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키 스케마스
1. 개요
오제키 스케마스는 센고쿠 시대 말기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무장이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에 서서 공을 세웠으며, 이 공로로 20,000석의 다이묘가 되었다. 1605년 병으로 은거한 후 1607년에 3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씨명 | 오제키 씨 |
|---|---|
| 이름 | 오제키 스케마스 |
|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에도 시대 초기 |
| 출생 | 덴쇼 4년 (1576년) |
| 사망 | 게이초 12년 4월 1일 (1607년4월 26일) |
| 개명 | 미로쿠로 (유명) → 스케마스 |
| 계명 | 주고인덴 겐세이 소우에 다이코지 |
| 묘소 | 도치기현오타와라시 구로바네타초 다이오지 |
| 관위 | 종5위하·좌위문독 |
| 막부 | 해당 없음 |
| 주군 | 해당 없음 |
| 번 | 시모쓰케구로바네번 번주 |
| 씨족 | 오제키 씨 |
| 부모 | 아버지: 오제키 다카마스, 어머니: 우루노 요시모토 딸 |
| 형제 | 하루마스, 기요마스, 스케마스, 시게나오, 가나마루 스케미쓰 실, 센본 스케마사 정실 (후 아시노 모리야스 실) |
| 배우자 | 정실: 사타케 요시히사 딸 |
| 대수 | 1 |
|---|---|
| 임기 | 1596년 ~ 1605년 |
| 후임자 | 오제키 마사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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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6년 출생 -
아사노 요시나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아사노 요시나가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무장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 아사노 나가마사의 아들이며 임진왜란, 세키가하라 전투 등에 참전했고, 세키가하라 전투 후 와카야마 번주가 되었으며 도요토미 가문 몰락 후 암살설이 돌기도 했다. -
1576년 출생 -
정충신
정충신은 임진왜란 때 무관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기여했고, 다방면에 능통했으며, 사후 충무의 시호를 받았다.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다이묘 -
오다 나가마스
오다 나가마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센노 리큐에게 다도를 배워 유라쿠류를 창시한 다인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호 유라쿠는 도쿄도 유라쿠초 지명의 유래 설이 있다.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다이묘 -
사나다 노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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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 사망 -
유키 히데야스
유키 히데야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차남으로 태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양자로 보내졌으며, 유키 가문의 가독을 잇고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에치젠의 영주가 되었다. -
1607년 사망 -
루스 마사카게
루스 마사카게는 다테 하루무네의 아들로 태어나 루스 씨를 계승한 무장으로, 다테 씨를 도와 세력 확장에 기여했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다테 군 총대장으로 활약했고, 이후 다테 씨 일문으로 합류하여 이치노세키 2만 석을 받았다.
2. 생애
게이초 원년(1596년) 형 오제키 하루마스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오제키 마사마스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가문을 상속받았다. 게이초 5년(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에 가담하여 우에스기 가게카쓰 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투에서의 공적으로 게이초 7년(1602년)까지 영지가 가증되어 총 2만 석의 다이묘가 되었다. 이후 영지의 일부를 하가군으로 옮겼다. 게이초 10년(1605년) 병을 얻어 조카 마사마스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하였으며, 게이초 12년(1607년) 3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1. 세키가하라 전투
게이초 원년(1596년), 형 오제키 하루마스가 사망하면서 그의 적자 오제키 마사마스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동생인 스케마스가 후계자로 지명되어 가문을 상속받았다.
게이초 5년(1600년)에 세키가하라 전투가 발발하자, 스케마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에 가담했다. 그의 영지인 구로바네가 무쓰국과의 경계에 위치하여 우에스기 가게카쓰를 견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이에야스는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사카키바라 야스마사의 가신 이나 몬도가 파견되어 구로바네성을 수리했다.
같은 해 7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의 아들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시모쓰케국을 떠날 때, 스케마스는 오타와라 하루키요, 이오노 스케토모와 함께 오야마로 가서 이에야스 부자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스케마스는 이에야스로부터 우다 구니무네(宇多国宗)의 칼과 금 100냥을 하사받았다. 또한, 오카베 나가모리, 미즈타니 가쓰토시, 핫토리 야스히데 등이 원군으로 구로바네성에 파견되었고, 대포 15정과 탄약도 지원되었다. 이에 스케마스는 조카인 마사마스를 인질로 보내 이에야스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보였다.
2.2.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1602년(게이초 7년)까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의 공적 등으로 총 7,000석이 가증되어, 기존의 13,000석과 합쳐 총 20,000석의 다이묘가 되었다. 이후 영지로 삼고 있던 마카베군의 군명을 하가군으로 고치고, 무쓰국 이시카와군에 있던 영지를 하가군으로 옮겼다.
1605년(게이초 10년)에는 병을 얻어 조카인 마사마스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다. 1607년(게이초 12년)에 사망했으며, 향년 32세였다.
3. 가계
* 부모
오제키 다카마스 (아버지)
우루노 요시모토의 딸 (어머니)
* 정실
사타케 요시히사의 딸
* 양자
오제키 마사마스 (오제키 하루마스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