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파쟁공
1. 개요
영파쟁공은 명나라와 일본 무로마치 막부 사이의 감합 무역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겐도 소세쓰의 난, 메이슈의 난으로도 불린다. 1467년 오닌의 난 이후 호소카와 가문과 오우치 가문이 감합부를 두고 대립하는 가운데, 1523년 오우치 요시오키가 겐도 소세쓰를 정사로, 호소카와 다카쿠니가 란코 즈이사를 정사로 하여 견명선을 파견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다. 영파에 먼저 도착한 오우치 가문 측에 불리하게 되자 호소카와 측의 송소경이 뇌물을 써서 입항 검사를 먼저 받게 되자, 오우치 측이 호소카와 측을 습격하여 견명선을 불태웠고, 겐도 소세쓰는 명나라 관리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송소경이 옥사하고, 명나라의 대일 감정이 악화되어 시박사가 폐지되었으며, 이후 사무역과 왜구의 활동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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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보시의 역사 -
자계 전투
1862년 상해 공격 당시, 영국과 프랑스 해군이 청나라 군대와 협력하여 태평천국군을 공격한 자계 전투에서 미국인 용병 워드가 이끄는 상승군이 활약했으나, 워드 전사 후 상승군은 쇠퇴하며 태평천국군 진압 전략에 영향을 주었다. -
닝보시의 역사 -
장둥구
장둥구는 랴오둥 반도 남단에 위치한 다롄시 하이수구의 지역으로, 다양한 산업 발달과 관광 명소, 교육 시설을 갖추고 한국과의 교류도 활발하지만, 개발 관련 환경 문제와 불균형 분배 논란도 있다. -
닝보시 -
동해함대
동해함대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함대로, 타이완 해협, 동중국해, 황해 방어 및 상륙 작전 지원을 주요 임무로 하며, 닝보에 사령부를 두고 다양한 함정을 운용한다. -
닝보시 -
닝보 텔레비전
닝보 텔레비전은 1984년 설립되어 1985년 정식 방송을 시작, 2001년 닝보 TV와 닝보 케이블 TV가 합병되어 뉴스, 문화, 교육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중국 닝보시의 텔레비전 방송국이다. -
게이초 호소카와씨 -
호소카와 요리유키
호소카와 요리유키는 무로마치 막부 시대의 무장이자 정치가로, 아시카가 요시미츠 쇼군 시대에 관령으로서 막부를 통치하며 시코쿠 평정에 공헌하고 행정 개혁을 추진했으나, 가네요키의 정변으로 실각 후 복귀했으나 메이토쿠의 난 이후 병사했다. -
게이초 호소카와씨 -
오닌의 난
오닌의 난은 1467년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후계자 문제로 시작되어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11년간 교토를 중심으로 벌어진 대규모 내전이며, 아시카가 막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센고쿠 시대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다.
2. 명칭
일반적으로 영파쟁공 혹은 영파쟁공사건(寧波爭貢事件)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영파의 옛 이름인 명주에서 이름을 따와 메이슈의 난(明州の乱)이라고도 하거나, 오우치 가문의 가신인 겐도 소세쓰가 촉발한 사건이라고 해서 소세쓰의 난(宗設の乱)이라고도 부른다.
3. 감합 무역
중국의 명나라와 일본의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사이에 행해진 감합무역(조공무역, 명일무역)은 명나라 건문제(建文帝)와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 때 시작되었다. 명나라는 해금 정책(海禁政策)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카가 막부의 쇼군은 「일본국왕」으로 책봉되고, 왜구(倭寇)와 구별하기 위한 감합부(勘合符)를 발급받았다. 무역은 이 감합부를 통해 상대방을 승인하는 조공 형태로 행해졌으며, 10년에 한 번 조공하는 등의 제한이 있었다. 막부가 파견한 사절에는 하카타(博多)나 사카이(堺) 등의 유력한 일본 상인들이 따라갔다.
3.1. 무역의 개시
명나라와 일본 무로마치 막부 사이에 행해진 감합무역(조공무역, 명일무역)은 명나라 건문제와 무로마치 막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 때 시작되었다. 명나라는 해금 정책(海禁政策)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카가 막부의 쇼군은 「일본국왕」으로 책봉받고 왜구와 구별하기 위한 감합부(勘合符, 해적과 구별하기 위해 무역선이 소지한 표찰)를 명나라로부터 발급받았다. 무역은 이 감합부를 통해 상대방을 승인하는 조공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10년에 한 번 조공하는 등의 제한이 있었다. 막부가 파견한 사절에는 하카타나 사카이 등 유력한 일본 상인들이 따라갔으며, 그 사이에 사무역(私貿易)이 행해졌다.
3.2. 감합부
중국 명나라와 일본 무로마치 막부 사이의 감합무역에서 왜구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된 표찰이다. 명나라 건문제와 무로마치 막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명나라는 해금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카가 막부의 쇼군은 '일본국왕'으로 책봉됨과 동시에 명나라로부터 감합부를 발급받았다. 무역은 이 감합부를 통해 상대방을 승인하는 조공 형태로 행해졌으며, 십년에 한번 조공을 하는 등의 제한이 있었다. 막부가 파견한 사절에는 하카타나 사카이 등의 유력한 일본 상인들이 따라갔으며, 그 사이에 사무역이 행해졌다.
3.3. 무역의 제한
명나라와 일본의 무로마치 막부 사이에 행해진 감합무역(조공무역, 명일무역)은 명나라 건문제와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 때 시작되었다. 명나라는 해금 정책(海禁政策)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카가 막부의 쇼군은 '일본국왕'으로 책봉받는 동시에 왜구와 구별하기 위한 감합부(勘合符, 해적과의 구별을 위해 무역선이 소지한 표찰)를 명나라로부터 받았다. 무역은 이 감합부를 통해 상대방을 승인하는 조공 형태로 행해졌으며, 십년에 한번 조공을 하는 등의 제한이 있었다. 막부가 파견한 사절에는 하카타나 사카이 등의 유력한 일본 상인들이 따라갔으며, 그 사이에 사무역(私貿易)이 행해졌다.
3.4. 사무역
명나라와 무로마치 막부 사이의 감합무역에서 무로마치 막부가 파견한 사절에는 하카타, 사카이 등의 유력한 일본 상인들이 따라갔으며, 그 사이에 사무역(私貿易)이 행해졌다.
4. 경위
1467년 오닌의 난 이후, 아시카가 가문의 가독(家督) 승계 다툼 등으로 인해 무역 환경이 변화하였다. 사카이를 무역 거점으로 하던 간레이 가문인 호소카와 가문과 야마구치를 본거지로 하카타, 효고 등에 권익을 가진 오우치 가문이 독자적으로 사절단을 파견하여 무역을 경영하기 시작하면서, 감합부를 둘러싼 대립이 발생하였다.
명나라에서는 정덕제가 즉위하였고, 오우치 가문은 견명선(遣明船, 감합선)을 주최하여 발행받은 정덕 감합부(正德勘合符)를 독점하였다. 1523년 오우치 요시오키는 겐도 소세쓰를 정사로 삼아 견명선을 파견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호소카와 다카쿠니는 란코 즈이사를 정사, 중국인 무역가 송소경을 부사로 삼고 이미 무효화된 홍치감합부를 지닌 채 남해를 경유하는 견명선을 파견하였다.
4.1. 배경
아시카가 가문의 가독(家督) 승계 다툼 등으로 인해 1467년 오닌의 난이 벌어졌다. 막부의 간레이 가문(管領家門)이자 사카이를 무역 거점으로 하던 호소카와 가문과, 야마구치를 본거지로 하며 하카타, 효고(오닌의 난으로 얻음) 등에 권익을 갖고 있던 오우치 가문은 각자 독자적으로 사절단을 파견해 무역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호소카와와 오우치는 감합부를 둘러싸고 대립했다.
명나라에서는 정덕제가 새로 즉위했으며, 오우치 가문은 견명선(遣明船, 감합선)을 주최해 발행받은 정덕 감합부(正德勘合符)를 독점했다. 1523년 오우치 요시오키는 겐도 소세쓰를 정사(正使)로 삼아 견명선을 파견했다. 호소카와 다카쿠니는 이에 대항해 란코 즈이사를 정사로 삼고 중국인 무역가 송소경을 부사(副使)로 삼아, 이미 무효화된 홍치감합부(弘治勘合符)를 지니고 남해(南海)를 경유하는 견명선을 파견했다.
4.2. 정덕 감합부
1467년 오닌의 난 이후, 아시카가 가문의 가독 승계 다툼 등으로 인해 무역 환경이 변화하였다. 사카이를 무역 거점으로 하던 간레이 가문인 호소카와 가문과 야마구치를 본거지로 하카타, 효고 등에 권익을 가진 오우치 가문이 독자적으로 사절단을 파견하여 무역을 경영하기 시작하면서, 감합부를 둘러싼 대립이 발생하였다.
명나라에서는 정덕제가 즉위하였고, 오우치 가문은 견명선(遣明船, 감합선)을 주최하여 발행받은 정덕 감합부(正德勘合符)를 독점하였다. 1523년 오우치 요시오키는 겐도 소세쓰를 정사로 삼아 견명선을 파견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호소카와 다카쿠니는 란코 즈이사를 정사, 중국인 무역가 송소경을 부사로 삼고 이미 무효화된 홍치감합부를 지닌 채 남해를 경유하는 견명선을 파견하였다.
4.3. 견명선 파견
1523년 오우치 요시오키는 겐도 소세쓰를 정사(正使)로 삼아 견명선(遣明船)을 파견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호소카와 다카쿠니는 란코 즈이사를 정사로 삼고, 중국인 무역가 송소경을 부사(副使)로 임명하여 이미 무효화된 홍치감합부(弘治勘合符)를 지니고 남해(南海)를 경유하는 견명선을 파견하였다.
5. 전개
호소카와 측이 시박사(市舶司)의 대감에게 뇌물을 써서 먼저 입항 검사를 받게 되자, 오우치 측은 호소카와 측을 습격해 견명선을 불태웠다. 명의 관헌은 호소카와 측을 지원했으나, 겐도 소세쓰는 란코 즈이사를 죽이고 소흥(紹興)으로 도망친 송소경 일행을 추격하여 명 관리들까지 살해했다.
5.1. 오우치 가문의 선제 공격
시박사(市舶司)의 대감에게 뇌물을 써서 호소카와 측이 우선 입항 검사를 받도록 한 것에 대해, 오우치 측은 호소카와 측을 습격해 견명선을 모조리 불태웠다. 명의 관헌은 호소카와 측을 지원했지만, 겐도 소세쓰는 란코 즈이사를 죽이고 이어 소흥(紹興)으로 도망친 송소경 일행을 추격해 명의 관리들까지 살해했다.
5.2. 송소경의 뇌물
호소카와 측의 부사였던 송소경은 명의 입항 관리소인 시박사(市舶司)의 대감에게 뇌물을 써서 호소카와 측이 우선 입항 검사를 받도록 했다. 이 때문에 오우치 측은 호소카와 측을 습격하여 견명선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5.3. 겐도 소세쓰의 만행
송소경은 명의 입항 관리소인 시박사(市舶司)의 대감에게 뇌물을 써서 호소카와 측이 우선 입항 검사를 받도록 했다. 이에 오우치 측은 호소카와 측을 습격해 견명선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명의 관헌은 호소카와 측을 지원했지만, 겐도 소세쓰는 란코 즈이사를 죽이고 소흥(紹興)으로 도망친 송소경 일행을 추격해 명의 관리들까지 살해했다.
6. 결과
영파쟁공은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으며 송소경은 옥에 갇혀 그대로 옥사하였다. 명의 대일 감정이 악화되자, 1529년 영파의 시박사가 폐지되었다. 1536년 오우치 요시타카가 견명선을 재개하였고, 1551년 요시타카가 가신 스에 하루카타의 모반으로 몰락할 때까지 무역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영파 근처의 쌍서나 선산제도 등 연안부에서 일본 상인에 의한 사무역과 밀무역은 계속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북로남왜에 해당되는 왜구(후기 왜구)도 활동하였다.
6.1. 외교 문제 비화
사건은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으며 송소경은 옥에 갇혀 그대로 옥사하였다. 명의 대일 감정이 악화 일로로 접어들자, 1529년 영파의 시박사 대감이 폐지되었다. 견명선은 1536년 오우치 요시타카가 재개했으며, 무역은 요시타카가 가신 스에 하루카타의 모반으로 1551년 몰락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영파 근처의 쌍서나 선산제도 등 연안부에서 일본 상인에 의한 사무역과 밀무역은 계속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북로남왜에 해당되는 왜구(후기 왜구)도 활동하였다.
6.2. 시박사 폐지
1529년 영파의 시박사가 폐지되었다. 1536년(덴분 5년) 오우치 요시타카가 견명선을 재개했으며, 무역은 요시타카가 가신(家臣) 스에 하루카타의 모반으로 1551년(명나라 가정 31년, 일본 덴분 20년)에 몰락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영파 근처의 쌍서(雙嶼)나 선산제도(船山諸島) 등 연안부에서 일본 상인에 의한 사무역과 밀무역은 계속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북로남왜에 해당되는 왜구(후기 왜구)도 활동했다.
6.3. 무역 중단과 재개
사건은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으며 송소경은 옥에 갇혀 그대로 옥사하였다. 명의 대일 감정이 악화 일로로 접어들자, 1529년 영파의 시박사가 폐지되었다. 1536년 오우치 요시타카가 견명선을 재개하였으며, 무역은 1551년 요시타카가 가신 스에 하루카타의 모반으로 몰락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영파 근처의 쌍서(雙嶼)나 선산제도(船山諸島) 등 연안부에서 일본 상인에 의한 사무역과 밀무역은 계속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북로남왜에 해당되는 왜구(후기 왜구)도 활동하였다.
6.4. 밀무역과 왜구의 증가
사건은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으며 송소경은 옥에 갇혀 그대로 옥사하였다. 명의 대일 감정이 악화 일로로 접어들자, 1529년에는 영파의 시박사 대감이 폐지된다. 견명선은 1536년(덴분 5년) 오우치 요시타카가 재개했으며, 무역은 요시타카가 가신(家臣) 스에 하루카타의 모반으로 1551년(명나라 가정 31년, 일본 덴분 20년)에 몰락할 때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영파 근처의 쌍서(雙嶼)나 선산제도(船山諸島) 등 연안부에서 일본 상인에 의한 사무역과 밀무역은 계속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북로남왜에 해당되는 왜구(후기 왜구)도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