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자키 이와오
1. 개요
야마자키 이와오는 일본의 관료이자 정치인이다. 1894년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내무성에 들어가 후생성 사회국장, 시즈오카현 지사, 경시총감을 역임했다. 도조 내각에서 내무차관을 지냈으며, 보르네오 민정 장관으로 임명되어 일본화 정책을 추진했다. 1945년 히가시쿠니노미야 내각의 내무대신을 지냈으나, 연합군 최고사령부와의 대립으로 파면되고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1952년 추방 해제 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제1차 이케다 내각에서 자치 대신 겸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1960년 아사누마 이네지로 암살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1968년에 사망했다. 그의 형은 중의원 의원 야마자키 다쓰노스케이며, 처남으로는 아리요시 요시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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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오카현지사 -
유아사 구라헤이
유아사 구라헤이는 일본의 내무 관료이자 정치가로, 내무성 경보국장,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궁내대신, 내대신 등을 역임했으며,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재직 시절 식민 통치에 앞장섰다는 비판과 쇼와 유신 반대, 궁중 양식파 활동 등의 행적을 남겼다. -
시즈오카현지사 -
다케야마 유타로
농상무성 관료 출신 정치인 다케야마 유타로는 일본 협동당 소속 중의원 의원 9선, 건설대신, 시즈오카현 지사를 지냈으며, 다고노우라항 헤드로 공해 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중일 국교 회복에 기여했다. -
1894년 출생 -
전영택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개신교 목사인 전영택은 1919년 한국 최초의 문학 동인지 《창조》를 창간하고, 단편소설 〈화수분〉, 〈소〉 등의 대표작을 남겼으며, 개신교 관련 간행물 발행, 중앙신학교 및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한국문인협회 초대 회장 등을 역임했다. -
1894년 출생 -
김형직
김형직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김일성의 아버지로, 조선국민회에 참여하고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북한에서는 항일 독립운동 지도자로 추앙받지만 반공주의적 성향을 가졌다는 증언도 있다. -
후쿠오카현 출신 -
타카쿠라 켄
타카쿠라 켄은 1956년 데뷔 후 18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과묵하고 금욕적인 이미지로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고, 국제적인 인지도 또한 얻었으나 2012년 은퇴 후 2014년 림프종으로 사망했다. -
후쿠오카현 출신 -
아소 다로
아소 다로는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아소 시멘트 사장을 역임하고 1979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여러 요직을 거쳐 제92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며 현재 자유민주당 부총재 및 최고 고문이다.
2. 생애
1941년 성립된 도조 내각에서 내무차관을 지냈고, 1944년 중반에는 일본 점령하의 보르네오 민정 장관으로 임명되어 현지 주민의 일본화 정책을 장려했다. 전후 일본 헌법 채택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그는 일본이 미국의 보호령이 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1968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1. 초기 생애 및 관료 경력
1894년 후쿠오카현 오카와시에서 태어나, 1919년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 독일법학과를 졸업하고 내무성에 들어갔다. 후생성으로 자리를 옮겨 사회국장을 맡았고, 시즈오카현 지사를 역임했다. 이후 내무성으로 돌아와 토목국장, 경보국장(警保局長)을 거쳐 1940년 경시총감(警視総監)이 되었다. 경시총감 시절에는 기획원 사건 등을 수사했다.
2.2. 종전 후 정치 활동
1945년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내각의 내무대신이 되었다. 내무대신 시절 맥아더가 히로히토를 방문했을 때의 사진 발매 및 게재 금지를 지령했으나,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에 의해 명령 철회가 지령되었다.
또한 정치범 석방에 반대하며, "천황제에 반대하는 자는 앞으로도 치안유지법에 따라 체포한다"는 고쿠타이(국체) 옹호와 그 법률 유지를 주장했으며, 이 주장이 연합군 최고사령부와 대립되어 파면된 뒤,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1952년 추방이 해제되어 제2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전쟁 전 입헌정우회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형 다쓰노스케의 지반을 계승, 자유당 공천으로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보수합동 이후, 자유민주당 이시이 파에 속했고, 1960년 제1차 이케다 내각에서 자치대신 겸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같은 해 10월, 아사누마 이네지로 암살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