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와라 지진
1. 개요
오다와라 지진은 일본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를 중심으로 발생한 지진들을 의미한다. 주요 지진으로는 1633년 간에이 오다와라 지진(M7.0), 1782년 덴메이 오다와라 지진(M7.0), 1853년 가에이 오다와라 지진(M6.7) 등이 있으며, 2007년 가나가와현 서부 지진(M4.9)도 오다와라 지진으로 분류된다. 이 지진들은 오다와라성, 가옥, 산사태, 쓰나미 등 다양한 피해를 발생시켰다.
| 이름 | 오다와라 지진 |
|---|---|
| 다른 이름 | 가나가와현 서부 지진 |
| 로마자 표기 | Odawara Jishin |
| 발생 위치 | 일본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 인근 |
|---|---|
| 발생 원인 | 사가미 해곡 거대 지진 |
| 관련 재해 | 지진해일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발생 날짜 | 1782년 8월 23일 |
|---|---|
| 진앙 | 사가미만 |
| 규모 | M 7.0 정도 |
| 최대 진도 | 6 (강진) |
| 피해 상황 | 가옥 795채 파괴, 1500채 손괴, 사망 62명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발생 날짜 | 1853년 3월 11일 |
|---|---|
| 진앙 | 사가미만 |
| 규모 | M 6.7 정도 |
| 최대 진도 | 6 (강진) |
| 피해 상황 | 가옥 2,367채 파괴, 사망 37명 |
-
1853년 일본 -
흑선
흑선은 16세기 남만 무역 시대부터 19세기 페리 제독 내항까지 일본에 온 서양 선박을 지칭하는 용어로, 초기에는 검게 칠해진 포르투갈 무역선을, 이후에는 페리 제독의 증기선 함대를 가리키며 쇄국 시대를 종식시키고 일본 개항의 계기가 되었다. -
1853년 일본 -
페리 원정
페리 원정은 1853년과 1854년에 매튜 C.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해군 함대가 무력을 사용하여 일본에 개국을 요구한 사건으로, 미국의 이해관계와 일본의 쇄국 정책에 충격을 주어 미일 화친 조약 체결과 일본 근대화의 계기가 되었다. -
가나가와현의 역사 -
무사시국
무사시국은 현재의 도쿄도, 사이타마현, 가나가와현에 걸쳐 있던 일본의 옛 행정 구역으로, 게노국과 통합되어 성립되었으며, 중세에는 무사 집단이 등장했고 근세에는 에도 막부의 중심지였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3개 현으로 나뉘었다. -
가나가와현의 역사 -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가마쿠라 막부를 개창하고 최초의 세이이타이쇼군이 된 무장으로, 헤이지의 난 이후 유배되었다가 반 다이라 씨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막부를 설립했으나, 권력 다툼과 낙마 사고사 등 논란 속에 일본 봉건 사회의 기틀을 마련했다. -
오다와라시의 역사 -
오다와라 정벌
오다와라 정벌은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호조 우지마사의 교토 방문 거부를 계기로 간토 지방의 호조씨를 정벌한 전투로, 도요토미군의 압도적인 병력과 포위 작전으로 호조씨의 여러 성이 함락되고 호조씨 영토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할양되어 일본 통일의 전환점이 되었다. -
오다와라시의 역사 -
오다와라성
오다와라성은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에 위치하며 호조씨의 거성이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함락된 후 오쿠보 가문의 지배를 받았고, 현재는 일부 복원되어 오다와라성터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일본 100대 명성에 선정되었다.
2. 주요 지진
오다와라 지역에서는 1633년, 1782년, 1853년에 규모 7.0~6.7의 큰 지진이 발생하여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컸다. 특히 1633년 간에이 오다와라 지진은 150명이 사망했고, 1853년 가에이 오다와라 지진은 24명이 사망하고 오다와라성 등이 파괴되었다.
2.1. 간에이 오다와라 지진 (1633년)
1633년 3월 1일(간에이 10년 1월 21일)에 간에이 오다와라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규모는 7.0(7.1-7.2로도 추정)이고, 진앙은 이다. 오다와라에서 가장 강한 진동이 감지되었으며, 오다와라성의 망루, 성문, 담벼락 등이 파손되었다. 민가도 다수 붕괴되어 150명이 압사하였다. 하코네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했고, 아타미와 아지로에서는 쓰나미 피해가 발생하였다.
2.2. 게이안 오다와라 지진 (1648년)
1648년 6월 13일(게이안 원년 4월 22일)에 발생했다. 규모는 7.0 정도로 추정된다. 오다와라성이 손상되었고, 사망자 1명이 발생했다. 하코네에서 낙석이 발생했으며, 영내에서 가옥 붕괴 피해가 많았다.
2.3. 덴메이 오다와라 지진 (1782년)
1782년 8월 23일 (天明일본어 2년 7월 15일)에 발생했다. 지진 규모는 7.0 (7.3이라고도 함) 정도였다. 지진 발생 초순부터 전진이 있었고, 피해가 커서 오다와라성의 야구라, 돌담에 피해가 발생했다. 민가는 약 1천 호가 붕괴되었으며, 에도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 하코네 산, 오야마, 후지 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아타미에서 쓰나미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진원이 아시가라 평야에 있으며 오다와라 지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한편, 쓰지 요시노리는 진원역이 해저까지 뻗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2.4. 가에이 오다와라 지진 (1853년)
가에이 6년 2월 2일 (1853년 3월 11일),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 부근에서 발생한 지진이다. 지진 규모는 6.7로, 오다와라(특히 동남부), 쓰카하라, 가네코 등에서 진도 7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오전 10시쯤 본진이 발생하여 10분에서 15분 사이에 2차례 지진이 일어났고, 다음날 오후 4시경에는 최대 여진이 발생하여 추가 피해가 발생했다.
오다와라성에서는 천수의 기와와 벽이 떨어져 나갔고, 번교(藩校)인 집성관이 붕괴되었다. 가옥 피해는 전파 1,032호, 반파 2,477호, 피해 544호였으며, 사망자는 24명이었다. 하코네, 네부카와 관소, 마나즈루에도 피해가 발생했고, 하코네 등 341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마나즈루 항에서는 쓰나미에 의한 썰물이 관측되었으나 피해는 없었다. 에도성 오테몬의 와타리야구라 안의 벽이 모두 떨어졌고, 도카이도는 도로와 관소 등이 피해를 입어 1주일 정도 통행이 불가능했다.
각 지역의 추정 진도는 다음과 같다.
| 진도 | 지역 |
|---|---|
| 7 | 오다와라, 쓰카하라, 가네코 |
| 6 | 누노카와, 나카누마, 세키모토, 야마다, 야구라자와, 사이조지, 다카오 |
| 5 | 가와무라, 나카히나타, 스구모가와, 센고쿠하라 |
2.5. 2007년 가나가와현 서부 지진
2007년 10월 1일 오전 2시 21분, 가나가와현 서부를 진원으로 하는 규모 4.9의 지진이 발생했다. 하코네정에서 진도 5강이 관측되었다. 일본 기상청은 이 지진을 "가나가와현 서부 지진"으로 명명했다.
진원이 얕아 진원 부근에서는 큰 흔들림이 관측되었으나, 큰 피해는 없었다. 오다와라시에서 경상자 2명이 발생했고, 히라츠카시에서는 침대에서 떨어진 여성이 어깨를 다쳤다. 하코네정에서는 건물 일부가 파손된 사례가 5건 있었으며, 가나가와현 내 214세대가 일시적으로 단수 피해를 겪었다. 오다와라시의 한 병원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정지되기도 했다.
이 지진은 긴급 지진 속보가 일반에 제공되기 약 6시간 전에 발생했다. 철도 운행 중단이나 도로 통제는 없었으며, 원자력 발전소에도 영향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