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타 고이치
1. 개요
오이타 고이치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기업인이다. 1936년 도쿄 제국대학 재학 중, 1936년 하계 올림픽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참가하여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이 경기는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리며, 2016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스미토모 금속 공업 감독을 역임했으며, 이후 스미토모 금속 공업, 스미킨 물산, 다이킨 공업의 임원 및 회장을 지냈다. 1996년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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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마 앤틀러스의 축구 감독 -
오이와 고
오이와 고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으로, 선수 시절 나고야, 주빌로 이와타,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활약했으며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고, 감독으로서는 가시마 앤틀러스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일본 U-23 국가대표팀 AFC U-23 아시안컵 우승 등의 업적을 달성하여 AFC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가시마 앤틀러스의 축구 감독 -
이시이 마사타다
이시이 마사타다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며, 선수 시절에는 가시마 앤틀러스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고, 지도자로서 가시마 앤틀러스와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여러 우승을 달성했다. -
1996년 사망 -
네빌 프랜시스 모트
네빌 프랜시스 모트는 영국의 물리학자로서 기체에서의 충돌, 고체 물리학 연구를 수행하고 거니-모트 이론을 제시했으며, 197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1996년 사망 -
이병주 (1912년)
이병주(1912년)는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대한민국의 의학박사이자 정치인으로, 대한결핵협회 이사, 민주공화당 창당준비위원, 재단법인 성균관 이사장을 역임하고 제7·8·9대 국회의원 및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위원, 그리고 민주공화당 주요 직책과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을 지냈다. -
일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일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고지마 노부유키
고지마 노부유키는 쇼난 벨마레, 아비스파 후쿠오카 등에서 활약한 일본의 은퇴한 축구 골키퍼 선수로, 쇼난 벨마레 시절 천황배와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고 은퇴 후에는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오이타는 1914년 4월 9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부립 제5중학교(현 고이시카와 고등학교), 구제 미토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 제국 대학에 입학하여 아식 축구부에 소속되었다.
재학 중이던 1936년에는 베를린 올림픽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원래 포지션은 하프백(현재의 수비형 미드필더에 해당)이었으나, 올림픽 본선에서는 3백 시스템 도입에 따라 중앙 풀백(스위퍼 역할)으로 전환하여 출전했다. 올림픽에서의 활약은 아래 문단에서 자세히 다룬다.
도쿄 제국 대학 경제학부 졸업 후인 1938년 4월 7일, 잉글랜드의 이즐링턴 코린시안즈와의 친선 경기에 일본 대표로 출전했으며, 이 경기가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출전 기록이다.
2.1. 1936년 베를린 올림픽
1936년, 도쿄 제국대학 학생이었던 오이타는 베를린에서 열린 1936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할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선발되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8월 4일 스웨덴과의 경기를 통해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본래 포지션은 미드필더였으나 이 경기에서는 수비수로 출전했다. 일본은 이 경기에서 강호 스웨덴을 상대로 3-2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일본 축구 역사상 올림픽 본선 첫 승리이자 큰 이변으로 평가받아 일본 내에서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리게 되었다. 2016년, 당시 일본 대표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오이타는 8월 7일에 열린 이탈리아와의 경기에도 출전했다. 그는 1936년 한 해 동안 일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2경기에 출전했다.
주요 경기 기록
3.1. 스미토모 금속 축구단 (가시마 앤틀러스) 감독
1947년 은퇴 후 오이타는 신생 클럽 스미토모 금속의 감독이 되어 1956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3.2. 기업인 활동
도쿄 제국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1938년 4월 만주 스미토모 금속 공업(주)에 입사하였다. 같은 해 4월 7일, 잉글랜드의 이즐링턴 코린시안즈전에 일본 대표로 출전하였으나, 이것이 그의 마지막 일본 대표 경기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46년 10월에는 스미토모 금속 공업(현: 일본제철)에 입사하였다. 또한, 1947년에 창설된 스미토모 금속 공업 축구단(현: 가시마 앤틀러스)의 감독을 1956년까지 겸임하기도 했다.
스미토모 금속 공업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 연도 ! 직책 ! |
|---|
| 이사 | |
| 상무 이사 | |
| 전무 이사 | |
| 부사장 | |
스미토모 금속 공업 임원 퇴임 후에는 1978년 6월부터 스미킨 물산(현: 닛테츠 물산)의 이사회 회장을 맡았고, 1982년 2월부터는 다이킨 공업의 이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다이킨 공업 회장직은 1989년 3월기를 마지막으로 퇴임하였다.
5. 소속 클럽
* 미토 고등학교 (구제)
* 도쿄 제국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