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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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성정은 조선 인조 5년(1627년)에 처음 지어진 정자로, 현재 건물은 1927년 강릉객사의 일부를 옮겨 지은 것이다. 현종 7년(1666년) 송광연이 사용했으며, 조선 말기에는 의병들이 왜병과 전투를 벌인 장소로 활용되었다. 한국 전쟁 때는 공산군에 대항한 한국청년단원 222명의 충혼탑과 학생 3명의 묘가 있는 유적지이기도 하다. 4칸 규모의 T자형 건물로, 12개의 현판과 김규진, 석둔거사가 쓴 '오성정' 현판이 걸려 있다. 1927년 당시 백성들의 역사적 염원을 담고 있으며,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오성정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오성정
오성정
이름오성정 (五星亭)
유형유형문화재
지정 번호47
지정일1974년 9월 9일
주소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변로 224-12 (노암동)
시대조선시대
상세 정보
수량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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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오성정은 조선 인조 5년(1627년)에 처음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정자이다. 현종 7년(1666년)에는 송광연이 이곳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나라가 위태로웠던 조선 말기에는 의병들이 이곳에 모여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의 정자 건물은 1927년 정묘생(丁卯生) 동갑계에서 강릉객사의 일부 자재를 옮겨와 다시 지은 것이다. 이 과정에는 나라 잃은 설움 속에서 주권 회복을 염원했던 당시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정자 인근에는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한국청년단원 222명을 추모하는 충혼탑과, 서울 수복을 하루 앞두고 전사한 학생 3명의 묘가 자리하고 있어, 오성정은 항일 투쟁과 호국의 역사를 함께 간직한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받는다.

2.1. 건립과 변천

조선 인조 5년(1627년)에 처음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현종 7년(1666년)에는 송광연이 강릉에 머물 때 정자 아래에 작은 집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나라가 위태롭던 조선 말기에는 의병들이 이곳에 모여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현재의 건물은 1927년 정묘생(丁卯生) 동갑계에서 강릉객사의 일부 자재를 옮겨와 다시 지은 것이다. 이 건물에는 당시 백성들의 나라 잃은 설움과 주권 회복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고 평가된다. 또한, 한국전쟁 중 공산군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한국청년단원 222명의 영혼을 기리는 충혼탑과, 서울 수복 하루 전에 전사한 학생 3명의 묘가 정자 인근에 있다.

2.2. 항일 및 호국 유적

조선 말기, 나라가 위태롭던 시기에는 의병들이 이곳에 모여 왜병과 전투를 벌이기도 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한국청년단원 222명의 영혼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이와 함께 서울 수복을 하루 앞두고 용감히 싸우다 목숨을 잃은 학생 3명의 묘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 이곳이 호국의 유적지임을 보여준다.

3. 건축

오성정은 조선 인조 5년(1627년)에 처음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건물은 1927년, 당시 정묘년(丁卯年)에 태어난 동갑들이 모인 계에서 강릉객사의 일부 자재를 가져와 다시 지은 것이다. 원래 이곳은 현종 7년(1666년) 송광연이라는 인물이 강릉에 머물 때 정자 아래 작은 집을 짓고 자주 찾아와 쉬던 장소였다. 1927년에 다시 지어진 오성정 건물에는 당시 일제 강점기 하에 있던 백성들의 나라 잃은 슬픔과 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3.1. 구조

총 4칸 규모의 1층 건물이다. 벽 없이 난간만 두른 상태에서 마루만 놓은 T자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자 안에는 12개의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밖에는 해강 김규진과 석둔거사가 쓴 '오성정(五星亭)' 현판이 걸려 있다.

3.2. 현판

정자 안에는 12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정자 밖에는 해강 김규진과 석둔거사가 쓴 '오성정(五星亭)' 현판이 걸려 있다.

4. 문화적 가치

오성정은 1927년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에 강릉객사의 일부를 옮겨 다시 지은 건물로, 당시 나라를 잃은 백성들의 설움과 주권 회복에 대한 소리 없는 염원이 담겨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는 단순한 정자를 넘어, 역사적 아픔과 희망을 함께 간직한 공간으로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

특히 조선 말기 나라가 위태로웠을 때에는 의병들이 이곳에 모여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한국청년단원 222명의 영혼을 기리는 충혼탑과 학생 3명의 묘가 함께 있어, 근현대사의 비극과 저항 정신을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오성정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민족의 역사와 정신이 깃든 장소로서 높은 보존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