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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두아르트 코코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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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두아르트 코코이티는 남오세티야의 정치인으로,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했다. 소련 레슬링 국가대표팀 챔피언 출신으로, 1990년대 초 사업가로 활동하다가 남오세티야로 돌아와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2001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했으며, 2006년 재선에 성공했다. 재임 기간 동안 조지아와의 관계에서 강경한 입장을 보였으며,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했다. 2011년 대통령직에서 사임했으며, 재임 기간 중 권위주의 통치와 부패 의혹, 러시아 자금 유용 의혹 등 다양한 논란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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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두아르트 코코이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09년의 코코이티
이름에두아르트 코코이티
본명코코이티 자베이예비치 에두아르트
정치
직책남오세티야 대통령
대수2대
임기 시작2001년 12월 18일
임기 종료2011년 12월 10일
전임자류드비크 치비로프
후임자바딤 브롭체프 (권한 대행)
총리게라심 후가예프
이고르 사나코예프
주라프 코코예프 (권한 대행)
유리 모로조프
보리스 초치예프 (권한 대행)
아슬란베크 불라체프
바딤 브롭체프
소속 정당통일당
개인 정보
출생일1964년 10월 31일
출생지츠힌발리, 남오세티야 자치주,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소비에트 연방
배우자마디나 톨파로바

2. 초기 생애 및 경력

소비에트 연방 조지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츠힌발리에서 태어났다.[1] 젊은 시절에는 소련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며 챔피언에 올랐고, 공산주의 청년 동맹인 콤소몰 간부로도 활동했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 이어진 오세티야-조지아 분쟁 시기에는 오세티야 전투 방위대를 창설하고 지휘하며 무장 활동에 참여했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남오세티야 공화국 의회 대의원을 지냈다.

1992년에는 잠시 모스크바로 이주하여 사업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1997년 2월 남오세티야 초대 대통령 류드비크 치빌로프에 의해 주러시아 통상 대표로 임명되면서 공직에 복귀했다. 이 기간 동안 러시아 하원 의원의 보좌관으로도 활동하며 러시아와의 관계를 구축했다.

2001년 남오세티야로 돌아와 그해 11월부터 12월까지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 투표 끝에 53%를 득표하여 남오세티야 공화국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일각에서는 그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게임 센터를 지배하는 러시아 마피아와 연관되어 있으며, 제2대 러시아 연방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도 긴밀한 관계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실제로 그의 내각에는 KGB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자와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2. 1. 출생 및 성장

에두아르트 코코이티[1]는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일부였던 조지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츠힌발리에서 태어났다. 제5중학교를 졸업한 후 통신반에서 전기 수리공으로 근무했다.

1980년에는 레슬링 자유형 조지아 챔피언이 되었고, 스포츠 마스터 칭호를 받았다. 그는 소련 국가 레슬링 대표팀의 일원이자 챔피언이기도 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는 소련군에서 복무했다.

군 복무 후 남오세티야 교육대학교에 입학하여 1988년 체육 강사 전공으로 졸업했다. 대학 시절에는 콤소몰 위원회 서기로 선출되었으며, 졸업 후에도 콤소몰에서 활동하여 1989년 이전에는 콤소몰 츠힌발리 지부의 제1 서기를 맡았다.

1992년에는 자본주의를 배우고 사업가가 되기 위해 모스크바로 이주하였고, 2001년남오세티야로 돌아왔다.

2. 2. 스포츠 경력

소비에트 연방 국가 레슬링 대표팀의 일원이었으며 챔피언 경력을 가지고 있다.[1] 1980년에는 조지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유형 레슬링 챔피언이 되었고, 스포츠 마스터 칭호를 받았다. 이후 남오세티야 교육대학교에 진학하여 1988년 체육 교육을 전공으로 졸업했다.

2. 3. 군 복무 및 교육

제5중학교를 졸업한 후 통신반에서 전기 수리공으로 근무했다. 1980년에는 레슬링 자유형 조지아 챔피언이 되었고, 스포츠 마스터가 되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소련군에 복무했다. 이후 남오세티야 교육대학교에 입학하여 1988년 체육 강사 전공으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에는 콤소몰 위원회 서기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2. 4. 초기 정치 경력

소비에트 연방 시절 조지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츠힌발리에서 태어났다.[1] 젊은 시절에는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며 소련 국가대표팀의 일원이자 챔피언이었고, 1980년에는 조지아 레슬링 자유형 챔피언 및 스포츠 마스터 칭호를 얻었다.

제5중학교를 졸업하고 통신반에서 전기 수리공으로 근무했으며,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소련군에서 복무했다. 이후 남오세티야 교육대학교에 입학하여 1988년 체육 강사 전공으로 졸업했다. 대학 시절부터 공산주의 청년 동맹인 콤소몰 활동에 참여하여 콤소몰 위원회 서기로 선출되었고, 졸업 후에도 콤소몰에서 활동하여 1989년 이전에는 츠힌발리 지부 제1 서기를 역임했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 이어진 오세티야-조지아 분쟁 시기에는 글리 코치예프의 지휘 아래 오세티야 전투 방위대를 창설하고 직접 지휘하며 무장 투쟁에 참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남오세티야 공화국 의회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에는 모스크바로 이주하여 사업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1997년 2월 남오세티야 초대 대통령 류드비크 치빌로프에 의해 주러시아 통상 대표로 임명되면서 다시 공직에 복귀했다. 또한 러시아 하원 의원 체호예프의 보좌관으로도 활동하며 러시아와의 관계를 다졌다. 2001년 남오세티야로 돌아와 본격적인 정치 활동 재개를 준비했다.

3. 남오세티야 대통령

2001년 11~12월 대통령 선거에서 38세의 나이로 당선되어 12월 18일 취임했다. 그의 예상 밖의 승리는 남오세티야 내 유력 가문인 테데예프 가문의 지원에 힘입은 바 컸으나,[2] 2003년에는 이들을 견제하며 권력 기반을 공고히 했다.

코코이티는 재임 기간 동안 조지아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며 강경 노선을 유지했다. 그는 남오세티야가 독립 국가로 인정받는 조건 하에서만 평화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며, 이는 조지아 트빌리시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또한 이 지역의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 활동에 대해 "조지아 비밀 정보국의 활동"과 같다며 강한 불신과 비판을 표하기도 했다.[4]

2006년 11월 12일 선거에서 재선되었으나, 같은 날 조지아의 지원을 받는 반대 세력이 자체적으로 대체 선거를 실시하여 전 총리 드미트리 사나코예프를 경쟁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남오세티야 내 정치적 분열이 드러나기도 했다.

코코이티는 러시아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제2대 러시아 연방 대통령 푸틴과 개인적인 친분이 깊다고 알려졌으며, 그의 내각에는 KGB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진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상트페테르부르크게임 센터를 장악한 러시아 마피아와 연계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헌법상 3선 연임이 불가능해지자, 코코이티는 2011년 12월 10일 대통령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총리 바딤 브로프체프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으며, 여러 차례의 선거 끝에 2012년 4월 8일 레오니드 티빌로프가 후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7] 코코이티 본인은 3선 연임에 뜻이 없음을 밝혔고, 헌법 개정 시도도 무산되었다.[5][6]

3. 1. 2001년 대통령 선거

코코이티는 38세의 나이로 2001년 11월~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당선되었다. 2001년 11월 18일에 열린 1차 투표에서 그는 45%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1위를 차지했으며, 스타니슬라프 코치예프는 24%, 당시 대통령이었던 류드비그 치비로프는 21%를 얻는 데 그쳤다. 이후 12월 6일에 치러진 2차 결선 투표에서 코코이티는 53%를 득표하여 40%를 얻은 스타니슬라프 코치예프를 누르고 최종 승리했다. 코코이티는 2001년 12월 18일에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코코이티의 승리는 남오세티야 내 유력 가문 중 하나인 테데예프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알베르트 "딕" 테데예프와 그의 형제이자 유명 레슬링 선수인 잠볼라트 테데예프가 코코이티의 선거 운동을 조직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2] 테데예프 가문은 본래 류드비그 치비로프를 지지했으나, 치비로프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견제하려 하자 지지를 철회하고 코코이티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코코이티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테데예프 가문 인사들은 공화국의 관세 업무와 트란스캅카스 고속도로를 통한 화물 운송 사업을 장악하게 되었는데, 이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수입은 남오세티야 정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하지만 2003년 7월, 코코이티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던 테데예프 가문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는 안보위원회 서기였던 알베르트 테데예프를 해임하고, 테데예프 가문이 보유한 사병 조직의 무장 해제를 명령했다. 코코이티는 안보위원회 서기를 비롯한 일부 국방 및 안보 책임자들이 범죄 조직과 연루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조치로 인해 수도 츠힌발리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사상자는 보고되지 않았다.

3. 2. 조지아와의 관계

코코이티는 조지아와의 재통합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남오세티야가 독립 국가로 취급되는 것을 전제로 평화 협정을 맺을 의향을 표명했다(이는 트빌리시 정부가 거부한 전제 조건이다). 2004년 7월 조지아 중앙 정부와의 긴장된 대립 이후, 그는 "조지아는 전쟁을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위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주장했다. 2006년 남오세티야 대통령 선거 전, 그는 조지아-오세티야 분쟁은 민족 간의 문제가 아니라, 오세티야인들에게 서구 민주주의 규범을 강요하려는 조지아의 욕망으로 인해 발생한 명백한 정치적 문제이며, 이는 캅카스 전통 법보다 우월할 수 없다고 말했다.[3] 그는 또한 여러 차례 이 지역의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 임무를 비판하며, 기구의 편향성을 비난하고 그 활동을 "조지아 비밀 정보국의 활동"에 비유했다.[4]

그는 2006년 남오세티야 대통령 선거 이후 2006년 11월 12일에 재선되었다. 같은 날, 조지아의 지원을 받는 세력은 조지아가 통제하거나 남오세티야 정부가 느슨하게 통제하는 영토에서 대체 선거를 조직했다. 코코이티가 2001년에 해임했던 전 남오세티야 총리 드미트리 사나코예프가 경쟁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011년 12월 10일, 그는 남오세티야 대통령직에서 사임했다. 총리 바딤 브로프체프는 2012년 3월 25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 재실시 때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에두아르트 코코이티는 헌법상 세 번째 임기를 수행할 수 없었다. 헌법을 변경하기 위한 국민 투표를 소집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는 최고 법원에 의해 차단되었다. 코코이티 자신은 세 번째 임기를 추구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으며,[5][6] 그가 세 번째 임기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시도를 자제해 줄 것을 촉구했다. 여러 차례의 선거와 여러 차례의 투표 라운드 이후, 레오니드 티빌로프가 2012년 4월 8일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7]

3. 3. 2006년 재선 및 대체 선거

코코이티는 조지아와의 재통합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지만, 남오세티야가 독립 국가로 인정받는다는 전제 하에서는 평화 협정을 맺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조지아트빌리시 정부가 거부한 조건이었다. 2004년 7월 조지아 중앙 정부와의 긴장이 고조되었을 때, 그는 "조지아는 전쟁을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6년 남오세티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는 조지아-오세티야 분쟁의 본질이 민족 간의 갈등이 아니라, 조지아가 서구식 민주주의 규범을 코카서스의 전통적 규범보다 우위에 두고 오세티야인들에게 강요하려는 정치적 문제라고 주장했다.[3] 그는 또한 여러 차례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 임무를 비판하며, OSCE가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 활동이 "조지아 비밀 정보국의 활동"과 유사하다고 비난했다.[4]

코코이티는 2006년 11월 12일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같은 날, 조지아의 지원을 받는 반대 세력은 조지아가 통제하거나 남오세티야 정부의 영향력이 약한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대체 선거를 조직했다. 이 선거에서는 코코이티가 2001년에 해임했던 전 남오세티야 총리 드미트리 사나코예프가 경쟁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3. 4. 2011년 사임

2011년 12월 10일, 코코이티는 남오세티야 대통령직에서 사임했다. 총리 바딤 브로프체프가 2012년 3월 25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 재실시 때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에두아르트 코코이티는 헌법상 세 번째 임기를 수행할 수 없었다. 헌법을 변경하기 위한 국민 투표를 소집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는 최고 법원에 의해 차단되었다. 코코이티 자신은 세 번째 임기를 추구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으며,[5][6] 그가 세 번째 임기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시도를 자제해 줄 것을 촉구했다. 여러 차례의 선거와 여러 차례의 투표 라운드 이후, 레오니드 티빌로프가 2012년 4월 8일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7]

4. 논란

(내용 없음)

4. 1. 권위주의 통치 및 부패 의혹

2008년 9월 11일, 코코이티는 독립 남오세티야가 결국 러시아 연방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밝혔으나, 러시아 관리들의 즉각적인 부인 후 발언을 철회했다.[9] 그는 스스로를 유라시아주의자라 칭하며, 남오세티야러시아 제국을 떠난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10]

2008년 12월부터 코코이티의 전 측근들은 러시아 언론을 통해 그를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기반 사업가이자 코코이티의 측근이었던 알베르트 주소예프는 코코이티 행정부가 남오세티야 지원을 위해 배정된 러시아 자금을 횡령했으며, 이로 인해 지역이 "사회적 재앙" 직전에 있다고 주장했다. 전 국방부 장관 아나톨리 바라케비치와 전 총리 유리 모로조프 역시 유사한 자금 횡령 의혹을 제기했다. 바라케비치는 더 나아가 코코이티가 러시아-조지아 전쟁 중 츠힌발리에서 도망쳤고, 붙잡힌 조지아 군인을 직접 고문했다고 비난했다. 전 내무부 장관이자 최고 법원 의장을 지낸 알란 파라스타예프는 조지아의 이메디 TV와의 인터뷰에서 코코이티가 여러 테러 공격을 조직하고 살인을 지시한 뒤, 이를 조지아의 소행으로 위장했다고 주장했다.[11] 코코이티 행정부는 이러한 주장들이 코코이티를 겨냥한 음모의 일부라며 일축했다.[12][13]

2009년 3월 3일, 러시아 신문 ''코메르산트''는 코코이티 행정부와 크렘린 사이에 러시아 예산으로 배정된 남오세티야 지원 자금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이 있으며, 츠힌발리가 "사회적 폭발" 직전에 있다고 보도했다.[14][15] 같은 해 5월, 알베르트 주소예프와 자불라트 타데예프는 코코이티의 권위주의적 통치, 부패, 그리고 러시아로부터의 "불신"을 이유로 그를 축출하기 위한 조기 대통령 선거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오세티야 야당 집회를 조직하려는 시도는 러시아 OMON에 의해 무산되었다.[16][17]

2010년 봄, 코코이티는 러시아 지원금 사용 문제로 집중적인 비판에 직면했다.[18] 국제정치분석센터(MTsPA)가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 코코이티의 지지율은 12.4%에 불과했고 응답자의 66.3%가 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19] 코코이티의 고문인 코스타 주가예프는 MTsPA가 실제로 남오세티야에서 조사를 수행한 적이 없다며 해당 여론 조사를 즉각 "거짓"이라고 비난했다.[20] 한편, MTsPA는 러시아 자금 관리 부실로 비판받던 당시 총리 바딤 브로프체프와 연관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21]

4. 2.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관련 논란

2008년 9월 11일, 코코이티는 독립 남오세티야가 결국 러시아 연방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러시아 관리들에 의해 즉각 부인되었고 코코이티는 이 발언을 곧 철회했다.[9] 그는 스스로를 유라시아주의자로 여기며, 남오세티야가 역사적으로 러시아 제국을 떠난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10]

2008년 12월부터 코코이티의 과거 동맹들은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를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에 기반을 둔 사업가이자 코코이티의 측근이었던 알베르트 주소예프는 코코이티 행정부가 남오세티야를 위해 배정된 러시아 자금을 횡령했으며, 이로 인해 지역이 "사회적 재앙" 직전에 놓였다고 비난했다. 유사한 비판은 남오세티야의 전 국방부 장관 아나톨리 바라케비치와 전 총리 유리 모로조프에 의해서도 제기되었다. 바라케비치는 더 나아가 코코이티가 러시아-조지아 전쟁 중 츠힌발리에서 도망쳤으며, 포로로 잡힌 조지아 군인을 직접 고문했다고 주장했다. 남오세티야의 전 내무부 장관이자 최고 법원 의장을 지낸 알란 파라스타예프는 조지아의 이메디 TV와의 인터뷰에서 코코이티가 여러 테러 공격을 조직하고 살인을 지시한 뒤, 이를 조지아의 소행으로 위장했다고 폭로했다.[11] 코코이티 행정부 측은 이러한 주장들을 코코이티에 대한 음해 공작의 일부라며 일축했다.[12][13]

2009년 3월 3일, 러시아 신문 ''코메르산트''는 코코이티 행정부와 크렘린 사이에 러시아 연방 예산에서 남오세티야에 배정된 지원 자금의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이 있으며, 츠힌발리가 "사회적 폭발" 직전에 있다고 보도했다.[14][15] 2009년 5월, 알베르트 주소예프와 자불라트 타데예프는 코코이티의 권위주의적 통치, 부패, 그리고 러시아로부터의 "불신"을 이유로 그를 축출하기 위한 조기 대통령 선거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오세티야 야당 집회를 조직하려는 첫 시도는 러시아 OMON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16][17]

2010년 봄에도 코코이티는 주로 러시아 지원금 사용 문제와 관련하여 지속적인 비판에 직면했다.[18] 국제정치분석센터(MTsPA)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코코이티의 지지율은 12.4%에 불과했으며, 응답자의 66.3%가 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19] 이에 대해 코코이티의 고문인 코스타 주가예프는 MTsPA가 실제로 남오세티야에서 조사를 수행한 적이 없다며 해당 여론 조사를 즉시 "거짓"이라고 비난했다.[20] 한편, MTsPA는 러시아 자금 관리 문제로 비판받던 당시 총리 바딤 브로프체프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21]

4. 3. 러시아와의 관계

1997년 2월, 초대 대통령 류드비크 치빌로프의 명령에 따라 주러시아 통상 대표로 임명되었으며, 러시아 하원 의원 체호예프의 보좌관으로 근무하며 러시아와의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게임 센터를 지배하는 러시아 마피아와 연관되어 있으며, 제2대 러시아 연방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관계로 인해 그의 내각에는 KGB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2008년 9월 11일, 코코이티는 독립 남오세티야가 결국 러시아 연방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러시아 관리들이 이를 즉각 부인하자 곧바로 발언을 철회했다.[9] 그는 스스로를 유라시아주의자라고 칭하며, 남오세티야가 역사적으로 러시아 제국을 떠난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10]

그러나 2008년 12월부터 코코이티의 전 동맹들은 러시아 언론을 통해 그를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코코이티의 측근이자 러시아 기반 사업가인 알베르트 주소예프는 코코이티 행정부가 남오세티야에 배정된 러시아 자금을 횡령했다고 비난하며, 지역이 "사회적 재앙" 직전에 있다고 주장했다. 유사한 비판은 전 국방부 장관 아나톨리 바라케비치와 총리 유리 모로조프에게서도 제기되었다. 바라케비치는 더 나아가 코코이티가 러시아-조지아 전쟁 중 츠힌발리에서 도망쳤으며, 포로로 잡힌 조지아 군인을 직접 고문했다고 주장했다. 전 내무부 장관이자 최고 법원 의장인 알란 파라스타예프는 조지아의 이메디 TV와의 인터뷰에서 코코이티가 테러 공격을 조직하고 살인을 명령한 뒤 이를 조지아의 소행으로 위장했다고 폭로했다.[11] 코코이티 행정부는 이러한 주장들을 코코이티에 대한 음모의 일부라며 일축했다.[12][13]

2009년 3월 3일, 러시아 신문 ''코메르산트''는 코코이티 행정부와 크렘린 사이에 러시아 예산에서 남오세티야에 배정된 지원 자금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이 있으며, 츠힌발리가 "사회적 폭발" 직전에 있다고 보도했다.[14][15] 2009년 5월, 알베르트 주소예프와 자불라트 타데예프는 코코이티가 권위주의적이고 부패했으며 러시아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며, 그를 축출하기 위한 조기 대통령 선거를 조직하려 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모스크바에서 오세티야 야당 집회를 열려 했으나 러시아 OMON에 의해 해산되었다.[16][17]

2010년 봄에도 코코이티는 주로 러시아 지원금 사용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18] 국제정치분석센터(MTsPA)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코코이티의 지지율은 12.4%에 불과했고, 응답자의 66.3%가 그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19] 코코이티의 고문인 코스타 주가예프는 MTsPA가 실제로 남오세티야에서 조사를 수행한 적이 없다며 해당 여론 조사를 즉시 "거짓"이라고 비난했다.[20] MTsPA는 러시아 자금 관리 부실로 비판받던 바딤 브로프체프 총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21]

4. 4. 러시아 마피아 연루설

코코이티는 상트페테르부르크게임 센터를 지배하는 러시아 마피아와 연계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는다. 또한 제2대 러시아 연방 대통령인 푸틴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그의 내각에는 KGB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는 평가가 있다.

5. 각료

2008년 코코이티는 관례를 깨고 외무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행정 각료를 해임했다. 외무부 장관만 유임되었다.[8]

직책이름
내무부 장관발레리 발리예프[8]
통상산업부 장관테이무라즈 초치예프[8]
청소년, 스포츠 및 관광부 장관엘레오노라 가바라예바[8]
보건부 장관누그자르 가바라예프[8]
민방위 및 비상 사태부 장관아나톨리 비빌로프[8]
법무부 장관아츠마즈 비체노프[8]
교통도로부 장관알란 콜리예프[8]
통신부 장관기오르기 카비소프[8]
경제개발부 장관이고르 바피예프[8]
국유자산 관리부 장관세르게이 파라스타예프[8]
천연자원부 장관비탈리 제라노프[8]
농업부 장관잠불라트 코자예프[8]
문화부 장관타멜란 주드초프[8]
언론 및 정보부 장관이리나 가글로예바[8]
외무부 장관무라트 지오예프[8]
국방부 장관유리 타나예프[8]
행정부 수장알렉산드르 볼샤코프[8]


참조

[1] 문서 Кокойты Джабейы фырт Эдуард
[2] 뉴스 South Ossetia's President Clamps Down http://www.iwpr.net/[...] Institute for War and Peace Reporting 2008-08-08
[3] 뉴스 Kokoyty: 'Caucasian Laws' Superior to Western Democracy http://www.civil.ge/[...] 2008-08-16
[4] 뉴스 South Ossetia Accuses OSCE of Bias http://rfe.rferl.org[...] 2008-08-15
[5] 뉴스 South Ossetian Supreme Court Nixes Proposed Referendum on Third Presidential Term http://www.rferl.org[...] 2011-07-10
[6] 뉴스 Eduard Kokoyty: I do not intend to run for a third term" (in Russian). Term http://osinform.ru/2[...] 2011-07-10
[7] 뉴스 Former KGB chief wins South Ossetia https://www.telegrap[...] 2014-08-20
[8] 웹사이트 S.Ossetian Cabinet Revamped https://civil.ge/arc[...] 2024-04-18
[9] 뉴스 Kremlin slaps down South Ossetia over claim it will join Russia http://www.timesonli[...] 2008-09-11
[10] 문서 Neo-Eurasianist Alexander Dugin on the Russia-Georgia Conflict http://www.cacianaly[...] CACI Analyst 2008-09-03
[11] 뉴스 Бывший глава МВД Южной Осетии обвинил Эдуарда Кокойты в терроризме http://lenta.ru/news[...] Lenta.ru 2009-02-23
[12] 문서 Georgia: Former separatist officials in South Ossetia turn against regional leader http://www.eurasiane[...] Eurasia Insight 2008-12-19
[13] 뉴스 Кокойты не был в Цхинвали во время боев – Баранкевич http://www.rian.ru/o[...] Kommersant 2008-12-05
[14] 뉴스 Контрольная для Цхинвали http://www.kommersan[...] Kommersant 2009-03-03
[15] 문서 Moscow, Tskhinvali at Odds over Flow of Aid Funds http://www.civil.ge/[...] Civil Georgia 2009-03-03
[16] 뉴스 В политическую борьбу вступает вольная http://www.kommersan[...] Kommersant 2009-05-23
[17] 문서 South Ossetian Opposition Group Protests In Moscow http://www.rferl.org[...] RFE/RL 2009-05-21
[18] 뉴스 Power Struggle Under Way in South Ossetia http://www.rferl.org[...] Radio Free Europe/Radio Liberty 2010-05-05
[19] 웹사이트 The economic and socio-political situation in the Republic of South Ossetia http://www.mcpa.info[...] International Center of Political Analysis 2010-05-05
[20] 뉴스 Коста Дзугаев: Президент-победитель не нравится тем, кого он победил http://cominf.org/no[...] IA "Republic" (South Ossetian government) 2010-05-05
[21] 뉴스 Сам себя не похвалишь – никто не похвалит (итоги расследования) http://osinform.ru/2[...] OSInform 201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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