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커닝엄
1. 개요
앤디 커닝엄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선수 시절에는 레인저스 FC에서 7번의 리그 우승과 스코티시 컵 우승을 경험했으며,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12경기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 1928년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여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령 데뷔 기록을 세웠고,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하며 FA컵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던디 FC를 감독했으며, 은퇴 후에는 스포츠 작가로 활동했다.
| 본명 | 앤드루 커닝엄 |
|---|---|
| 출생일 | 1891년 1월 31일 |
| 출생지 | 이스트에어셔 주갈스턴 |
| 사망일 | 1973년 5월 8일 |
| 사망지 | 글래스고 |
| 포지션 | 인사이드 포워드 |
| 유소년 클럽 | 갈스턴 리버사이드 레인저스 (1906–1907) |
|---|---|
| 클럽 | 뉴밀른스 (1907–1909) |
| 킬마녹 (1909–1915) | |
| 레인저스 (1915–1928) | |
| 뉴캐슬 유나이티드 (1928–1931) | |
| 총 출장 및 득점 | 549경기 237골 |
| 국가대표팀 | 스코틀랜드 (1920–1927) |
|---|---|
| 스코틀랜드 리그 XI (1912–1928) | |
| 스코틀랜드 풋볼 리그 XI (전시) (1915) | |
| 총 출장 및 득점 | 스코틀랜드: 12경기 5골 |
| 스코틀랜드 리그 XI: 10경기 1골 | |
| 스코틀랜드 풋볼 리그 XI (전시): 1경기 0골 | |
| 클럽 | 뉴캐슬 유나이티드 (1930–1935) |
|---|---|
| 던디 (1937–1940) | |
-
킬마녹 FC의 축구 선수 -
윌리 오바메양
윌리 오바메양은 프랑스 태생의 가봉 축구 선수로, AC 밀란 유소년 팀을 거쳐 여러 클럽에서 임대 생활을 했고 가봉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며, 그의 아버지와 형제 또한 축구 선수이다. -
킬마녹 FC의 축구 선수 -
고든 그리어
고든 그리어는 스코틀랜드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에서 풋볼 리그 1 우승을 경험하고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으로 11경기에 출전했다. -
스코티시 풋볼 리그의 축구 감독 -
월터 스미스
월터 스미스는 스코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던디 유나이티드와 레인저스 선수 생활 후 레인저스 감독으로서 리그 7회 우승, 에버턴 감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석 코치,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 등을 역임하며 수많은 우승과 감독상을 수상하고 73세에 사망했다. -
스코티시 풋볼 리그의 축구 감독 -
알렉스 퍼거슨
알렉스 퍼거슨은 스코틀랜드 출신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1986년부터 2013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지도하며 프리미어리그 13회 우승 등 수많은 트로피를 획득하고, 1998-99 시즌에는 잉글랜드 클럽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했다. -
잉글리시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 -
마크 슈워처
마크 슈워처는 독일계 호주인 골키퍼로,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109경기에 출전했고, 미들즈브러에서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첼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레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잉글리시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 -
밀레 예디나크
밀레 예디나크는 은퇴한 호주 축구 선수이자 토트넘 홋스퍼 FC의 수석 코치이며,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79경기 출전 20골을 기록하고 2015년 AFC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다.
2. 선수 경력
에어셔주 갈스턴에서 태어난 커닝엄은 지역 스코틀랜드 주니어 축구 협회 소속 팀인 뉴밀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으며, 1909년 킬마녹 FC로 이적했다. 럭비 파크에서 6시즌을 보낸 후, 1915년 레인저스 FC에 입단했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왕립 야전 포병대에서 중위로 복무했다.
윌리엄 윌턴 감독의 지휘 하에 간헐적으로 기용되다가 1918-19 시즌에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다. 그는 7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레인저스가 셀틱 FC를 4-0으로 꺾고 25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1928년 스코티시 컵 결승전에서 활약했다. 총 389번의 리그 및 스코티시 컵 경기에 출전하여 183골을 기록했다.
1928년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했으며, 1930년 선수 겸 감독이 되었고, 1931년 선수에서 은퇴했다.
커닝엄은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국가대표로 12경기에 출전해 5골을 넣었으며,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 단 한 경기만 패했다. 또한 스코틀랜드 리그 XI를 10번 대표했다.
| 선수 경력 |
|---|
| 1909년 - 1915년 킬마녹 FC |
| 1915년 - 1928년 레인저스 FC |
| 1928년 - 1931년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
2.1. 초기 경력
에어셔주 갈스턴에서 태어난 커닝엄은 지역 스코틀랜드 주니어 축구 협회 소속 팀인 뉴밀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으며, 1909년 킬마녹 FC로 이적했다. 럭비 파크에서 6시즌을 보낸 후, 1915년 레인저스 FC에 입단했다. 1915년 4월 5일 파틱 시슬 FC와의 경기에서 1-0으로 패하며 레인저스 데뷔전을 치렀으며,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에서 첫 시즌에 5경기에 출전했다. 커닝엄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왕립 야전 포병대에서 중위로 복무했다.
2.2. 레인저스 FC 시절
에어셔주 갈스톤에서 태어난 앤디 커닝엄은 1915년 레인저스 FC에 입단했다. 1915년 4월 5일 파틱 시슬 FC와의 경기에서 1-0으로 패하며 레인저스 데뷔전을 치렀으며,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에서 첫 시즌에 5경기에 출전했다. 커닝엄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왕립 야전 포병대에서 중위로 복무했다.
윌리엄 윌턴 감독의 지휘 하에 간헐적으로 기용되다가 1918-19 시즌에 레인저스 팀의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다. 그는 7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레인저스가 셀틱 FC를 4-0으로 꺾고 25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1928년 스코티시 컵 결승전에서 활약했다. 총 389번의 리그 및 스코티시 컵 경기에 출전하여 고반 클럽을 위해 183골을 기록했다.
2.3.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시절
1928년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했으며, 당시 38세였던 그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령 데뷔를 기록했다. 1930년 선수 겸 감독이 되었고, 1931년 선수에서 은퇴했다.
2.4. 국가대표 경력
커닝엄은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국가대표로 12경기에 출전해 5골을 넣었으며,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 단 한 경기만 패했다. 또한 스코틀랜드 리그 XI를 10번 대표했다.
3. 감독 경력
앤디 커닝엄은 1930년부터 1935년까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선수 겸 감독을, 1937년부터 1940년까지 던디의 감독을 맡았다. 뉴캐슬에서는 FA컵 우승을 이끌었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스포츠 기자로 활동했다.
3.1.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커닝엄은 1928년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여, 38세의 나이로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데뷔한 당시 최고령 선수였다. 그는 선수 겸 감독으로 뉴캐슬에서의 경력을 시작했으며, 선수 은퇴 후에는 클럽의 정식 감독이 되었다. 기술적으로 그는 클럽의 첫 번째 진정한 감독이었는데, 그의 전임자였던 프랭크 와트는 팀 선발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1932년 결승전에서 아스날을 2-1로 꺾고 FA컵 우승을 이끌었으나, 감독으로 있는 동안 클럽은 세컨드 디비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1935년에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떠났으며, 251경기 중 105경기를 승리하며 비교적 성공적인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다.
3.2. 던디 FC
스코틀랜드로 돌아간 앤디 커닝엄은 1937년부터 1940년까지 던디 FC의 감독을 맡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스포츠 기자가 되었다.
4. 은퇴 이후
커닝엄은 1928년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여, 38세의 나이로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데뷔한 당시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선수 겸 감독으로 뉴캐슬에서 경력을 시작했으며, 선수 은퇴 후에는 클럽의 정식 감독이 되었다. 기술적으로 그는 클럽의 첫 번째 진정한 감독이었는데, 그의 전임자였던 프랭크 와트는 팀 선발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그는 1932년 결승전에서 아스날을 2-1로 꺾고 FA컵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 클럽은 세컨드 디비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커닝엄은 1935년에 클럽을 떠났으며, 251경기 중 105경기를 승리하며 클럽의 비교적 성공적인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다.
뉴캐슬을 떠난 후,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던디를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감독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스포츠 작가가 되었다.
5. 개인사
앤디 커닝엄의 남동생 윌리엄 역시 수비수로 활약한 축구 선수였다. 형제는 1915년까지 4시즌 동안 킬마녹에서 함께 뛰었으며, 윌리엄은 의사 자격을 취득한 후 선수 경력을 마쳤다.
6. 수상 내역
| 레인저스 | |
|---|---|
| 스코틀랜드 리그 | 1918–19, 1919–20, 1920–21, 1922–23, 1923–24, 1924–25, 1926–27, 1927–28 |
| 스코틀랜드 컵 | 1927–28 준우승: 1920–21, 1921–22 |
| 글래스고 컵 | 1921–22, 1922–23, 1923–24, 1924–25 |
| 뉴캐슬 유나이티드 | |
| FA컵 | 1931–32 |
6.1. 선수
에어셔주 갈스턴에서 태어난 커닝엄은 지역 스코틀랜드 주니어 축구 협회 소속 팀인 뉴밀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으며, 1909년 킬마녹 FC로 이적했다. 럭비 파크에서 6시즌을 보낸 후, 1915년 레인저스 FC에 입단했다. 1915년 4월 5일 파틱 시슬 FC와의 경기에서 1-0으로 패하며 레인저스 데뷔전을 치렀으며,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에서 첫 시즌에 5경기에 출전했다. 커닝엄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왕립 야전 포병대에서 중위로 복무했다.
윌리엄 윌턴 감독의 지휘 하에 간헐적으로 기용되다가 1918-19 시즌에 레인저스 팀의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다. 그는 7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레인저스가 셀틱 FC를 4-0으로 꺾고 25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유명한 1928년 스코티시 컵 결승전에서 활약했다. 총 389번의 리그 및 스코티시 컵 경기에 출전하여 고반 클럽을 위해 183골을 기록했다.
커닝엄은 또한 국제 수준에서도 캡(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며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12경기에 출전해 5골을 넣었다. 그는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 단 한 경기만 패했다. 커닝엄은 또한 스코틀랜드 리그 XI를 10번 대표했다.
6.2. 감독
커닝엄은 1928년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여, 38세의 나이로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데뷔한 당시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그는 선수 겸 감독으로 뉴캐슬에서의 경력을 시작했으며, 선수 은퇴 후에는 클럽의 정식 감독이 되었다. 기술적으로 그는 클럽의 첫 번째 진정한 감독이었는데, 그의 전임자였던 프랭크 와트는 팀 선발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그는 1932년 결승전에서 아스날을 2-1로 꺾고 FA컵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 클럽은 세컨드 디비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커닝엄은 결국 1935년에 클럽을 떠났다. 그는 251경기 중 105경기를 승리하며 클럽의 비교적 성공적인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다.
뉴캐슬을 떠난 후, 그는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던디를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감독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스포츠 작가가 되었다.
*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 FA컵: 1회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