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1. 개요
알렉스 퍼거슨은 1941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1974년 이스트 스털링셔 감독으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세인트 미렌, 애버딘을 거쳐 1986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1989-90 시즌 FA컵 우승을 시작으로 프리미어리그 13회, FA컵 5회,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등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98-99 시즌에는 잉글랜드 클럽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했으며, 2013년 은퇴할 때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었다. 선수, 감독, 개인 자격으로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은퇴 후에도 구단 이사 및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름 | 알렉산더 채프먼 퍼거슨 |
|---|---|
| 원어 이름 | Alexander Chapman Ferguson |
| 출생일 | 1941년 12월 31일 |
| 출생지 |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
| 포지션 | 공격수 |
| 애칭 | Fergie (퍼기) |
| 유소년 클럽 | 하모니 로 보이즈 클럽 드럼채플 아마추어 |
|---|---|
| 선수 활동 연도 | 1957–1960 1960–1964 1964–1967 1967–1969 1969–1973 1973–1974 |
| 소속 클럽 | 퀸스 파크 세인트 존스톤 던펌린 애슬레틱 레인저스 폴커크 에어 유나이티드 |
| 출장 | 31 37 89 41 95 24 |
| 득점 | 15 19 66 25 37 9 |
| 총 출장 | 317 |
| 총 득점 | 171 |
| 국가대표팀 연도 | 1960 1967 1967 |
|---|---|
| 국가대표팀 | 스코틀랜드 아마추어 스코틀랜드 스코티시 풋볼 리그 XI |
| 국가대표팀 출장 | 1 4 2 |
| 국가대표팀 득점 | 1 3 1 |
| 감독 활동 연도 | 1974 1974–1978 1978–1986 1985–1986 1986–2013 |
|---|---|
| 감독 클럽 | 이스트 스털링셔 세인트 미렌 애버딘 스코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
UEFA 챔피언스리그에 관한 -
로베르토 디 마테오
로베르토 디 마테오는 스위스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출신 전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며, 선수 시절에는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첼시 FC에서 여러 우승을 이끌었고, 지도자로서 첼시 FC에서 FA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
에어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 -
마이클 오닐 (축구인)
마이클 오닐은 북아일랜드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여러 팀에서 활약했으며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으로 31경기에 출전했고, 감독으로서 섐록 로버스를 이끌고 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며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UEFA 유로 2016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
에어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 -
라이언 맥가원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축구 선수 라이언 맥가원은 스코틀랜드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FC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해 여러 클럽을 거쳐 쿠웨이트 SC에 합류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하는 수비수이다. -
애버딘 FC의 축구 감독 -
닐 워녹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인 닐 워녹은 선수 생활 후 40년 이상 여러 클럽을 지휘하며 8번의 프로 리그 승격을 달성했고, 2021년에는 잉글랜드 프로 축구 역사상 최다 경기 지휘 감독 기록을 경신했다. -
애버딘 FC의 축구 감독 -
이언 포터필드
스코틀랜드 출신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이언 포터필드는 선덜랜드 AFC의 FA컵 우승 결승골, 여러 클럽 감독, 부산 아이파크 FA컵 우승, 아르메니아 국가대표팀 감독 등을 역임했다.
2. 어린 시절
알렉스 퍼거슨은 1941년 12월 31일 스코틀랜드 고번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태어났다. 조선소에서 일하던 아버지 알렉산더 비튼 퍼거슨과 어머니 엘리자베스 하디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667 고번 로드에 위치한 공동 주택에서 부모님, 그리고 동생인 마틴 퍼거슨과 함께 살았다.
브룸룬 로드 초등학교와 고반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고번의 하모니 로우 보이즈 클럽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상급 축구 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드럼채플 아마추어 유소년 클럽으로 진출했다. 그는 힐링턴의 공장에서 공작기계공으로 견습 기간을 거쳤으며, 노조의 조합원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유년 시절, 레인저스를 응원했다.
3. 선수 경력
퍼거슨은 16세에 퀸즈 파크 FC에서 공격수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스트랜레이어와의 데뷔전에서 2-1로 패했지만, 퀸즈 파크의 유일한 골을 넣었다. 아마추어 선수였기 때문에 힐링턴의 공장에서 공작기계공 견습생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세인트 존스톤으로 이적했지만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고, 경기 중 광대뼈와 코뼈가 부러져 한 달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기도 했다. 복귀 후 3경기에서 팀은 1-8, 0-7, 2-9로 크게 졌다. 이 때문에 축구 선수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고 했으나,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아이브록스에서 레인저스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은 퍼거슨이 처음이었다.
1964년 던펌린과 프로 계약을 맺었다. 1964-65년 시즌 던펌린은 스코틀랜드 리그 우승 경쟁을 했고 스코틀랜드컵 결승전에도 진출했지만, 퍼거슨은 세인트 존스톤과의 리그 경기에서 부진하여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던펌린은 결승전에서 셀틱에 3-2로 졌고, 리그 우승도 1점 차로 놓쳤다. 1965-66년 시즌에는 스코티시 풋볼 리그 1부 리그에서 31골을 넣어 조 맥브라이드와 함께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후 퍼거슨은 당시 스코틀랜드 클럽 간 최고 이적료인 65000GBP에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1969년 스코틀랜드컵 결승전에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1군 대신 유소년 팀에서 뛰어야 했다. 그의 동생은 퍼거슨이 이 일로 매우 실망하여 준우승 메달을 버렸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인 아내 캐시 홀딩과의 결혼 때문에 레인저스에서 차별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다. 퍼거슨은 2021년 다큐멘터리 영화 알렉스 퍼거슨 경: 결코 포기하지 마라에서 1969년 컵 결승전 이후 1군에서 제외된 것이 아내의 종교 때문이라고 '추정했다'고 말했다. 그의 자서전에는 레인저스가 클럽 입단 당시 아내의 종교를 알고 있었다고 적혀 있다.
1969년 10월 노팅엄 포레스트가 퍼거슨 영입을 시도했지만, 아내가 영국 이주를 원하지 않아 폴커크로 이적했다. 선수 겸 코치로 뛰었으나, 존 프렌티스 감독 부임 후 코치직에서 해임되었다. 이에 퍼거슨은 이적을 요청했고, 에어 유나이티드로 옮겨 1974년 선수 생활을 마쳤다.
3.1. 선수 경력 통계
* 스코틀랜드 리그 통산 317경기 176골을 기록했다.
* 1965-66년 시즌, 던펌린 소속으로 51경기에 출전하여 45골을 기록, 조 맥브라이드와 함께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 1967-68년 대회 2골, 1968-69년 대회에서 아틀레틱 빌바오를 상대로 득점하는 등 레인저스 소속으로 유럽 대항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 1969년 스코틀랜드컵 결승전에서 셀틱의 주장 빌리 맥닐을 전담했으나, 마지막 골을 허용하여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받았다.,
* BBC 스포츠는 2020년 6월 기사에서 퍼거슨을 A매치 출전 경험이 없는 최고의 스코틀랜드 선수 중 한 명으로 소개했다.
* 16세에 퀸스 파크 FC와 아마추어 계약을 맺었다. 이후 세인트 존스톤을 거쳐 던펌린과 프로 계약을 맺고 스코티시 풋볼 리그 1부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 레인저스 등에서 활약했으며 1974년에 은퇴했다.
4. 감독 경력
알렉스 퍼거슨은 1974년 이스트 스털링셔에서 감독 경력을 시작하여 세인트 미렌, 애버딘을 거쳐 1986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했다. 1985년부터 1986년까지는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기도 했다.
퍼거슨은 엄격한 규율을 중시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트 스털링셔 감독 시절, 공격수 바비 맥컬리는 "퍼거슨은 처음부터 무서웠다"라고 회상했다.
세인트 미렌에서는 1977년 스코틀랜드 2부 리그 우승을 이끌며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당시 팀 평균 연령은 19세였고, 주장이었던 토니 피츠패트릭은 20세였다.
애버딘에서는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3회 우승(1979-80, 1983-84, 1984-85), 스코티시 컵 4회 우승(1981-82, 1982-83, 1983-84, 1985-86), 스코티시 리그컵 1회 우승(1985-86), UEFA 컵 위너스컵 1회 우승(1982-83), UEFA 슈퍼컵 1회 우승(1983)을 기록하며 당시 스코틀랜드 리그를 양분하던 셀틱과 레인저스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1986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는 스코틀랜드 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조크 스타인 감독이 웨일스와의 경기 직후 사망하자, 감독 대행으로 1986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참가했으나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27년간 팀을 이끌며 프리미어리그 13회 우승, FA컵 5회 우승, EFL컵 4회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등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특히 1998-99 시즌에는 트레블을 달성했고, 2007-08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4.1. 이스트 스털링셔
1974년 6월, 퍼거슨은 32세의 젊은 나이로 이스트 스털링셔 감독에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주급 40파운드의 임시 계약직이었다. 퍼거슨은 엄격한 규율과 훈련 방식을 도입하여, 영국 최악의 클럽으로 불리던 이스트 스털링셔를 단기간에 리그 선두로 이끌었다. 당시 클럽 공격수였던 바비 맥컬리는 "누가 와도 두렵지 않았는데, 퍼거슨은 처음부터 무서운 놈이었다"라고 회상했다.
4.2. 세인트 미렌
퍼거슨은 1974년 10월부터 1978년까지 세인트 미렌 FC 감독을 맡아 스코틀랜드 2부 리그 하위권이던 팀을 1976-77 시즌 2부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빌리 스타크, 토니 피츠패트릭 등 유망주를 발굴하고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였는데, 당시 팀 평균 연령은 19세였고 주장이었던 피츠패트릭은 20세였다.
4.3. 애버딘 FC
1978년 6월, 애버딘 FC 감독으로 부임하여 1986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당시 스코틀랜드 리그를 양분하던 셀틱 FC와 레인저스 FC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3회 (1979-80, 1983-84, 1984-85), 스코티시 컵 4회 (1981-82, 1982-83, 1983-84, 1985-86), 스코티시 리그컵 1회 (1985-86), UEFA 컵 위너스컵 1회 (1982-83), UEFA 슈퍼컵 1회 (1983) 우승 등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1982-83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은 스코틀랜드 축구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이었다. 1983-84 시즌에는 스코티시 프리미어십과 스코티시 컵을 동시에 석권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이는 스코틀랜드에서 셀틱과 레인저스 양강 체제 이외에는 현재까지 퍼거슨이 이끌었던 애버딘만이 달성한 기록이다.
선수들에게 "격노하는 퍼기(Furious Fergie)"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엄격한 훈련 방식을 고수했다. 스코틀랜드 언론이 글래스고 클럽에 편향되었다고 비난하며, "포위 심리"를 조성하여 팀을 독려하기도 했다.
| 구단 | 국가 | 취임 | 해임 | 기록 | ||||
|---|---|---|---|---|---|---|---|---|
| 전 | 승 | 무 | 패 | 승률(%) | ||||
| 애버딘 | 1978년 6월 1일 | 1986년 11월 5일 | 453 | 268 | 105 | 80 | 59.16 | |
4.4.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1986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퍼거슨은 조크 스타인 감독 휘하에서 스코틀랜드 수석 코치를 맡았다. 스코틀랜드는 스페인, 웨일스, 아이슬란드와 같은 조에 속해 본선 진출을 다퉜다. 스페인이 조 1위로 본선에 직행했고, 스코틀랜드는 웨일스와 남은 0.5장의 티켓을 놓고 경쟁했다. 웨일스와의 지역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조크 스타인 감독이 심정지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는 1-1 무승부였지만, 스코틀랜드가 골 득실차로 웨일스를 제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퍼거슨은 감독 대행으로 스코틀랜드를 이끌게 되었다.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스코틀랜드는 호주를 꺾고 1986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에서 스코틀랜드는 서독, 덴마크, 우루과이와 함께 E조에 편성되었으나, 1무 2패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스코틀랜드는 우루과이와 비기고 서독과 덴마크에 패했다. 퍼거슨은 조별 리그 탈락 후 스코틀랜드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이는 퍼거슨의 유일한 국가대표팀 감독 경력이다.
4.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6년 11월, 알렉스 퍼거슨은 부진에 빠져 있던 맨유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2013년 5월까지 27년간 팀을 이끌었다.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규율을 중시하는 팀 운영과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등과 같은 유소년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육성하는 등 팀을 점차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퍼거슨 감독은 프리미어리그 13회 우승, FA컵 5회 우승, EFL컵 4회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UEFA 컵 위너스컵 1회 우승, UEFA 슈퍼컵 1회 우승, 인터콘티넨털컵 1회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1회 우승 등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특히 1998-99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FA컵,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석권하며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했다. 2007-08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첼시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10-11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리버풀의 리그 최다 우승 기록(18회)을 넘어섰다.
2012-13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0번째 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감독직에서 은퇴했다. 퍼거슨은 "퍼기의 아이들(Fergie's Fledglings)"이라 불리는 유소년 출신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여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로테이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선수단의 체력을 안배하고 경쟁을 유도했다.
| 대회 | 우승 횟수 | 우승 연도 |
|---|---|---|
| 프리미어리그 | 13 | 1992-93, 1993-94, 1995-96, 1996-97, 1998-99, 1999-00, 2000-01, 2002-03, 2006-07, 2007-08, 2008-09, 2010-11, 2012-13 |
| FA컵 | 5 | 1989-90, 1993-94, 1995-96, 1998-99, 2003-04 |
| EFL컵 | 4 | 1991-92, 2005-06, 2008-09, 2009-10 |
| FA 커뮤니티 실드 | 10 | 1990*, 1993, 1994, 1996, 1997, 2003, 2007, 2008, 2010, 2011 |
| UEFA 챔피언스리그 | 2 | 1998-99, 2007-08 |
| UEFA 컵 위너스컵 | 1 | 1990-91 |
| UEFA 슈퍼컵 | 1 | 1991 |
| 인터콘티넨털컵 | 1 | 1999 |
| FIFA 클럽 월드컵 | 1 | 2008 |
* 공동 우승
4.5.1. 감독 부임 초기와 첫 FA컵 우승 (1986-1990)
1986년 11월 6일, 알렉스 퍼거슨은 론 앳킨슨의 후임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 최하위권에 머물며 부진을 겪고 있었고, 선수단의 기강도 해이한 상태였다. 퍼거슨은 엄격한 규율을 도입하고 선수단의 체력 훈련을 강화하는 등 팀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부임 첫 시즌인 1986-87 시즌에는 리그 11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점차 팀을 안정화시켰다.
1987-88 시즌에는 스티브 브루스, 브라이언 맥클레어 등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고, 리그 준우승을 기록했다.
1988-89 시즌에는 리그 11위, FA컵 6라운드에서 탈락하며 부진했으나, 다음 시즌을 위한 선수 영입에 집중했다.
1989-90 시즌에는 닐 웹, 폴 인스, 게리 팰리스터 등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시즌 초반 부진으로 해임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FA컵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를 꺾고 결승에 진출한 후,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재경기 끝에 승리하며 첫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4.5.2. 첫 번째 유러피언 우승과 리그 우승 (1990-1995)
1990-91 시즌, 맨유는 리그에서 6위를 기록했지만, UEFA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2-1로 꺾고 우승하며 유럽 무대에서 첫 번째 성공을 거두었다. 퍼거슨은 다음 시즌 리그 우승을 목표로 피터 슈마이켈, 폴 파커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했다. 1991-92 시즌에는 리그컵과 UEFA 슈퍼컵에서 우승했지만, 리그에서는 리즈 유나이티드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퍼거슨은 공격력 강화를 위해 디온 더블린을 영입했고, 1992-93 시즌 도중에는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에릭 칸토나를 영입하며 공격진을 보강했다. 칸토나의 합류 이후 맨유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26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93-94 시즌에는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로이 킨을 영입하며 중원을 강화했고,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석권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1994-95 시즌에는 칸토나가 경기 도중 관중을 폭행하는 사건으로 장기간 출전 정지 징계를 받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맨유는 리그와 FA컵에서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4.5.3. 두 번째 더블과 트레블 (1995-1999)
1995년 여름, 퍼거슨 감독은 폴 인스, 마크 휴즈, 안드레이 칸첼스키스 등 주축 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보내고, 게리 네빌, 필 네빌, 데이비드 베컴, 폴 스콜스, 니키 버트 등 젊은 선수들을 주전으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이 젊은 선수들은 "퍼기의 아이들"이라고 불리며 팀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995-96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프리미어리그와 FA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두 번째 더블을 달성했다. 1996-97 시즌에는 리그에서 4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준결승까지 진출하며 유럽 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97-98 시즌에는 아스널에 밀려 리그 우승을 놓쳤지만, 야프 스탐, 드와이트 요크 등을 영입하며 팀 전력을 강화했다. 1998-99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프리미어리그, FA컵,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우승하며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하는 엄청난 업적을 이뤘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경기 종료 직전 추가 시간에 두 골을 넣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것은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로 기록되었다.
4.5.4. 트레블 이후와 은퇴 계획 (1999-2002)
1999-2000 시즌 맨유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다. 2000-01 시즌에는 리그 3연패를 달성했지만, 구단 이사진과의 불화로 인해 퍼거슨은 시즌 종료 후 은퇴할 계획을 발표했다. 2001-02 시즌에는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로랑 블랑 등을 영입했지만, 팀은 리그 3위에 머물렀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퍼거슨은 은퇴 결정을 번복하고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4.5.5. 재건과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2-2006)
2002년, 퍼거슨 감독은 카를로스 케이로스를 수석 코치로 임명했다. 이는 앤디 록스버그의 추천으로 이루어졌으며, 다국어 구사가 가능한 코치를 원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필요와 맞아떨어졌다. 같은 해 7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즈 유나이티드의 수비수 리오 퍼디낸드를 29300000GBP에 영입하며 영국 이적료 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했다.
2002-03 시즌 초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3년 만에 최악의 리그 출발을 기록했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특유의 자신감으로 팀을 이끌었고, 여러 선수들의 부상 복귀와 함께 경기 스타일을 변화시키며 반등에 성공했다. 2003년 풋볼 리그컵 결승에서 리버풀에게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에서는 아스널을 제치고 8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했지만, 퍼거슨 감독은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2차전을 "장엄한" 경기라고 묘사했다.
2003년 여름, 데이비드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 첼시로 이적했다. 그 사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팀 하워드, 클레베르송, 에릭 뎀바 뎀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영입하며 팀을 재건했다.
2003-04 시즌에는 리오 퍼디낸드가 약물 검사에 불응하여 8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팀은 리그에서 아스널의 무패 우승에 밀려 3위에 머물렀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포르투에게 패했다. 하지만 FA컵 결승전에서 밀월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2004-05 시즌 초반, 웨인 루니와 가브리엘 에인세가 합류했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계속해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루드 반 니스텔루이의 부상으로 공격력 부족을 겪으며 리그 3위에 머물렀다. FA컵 결승전에서는 아스널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했고, 챔피언스리그와 리그컵에서도 우승에 실패하며 무관에 그쳤다.
2005-06 시즌을 앞두고 에드윈 판 데르 사르와 박지성을 영입하며 골키퍼와 미드필더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시즌 중에는 네마냐 비디치와 파트리스 에브라를 영입하며 수비를 강화했다. 팀은 리그에서 첼시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리그컵에서 우승하며 무관을 면했다. 시즌 종료 후, 루드 반 니스텔루이는 팀을 떠났다.
4.5.6.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은퇴 (2006-2013)
2006년, 퍼거슨은 로이 킨의 대체자로 마이클 캐릭을 영입했다. 2006-07 시즌에 맨유는 리그 우승을 탈환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했다. 2007-08 시즌에는 오언 하그리브스, 나니, 안데르송, 카를로스 테베스 등을 영입하며 더욱 강력한 스쿼드를 구축했다. 맨유는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동시에 석권하며 더블을 달성했고, 퍼거슨은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8-09 시즌에는 리그 3연패와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9-10 시즌에는 EFL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리그에서는 첼시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다. 2010-11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탈환하며 리버풀의 리그 최다 우승 기록(18회)을 넘어섰지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다시 바르셀로나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1-12 시즌에는 맨체스터 시티에 골득실 차로 밀려 리그 우승을 놓쳤다. 2012-13 시즌, 로빈 반 페르시를 영입하며 공격력을 강화한 맨유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13년 5월 8일, 알렉스 퍼거슨은 2012-13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마지막 경기였던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과의 경기는 5-5 무승부로 끝났다.
| 대회 | 우승 횟수 | 우승 연도 |
|---|---|---|
| 프리미어리그 | 5 | 2006-07, 2007-08, 2008-09, 2010-11, 2012-13 |
| UEFA 챔피언스리그 | 1 | 2007-08 |
| EFL컵 | 2 | 2008-09, 2009-10 |
| FA 커뮤니티 실드 | 4 | 2007, 2008, 2010, 2011 |
| FIFA 클럽 월드컵 | 1 | 2008 |
5. 은퇴 이후
알렉스 퍼거슨 경은 은퇴 후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사진 및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팀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4년에는 UEFA 코칭 대사로 임명되었고, 하버드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뇌출혈로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2024년 10월, 퍼거슨 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홍보대사직을 사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6. 논란 및 사건
* 아일랜드 출신 명마 록 오브 지브롤터의 경주마 권리 절반을, 원래 해당 말을 소유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대주주 존 매그너로부터 선물받아 공동 마주로 소유했다. 하지만 해당 말의 은퇴 후 종마로서의 소유권을 두고 매그너와 갈등을 빚었고, 한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에서 해임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자세한 내용은 록 오브 지브롤터#소유권을 둘러싼 분쟁 참조).
* 2004년에 방영된 BBC의 다큐멘터리 "Father and Son"에서, 그의 아들인 에이전트 제이슨이 자신이 담당하는 선수들이 이적 시장에서 유리하게 되도록 아버지의 영향력을 부당하게 행사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퍼거슨은 이를 아들에 대한 인격적인 공격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Match of the Day" 등 BBC가 제작하는 축구 프로그램의 인터뷰를 일체 거부하게 되었고, 경기 후 인터뷰는 코치 보조가 담당하게 되었다. 2010-11 시즌부터 리그 규정으로 감독의 경기 후 인터뷰가 의무화되었지만, 퍼거슨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클럽은 벌금을 지불했다. 2011년 8월 25일 퍼거슨은 BBC 임원과 회합하여 보이콧을 끝낼 것이라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 데이비드 베컴과 불화가 있었다.
7. 대한민국과의 관계
PSV영어에서 활약하던 박지성을 2005년에 영입하면서 한국 축구 팬들에게도 친숙한 인물이 되었다.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의 지도 아래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으며, 맨유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수많은 우승을 함께 했다.
8. 수상 경력
| 선수 시절 |
|---|
| 감독 시절 |
9. 저서
| 제목 | 출판사 | 연도 | ISBN |
|---|---|---|---|
| Alex Ferguson: 6 Years at United | 메인스트림 | 1992 | ISBN 978-1851584444 |
| Just Champion!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993 | ISBN 978-0952050919 |
| A Year in the Life: The Manager's Diary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995 | ISBN 978-1852275211 |
| A Will to Win: The Manager's Diary | 안드레 도이치 | 1997 | ISBN 978-0233993683 |
| The Unique Treble | 호더 & 스토턴 | 2000 | ISBN 978-0340792612 |
| Managing My Life: The Autobiography | 코로넷 북스 | 2000 | ISBN 0-340-72856-6 |
| My Autobiography | 호더 & 스토턴 | 2013 | ISBN 978-0-340-91939-2 |
| Leading: Lessons in leadership from the legendary Manchester United manager | 하셰트 UK | 2015 | ISBN 978-14736211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