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로디오노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예브게니 로디오노프는 1977년 출생하여 1996년 사망한 러시아 군인이다. 1995년 징집되어 체첸에서 복무하던 중 포로로 잡혔으며, 1996년 생일에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후 용기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러시아 정교회 내에서 성인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공식적인 시성은 거절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민간성인 - 에바 페론
아르헨티나의 배우이자 후안 페론 대통령의 부인인 에바 페론은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대중적 인기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 사업과 여성의 정치적 권리 신장에 기여했으며, 그녀의 삶은 뮤지컬과 영화로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고 평가가 엇갈리는 논쟁적인 인물이다. - 민간성인 - 체 게바라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남아메리카 여행 중 사회 불의를 목격하고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여 쿠바 혁명에 참여, 쿠바 해방 후 혁명 정부에서 활동하다 국제적인 혁명 투쟁을 위해 콩고와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다 볼리비아에서 처형되었으며 그의 삶과 사상은 혁명가로서의 헌신과 반제국주의 정신을 상징한다. - 체첸 전쟁 관련자 - 아나톨리 쿨리코프
아나톨리 쿨리코프는 소련 및 러시아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러시아 내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체첸 분쟁에 참여했고 경제학 박사 학위를 소지한 인물이다. - 체첸 전쟁 관련자 - 샤밀 바사예프
샤밀 바사예프는 체첸 출신의 군사 지도자이자 테러리스트로, 체첸 독립을 주장하며 여러 분쟁과 테러를 주도하다가 2006년 사망했다. - 모스크바주 출신 - 알렉세이 나발니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의 변호사이자 정치 활동가, 반부패 운동가로서, 러시아 정부 고위층의 부정부패 폭로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 비판 활동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나, 독살 시도 후 체포 및 투옥되었고, 그의 활동과 사망은 엇갈린 평가와 국제적 비난을 야기했다. - 모스크바주 출신 - 로만 마댜노프
러시아의 배우 로만 마댜노프는 1971년 영화 데뷔 후 145편 이상의 작품에서 폭넓은 연기를 선보이며 러시아 연방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고, '리바이어던' 등의 대표작으로 황금 독수리상과 니카상을 수상했으며, 2024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예브게니 로디오노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로디오노프 |
출생 | 1977년 5월 23일 |
출생지 | 치비를레이, 펜자 오블라스트,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소련 |
사망 | 1996년 5월 23일 (향년 19세) |
사망 원인 | 참수에 의한 사형 |
사망 장소 | 바무트 교외, 체첸 이치케리아 공화국 |
군종 | 러시아 연방 보안국 국경 수비대 |
복무 기간 | 1995년–1996년 |
계급 | 사병 |
부대 | 2631 국경 부대 |
참전 | 제1차 체첸 전쟁 |
전투 | 바무트 전투 |
상훈 | 용기 훈장 (사후) |
2. 초기 생애
예브게니 로디오노프는 1977년 5월 23일 펜자주 쿠즈네츠크 구의 치비르레이 마을에서 류보프 바실리예브나와 알렉산드르 콘스탄티노비치 로디오노프 사이에서 태어났다.[2] 그의 아버지 알렉산드르 콘스탄티노비치는 목수이자 가구 제작자였으며,[3][4] 아들 예브게니가 사망한 지 일주일 만에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 류보프 바실리예브나는 가구 기술 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로디오노프는 본래 요리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1995년 6월 25일 징병되어 러시아 연방 무장군에 입대했다. 그는 칼리닌그라드주 오제르스크에 위치한 러시아 국경군 제2631 군부대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같은 해 7월 10일에 군 복무 선서를 했다.[5] 이후 체첸에 배치되어 러시아군의 국경 경비대 소속 제479 국경군 특수 작전 부대(3807번) 제3 국경 초소에서 RPG 운용병으로 복무했다.[5]
1996년 2월 14일, 예브게니 로디오노프는 동료 병사 3명과 함께 체첸 공화국 이치케리아 반군에게 포로로 잡혔다.[4] 그의 어머니 류보프는 아들을 찾기 위해 체첸으로 갔으나 아들의 행방을 쉽게 찾지 못했고, 결국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나서야 아들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예브게니 로디오노프는 사후에 러시아 용기 훈장을 수여받았다.[8] 그의 죽음 이후 러시아 정교회 내부에서는 그를 기독교 성인이자 신앙을 위한 순교자로 시성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특히 일부 러시아 군인들은 정부로부터 버려졌다고 느끼며 그의 형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등 그를 깊이 숭배했다.[8] 그중 한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1978년, 그는 1세의 나이에 러시아 정교회 신자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1988년이나 1989년, 할머니와 함께 교회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받은 가슴 십자가는 착용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반대했지만, 예브게니는 나중에 십자가를 착용하기 시작했고 절대 제거하지 않았으며, 원래의 체인 대신 작은 끈으로 그것을 착용했다.[4]
그는 모스크바주의 쿠릴로보에 있는 시골 학교에서 9학년 과정을 마친 후, 가구 공장에서 일하며 운전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5][4]
3. 군 복무와 포로 생활
1996년 1월 13일, 로디오노프는 나즈란 국경 부대(2094번)로 옮겨져 코카서스 특별 국경 지구에 배치되었다.[4] 약 한 달 뒤인 1996년 2월 14일, 그는 동료 사병 안드레이 트루소프, 이고르 야코블레프, 알렉산드르 젤레즈노프와 함께 도로 경계 임무를 수행했다. 임무 중 그들은 무기를 운반하던 구급차 한 대를 멈춰 세웠는데, 이 차량은 체첸 공화국 이치케리아 여단장 루슬란 하이호로예프가 운전하고 있었다. 구급차를 검사하려던 순간, 네 명의 군인은 매복해 있던 12명의 체첸 반군에게 제압당해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사건 초기, 군 당국은 이들을 탈영병으로 발표했고, 군 경찰이 로디오노프의 어머니 집에 찾아가 아들의 행방을 묻기도 했다. 그러나 초소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혈흔과 격투 흔적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군 당국은 실종된 군인들이 작전 중 실종되었으며, 포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를 수정했다. 아들의 소식을 들은 로디오노프의 어머니 류보프 바실리예브나는 직접 체첸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부대 지휘관은 아들이 포로로 잡혔다는 사실만을 확인해 주었다. 이후 샤밀 바사예프가 류보프에게 아들을 찾는 것을 돕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으나, 결국 류보프는 상당한 금액의 돈을 지불하고 나서야 아들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4. 죽음과 장례
Pravda.ru는 1996년 5월 23일, 로디오노프가 자신의 생일에 처형되었다는 내용을 포함한, 그의 죽음에 이르는 사건들을 상세히 설명하는 확인되지 않은 출처 불명의 보고서를 게재했다.[6]
로디오노프가 착용했던 십자가는 피지 성 니콜라스 교회에 주어졌다.[6] 그의 시신은 모스크바 인근 사티노-루스코예 마을 근처의 승천 교회에 안장되었다.[7]
5. 성인 추대 논란과 숭배
주님, 당신의 순교자 예브게니는 고통 속에서 당신, 우리의 하나님으로부터 썩지 않는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힘으로 그는 고문자들을 물리쳤고, 무력한 악마의 오만을 물리쳤습니다. 그의 기도를 통해 우리 영혼을 구원하소서.
로디오노프를 그린 성상(이콘)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 역시 아들의 성상을 가지고 있는데, 그녀는 이 성상에서 때때로 향기가 흘러나올 정도로 강하게 풍긴다고 증언하며 이를 성스러운 현상으로 믿고 있다.[8]
이러한 대중적인 신앙심을 바탕으로 신자들은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에 로디오노프의 공식적인 시성을 요청했으나, 초기에 거부되면서 러시아 정교회 내에서 찬반 논란이 일었다.[8]
5. 1. 시성 반대 의견
새로운 순교자로 여겨지는 로디오노프에 대한 대중의 경건한 신심 때문에, 신자들은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에 그의 공식적인 시성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이 요청이 거절되었고, 이는 러시아 정교회 내부에 분열을 일으켰다.
시성 위원회 서기인 막심 막시모프는 러시아 정교회의 공식 간행물 ''Tserkovny Vestnik'' (교회 게시판)을 통해 종교회의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의 주장은 다음 세 가지 요점으로 요약될 수 있다.
# 로디오노프가 기독교 신앙 때문에 처형되었다는 유일한 증거는 아들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그의 어머니 증언뿐이라는 점.
# 러시아 정교회는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을 성인으로 시성한 전례가 없다는 점.
# 볼셰비키 정권의 붕괴와 함께 '새로운 순교자'의 시대는 끝났다고 보는 점.
그러나 막시모프는 시성 절차 없이도 고인을 존경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총대주교 알렉시 2세(모스크바)는 개인적으로 로디오노프의 삶에 대한 대중적인 이야기를 축복했지만, 그의 숭배가 자칫 이슬람 혐오(Islamophobia) 감정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8]
알렉산더 샤르구노프를 포함하여 이러한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로디오노프에 대한 사람들의 깊은 신앙심 자체가 진실성의 충분한 증거이며, 그의 무덤에서 병자가 치유되고 적들이 화해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은 로디오노프가 전쟁 중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 포로 상태에서 순교한 것이며, 순교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이단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5. 2. 시성 찬성 의견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의 시성 거부 결정에 대해, 알렉산더 샤르구노프를 포함한 반대자들은 강하게 반박했다. 이들은 로디오노프에 대한 사람들의 깊은 신앙심과 사랑의 표현 자체가 그의 성스러움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로디오노프의 무덤에서 병자가 치유되고 서로 적대하던 이들이 화해하는 기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8]
더 나아가, 이들은 로디오노프가 단순히 전쟁 중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 포로로 잡힌 상태에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순교자의 시대가 특정 시점에 끝났다고 단정하는 것은 거의 이단에 가까운 주장이라고 비판했다.[8]
참조
[1]
간행물
Евгений — значит благородный
http://www.russdom.r[...]
Русский Дом
2006-05
[2]
웹사이트
ГТРК «Пенза»: В Кузнецке почтили память убитого в Чечне российского солдата Евгения Родионова
https://web.archive.[...]
2020-04-28
[3]
간행물
Русский солдат выбрал смерть. Со Христом…
http://likirussia.ru[...]
Православные лики России
2009-05-06
[4]
서적
Новый мученик за Христа воин Евгений
http://www.moral.ru/[...]
Хронос-Пресс
2002
[5]
웹사이트
«…Смерть от мучителей яко чашу Христову прияв»
http://www.srpo.ru/f[...]
[6]
뉴스
Russian Soldier Goes Through Chechen Captivity Hell
https://english.prav[...]
Pravda Online
2003-01-08
[7]
웹사이트
Церковь Вознесения Господня в Сатине-Русском
http://www.temples.r[...]
[8]
웹사이트
Kurilovo Journal; From Village Boy to Soldier, Martyr and, Many Say, Saint
https://query.nytime[...]
2003-11-2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