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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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우정은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에 참여하고 카프 시인으로 활동했으며, 광복 후 우익 언론인으로 정치에 참여한 인물이다. 대구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 와세다 대학 중퇴 후 카프 중앙위원, 잡지 발행 및 편집, 신문 기고 등의 활동을 했다. 광복 후에는 조선민족청년단 참여, 신문 창간, 국회의원 및 국회 외무위원장 역임 등 우익 활동을 펼쳤다.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간첩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공직에서 사퇴, 은거하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사망했다.

양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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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개명하기 전의 이름은 양창준(梁昌俊), 호는 우정(雨庭)이다. 대구고등보통학교에서 항일 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했다. 와세다 대학에 유학했다가 중퇴하고 귀국하여 카프 시인으로 활동했다. 1928년 카프 중앙위원이 되었으며, 중외일보에 수십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 문단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조선일보에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0년 9월 <음악과 시>를 발행하고 편집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카프 기관지 <군기>를 발행하고 주간을 맡았다.

광복 후 우익 언론인으로 정치에 뛰어들었고 일민주의의 사상가로 활동하며 조선민족청년단에 참여하였다. 1945년 <대동신문>의 주필을 맡고 1946년 <현대일보>와 <평화일보>를 창간하였다. 1949년 <연합신문>을 창간하였고, 1952년 <동양통신>을 창설하였으며 같은 해 국회외무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선전부장으로 반탁 운동에 참여했고, 이승만의 독립운동 경력과 정치 이념을 홍보하는 저서를 남겼다. 고향인 함안에서 무소속으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자유당의 2인자로 부상하였으나, 1953년 12월, 자유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재전향하였다. 1954년 언론인 출신 정국은이 간첩 혐의로 사형된 사건에 연루되어 공산간첩혐의로 최고군법회의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고, 체포되기 직전에 국회의원을 비롯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였다. 1954년 대통령 특사로 형집행정지를 받고, 이후 7년간 은거하였다. 1970년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며, 1975년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2.1. 일제 강점기 (1907년 ~ 1945년)

대구고등보통학교에서 항일 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했다. 와세다 대학에 유학했다가 중퇴하고 귀국하여 카프 시인으로 활동했다. 1928년 카프 중앙위원이 되었으며, 중외일보에 수십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 문단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조선일보에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0년 9월 <음악과 시>를 발행하고 편집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카프 기관지 <군기>를 발행하고 주간을 맡았다.

2.2. 광복과 우익 활동 (1945년 ~ 1953년)

양우정은 광복 후 우익 언론인으로 정치에 참여하였으며, 일민주의 사상가로 활동하며 조선민족청년단에 참여하였다. 1945년 <대동신문>의 주필을 맡았고 1946년 <현대일보>와 <평화일보>를 창간하였다. 1949년 <연합신문>을 창간하였고, 1952년 <동양통신>을 창설하였으며 같은 해 국회외무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선전부장으로 반탁 운동에 참여했고, 이승만의 독립운동 경력과 정치 이념을 홍보하는 저서를 남겼다.

고향인 함안에서 무소속으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자유당의 2인자로 부상하였으나, 1953년 12월, 자유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재전향하였다. 1954년 언론인 출신 정국은이 간첩 혐의로 사형된 사건에 연루되어 공산간첩혐의로 최고군법회의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고, 체포되기 직전에 국회의원을 비롯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였다. 1954년 대통령 특사로 형집행정지를 받았다.

2.3. 몰락과 사망 (1953년 ~ 1975년)

1953년 자유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재전향을 선언했다. 1954년 언론인 출신 정국은이 간첩 혐의로 사형된 사건에 연루되어 공산간첩 혐의로 최고군법회의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았고, 체포 직전 국회의원을 비롯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였다. 같은 해, 대통령 특사로 형집행정지를 받고 7년간 은거하였다. 1970년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며, 1975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3. 학력

경상남도 함안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대구고등보통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중퇴하였으나, 1946년 8월 26일 대구 경북중·대구 경북고 명예 졸업장을 각각 수여받았다. 일본 와세다 대학교 정치경제학과를 중퇴하였다.

4. 경력

* 대동신문 주필을 역임하였다.
* 평화일보 사장을 역임하였다.
* 합동연합통신신문 사장을 역임하였다.
* 동양통신 사장을 역임하였다.

5. 정치 활동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함안군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득표수는 8,801표(19.93%)였다.

5.1. 제2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함안, 무소속)

양우정은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함안군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득표수는 8,801표(19.93%)였다.

5.2. 자유당 입당과 탈당

5.3. 간첩 사건 연루

6. 저서

* 《싸우는 민족의 이념》
* 《이대통령 독립노선의 승리》 (1948)
* 《이대통령 투쟁사》 (1949)
* 《이대통령 건국정치이념》 (1949)

7. 평가

7.1. 긍정적 평가

7.2. 부정적 평가

8.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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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정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직책명대수정당득표수득표율순위당락비고
제2대 총선국회의원2대무소속8,801표19.93%1위당선초선
제7대 총선국회의원7대민중당1967905표1.34%4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