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 블라이스
1. 개요
앨버트 블라이스는 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군인이다. 그는 1942년 공수 부대에 입대하여 유럽 전선에 참전했으며,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카랑탕 전투에 참여하여 부상을 입었다. 이후 한국 전쟁에도 참전하여 동성 훈장과 은성 훈장을 받았다. 블라이스는 1967년 임무 수행 중 독일에서 사망했으며, HBO의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등장하여 그의 삶이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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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명 | Al(알) |
|---|---|
| 출생일 | 1923년 6월 25일 |
| 출생지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
| 사망일 | 1967년 12월 17일 |
| 사망 장소 | 서독 비스바덴 |
| 안장 장소 | 알링턴 국립묘지 |
| 배우자 | 케이 (Kay영어) |
| 자녀 | 고든 (Gordon영어) |
| 소속 | 미국 육군 |
|---|---|
| 복무 기간 | 1942년 ~ 1967년 |
| 최종 계급 | |
| 소속 부대 | 제101공수사단, 506낙하산보병연대, 2대대, E중대 제187공수연대전투단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제2차 세계 대전 *노르망디 전투 한국 전쟁 |
| 서훈 내역 | 은성 훈장 동성 훈장(3) 퍼플 하트(3) |
| 웹사이트 | Albert Blithe영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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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윌리엄 렌퀴스트
윌리엄 렌퀴스트는 미국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며, 보수주의 성향으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대한 좁은 해석, 연방 정부 권한 축소 및 주 정부 권한 확대를 주장했으며, `부시 대 고어` 사건과 빌 클린턴 탄핵 재판에 관여했다. -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리처드 닉슨
리처드 닉슨은 제37대 미국 대통령으로, 외교 정책, 워터게이트 사건, 그리고 사임이라는 상반된 유산을 남겼다. -
1967년 사망 -
김창영 (1890년)
김창영은 일제강점기 경찰 및 관료, 만주국 관리로서 항일 무장 세력 탄압과 귀순 공작에 참여하고 금산군수와 전라남도 참여관을 지냈으며, 광복 후 경성부부윤을 역임했으나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처벌받고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
1967년 사망 -
김학규 (19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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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육군 군인 -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는 미국 외교 정책을 주도한 유대인 출신 외교관으로, 현실주의 외교와 데탕트 정책을 통해 미소 관계 완화 및 중 relations 국교 정상화에 기여했으며, 베트남 전쟁 종식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100세에 사망했다. -
미국 육군 군인 -
토니 베넷
앤서니 도미닉 베네데토라는 본명으로도 알려진 미국의 가수 토니 베넷은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와 같은 대표곡을 통해 스탠더드 팝을 고수하며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받았고, 레이디 가가와의 협업 등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며 화가로도 활동했다.
2.2. 제2차 세계 대전
앨버트 블라이스는 1942년 8월 조지아주 토코아 훈련소에서 허버트 소벨 대위의 지휘 아래 훈련을 받았다. 블라이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대규모 공수 작전의 일환으로 점령된 프랑스로 강하했으나, 착륙 지점에서 길을 잃었다. 이후 낙하에 실패한 다른 공수부대원들과 합류하여 함께 팀을 이루어 이지 중대를 찾았다.
1944년 10월 1일, 블라이스는 부상으로 인해 유럽 전선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1945년 10월 8일 육군 병원에서 퇴원했으며,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말에 발급된 그의 전역 서류로 확인되었다. 제101공수사단 협회의 첫 번째 연례 동창회에 참석했으며,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로 돌아가 웨스팅하우스 전기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2.2.1. 노르망디 상륙 작전
스티븐 앰브로즈의 실화 소설을 바탕으로 한 HBO의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앨버트 블라이스는 제101공수사단, 506낙하산보병연대, 2대대, E중대의 일원으로 등장한다. 블라이스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일환으로 독일군에게 점령된 프랑스 노르망디에 강하했지만, 착륙 후 자신이 혼자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 후, 블라이스는 자신처럼 낙하에 실패한 다른 공수부대원들과 합류했고, 이들은 함께 생 메르꾸르까지 이동하여 이지 중대를 찾았다.
마크 워렌이 연기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블라이스는 카랑탕 전투를 격렬하게 치른 후 일시적인 신경성 실명 증세를 보였다. 그는 회복하여 며칠 후 농가를 수색하는 순찰대에 참여했다가 저격수의 총에 맞아 쇄골을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다. 그는 부상에서 회복했고 1944년 6월 25일 퍼플 하트 훈장을 받았다.
2.2.2. 카랑탕 전투와 부상
스티븐 앰브로즈의 실화 소설을 바탕으로 한 HBO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앨버트 블라이스는 카랑탕 전투를 격렬하게 치른 후 일시적인 신경성 실명 증세를 보였다. 회복 후 며칠 뒤 농가를 수색하는 순찰대에 참여했다가 저격수의 총에 맞아 쇄골을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다. 블라이스는 이 부상으로 1944년 6월 25일 퍼플 하트 훈장을 받았다.
2.3. 한국 전쟁 참전과 이후
블라이스는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제187 공수 연대 전투단 소속으로 복무했으며, 적진 뒤에 뛰어들어 중국 대대에게 포위된 공로로 동성 훈장과 은성 훈장을 받았다. 이후 군사 지원 자문단에 배속되어 타이완에서 근무했다. 그는 군 복무에서 은퇴하지 않았다.
2.4. 사망
블라이스는 1967년 12월 17일 독일 바이스바덴 공군 병원에서 임무 수행 중 사망했다. 그는 바스토뉴에서 열린 벌지 전투 기념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주말부터 몸에 이상을 느꼈다. 1967년 12월 11일, 블라이스는 응급실로 이송되어 천공성 궤양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12월 12일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12월 16일 복막염으로 발전했고, 결국 12월 17일 신부전증으로 악화되어 사망했다. 군종 목사 토머스 F. 데챔프 소령의 지휘 아래 추모식이 열렸고, 블라이스는 12월 28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3.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의 묘사
스티븐 앰브로즈의 실화 소설을 바탕으로 한 HBO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앨버트 블라이스는 제101공수사단 506낙하산보병연대 E중대 소속으로 묘사된다. 세 번째 에피소드 "카랭탕"에서 영국 배우 마크 워렌이 앨버트 블라이스 역을 맡았다.
블라이스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강하했지만, 자신이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후 잘못 강하한 다른 공수부대원들과 합류하여 생 메르꾸르에서 이지 중대를 찾는다.
작품에서 블라이스는 카렝탕 점령 전투 중 히스테리성 시각 장애를 겪는 것으로 그려진다. 회복 후 정찰 임무 중 저격수의 총에 맞아 퍼플 하트 훈장을 받는다.
3.1. 드라마와 실제의 차이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앨버트 블라이스는 카렝탕 점령 전투 중 히스테리성 시각 장애를 겪고, 며칠 뒤 정찰 중 저격수의 총에 맞아 퍼플 하트 훈장을 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미니시리즈 제작 당시 이지 중대 퇴역 군인들은 인터뷰에서 블라이스가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1948년 필라델피아에서 사망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 방영 이후 블라이스의 가족들은 블라이스가 오른쪽 어깨에 총상을 입었으며 회복 후 제101공수사단 친목회에도 참석했고, 600회가 넘는 공수 강하를 했으며 타이완에서 군사 고문단 임무도 수행했다고 밝혔다.
드라마 3화 "카랑탕" 마지막 화면에는 블라이스가 "노르망디에서 입은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했다"고 하며 1948년에 사망했다는 언급이 나오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다른 이지 중대 참전 용사들이 그의 행방을 알지 못해 1948년에 사망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발생한 오류였다. 스티븐 앰브로스는 참전 용사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이를 자신의 저서에 기록했으나, 블라이스 가족의 반박으로 이후 판에서 수정되었다. 그러나 드라마 시리즈와 DVD, 블루레이 디스크는 수정되지 않아 여전히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