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다 고요
1. 개요
오카다 고요는 일본의 사진작가로, 후지산 사진의 선구자로 불린다. 1895년 니가타현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관동 대지진 피해를 촬영하고 사진 스튜디오를 설립하는 등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1940년 후지 사진 협회를 창립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후지산 촬영에 몰두하여, 생애 약 38만 장 또는 40만 장의 후지산 사진을 촬영했다. 그의 작품은 50전 지폐와 5천 엔, 1천 엔 지폐 도안에 사용되기도 했다. 1972년 사망했으며, 가와구치 호 기슭에 현창비가 있다.
| 일본 이름 | 岡田紅陽 (오카다 고요) |
|---|---|
| 출생 | 1895년 |
| 사망 | 1972년 |
| 국적 | 일본 |
| 직업 | 사진작가 |
| 328명의 뛰어난 일본 사진가 | 『日本写真家事典』(니혼 샤신카 지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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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링크 | 디지털판 일본인명대사전+Pl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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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링크 | 20세기 일본인명사전 |
| 관련 링크 | 천엔 지폐의 '거꾸로 후지산', 도카마치시에서 오카다 고요 작품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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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진가 -
츠즈키 쿄이치
츠즈키 쿄이치는 일본 잡지 『POPEYE』 창간 멤버 출신으로, 사진집 『TOKYO STYLE』로 데뷔하여 일본 사회 주변부 문화와 소외된 계층의 삶을 독특하게 다루는 사진가이자 편집자, 작가이다. -
일본의 사진가 -
시노야마 기신
일본의 저명한 사진작가 시노야마 기신은 광고 사진가로 활동하다 독립 후 누드, 가부키, 연예인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 국제적인 활동과 더불어 '격사' 시리즈와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 사진집 등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일본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1972년 사망 -
김두한
김두한은 일제강점기 주먹으로 활동하다 해방 후 정치인으로 변신한 인물로, 김좌진 장군 아들이라는 설이 있지만 논란이 있으며, 반일 활동, 정치 활동, 폭력 사건 등 다양한 행적을 보였고, 그의 삶은 여러 매체에서 재해석되었으나 평가는 엇갈린다. -
1972년 사망 -
J. 에드거 후버
J. 에드거 후버는 1924년부터 1972년까지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으로 재직하며 FBI를 현대적인 수사 기관으로 발전시켰지만, 권력 남용과 정치적 탄압으로 비판받았으며, 사후 FBI 국장 임기가 제한되었다. -
1895년 출생 -
임흥순
임흥순은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역임했으며, 친일 행적으로 인해 친일파 명단에 등재되었다. -
1895년 출생 -
제말 귀르셀
제말 귀르셀은 터키의 군 장교 출신 정치인으로, 1960년 쿠데타 이후 국가 원수가 되어 새로운 헌법 제정, 민주주의 회복, 터키 현대화 및 경제 개발에 기여했으나, 아드난 멘데레스 총리의 사형 집행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논란도 있다.
2. 생애
오카다 고요는 니가타현 나카우오누마군 나카조촌(현재의 도카마치시)에서 중의원 의원 오카다 류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4년 와세다 대학교 예과에 입학하여, 친구에게서 카메라를 빌려 후지산을 촬영한 것을 계기로 평생 후지산 촬영을 하게 되었다.
1918년 와세다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23년 관동 대지진의 피해 상황을 도쿄부의 촉탁으로 촬영하였고, 이 기록은 『관동 대지진 대화재 기념 사진첩』으로 간행되었다. 1925년 도쿄 아자부에 사진 스튜디오를 설립하였다. 1940년 후지 사진 협회를 창립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유리 건판과 네가의 대부분을 잃었지만, 전후 더욱더 후지산 촬영에 몰두했다. 1950년 일본 관광 사진 연맹을 설립하고, 1952년 일본 사진 협회를 창설하였다.
1972년 77세로 사망하였고, 가와구치 호 기슭의 우부야가사키에 현창비가 있다.
2.1. 초기 생애
니가타현 나카우오누마군 나카조촌(현재의 도카마치시)에서 중의원 의원 오카다 류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으로는 오카다 쇼헤이(중의원 의원, 니가타현 지사)가 있다. 증조부 기헤이(오카다 쿄세츠), 조부 에이조(오카다 세츠도), 아버지 류쇼(고운)도 서화에 이름을 남겼다.
1914년, 와세다 대학교 예과에 입학했다. 친구에게서 카메라를 빌려 후지산을 촬영한 것이 평생의 과업이 될 후지산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2.2. 사진작가 활동
1923년 관동 대지진의 피해 상황을 도쿄부의 촉탁으로 촬영하였다. 그 기록은 『관동 대지진 대화재 기념 사진첩』으로 간행되었다. 1925년, 도쿄 아자부에 사진 스튜디오를 설립하였다. 1940년에 후지 사진 협회를 창립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유리 건판과 네가의 대부분을 잃었지만, 전후에는 더욱더 후지산 촬영에 몰두했다. 1950년에는 일본 관광 사진 연맹을 설립했다. 1952년 일본 사진 협회를 창설하였다.
2.3. 사망
1972년, 77세로 사망하였다. 가와구치 호 기슭의 우부야가사키에 현창비가 있다.
3. 후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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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고요는 후지산 사진 작가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후지산을 여성에 비유하여 "후지코"라고 불렀으며, 생애 동안 후지산을 찍은 사진은 약 38만 장 또는 40만 장이라고 한다.
1938년에 발행된 50전 지폐(소액 정부 지폐)와 5천 엔 지폐 D호권, 1천 엔 지폐 E호권에는 그가 촬영한 후지산을 바탕으로 한 도안이 채용되었다. 또한, 그의 작품 24종이 우표로 채용되기도 했다(2019년 2월 기준).
오카다 고요는 모토스 호수와 가와구치 호수 기슭의 우부야가사키, 오시노 촌 등에서 후지산을 촬영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산기슭의 호반에서 주변 고개까지 이르기까지 후지산의 다양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1915년에 오시노 촌을 처음 방문한 이후, 겨울이면 오시노 촌의 여관에 머물며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촬영에 몰두했다. 가미쿠이시키 촌(현재의 후지카와구치코 정)에서 바라본 후지산의 모습 또한 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1935년 5월 2일, 모토스 호수 부근의 산 위에서 촬영한 그의 작품 "호반의 봄"은 5천 엔 지폐 D호권 및 1천 엔 지폐 E호권 뒷면에 실린 후지산 그림의 바탕이 되었다.
야마나시현 미나미쓰루 군 오시노 촌에서는 1997년에 오카다 고요를 기리는 기념지 '후지야말로 나의 생명'을 발행했다. 2004년에는 사계의 숲 오시노 공원 안에 오카다 고요 사진 미술관을 개관하여 그의 작품 세계를 널리 알리고 있다.
4. 작품집
| 제목 | 출판사 | 출판 연도 |
|---|---|---|
| 관동 대지진 대화재 기념 사진첩 | 도쿄 도안 인쇄 | 1923년 |
| 도쿄 지진 사진첩 | 분산사 | 1923년 |
| 사진의 지식 | 제국교육회출판부 | 1929년 |
| 국립공원 12승 | 보치신문사 | 1934년 |
| 오카다 코요의 후지 100경 작품집 제1-10집 | 심미서원 | 1932년-1934년 |
| 대만 국립공원 사진집 | 대만국립공원협회 | 1939년 |
| 후지산 | 아르스 | 1940년 |
| 후지 | 붕문당 | 1959년 |
| 후지산 | 사회사상연구회출판부 | 1961년 |
| 후지산 | 설화사 | 1965년 |
| 후지 | 구룡당 | 1970년 |
| 오카다 코요 작품전 영봉 후지 | JCII 포토 살롱 | 1992년 |
| 오카다 코요의 후지 100경 작품집 | 동문서원 | 1993년 |
| 오카다 코요・타부치 유키오의 세계 걷고, 계속 찍어온 그의 생애 | 타부치 유키오 기념관 | 1997년 |
5. 평가 및 영향
오카다 고요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