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교회
1. 개요
새문안교회는 1887년 9월 27일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의 주재 하에 한국인 서상륜 등 14명의 세례교인과 존 로스 목사가 참석하여 시작된 한국 최초의 조직 교회이다. 정동에 위치했으며, 6개의 예배당을 거쳐 2019년 최신 예배당을 건축했다. 현재 담임목사는 이상학 목사이다. 새문안교회는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거치며 여러 사회 활동을 펼쳤으며, 2019년 완공된 새 예배당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국내외 건축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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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 종로구, 서울특별시 |
|---|---|
| 국가 | 대한민국 |
| 교단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
| 웹사이트 | saemoonan.org |
| 설립일 | 1887년 9월 27일 |
| 설립자 |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
| 담임목사 | 이상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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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 장로교 교회당 -
삼일교회
삼일교회는 1954년 서울특별시 용산구에서 창립되어 선교, 구제 활동을 펼치며, 전병욱 목사 재임 시절 교세가 성장했으나 여러 논란이 있었다. -
서울특별시의 장로교 교회당 -
승동교회
1894년 곤당골교회에서 시작된 승동교회는 독립협회 계열 교인들이 세웠으며, 3·1 운동의 지침 논의 및 독립선언문 인쇄 등 일제강점기 민족 운동의 중심지이자 YWCA 창립의 산실이며, 현재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건물은 곽안련 목사가 설계 및 시공했다. -
대한민국의 개신교 교회당 -
삼일교회
삼일교회는 1954년 서울특별시 용산구에서 창립되어 선교, 구제 활동을 펼치며, 전병욱 목사 재임 시절 교세가 성장했으나 여러 논란이 있었다. -
대한민국의 개신교 교회당 -
여의도순복음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용기 목사와 최자실 목사에 의해 1958년 시작되어 교세 확장을 거쳐 대한민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회로 성장했으며,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
서울 종로구의 건축물 -
탑골공원
탑골공원은 서울에 있는 한국 최초의 근대 공원으로, 3·1 운동의 발상지이자 원각사지 십층석탑 등 문화재와 독립운동 관련 시설이 있는 사적지이다. -
서울 종로구의 건축물 -
보신각
보신각은 조선 시대 한양 도성의 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던 종루에서 유래하여 고종이 이름을 내린 종각으로, 현재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되어 매년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며 한국 전통 범종의 의미를 공유한다.
2. 역사
새문안교회는 1887년 9월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한 명의 교인에게 침례를 주고 14명의 한국인으로 구성된 조직에 두 명의 장로를 임명하면서 설립되었다. 여러 해에 걸쳐 6개의 다른 예배당을 거쳤으며,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최신 예배당을 건축했다.
2017년 이상학 목사가 7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그는 이전에 포항제일교회 담임 목사였다.
2.1. 설립 초기 (1885년 ~ 1910년)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장로교 선교사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원두우)가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와 같이 조선에 도착하여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1887년 9월 27일 화요일 저녁, 서울 정동에 위치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의 사랑채에서 한국인 신자 14명과 함께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새문안교회가 시작되었다. 이날 한국 최초로 2명의 장로가 선출됨에 따라 한국 최초의 조직 교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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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사회의 혼란과 더불어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1895년 청일전쟁 이후 교인이 급증하자 새 예배당을 신축하였고 이때부터 제한적으로나마 남녀가 같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또한 1893년 곤당골 승동교회, 1894년 연못골 연동교회, 1896년 서교동교회, 1906년 노량진교회를 개척하였다.
1907년에 교회 위치를 지금의 장소(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로 이전하여 1910년 5월 29일 벽돌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2.2. 일제 강점기 (1910년 ~ 1945년)
1920년 12월 26일 차재명 목사가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일제강점기 상황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했으나,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차재명 담임목사가 전국 순회 시국 강연에 참여하여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기 시작했고, 8월 1일 당회에서 이를 지지하는 내용을 결의하였다. 1938년에는 교회 내에서 일본어 교육을 실시하고 내선일체 현판을 걸었다. 1941년 4월 29일부터 4월 30일까지 장로교 총회는 새문안교회 예배당에서 장로회 여자신도대회를 개최하고 국민총력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연맹 여자부를 결성하였다. 첫날은 천장절 봉축식을 갖고 총회연맹 이사장 곽진근 목사의 시국 강연을 들었으며, 이튿날에도 시국 강연회를 가졌는데, 유각경은 천장절을 당하여라는 강연을 하였고, 곽진근은 신체제의 기독교인이라는 강연을 하였으며, 일제 해군 대좌 구로키는 세계 대세와 우리 해군이라는 강연을 하였다.
우사 김규식은 언더우드고아원 출신으로 새문안교회 장로였으며, 도산 안창호는 언더우드고아원 접장이었고, 새문안교회 창립자였던 서상륜의 동생 서경조 새문안교회 협동목사의 아들 서병호도 상해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홍영후는 찬양대원으로 활동하였다.
2.3. 해방과 한국전쟁 (1945년 ~ 1953년)
1944년 김영주 목사가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고 1945년 해방을 맞아 교회를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1948년부터 농촌계몽운동과 의료봉사를 실시하였다.
1949년 호러스 호톤 언더우드(원한경) 목사의 사저에서 모윤숙 시인의 간담회 중 괴한이 난입하여 부인 엘터 여사가 피살되었다. 공산계 청년 경문수, 김동휘, 김석준, 배경환, 안석규, 장현수가 저지른 일로 원한경 목사는 이념 대립으로 인한 사회상을 한탄하며 범인들을 용서하고 선처를 호소하였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김영주 담임목사와 김규식 장로가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어 순교하였다. 원한경 목사의 장남 원일한, 삼남 원재한, 사남 원득한은 해군 장교와 군목으로 참전하였다.
1951년 호러스 호톤 언더우드 목사가 소천하였다. 임시수도인 부산에서 남성여자중학교에 피란 교회가 세워졌고 강태국 임시목사가 부임하였다.
2.4. 강신명 목사 재임기 (1955년 ~ 1980년)
1955년 강신명 목사가 4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1957년 교회 창립 7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고,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원일한)와 방순원 장로를 선출하였다. 1958년부터 언더우드학술강좌를 시작했다. 1967년 언더우드교육관을 건축하였고, 1972년에는 왕손 이구의 설계로 새 교회당을 지었다.
1968년 새문안교회 대학생회가 창립되었다. 당시 대학생회는 군부 독재에 맞서 1970~80년대 후반까지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1979년 박정희 대통령 국장(國葬)에서는 찬양대가 '내 목자는 사랑의 왕'을 찬송하였으며, 강신명 목사가 기도문을 낭독하였다.
1980년 강신명 목사가 원로목사로 추대됨에 따라 황인기 목사가 임시로 부임하였고, 9월에는 군산새문안교회를 개척하였다.
2.5. 김동익 목사 재임기 (1981년 ~ 1998년)
1981년 4월, 김동익 목사가 새문안교회 5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1982년부터 1996년까지 새창원교회, 고성 새문교회, 정읍 새정교회, 당진 새곡교회, 태국 람푼교회 등 여러 교회를 개척하였다.
1987년 9월에는 창립 100주년 기념회가 열렸고, 이화여자대학교 강당에서 기념 음악회가 개최되었다. 1992년 7월, 사회복지법인 새문안교회 복지원이 설립되었다. 1997년에는 경기도 가평군 하면에 새문안교회 수양관이 준공되었다.
1997년, 황경운 장로가 새문안교회 최초의 여성 장로로 장립되었다. 1998년 4월 1일, 김동익 담임목사가 숙환으로 소천하였다.
2.6. 이수영 목사 재임기 (2000년 ~ 2016년)
2000년 이수영 목사가 6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고, 2003년에는 새문안교회 최초의 여성 목사인 양해란 목사가 부임하였다. 2005년에는 언더우드교육관을 헌당하였고, 2006년에는 종로종합사회복지관을 개관하였다.
2014년 7월부터 예배당 재건축을 위하여 예배 장소를 임시로 언더우드교육관과 광화문빌딩으로 이전하였고, 이후 예배당 건물 철거 공사를 실시하였다.
2016년 12월 28일 이수영 담임목사가 은퇴하였다.
2.7. 이상학 목사 재임기 (2017년 ~ 현재)
이상학 목사가 2017년에 새문안교회 7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그는 포항제일교회 담임 목사였다.
이상학 목사는 포항제일교회 담임목사 재직 중 새문안교회 담임목사 청빙 제안을 받았으나, 이 과정에서 교회 내 갈등이 발생했다. 이는 한국 교회 담임목사 청빙 시스템의 문제점과 교회 지도자와 교인 간 소통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상학 목사는 2011년 연합신학대학원에서 "한국인의 한(Han) 체험에 근거한 죄와 구원"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는데, 이는 일부 내용이 논란을 일으켰다.
3. 새 예배당 (6th Chapel, 2019년)
새 예배당은 건축계의 권위자인 이은석이 설계했다. 이 예배당은 어머니의 넓게 펼쳐진 팔과 같은 독특한 디자인과 많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인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건축 과정에서 교회 측이 건축가가 제안한 초기 디자인을 상당히 수정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건축가의 원래 설계에서 남은 독특한 외부 파사드가 이 건물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데 기여했다. 수정된 내부 공간이 외부의 인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건축계에서는 원래 계획대로 지어졌다면 건물의 완성도가 더 높았을 것이라는 의견과, 적어도 원래 디자인의 일부가 유지되어 도시 경관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의견이 있다.
제6 예배당은 국내외 건축계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 연도 | 수상 내역 |
|---|---|
| 2019년 | 건축 마스터 상 문화 건축 부문 최초 교회 건물 수상 |
| 2020년 | 유명 건축 웹진 ArchDaily 올해의 건물 최종 후보 |
| 2020년 | Architizer A+ 어워드 종교 건축 및 기념물 부문 심사위원상 수상 |
| 2021년 | 예배당의 곡면이 Phaidon 출판 컬렉션 'The World's Best Architecture' 표지 장식 |
4. 역대 담임목사
| 대수 | 임기 | 이름 | 비고 |
|---|---|---|---|
| 1대 | 1887년 9월 27일 - 1916년 |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원두우) | 1916년 10월 12일 소천 |
| 임시 | 1916년 - 1920년 | E. W. 쿤스 (군예빈) | |
| 2대 | 1920년 12월 26일 - 1941년 8월 30일 | 차재명 | 1941년 일제의 탄압으로 사임 |
| 임시 | 1942년 1월 18일 - 1944년 | 박화선 | |
| 3대 | 1944년 2월 6일 - 1950년 | 김영주 | 전쟁 중 납북 후 순교 |
| 임시 | 1951년 12월 2일 - 1955년 | 강태국 | |
| 임시 | 1954년 - 1955년 | 최화정 | |
| 4대 | 1955년 12월 1일 - 1979년 | 강신명 | 1980년 원로목사 추대, 1985년 6월 22일 소천 |
| 임시 | 1980년 6월 1일 - 1981년 | 황인기 | |
| 5대 | 1981년 4월 25일 - 1998년 | 김동익 | 1998년 숙환으로 소천 |
| 6대 | 2000년 9월 17일 - 2016년 | 이수영 | 2016년 정년 은퇴 |
| 7대 | 2017년 9월 - 현재 | 이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