰유, 루이 니콜라 바클랭 등에게서 화학을 배웠다. 23세에 붕사 정제 공장 관리자가 되어 붕사 합성 공정을 개발, 네덜란드의 독점을 깨뜨렸다. 이후 사탕무에서 설탕을 정제하는 공정에 관심을 가지고 활성탄을 이용한 탈색 기술을 개발하여 설탕 제조 방식을 개선했다.
1833년 최초의 효소인 디아스타아제를 발견하고, 셀룰로스를 분리했다. 1835년 사업을 그만두고 에콜 상트랄 파리와 프랑스 국립 공예원 교수로 활동하며 연구에 전념했다.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었다. 1871년 5월 13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파리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아버지 장-바티스트로부터 화학을 배웠고,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미셸 외젠 슈브뢰유, 루이 니콜라 바클랭 등에게서 화학을 공부했다.
23세에 붕사 정제 공장 관리자가 되어, 나트륨과 붕산으로부터 붕사를 합성하는 공정을 개발했다. 이전에는 모든 붕사가 동인도에서 네덜란드를 통해 독점적으로 수입되었다. 파얜의 새로운 붕사 합성 방법으로 당시 가격의 3분의 1 가격으로 판매하여 네덜란드의 독점권을 깨뜨릴 수 있었다.
1820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파얭이 가족의 가장이 되었다.
2.2. 붕사 정제 사업과 네덜란드 독점 타파
파얭은 23세에 붕사 정제 공장의 관리자가 되었으며, 나트륨과 붕산으로부터 붕사를 합성하는 공정을 개발했다. 이전에는 모든 붕사가 동인도에서 네덜란드를 통해 독점적으로 수입되었다. 파얭의 새로운 붕사 합성 방법으로 당시 가격의 3분의 1 가격으로 붕사를 판매하여 네덜란드의 독점을 깨뜨릴 수 있었다.
2.3. 설탕 정제 기술 혁신
파얜은 사탕무에서 설탕을 정제하는 공장에 관심을 가졌다. 1822년에 활성탄을 사용하여 탈색하는 수법을 개발했으며, 이 수법은 널리 퍼졌다. 파얜의 설탕 제조 개선은 세계 설탕 생산에서 사탕수수에서 사탕무로의 전환을 가속화시켰다. 그는 설탕의 분석, 탈색, 표백, 결정화와 관련된 탈색계를 발명했다.
2.4. 효소와 탄수화물 연구
파얜은 1833년에 최초로 효소인 디아스타아제를 발견했다. 1834년에는 목재의 화학 조성을 연구하여, 식물 세포벽으로부터 탄수화물 셀룰로스를 분리하고 이름을 지었다.
파얭은 맥아 추출액으로부터 전분을 포도당으로 분해하는 효소를 분리하고, "분리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따와 "디아스타아제"라고 명명했다. 이후 효소의 접미사에 "-ase"가 사용되게 되었다.
2.5. 교육 및 연구 활동
파리에서 태어난 파얜은 13세에 아버지와 함께 과학 공부를 시작했고, 이후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루이 니콜라 바클랭과 미셸 외젠 슈브뢰유 같은 화학자들에게서 화학을 배웠다.
파얜은 설탕 정제 공정을 개발했고, 감자에서 전분과 알코올을 정제하는 방법, 그리고 질소를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또한 설탕의 분석, 탈색, 표백, 결정화와 관련된 탈색계를 발명했다.
1833년 최초의 효소인 디아스타아제를 발견했다. "디아스타아제"는 "분리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따온것으로, 이후 효소의 접미사에 "-ase"가 사용되게 되었다. 1834년, 목재의 화학 조성을 연구하여, 식물 세포벽으로부터 셀룰로스를 단리했다. 이후, 탄수화물의 접미사에 "-ose"가 사용되게 되었다.
1835년, 에콜 상트랄 파리의 교수가 되었고, 나중에 국립 공예학교의 교수로 선출되었다.
3.1. 앙셀름 파얜 상
미국화학회(American Chemical Society) 셀룰로오스 및 재생 가능 재료 부서는 앙셀름 파얜을 기리는 연례상인 앙셀름 파얜 상(Anselme Payen Award)을 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