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방
1. 개요
오정방은 해주 오씨 시조 오인유의 14세손이자 정무공파의 파조로, 조선 선조, 광해군, 인조 시대의 무신이다. 1583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호성 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이후 전라도 병마절도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했고, 인조반정 이후 포도대장과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1625년에 사망했으며, 경기도 양성에 묘소가 있다.
-
조선의 진주목사 -
김시민
김시민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사로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4천 명의 군사로 2만 명의 일본군을 물리쳤으나 전투 중 사망하여 선무공신에 봉해진 조선의 무신이다. -
조선의 진주목사 -
최립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최립은 1561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뛰어난 문장과 외교적 역량으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와의 외교 문서 작성에 기여했으며, 당대 문인들과 교류하며 이름을 떨쳤으나 당쟁 속에서 비판을 받기도 하고 사후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
호성공신 -
이항복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항복은 자가 자상, 호가 백사이며 경주 이씨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선조를 보필하여 호성공신 1등에 책록되고 영의정까지 지냈으나, 광해군 대에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 유배되어 생을 마감한 후 관작이 회복되고 문충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호성공신 -
심우승
심우승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기대승의 문하에서 수학,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승진을 거듭했으며, 호조참의 재직 중 재정 안정에 기여, 경기감사 재임 시에는 세금과 부역을 균등하게 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고 사후 호성공신 2등에 책록, 청계부원군으로 추봉,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
조선의 병마절도사 -
방유령
방유령은 1460년에 태어나 1529년에 사망한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김종직의 문인이며 갑자사화로 파직되었으나 복귀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훈구파이면서 사림파를 두둔하는 등 복잡한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
조선의 병마절도사 -
김종서 (1383년)
김종서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무신, 학자로, 육진을 개척하고 국경을 확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문신으로서도 활약했으나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게 살해되었다.
2. 생애
오정방은 해주 오씨 시조 오인유의 14세손이며, 정무공파(貞武公派)의 파조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1591년(선조 24) 어머니 상을 당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복직하여 도총부 도사, 부령부사, 정평 부사 등을 역임했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모신 공으로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1603년(선조 36) 가선 대부로 승진하여 강계 부사가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이후 동지중추부사 겸 부총관, 포도대장, 군기시 제조 등에 임명되었다. 전라도 병마절도사 겸 장흥 부사로 재직 시에는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1605년(선조 38)에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겸 진주 목사로 임명되었다. 1619년(광해군 11) 훈련도정을 역임하고, 전라도 우수사로 부임하였다. 1622년(광해군 14)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백성들이 그의 유임을 바랄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다시 포도대장에 임명되었고,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다 사직했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는 왕을 호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625년(인조 3) 11월 18일,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경기도 양성에 안장되었다.
2.1. 임진왜란 이전
해주 오씨 시조 오인유(吳仁裕)의 14세손이며, 해주 오씨 정무공파(貞武公派)의 파조다.
1583년(선조 16) 내금위(內禁衛)로 무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사온서 주부(司醞署主簿)로 있다가 흥덕 현감(興德縣監)으로 나갔다. 1586년(선조 19년)에 조정으로 들어와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이 되었다가 방원 만호(防垣萬戶)로 옮겼다. 겨울에 아버지 오수천(吳壽千)의 상(喪)을 당하였고 복제(服制)를 마치고 난 뒤 사복시 판관(司僕寺判官)에 임명되었으며, 얼마 후에 영흥 판관(永興判官)으로 나갔다.
1591년(선조 24년) 어머니의 상을 당했다.
2.2. 임진왜란 시기
1591년(선조 24년) 어머니의 상을 당했으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탈정 기복(奪情起復)하여 도총부 도사(都摠府都事)에 임명되었다가 경력(經歷)으로 승진되었으며, 이어 부령부사(富寧府使), 정평 부사(定平府使)를 지냈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1604년(선조 37년)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2.3. 임진왜란 이후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탈정 기복(奪情起復)하여 도총부 도사에 임명되었다가 경력(經歷)으로 승진되었으며, 이어 부령부사(富寧府使), 정평 부사(定平府使)를 지냈다.
1603년(선조 36년) 가선 대부(嘉善大夫)로 승진되면서 강계 부사가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그 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겸 부총관(副摠管)ㆍ포도 대장(捕盜大將)ㆍ군기시 제조(軍器寺提調)에 임명되었다. 겨울에 전라도 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 겸 장흥 부사(長興府使)에 임명되었는데, 군민(軍民)이 공을 위하여 비석을 세우고 덕(德)을 칭송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1604년(선조 37년)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605년(선조 38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 겸 진주 목사(晉州牧使)로 임명되었다.
1619년(광해군 11년) 훈련 도정(訓鍊都正)에 임명되었고, 그 후 전라도 우수사(全羅道右水使)로 나갔다.
1622년(광해군 14년) 체직되어 돌아올 때 민졸(民卒)이 바퀴 자국에 드러누워 더 머물러 주기를 바랄 정도였다.
1623년(인조 원년) 인조반정 초에 다시 포도대장에 임명되었고, 그 후 경상좌도 병마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로 나갔다가 사직을 청하여 체직되었다.
1624년(인조 2년)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인조가 공산성(公山城)으로 행행(行幸)할 때 호가 대장(扈駕大將)으로 행차를 호종하였다.
1625년(인조 3년) 11월 18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74세였다. 임금이 부의(賻儀)를 내리도록 명하고 예관(禮官)을 보내 치제(致祭)하였다. 경기도 양성(陽城) 천덕산(天德山) 선영(先塋) 간좌(艮坐) 곤향(坤向)의 자리에 장사지냈다.
2.4.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
1623년(인조 원년) 인조반정 초에 다시 포도대장에 임명되었고, 그 후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나갔다가 사직을 청하여 체직되었다.
1624년 (인조 2년)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인조가 공산성으로 행행(行幸)할 때 호가 대장(扈駕大將)으로 행차를 호종하였다.
2.5. 사망
1625년(인조 3년) 11월 18일에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금은 부의(賻儀)를 내리도록 명하고 예관(禮官)을 보내 치제(致祭)하였다. 경기도 양성(陽城) 천덕산(天德山) 선영(先塋) 간좌(艮坐) 곤향(坤向)의 자리에 장사지냈다.
3. 가족 관계
4. 관련 문화재
* 안성 정무공오정방고택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