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로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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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로미르는 볼레슬라프 2세 공작의 아들로, 보헤미아 공작을 여러 차례 역임했다. 1002년 형 볼레슬라프 3세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거세당한 후 망명했다가, 블라디보이 사망 후 귀환하여 공작으로 선포되었지만, 폴란드의 지원을 받은 볼레슬라프 3세에게 다시 밀려났다. 1004년 독일군의 지원을 받아 공작으로 즉위했으나, 1012년 형 올드르지흐에게 눈이 멀어 쫓겨났다. 1033년 다시 공작이 되었지만 이듬해 브르제티슬라프 1세에게 쫓겨났으며, 1035년 수감 중 브르쇼프치 가문에 의해 암살당했다.

야로미르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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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로미르
직위보헤미아 공작
출생일기원전 970년 경
사망일1038년 11월 4일 (60-70세)
사망 장소리사 나트 라벰
매장 장소알려지지 않음
통치
1차 통치1003년
이전 통치자볼레슬라우스 3세
다음 통치자볼레슬라우스 4세
2차 통치1004년 – 1012년
이전 통치자볼레슬라우스 4세
다음 통치자올드르지흐
3차 통치1033년 – 1034년
이전 통치자올드르지흐
다음 통치자올드르지흐
가문
왕조프르셰미슬 왕조
볼레슬라우스 2세
아디바 또는 멜니크의 에마
배우자알려지지 않음
자녀알려지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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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볼레슬라프 2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002년 신성 로마 제국으로 망명했지만, 1003년 블라디보이가 사망하면서 보헤미아로 귀환했다.

1004년 하인리히 2세의 지원을 받아 프라하에 입성, 보헤미아 공작으로 즉위했다. 1012년 올드르지흐가 그의 공작위를 노리고 야로미르의 두 눈을 멀게 하면서 쫓겨났다.

1033년 올드르지흐를 몰아내고 복위했지만, 1034년 브르제티슬라프 1세에게 쫓겨났다. 1035년 11월 4일 리사나트라벰에서 수감 중 브르쇼프치 가문에 의해 암살당했다.

2.1. 초기 생애와 첫 번째 통치 (1003년-1012년)

볼레슬라프 2세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아디바 또는 멜니크의 엠마로 추정된다.

1002년, 야로미르는 형 볼레슬라프 3세의 통치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형에게 거세당했다. 이후 어머니, 형 올드르지흐와 함께 바이에른레겐스부르크로 망명했다. 그러나 볼레슬라프 3세는 프라하 왕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보헤미아 귀족들에게 폐위되었다. 폴란드의 지원을 받는 블라디보이가 공작위를 계승했고, 독일 왕 하인리히 2세에게서 보헤미아 공국을 봉토로 받았다.

1003년 블라디보이가 사망하자 야로미르는 보헤미아로 귀환하여 귀족들에게 공작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볼레슬라프의 폴란드 군대가 보헤미아를 점령하여 볼레슬라프 3세가 복위되었다. 볼레슬라프 3세는 브르쇼브치 씨족 학살 명령으로 폴란드의 지지를 잃고 권력을 잃었다. 야로미르는 하인리히 2세에게 군사 지원을 요청하며 메르제부르크에서 보헤미아를 봉신으로 유지할 것을 약속했고, 이로써 보헤미아는 신성 로마 제국의 관할 구역에 속하게 되었다.

1004년, 야로미르는 독일군의 지원으로 프라하를 점령하고 보헤미아 공작이 되었다. 그러나 폴란드가 모라바, 실레지아, 루사티아를 점령하고 있어, 야로미르의 통치는 영토 회복 투쟁이었다. 그는 독일-폴란드 전쟁에서 하인리히 2세를 지원했다. 1012년, 올드르지흐가 야로미르를 폐위시키고 그의 눈을 멀게 했지만, 하인리히 2세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야로미르는 다시 망명해야 했다.

2.2. 두 번째 통치와 몰락 (1033년-1035년)

1012년 올드르지흐가 야로미르의 두 눈을 멀게 만들면서 쫓겨났다.

1033년 올드르지흐를 몰아내고 보헤미아의 공작으로 복위했지만, 1034년 브르제티슬라프 1세에 의해 쫓겨났다. 1035년 11월 4일 리사나트라벰(Lysá nad Labem)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도중에 브르쇼프치(Vršovci) 가문에 의해 암살당했다. 보헤미아 연대기에 따르면, "코찬은 그의 사형 집행인을 보냈고, 눈먼 남자가 밤에 변기에 앉아 위장을 비울 때, 그는 뒤에서 날카로운 창으로 복부 내장을 꿰뚫었다"라고 한다.

2.3. 암살

1033년 올드르지흐를 몰아내고 보헤미아의 공작으로 복위했지만, 1034년 브르제티슬라프 1세에 의해 쫓겨났다. 1035년 11월 4일 리사나트라벰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도중에 브르쇼프치(Vršovci) 가문에 의해 암살당했다. 보헤미아 연대기에 따르면, "코찬은 그의 사형 집행인을 보냈고, 눈먼 남자가 밤에 변기에 앉아 위장을 비울 때, 그는 뒤에서 날카로운 창으로 복부 내장을 꿰뚫었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