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1. 개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1890년 장로교 목사 존 헤론의 사망을 계기로 조성된 묘지이다. 서울 시내 매장이 불가능했던 외국인들을 위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조성되었으며, 한국 전쟁 중 묘비 훼손이 발생했다. 1956년 서울 연합 교회가 관리 권한을 부여받았으나 토지 소유권 논쟁이 있었고, 1979년 정부의 부지 수용과 2000년대 초 두 단체 간의 관리권 분쟁이 있었다. 묘원에는 호머 헐버트, 어니스트 베델, 호러스 언더우드 등 다수의 외국인 선교사와 독립운동가, 외교관 등이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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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명칭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
|---|---|
| 로마자 표기 | Yanghwajin Oegugin Seongyosa Myowon |
| 한글 표기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
| 한자 표기 | 楊花津外國人宣敎師墓園 |
| 위치 |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대중교통: 2호선 합정역 7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거리) |
| 설립 | 1890년 |
|---|---|
| 웹사이트 | www.yanghwajin.net |
| Find a Grave ID | 2213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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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덤 -
충정공 목서흠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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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
알카에다는 압둘라 아잠에 의해 1988년 설립되어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끌었던 국제적인 지하디스트 테러 조직으로, 샤리아 법에 기반한 세계적인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며 9·11 테러를 비롯한 수많은 테러에 연루되어 국제사회의 비판과 제재를 받고 있다. -
없는 문서를 링크하고 있는 -
세례명
세례명은 기독교에서 세례를 받을 때 받는 새로운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며, 성경 속 인물들의 이름 변화에서 유래하여 중세 이후 유럽에서 일반적인 이름 형태로 정착되었고, 수호성인의 이름에서 따와 이름 축일로 기념되기도 한다.
2.1. 조성 배경
묘원의 조성은 1890년 7월 26일 장로교 목사 존 헤론의 사망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규정상 외국인은 서울 시내에 매장될 수 없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소규모 외국인 사회와 협력하여 매장에 적합한 토지를 찾았다. 호러스 뉴턴 알렌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토지 권리를 확보하여 현재의 묘원 부지를 마련했다.
한편,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이어진 한국 전쟁 기간 동안 다수의 묘비가 훼손되었으며, 그 흔적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2.2. 소유권 및 관리 논쟁
1956년, 서울 연합 교회와 관련된 단체인 경성구미묘지회는 정부로부터 묘원 관리 권한을 부여받았으나, 토지 소유권은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상태였다. 1961년 박정희 정부는 대한민국 내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하는 법령을 공포했으며, 묘지는 1965년 서울특별시에 의해 공원으로 지정될 때까지 사실상 소유주가 없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1979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건설 사업을 위해 묘지의 일부를 수용하기도 했다.
1985년,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 3세는 서울 연합 교회를 대표하여 한국교회 백주년 기념사업회(이하 "백주년 교회")가 서울 연합 교회를 대신하여 묘지를 등록하도록 요청했다. 두 교회는 서울 연합 교회가 묘지의 비공식적인 관리자가 되는 것에 합의했다. 1년 후인 1986년, 두 단체는 인근에 기념 예배당을 건립했으며, 이곳은 서울 연합 교회의 첫 번째 영구적인 예배 장소가 되었다.
두 단체 간의 관계는 2004년 언더우드 3세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05년부터 백주년 교회는 기념 예배당을 서울 연합 교회와 공동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법적 소유자로서 시설 관리를 맡겠다고 서울 연합 교회 측에 통보했다. 이후 양측은 서로의 부적절한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긴장이 고조되었다. 백주년 교회는 서울 연합 교회가 묘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기념 예배당 공동 사용을 방해한다고 주장했으며, 서울 연합 교회는 백주년 교회가 교인들의 과도한 주차 공간 확보를 위해 묘지 내 통로를 사용하는 행위와 두 단체 간의 기존 합의 정신에 어긋나는 행동을 비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백주년 교회는 건물과 묘지에 대한 관리를 점차 강화해 나갔다. 2007년 봄 회의에서는 서울 연합 교회에 더 이상 묘지 관리 책임이 없다고 통보했다. 결국 2007년 8월 5일, 서울 연합 교회 교인들은 기념 예배당에서 물리적으로 쫓겨나는 상황에 이르렀다. 백주년 교회 측은 이 사건을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외세 점령 지역이 원래 소유주에게 반환된 것에 비유하며 정당화하려 했으나, 민족주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은 부인했다.
3. 매장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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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요 안장자
* 호머 헐버트 (1863–1949): 미국 출신 선교사이자 언론인이다. 그의 묘비에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에 묻히는 것을 더 원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 어니스트 베델 (1872–1909): 영국 출신 언론인이자 한국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매일신보의 창립자이다.
* 호러스 언더우드 (1859–1916): 서울YMCA와 새문안교회, 그리고 현재 연세대학교가 된 학교의 설립자이다.
*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 (1858–1902): 배재학당 설립에 크게 기여했다. (현재 묘는 사당으로 이장됨)
* 로제타 홀 (1865–1951): 의료 선교사로서 평양 맹아학교, 볼드윈 진료소(릴리안 해리스 기념 병원)의 설립자이다. 홀 기념 병원(평양) 설립에 기여했다.
* 윌리엄 제임스 홀 (1860–1894): 의료 선교사이며, 평양 홀 기념 병원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 클래런스 리즐리 그레이트하우스 (1843–1899): 189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 관련 재판의 감독관이었다.
* 샤를르 W. 르 장드르 (1830–1899): 프랑스 태생의 미국 장군이자 외교관으로, 1890년부터 1899년까지 고종의 고문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