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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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지산은 일본 혼슈 중앙에 위치한 해발 3,776.24m의 활화산으로, 시즈오카현과 야마나시현에 걸쳐 있다. 산의 경사가 급하고 정상은 눈으로 덮여 있으며, 다양한 어원 설과 전설을 가지고 있다. 후지산은 산악 신앙의 대상이자 예술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어 왔으며, 매년 여름 등반이 가능하다. 주변 지역은 관광지로 발전했으며, 지역 진흥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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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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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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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후지하코네이즈 국립공원 |
국가 | 일본 |
현 | 시즈오카현 야마나시현 |
시정촌 | 후지시 후지노미야시 후지요시다시 고텐바시 나루사와무라 오야마정 |
좌표 | 35°21′39″N 138°43′39″E |
높이 | 3,776.24 m |
돌출 높이 | 3,776 m |
돌출 높이 순위 | 35위 |
등재 목록 | 일본 최고봉 울트라 프로미넌트 봉우리 일본의 산 목록 일본 백명산 화산별 고도 목록 |
토지 조사 지도 | 국토지리원 25000:1 국토지리원 50000:1 |
한자 표기 | 富士山 |
히라가나 표기 | ふじさん |
로마자 표기 (헵번식) | Fujisan |
로마자 표기 (쿤레이식) | Huzisan |
별칭 | 세 성스러운 산 |
산 종류 | 성층 화산 |
나이 | 100,000년 |
마지막 분화 | 1707–08년 |
최초 등반 | 663년 엔노교자 |
가장 쉬운 등반로 | 하이킹 |
세계 유산 정보 | |
공식 명칭 | 후지산, 신성한 장소와 예술적 영감의 원천 |
영어 공식 명칭 | Fujisan, sacred place and source of artistic inspiration |
프랑스어 공식 명칭 | Fujisan, lieu sacré et source d'inspiration artistique |
등재 연도 | 2013년 |
기준 | 문화: iii, vi |
면적 | 20,702.1 ha |
완충 지역 | 49,627.7 ha |
기타 | |
화산 종류 | 활화산 (랭크 B), 상시 관측 화산 |
국립공원 | 후지하코네이즈 국립공원 |
지정일 | 1936년 2월 1일 |
특별보호지구 | 산 정상 부분 |
특별지역 및 보통지역 | 주변 지역 |
차량 진입 금지 구역 | 설정됨 |
2. 상세
산의 경사가 급하고 산 정상이 깎여 있으며 1년 중 5달 정도 눈으로 뒤덮여 있다.
2. 1. 유래
일본의 "다케토리 이야기"(竹取物語) 카구야히메 설화에서 스루가국(駿河國)에서 가장 하늘에 가까운 산에 불로불사의 약을 불태우라는 천제의 명으로, 그 산을 불의 산(ふしの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5]후지산(富士山)의 현재 한자 표기인 富와 士는 각각 "풍부한", "지위가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표기의 기원과 후지(Fuji)라는 이름의 기원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5] 9세기의 문헌인 《다케토리 이야기》에 따르면, 그 이름은 不死(후시, 후지) 즉 "불멸의"에서 유래했고, 또한 산의 경사면을 오르는 富(후) 士(시, 지) 즉 "풍부한 병사(군인)"의 이미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5] 초기 민간어원설은 후지(Fuji)가 不二(후지, 아니다 + 둘)에서 유래했으며, "둘도 없는", "최고의"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주장은 不盡(후진, 아니다 + 다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끝없는"을 의미한다고 한다.
에도 시대(江戸時代)의 일본 고전 학자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는 후지라는 이름이 벼의 이삭(穗, 호)처럼 멋지게 솟아 있는 산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추측했다. 영국 선교사 존 배첼러(John Batchelor, 1855–1944)는 그 이름이 아이누어(アイヌ語)의 불의 신 카무이 후치(Kamui Fuchi)의 "불"을 뜻하는 단어 "후치(fuchi)"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지만, 일본 언어학자 킨다이치 쿄스케(金田一京助)는 음운 변화(音韻変化)를 근거로 이를 부정했다.[6][7][8][9] 또한 "후치(huchi)"는 "노파"를 의미하고 "아페(ape)"는 "불"을 의미하며, "아페 후치 카무이(ape huchi kamuy)"가 불의 신이라는 점도 지적되었다.[6][7][8][9] 후지(fuji)를 포함하는 지명 분포에 대한 연구는 후지(fuji)라는 단어의 기원이 아이누어가 아닌 야마토(大和)어에 있음을 시사한다.[6][7][8][9] 일본 지명학자 가가미 칸지(鏡忍治)는 후지(fuji)라는 이름이 등나무(藤, 후지)와 무지개(虹, 니지, 후지라는 다른 독음을 가짐)와 같은 어근을 가지며, "길고 잘 생긴 경사면"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6][7][8][9]
3. 명칭
후지산(富士山)이라는 명칭의 기원은 여러 설이 있으며, "다케토리 이야기"에 나오는 전설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 그 유래에 대해 뚜렷한 정설은 없다. 일본의 "다케토리 이야기"(카구야히메 설화)에서 불로불사의 약을 황제가 일본의 스루가국에서 가장 하늘에 가까운 산의 꼭대기에 두고 불사르도록(燒) 명해서, 그 이후부터 그 산을 불의 산(ふしの山)이라고 하게 하였다고 한다고 전한다.[5]
후지산(富士山)의 현재 한자 표기인 富와 士는 각각 "풍부한", "지위가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표기의 기원과 후지(Fuji)라는 이름의 기원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초기 민간어원설은 후지(Fuji)가 不二(후지, 아니다 + 둘)에서 유래했으며, "둘도 없는", "최고의"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주장은 不盡(후진, 아니다 + 다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끝없는"을 의미한다고 한다.
에도 시대(江戸時代)의 일본 고전 학자 히라타 아쓰타네는 후지라는 이름이 벼의 이삭(穗, 호)처럼 멋지게 솟아 있는 산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추측했다. 영국 선교사 존 배첼러는 그 이름이 아이누어의 불의 신 카무이 후치(Kamui Fuchi)의 "불"을 뜻하는 단어 "후치(fuchi)"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지만, 일본 언어학자 킨다이치 쿄스케는 음운 변화(音韻変化)를 근거로 이를 부정했다.[6][7][8][9] 또한 "후치(huchi)"는 "노파"를 의미하고 "아페(ape)"는 "불"을 의미하며, "아페 후치 카무이(ape huchi kamuy)"가 불의 신이라는 점도 지적되었다. 후지(fuji)를 포함하는 지명 분포에 대한 연구는 후지(fuji)라는 단어의 기원이 아이누어가 아닌 야마토어에 있음을 시사한다. 일본 지명학자 가가미 칸지는 후지(fuji)라는 이름이 등나무(藤, 후지)와 무지개(虹, 니지, 후지라는 다른 독음을 가짐)와 같은 어근을 가지며, "길고 잘 생긴 경사면"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6][7][8][9]
현대 언어학자 알렉산더 보빈(Alexander Vovin)은 고대 일본어 독음을 기반으로 하는 대안 가설을 제시한다. 이 단어는 동부 고대 일본어 火主(불의 주인)에서 차용되었을 수 있다.[10]
영어로는 후지산(Mount Fuji)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자료에서는 "후지산(Fuji-san)", "후지야마(Fujiyama)" 또는 중복적으로 "후지야마산(Mt. Fujiyama)"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어 사용자들은 이 산을 "후지산(Fuji-san)"이라고 부른다. 이 "산(san)"은 와타나베 씨(Watanabe-san)와 같이 사람 이름에 사용되는 -san가 아니라 한자음으로, 한자어에서 사용되는 의 음독이다. 니혼시키와 훈레이시키에서는 ''후지(Huzi)''로 표기된다.
다른 일본식 이름으로는 , , , 그리고 富士일본어의 첫 번째 글자와 岳일본어 ("산")을 결합하여 만들어진 등이 있는데, 이들은 현재는 사용되지 않거나 시적인 표현으로 사용된다.[11]
3. 1. 어원
후지산(富士山)의 어원에 대해서는 뚜렷한 정설이 없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常陸国風土記』에 나오는 "'''복자악(福慈岳)'''"이라는 명칭이다.[85] "'''불이산(不二山)'''" 또는 "'''불진산(不盡山)'''"으로 표기하는 고문헌도 있다.[85]9세기 문헌인 카구야히메 설화에서는 불로불사의 약을 황제가 스루가국에서 가장 하늘에 가까운 산 꼭대기에 태우도록 명하여, 그 이후부터 그 산을 불의 산(ふしの山)이라고 하게 되었다고 전한다.[86]
"후지(フジ)"는 긴 산 비탈을 나타내는 야마토고토에서 유래하여 후지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에도 시대의 일본 고전 학자 히라타 아쓰타네는 후지라는 이름이 벼의 이삭처럼 멋지게 솟아 있는 산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추측했다.
선교사 존 배첼러는 그 이름이 아이누어의 "불"을 뜻하는 단어 "후치(fuchi)"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지만, 일본 언어학자 킨다이치 쿄스케는 음운 변화를 근거로 이를 부정했다.[6][7][8][9] 또한 "후치(huchi)"는 "노파"를 의미하고 "아페(ape)"는 "불"을 의미하며, "아페후치카무이(ape huchi kamuy)"가 불의 신이라는 점도 지적되었다.[87] 일본 지명학자 가가미 칸지는 후지(fuji)라는 이름이 등나무(藤, 후지)와 무지개(虹, 니지, 후지라는 다른 독음을 가짐)와 같은 어근을 가지며, "길고 잘 생긴 경사면"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6][7][8][9]
명확하게 "'''후지산(富士山)'''"이라고 표기되는 과정에 있어서는 스루가국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있으며,[89] 기록으로는 도라카의 『후지산기(富士山記)』에 "'''산을 후지라고 이름 짓는 것은, 군(郡)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4. 역사
고대부터 후지산은 산악 신앙의 대상이었으며, 후지산을 신체산(神体山)으로 여기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가리켜 후지 신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146] 메이지 시대까지 여성 금제의 전통이 있어 여성이 등산하는 것은 오랫동안 금지되었다. 특히 후지산의 신령으로 여겨지는 아사마 대신(浅間大神)과 고노하나사쿠야히메를 주신으로 하는 것이 아사마 신사이며, 섭말사가 전국에 산재해 있다. 아사마 신사의 총본궁이 산기슭의 후지노미야시에 있는 후지산본궁아사마대사(아사마대사)이며, 후지노미야 시가지에 있는 “본궁”과 후지산 정상에 있는 “옥궁”에서 후지산의 신을 모시고 있다. 이러한 역사에서 후지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도 세계자연유산이 아니라 세계문화유산(후지산-신앙의 대상과 예술의 원천)으로서였다.
신불습합은 후지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산정부는 불교의 세계로 여겨지게 되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146] 가마쿠라 시대의 서적 『아즈마카가미』에는 신불습합에 의한 “후지 대보살”이나 “아사마 대보살”이라는 호칭이 확인된다. 후지산 정상의 8개의 봉우리(팔신봉)를 “팔엽”이라고 부르는 것도 신불습합에 유래한다.
에도 시대가 되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보호 아래 후지산본궁아사마대사는 후지산 8합(八合) 이상을 기증받았다. 등산의 대중화와 함께 무라야마 수행(村山修験)이나 후지 고(富士講) 등의 일파가 형성되어 후지 신앙을 발전시켜 나갔다.[146]
경응 4년(1868년)에 신불분리령이 반포되면서 신불습합의 형태는 크게 무너지게 된다.[152] 메이지 시대에 신사의 토지는 국유화되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후 이 토지는 반환되었으나, 후지산 8합목 이상은 공익성이 높은 토지라는 이유로 국유지로 남게 되었다.[175] 그러나 후지산본궁아사마대사는 후지산 신앙을 위해 후지산 8합목 이상의 토지도 반환해줄 것을 요구하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175] 국가와 후지산 본궁 아사마 신사의 소송은 17년간 지속되었지만, 1974년(쇼와 49년)에 대법원은 후지산 본궁 아사마 신사의 주장을 거의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175]
4. 1. 등산사
663년, 엔노 쇼카쿠가 후지산에 올랐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는 "세계 최초의 등산"이라는 기록으로 수정되기도 했다.[12][14] 헤이안 시대의 학자 토라카가 『富士山기』에서 산정 화구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데,조관 17년 (875년) 약 10년 전에는 산정 분화는 아니지만 유사 이래 최대의 조관 대분화가 있었다.[149] 1149년에는 말대 상인이 수백 번의 등산을 반복했다는 기록이 『본조세기』에 남아있다.[150] 에도 시대에는 후지코가 성행하여 많은 참배객이 후지산 등산(후지에이데)을 했다.[151]1832년, 고야마 타츠가 여성으로서 처음 등정했다.[15][16][17] 당시에는 여성 금제가 시행되고 있었다. 1860년에는 영국 공사 러더퍼드 앨콕이 외국인으로서 처음 등정했다.[4][18] 1872년에는 여성 금제가 해제되었다.[14] 메이지 시대가 되면 신앙 등산은 점차 쇠퇴하고, 대신 오락이나 스포츠로서도 등산하게 되어, 유럽과 미국 등의 근대 등산 기술이 도입되게 된다.
1972년에는 후지산 대량 조난 사고 (1972년)가 발생하여 악천후에 의한 눈사태나 저체온증 등으로 24명의 사망·실종자를 내는 국내 최악의 조난 사고가 되었다.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대의 영향으로 4개의 등산로가 사상 최초로 폐쇄되었다.[158][159][160]
5. 지리
후지산은 일본의 지리에서 매우 독특한 특징이다. 3776.24m에 달하며, 중앙 혼슈의 태평양 연안, 도쿄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시즈오카현과 야마나시현의 경계를 넘나들며, 동쪽에는 고텐바, 북쪽에는 후지요시다, 남서쪽에는 후지노미야, 남쪽에는 후지의 네 개의 작은 도시와 여러 마을이 주변에 있다. 5개의 호수인 가와구치 호, 야마나카 호, 사이 호, 모토스 호, 쇼지 호에 둘러싸여 있다.[31] 이 호수들과 인근 가나가와현의 아시 호는 산의 광활한 전망을 제공한다. 이 산은 후지-하코네-이즈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하늘이 맑을 경우 요코하마, 도쿄에서 더 멀리, 때로는 치바, 사이타마, 도치기, 이바라키 및 하마나 호까지 보입니다. 우주왕복선 임무 중 우주에서 촬영되기도 했다.[32]
등산로를 제외한 8합목(八合目) 이상은 후지노미야시(富士宮市)에 있는 후지산 본궁 아사마 신사(富士山本宮浅間大社)의 사유지이지만, 현 경계(県境)와 시정촌 경계는 미확정이다. 하지만 기상청은 후지산 기상관측소의 소재지를 편의상 '''「후지노미야시 후지산 켄가미네(富士宮市富士山剣が峰)」'''로 정하고 있었다. 한편, 구 스즈하루무라(須走村)도 정상까지를 마을 구역으로 했기 때문에, 코야마정(小山町)은 현재도 자신을 '''「후지산 정상이 있는 마을」'''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2014년 1월 후지산 세계문화유산 협의회 후 기자회견에서 시즈오카현(静岡県)과 야마나시현(山梨県) 양현 지사인 가와카쓰 헤이타(川勝平太)와 요코우치 마사아키(横内正明)가 앞으로도 현 경계를 정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밝혔다.[176] 국토지리원(国土地理院)이 인터넷에서 공개하고 있는 지형도(地形図)에서는 2013년 10월부터 지도상의 지점을 지정하면 주소, 위도·경도, 고도가 표시되는 기능이 추가되었지만, 귀속 미확정 지점의 경우에는 가까운 귀속이 확정된 주소가 표시되는 설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후지산 정상(켄가미네(剣が峰))을 지정하면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静岡県富士宮市)로 표시되는 것이 야마나시현 등으로부터 지적되어, 이에 따라 후지산 정상의 주소 표시는 비표시가 되도록 변경되었다.[177][178]
참고로, JP일본우편(日本郵便)에서는 '''「순토군 코야마정 스즈하루본하치고메(駿東郡小山町須走本八合目)」'''라는 주소를 교통곤란지(交通困難地)로 지정하여 코야마정의 집배를 담당하는 고텐바우체국(御殿場郵便局)에서 보관하는 대응을 하고 있다.[179]
5. 1. 기후
후지산 정상은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라 툰드라 기후(''ET'')로 분류된다.[127] 고도가 높아 기온이 매우 낮으며, 1년 중 여러 달 동안 눈으로 덮여 있다.[226] 일본 기상청 관측에 따르면 평균 기온은 -5.9℃이다.[226] 기록된 최저 기온은 1981년 2월에 기록된 -38.0℃이고,[128] 최고 기온은 1942년 8월에 기록된 17.8℃이다.[226] 2024년에는 11월 6일에 눈덮개가 형성되어 1894년 기록 이래 가장 늦은 시기였다.[33]후지산의 평균 기온은 다음과 같다:
가장 따뜻한 달인 8월에도 평균 기온은 6℃에 불과하다.[127] 태평양 쪽 기후의 영향으로 1월과 2월은 건조하고, 3월, 4월, 5월, 6월이 최심 적설 상위 10위를 차지한다.[128]
6. 지질
후지산은 전형적인 성층화산으로, 4단계의 화산 활동을 거쳐 형성되었다.
- '''선코미타케(先小御岳) 화산:''' 가장 오래된 화산으로, 수십만 년 전 플라이스토세에 생성된 안산암을 주로 하는 화산체이다. 2004년 도쿄대학 지진연구소의 시추 조사를 통해 발견되었다.[103]
- '''코미타케(小御岳) 화산:''' 선코미타케 이후 수십만 년 전에 형성된 현무암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 '''코후지(古富士) 화산:''' 약 10만 년 전에 코미타케 화산 위에 형성되었다. 8만 년 전부터 1만 5천 년 전까지 분화를 계속하여 화산재가 쌓여 해발 3000m 미만까지 성장했다. 정상은 보에이 화구 북쪽 1~2km 지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신후지(新富士) 화산:''' 약 1만 년 전에 코후지 화산 위에 형성된 현재의 산체이다.
판의 관점에서 보면, 유라시아판 외연부에서 북아메리카판 또는 오호츠크판과 접하는 포사마그나에 남쪽에서 필리핀해판이 침강하는 위치(거의 사가미 해구와 스루가 해구 및 이즈-오가사와라-마리아나 제도호를 육지로 연장한 교차점)이며, 3개의 판 경계(삼중점)가 되고 있다. 후지산 아래에서 침강하는 필리핀해판 아래에는 태평양판이 침강하고 있으며, 후지산의 마그마는 동일본에 있는 섬호화산과 마찬가지로 태평양판에서 기원한다.[105][106]
후지산은 측화산이 매우 많고[107], 일본 화산의 대부분이 안산암 마그마를 많이 분출하는 것과 달리[107] 현무암 마그마를 많이 분출하는 특징을 보인다.[107]
2009년 10월, GPS 관측에서 지각변동이 확인되었다. 이는 1996년 4월 관측 개시 이후 처음 있는 일로, 마그마 축적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104]
; 후지산 정상
정상에는 화구(오하치)가 있으며, "다이나이인(大内院)"이라고 불린다. 8개의 봉우리(팔신봉(八神峰))로 둘러싸여 있다. 화구 남서쪽에 최고점인 켄가미네가 있다. 이등삼각점(점명 후지산, 표고 3775.51m, 2014년 4월 1일 개산[78])이 설치되어 있다. 화구 북쪽에는 이등삼각점(점명 후지시라야마, 표고 3756.23m, 2014년 4월 1일 개산)이 있다. 화구 구조는 국토지리원에 따르면 최심부 표고 3538.7m, 깊이 약 237m, 직경 780m, 화구 바닥 직경 130m이다.[108]
; 보에이산(宝永山)
1707년 보에이 대분화(宝永大噴火)로 탄생한 측화산(기생화산)이다. 후지산 남동 사면에 위치하며 표고는 2693m이다. 보에이산 서쪽에는 거대한 분화구가 있다.
; 측화산군
후지산에는 보에이산 외에도 70개 이상의 측화산이 있다.[109][110] 주요 측화산은 다음과 같다.
- 오무로야마(표고 1,300m)[110]
- 나가오야마(長尾山)(표고 1,424m)[110]
- 카타부타야마(片蓋山)(표고 1,468m)[110]
- 유미야즈카(弓射塚)(표고 1,570m)[110]
- 이가도노야마(伊賀殿山)(표고 1,490m)[110]
- 노가시라야마(野頭山)(표고 1,510m)[110]
- 후타츠즈카(二ツ塚)(표고 1,492m)[110]
- 니시켄(西剣)(표고 1,570m)[110]
- 우스야마(臼山)(표고 1,720m)[110]
- 사와라야마(椹山)(표고 1,630m)[110]
- 히야마(氷山)(표고 1,553m)[110]
- 코우스케마루(幸助丸)(표고 1,870m)[110]
- 하치켄야마(八軒山)(표고 1,770m)[110]
- 산지키야마(桟敷山)(표고 1,800m)[110]
- 오히라야마(大平山)(표고 2,100m)[110]
- 마루야마(丸山)(표고 1,700m)[110]
- 카타보코(カタボッコ)(표고 1,290m)[110]
- 히가시켄(東剣)(표고 1,649m)[110]
- 텐진야마(天神山)(표고 1,430m)[110]
- 네야즈카(塒塚)(표고 1,598m)[110]
- 이누비야미야마(犬涼み山)(표고 1,206m)[110]
- 오쿠니와(奥庭)(표고 2,180m)[110]
- 야케야마(焼山)(표고 1,660m)[110]
- 코후지(小富士)(표고 1,906m)[110]
- 후타츠즈카 다이이치오카(二ツ塚第一丘)(표고 1,926m)[110]
- 후타츠즈카 다이니오카(二ツ塚第二丘)(표고 1,802m)[110]
- 이가라즈카(荊塚)(표고 1,651m)[110]
- 아사기즈카(浅黄塚)(표고 1,575m)[110]
- 히노키즈카(桧塚)(표고 1,390m)[110]
- 니시우스즈카(西臼塚)(표고 1,293m)[110]
- 니시쿠로즈카(西黒塚)(표고 1,470m)[110]
- 히라츠카(平塚)(표고 1,495m)[110]
- 요시키리즈카(腰切塚)(표고 1,474m)[110]
- 아카즈카(赤塚)(표고 1,374m)[110]
- 칸스야마(鑵子山)(표고 1,306m)[110]
== 화산 활동 ==
약 1만 1천 년 전, 고대 후지산 정상 서쪽에서 많은 양의 용암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이 용암은 후지산의 주요 부분을 이루는 새로운 신후지를 형성했다. 그 이후로 고대 후지산과 신후지산의 정상은 나란히 위치하게 되었다. 약 2,500년~2,800년 전, 고대 후지산의 상부는 풍화 작용으로 대규모 산사태를 일으켰고, 결국 신후지의 정상만 남게 되었다.[41][42]
신후지 정상에서 용암이 분출했던 것은 약 1만 1천 년 전~약 8천 년 전의 3000년간과 약 4500년 전~약 3200년 전의 1300년간으로 생각된다. 정상부에서의 마지막 폭발적 분화는 2300년 전이며,[111] 이후로는 정상부에서의 분화는 없지만, 나가오산(長尾山)이나 보에이 산 등의 측화산에서의 분화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기록으로 추적할 수 있는 분화는 다음과 같다.
날짜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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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1년 7월 31일 | 쇼쿠니혼기(続日本紀)에 "화산재가 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43] |
800년 4월 11일~5월 15일 802년 2월 13일 | 니혼키랴쿠(日本紀略)에 따르면, 첫 번째 단계에서 낮에도 하늘이 어두웠다. 두 번째 단계는 니폰키세키(日本奇跡)에서 우박처럼 자갈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44] |
864년 6월~9월 865년 12월~866년 1월 | 니혼산다이지쓰로쿠(日本三代実録)ja-latn에 기록. 이 분화(조관 대분화)로 용암류에 의해 분리된 단일 호수에서 모토스 호, 쇼지 호, 사이코 호가 생성되었다.[45] |
937년 11월 | 니혼키랴쿠(日本紀略)에 기록되어 있다.[46] |
999년 3월 | 혼초세이키(本朝世紀)에 분화 소식이 경도(京都)로 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세부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47] |
1033년 1월 | 니혼키랴쿠(日本紀略)에 따르면, 이 분화 소식은 두 달 후에 경도로 전해졌다.[48] |
1083년 4월 17일 | 이에 대한 유일한 당대 기록은 불교 승려가 쓴 후소랴쿠키(扶桑略記)에 있다. 후대의 기록에 따르면 분화 소리는 경도에서 들렸을 수도 있다.[49] |
1435년 1월 30일~1436년 1월 18일 사이 | 야마나시 시의 쿠보하치만 신사(久保八幡神社) 승려들이 보관한 연대기인 오다이키(大日記)에 후지산에 불꽃이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연기가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이는 하와이식 분화(용암만)였던 것으로 보인다.[50] |
1511년 8월 | 후지카와구치코(富士河口湖町)의 명호지(妙法寺) 승려들이 쓴 가쓰야마키(勝山記)(또는 묘호지키(妙法寺記))에는 이때 후지산에 불이 났다는 기록이 있지만, 기술된 위치에는 식물이 없으므로 거의 확실히 용암류였을 것이다.[51] |
1707년 12월 16일 | 호에이 분화(宝永大噴火)[52] |
== 분화 역사 ==
연력(延暦) 19년~연력 21년(800년~802년)에 연력 분화(『일본후기(日本後紀)』)가 발생했다. 에도(江戸)에서는 약 4cm의 화산재가 쌓였다. 또한, 보에이 대분화에 의해 후지산 산체에 보에이산이 형성되었다.
분화 연대를 고증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속일본기(続日本紀)』에 기록되어 있는, 천응(天応) 원년(781년)에 후지산에서 화산재가 내렸다는 내용이다. 평안(平安) 시대 초기에 성립된 『다케토리모노가타리(竹取物語)』에도 후지산이 작품 성립 당시 활동기였음을 암시하는 묘사가 있다. 평안 시대의 역사서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実録)』에는 조관 대분화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으며, 평안 시대 중기의 『카가미노니키(更級日記)』에는 후지산의 분기와 화영 현상을 나타낸 묘사가 있다.
보에이 대분화에 대한 기록은, 신정백석(新井白石)의 『오리타쿠시바노키(折りたく柴の記)』를 비롯한 문서, 그림 등에 의해 다수 남아 있다.
그 후에도, 분연이나 굉음의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만, 기록으로 보아 단기간에 걸친 소규모 활동으로 끝났다고 추정된다.
보에이 대분화 이후 300년 동안 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 초등학교 등에서는 후지산을 휴화산으로 가르쳤다. 그러나 기상청이 휴화산이라는 구분을 폐지한 것도 더해져, 현재는 활화산으로 분류되고 있다.
2013년 7월 20일, 산업기술종합연구소는 1999년부터 약 15년간의 탐사 데이터와 지질 조사 데이터를 정리하여 후지 화산 지질도 제2판(Ver.1)으로 발표했고,[112] 2016년에는 수정 보완이 완료되었다.[111] 동시에, 용암이 흘러나오는 규모의 분화는 지난 2000년간 최소 43회 있었다고 하고 있다.
== 산체 붕괴 ==
지진 및 화산 활동을 수반한 산체붕괴가 남서쪽으로 5회, 북동쪽으로 3회, 동쪽으로 4회, 총 12회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113], 발생 시기가 불확실한 경우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직하에 존재가 시사되고 있는 활단층의 활동에 의한 규모 7급 지진에 의한 붕괴도 우려되고 있다.
주요 발생 이력
- 약 2900년 전(고텐바(御殿場)니류(泥流)):동쪽 사면에서 대규모(약 18억 m3)의 산체붕괴[114][115]가 발생하여, 니류(泥流)가 고텐바(御殿場) 주변에서 동쪽으로는 아시가라(足柄) 평야로, 남쪽으로는 미시마 주변을 지나 스루가(駿河)만으로 흘러내렸다. 산체붕괴의 발생 원인은 불명.
- 1331년의 겐코(元弘) 지진에 수반하여 발생.[116]
- 1891년의 노우비(濃尾) 지진에 수반하여 발생.[117]
== 재해 대책 ==
2011년 도호쿠 대지진 이후, 언론에서는 그 충격이 후지산의 화산 활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추측을 제기했다. 2012년 9월, 국립지진방재과학기술연구소(NIED)는 후지산의 마그마 방 압력이 1707년 마지막 분화 이전보다 1.6 메가파스칼 높을 수 있다는 수학적 모델 결과를 발표했고, 일부 언론은 이를 후지산 분화가 임박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53] 그러나 화산 마그마 방의 압력을 직접 측정하는 방법은 없으므로, NIED의 계산은 추측적이며 검증할 수 없다. 활동적인 분기공과 최근 발견된 단층과 같이 분화 위험 증가를 시사하는 다른 지표는 이러한 유형의 화산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다.[54]
분화 우려는 202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2021년에는 주민 대피 계획을 돕기 위해 새로운 위험 지도가 만들어졌고, 용암 흐름과 추가적인 분출구에 대한 추정치가 증가하여 우려를 증폭시켰다.[55] 직후 규모 4.8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후지산 분화"라는 문구가 트위터에서 트렌드가 되었다.[56] 그러나 일본 기상청은 지진이 분화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았다고 대중에게 안심시켰다. 2023년에는 2021년 위험 지도 업데이트를 고려한 새로운 대피 계획이 개발되었다.[57]
- 화산분화예지연락회(火山噴火予知連絡会)는 일본의 화산 활동을 검토하고 상황에 따라 의견을 발표하지만, 화산 분화 시각을 특정하여 발표하지는 않는다. 정례회는 연 3회, 화산 분화 시에는 수시로 개최된다. 2000년 10월 후지산의 저주파 지진 증가 시 워킹 그룹이 설치되어 후지산 관련 기초 데이터 수집·정리, 감시 체제 검토, 화산 정보 발신 방법 등이 집중적으로 검토되었다.
- 내각부(内閣府)는 웹사이트 「후지산의 화산 방재 대책[118]」을 개설하여 후지산 위험 지도(ハザードマップ) 검토 위원회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후지 직할 사방 사업은 오자와 붕괴(大沢崩れ)를 원인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토석류(土石流)로부터 하류의 보전 대상을 지키는 사방 사업을 실시 중이다.
- 야마나시현과 시즈오카현은 「후지산 분화 시 피난 루트 맵」을 작성했다[119][120].
- 타나베 노부히로(田辺信宏) 시즈오카 시 시장은 2016년 1월 2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시 소방 항공대가 2013년 후지산에서 추락한 등산객을 구조하던 중 헬리콥터에서 낙하하여 사망한 사고를 받아 재발 방지책으로 시 소방국이 헬기로 구조할 수 있는 산의 높이에 상한선을 3200m로 설정한 것을 밝혔다.[121]
정부 기관(국토지리원, 기상청, 방재과학기술연구소, 산업기술종합연구소) 및 지방자치단체([http://www.mfri.pref.yamanashi.jp/ 야마나시현 후지산과학연구소]), 대학(도쿄대학 지진연구소) 등에서 관측이 이루어지고 있다.
- 국토지리원: 지자기 관측점[122]이 가노야마 측지관측소, 미즈사와 측지관측소 및 에사시 관측소에 설치되어 있다. 또한, 정상에는 GPS 전자기준점이 있다.
- 기상청 관측소[123]: 지진계(정상, 고덴바구치 8합목, 요시다구치 6합목, 나루사와 토리즈카 동, 타로보), 경사계(타로보), 공진계(타로보, 카미이데), GSP(타로보), 원격카메라(하기와라)
- 방재과학기술연구소[124]: 화산 활동 가시화 시스템(Visualization system for Volcanic Activity)
- 국토교통성 중부지방정비국 후지사방사무소가 시즈오카현, 야마나시현과 연계하여 화쇄류, 용암류 등의 화산 활동에 따른 재해를 막기 위한 조사·검토를 실시하고 있다.[125] 위험지도를 작성하고 있으나, 산체붕괴를 상정한 위험지도는 2012년 시점에서는 미작성이다.
- 중앙방재회의가 도쿄 등 수도권에 대한 화산재 강하를 상정한 대책 검토를 2018년에 시작했다.[126]
6. 1. 화산 활동
약 1만 1천 년 전, 고대 후지산 정상 서쪽에서 많은 양의 용암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이 용암은 후지산의 주요 부분을 이루는 새로운 신후지를 형성했다. 그 이후로 고대 후지산과 신후지산의 정상은 나란히 위치하게 되었다. 약 2,500년~2,800년 전, 고대 후지산의 상부는 풍화 작용으로 대규모 산사태를 일으켰고, 결국 신후지의 정상만 남게 되었다.[41][42]신후지 정상에서 용암이 분출했던 것은 약 1만 1천 년 전~약 8천 년 전의 3000년간과 약 4500년 전~약 3200년 전의 1300년간으로 생각된다. 정상부에서의 마지막 폭발적 분화는 2300년 전이며,[111] 이후로는 정상부에서의 분화는 없지만, 나가오산(長尾山)이나 보에이 산 등의 측화산에서의 분화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기록으로 추적할 수 있는 분화는 다음과 같다.
날짜 | 비고 |
---|---|
781년 7월 31일 | 쇼쿠니혼기(続日本紀)에 "화산재가 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43] |
800년 4월 11일~5월 15일 802년 2월 13일 | 니혼키랴쿠(日本紀略)에 따르면, 첫 번째 단계에서 낮에도 하늘이 어두웠다. 두 번째 단계는 니폰키세키(日本奇跡)에서 우박처럼 자갈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44] |
864년 6월~9월 865년 12월~866년 1월 | 니혼산다이지쓰로쿠(日本三代実録)ja-latn에 기록. 이 분화(조관 대분화)로 용암류에 의해 분리된 단일 호수에서 모토스 호, 쇼지 호, 사이코 호가 생성되었다.[45] |
937년 11월 | 니혼키랴쿠(日本紀略)에 기록되어 있다.[46] |
999년 3월 | 혼초세이키(本朝世紀)에 분화 소식이 경도(京都)로 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세부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47] |
1033년 1월 | 니혼키랴쿠(日本紀略)에 따르면, 이 분화 소식은 두 달 후에 경도로 전해졌다.[48] |
1083년 4월 17일 | 이에 대한 유일한 당대 기록은 불교 승려가 쓴 후소랴쿠키(扶桑略記)에 있다. 후대의 기록에 따르면 분화 소리는 경도에서 들렸을 수도 있다.[49] |
1435년 1월 30일~1436년 1월 18일 사이 | 야마나시 시의 쿠보하치만 신사(久保八幡神社) 승려들이 보관한 연대기인 오다이키(大日記)에 후지산에 불꽃이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연기가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이는 하와이식 분화(용암만)였던 것으로 보인다.[50] |
1511년 8월 | 후지카와구치코(富士河口湖町)의 명호지(妙法寺) 승려들이 쓴 가쓰야마키(勝山記)(또는 묘호지키(妙法寺記))에는 이때 후지산에 불이 났다는 기록이 있지만, 기술된 위치에는 식물이 없으므로 거의 확실히 용암류였을 것이다.[51] |
1707년 12월 16일 | 호에이 분화(宝永大噴火)[52] |
연력(延暦) 19년~연력 21년(800년~802년)에 연력 분화(『일본후기(日本後紀)』)가 발생했다. 에도(江戸)에서는 약 4cm의 화산재가 쌓였다. 또한, 보에이 대분화에 의해 후지산 산체에 보에이산이 형성되었다.
분화 연대를 고증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속일본기(続日本紀)』에 기록되어 있는, 천응(天応) 원년(781년)에 후지산에서 화산재가 내렸다는 내용이다. 평안(平安) 시대 초기에 성립된 『다케토리모노가타리(竹取物語)』에도 후지산이 작품 성립 당시 활동기였음을 암시하는 묘사가 있다. 평안 시대의 역사서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実録)』에는 조관 대분화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으며, 평안 시대 중기의 『카가미노니키(更級日記)』에는 후지산의 분기와 화영 현상을 나타낸 묘사가 있다.
보에이 대분화에 대한 기록은, 신정백석(新井白石)의 『오리타쿠시바노키(折りたく柴の記)』를 비롯한 문서, 그림 등에 의해 다수 남아 있다.
그 후에도, 분연이나 굉음의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만, 기록으로 보아 단기간에 걸친 소규모 활동으로 끝났다고 추정된다.
보에이 대분화 이후 300년 동안 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 초등학교 등에서는 후지산을 휴화산으로 가르쳤다. 그러나 기상청이 휴화산이라는 구분을 폐지한 것도 더해져, 현재는 활화산으로 분류되고 있다.
2013년 7월 20일, 산업기술종합연구소는 1999년부터 약 15년간의 탐사 데이터와 지질 조사 데이터를 정리하여 후지 화산 지질도 제2판(Ver.1)으로 발표했고,[112] 2016년에는 수정 보완이 완료되었다.[111] 동시에, 용암이 흘러나오는 규모의 분화는 지난 2000년간 최소 43회 있었다고 하고 있다.
지진 및 화산 활동을 수반한 산체붕괴가 남서쪽으로 5회, 북동쪽으로 3회, 동쪽으로 4회, 총 12회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113], 발생 시기가 불확실한 경우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직하에 존재가 시사되고 있는 활단층의 활동에 의한 규모 7급 지진에 의한 붕괴도 우려되고 있다.
주요 발생 이력
- 약 2900년 전(고텐바(御殿場)니류(泥流)):동쪽 사면에서 대규모(약 18억 m3)의 산체붕괴[114][115]가 발생하여, 니류(泥流)가 고텐바(御殿場) 주변에서 동쪽으로는 아시가라(足柄) 평야로, 남쪽으로는 미시마 주변을 지나 스루가(駿河)만으로 흘러내렸다. 산체붕괴의 발생 원인은 불명.
- 1331년의 겐코(元弘) 지진에 수반하여 발생.[116]
- 1891년의 노우비(濃尾) 지진에 수반하여 발생.[117]
2011년 도호쿠 대지진 이후, 언론에서는 그 충격이 후지산의 화산 활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추측을 제기했다. 2012년 9월, 국립지진방재과학기술연구소(NIED)는 후지산의 마그마 방 압력이 1707년 마지막 분화 이전보다 1.6 메가파스칼 높을 수 있다는 수학적 모델 결과를 발표했고, 일부 언론은 이를 후지산 분화가 임박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53] 그러나 화산 마그마 방의 압력을 직접 측정하는 방법은 없으므로, NIED의 계산은 추측적이며 검증할 수 없다. 활동적인 분기공과 최근 발견된 단층과 같이 분화 위험 증가를 시사하는 다른 지표는 이러한 유형의 화산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다.[54]
분화 우려는 202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2021년에는 주민 대피 계획을 돕기 위해 새로운 위험 지도가 만들어졌고, 용암 흐름과 추가적인 분출구에 대한 추정치가 증가하여 우려를 증폭시켰다.[55] 직후 규모 4.8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후지산 분화"라는 문구가 트위터에서 트렌드가 되었다.[56] 그러나 일본 기상청은 지진이 분화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았다고 대중에게 안심시켰다. 2023년에는 2021년 위험 지도 업데이트를 고려한 새로운 대피 계획이 개발되었다.[57]
- 화산분화예지연락회(火山噴火予知連絡会)는 일본의 화산 활동을 검토하고 상황에 따라 의견을 발표하지만, 화산 분화 시각을 특정하여 발표하지는 않는다. 정례회는 연 3회, 화산 분화 시에는 수시로 개최된다. 2000년 10월 후지산의 저주파 지진 증가 시 워킹 그룹이 설치되어 후지산 관련 기초 데이터 수집·정리, 감시 체제 검토, 화산 정보 발신 방법 등이 집중적으로 검토되었다.
- 내각부(内閣府)는 웹사이트 「후지산의 화산 방재 대책[118]」을 개설하여 후지산 위험 지도(ハザードマップ) 검토 위원회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후지 직할 사방 사업은 오자와 붕괴(大沢崩れ)를 원인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토석류(土石流)로부터 하류의 보전 대상을 지키는 사방 사업을 실시 중이다.
- 야마나시현과 시즈오카현은 「후지산 분화 시 피난 루트 맵」을 작성했다[119][120].
- 타나베 노부히로(田辺信宏) 시즈오카 시 시장은 2016년 1월 2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시 소방 항공대가 2013년 후지산에서 추락한 등산객을 구조하던 중 헬리콥터에서 낙하하여 사망한 사고를 받아 재발 방지책으로 시 소방국이 헬기로 구조할 수 있는 산의 높이에 상한선을 3200m로 설정한 것을 밝혔다[121].
정부 기관(국토지리원, 기상청, 방재과학기술연구소, 산업기술종합연구소) 및 지방자치단체([http://www.mfri.pref.yamanashi.jp/ 야마나시현 후지산과학연구소]), 대학(도쿄대학 지진연구소) 등에서 관측이 이루어지고 있다.
- 국토지리원: 지자기 관측점[122]이 가노야마 측지관측소, 미즈사와 측지관측소 및 에사시 관측소에 설치되어 있다. 또한, 정상에는 GPS 전자기준점이 있다.
- 기상청 관측소[123]: 지진계(정상, 고덴바구치 8합목, 요시다구치 6합목, 나루사와 토리즈카 동, 타로보), 경사계(타로보), 공진계(타로보, 카미이데), GSP(타로보), 원격카메라(하기와라)
- 방재과학기술연구소[124]: 화산 활동 가시화 시스템(Visualization system for Volcanic Activity)
- 국토교통성 중부지방정비국 후지사방사무소가 시즈오카현, 야마나시현과 연계하여 화쇄류, 용암류 등의 화산 활동에 따른 재해를 막기 위한 조사·검토를 실시하고 있다.[125] 위험지도를 작성하고 있으나, 산체붕괴를 상정한 위험지도는 2012년 시점에서는 미작성이다.
- 중앙방재회의가 도쿄 등 수도권에 대한 화산재 강하를 상정한 대책 검토를 2018년에 시작했다.[126]
6. 1. 1. 분화 역사
약 1만 1천 년 전, 고대 후지산 정상 서쪽에서 많은 양의 용암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이 용암은 후지산의 주요 부분을 이루는 새로운 신후지를 형성했다. 그 이후로 고대 후지산과 신후지산의 정상은 나란히 위치하게 되었다. 약 2,500년~2,800년 전, 고대 후지산의 상부는 풍화 작용으로 대규모 산사태를 일으켰고, 결국 신후지의 정상만 남게 되었다.[41][42]신후지 정상에서 용암이 분출했던 것은 약 1만 1천 년 전~약 8천 년 전의 3000년간과 약 4500년 전~약 3200년 전의 1300년간으로 생각된다. 정상부에서의 마지막 폭발적 분화는 2300년 전이며,[111] 이후로는 정상부에서의 분화는 없지만, 나가오산(長尾山)이나 보에이 산 등의 측화산에서의 분화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기록으로 추적할 수 있는 분화는 다음과 같다.
날짜 | 비고 |
---|---|
781년 7월 31일 | 쇼쿠니혼기(続日本紀)에 "화산재가 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43] |
800년 4월 11일~5월 15일 802년 2월 13일 | 니혼키랴쿠(日本紀略)에 따르면, 첫 번째 단계에서 낮에도 하늘이 어두웠다. 두 번째 단계는 니폰키세키(日本奇跡)에서 우박처럼 자갈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44] |
864년 6월~9월 865년 12월~866년 1월 | 니혼산다이지쓰로쿠(日本三代実録)ja-latn에 기록. 이 분화(조관 대분화)로 용암류에 의해 분리된 단일 호수에서 모토스 호, 쇼지 호, 사이코 호가 생성되었다.[45] |
937년 11월 | 니혼키랴쿠(日本紀略)에 기록되어 있다.[46] |
999년 3월 | 혼초세이키(本朝世紀)에 분화 소식이 경도(京都)로 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세부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47] |
1033년 1월 | 니혼키랴쿠(日本紀略)에 따르면, 이 분화 소식은 두 달 후에 경도로 전해졌다.[48] |
1083년 4월 17일 | 이에 대한 유일한 당대 기록은 불교 승려가 쓴 후소랴쿠키(扶桑略記)에 있다. 후대의 기록에 따르면 분화 소리는 경도에서 들렸을 수도 있다.[49] |
1435년 1월 30일~1436년 1월 18일 사이 | 야마나시 시의 쿠보하치만 신사(久保八幡神社) 승려들이 보관한 연대기인 오다이키(大日記)에 후지산에 불꽃이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연기가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이는 하와이식 분화(용암만)였던 것으로 보인다.[50] |
1511년 8월 | 후지카와구치코(富士河口湖町)의 명호지(妙法寺) 승려들이 쓴 가쓰야마키(勝山記)(또는 묘호지키(妙法寺記))에는 이때 후지산에 불이 났다는 기록이 있지만, 기술된 위치에는 식물이 없으므로 거의 확실히 용암류였을 것이다.[51] |
1707년 12월 16일 | 호에이 분화(宝永大噴火)[52] |
연력(延暦) 19년~연력 21년(800년~802년)에 연력 분화(『일본후기(日本後紀)』)가 발생했다. 에도(江戸)에서는 약 4cm의 화산재가 쌓였다. 또한, 보에이 대분화에 의해 후지산 산체에 보에이산이 형성되었다.
분화 연대를 고증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속일본기(続日本紀)』에 기록되어 있는, 천응(天応) 원년(781년)에 후지산에서 화산재가 내렸다는 내용이다. 평안(平安) 시대 초기에 성립된 『다케토리모노가타리(竹取物語)』에도 후지산이 작품 성립 당시 활동기였음을 암시하는 묘사가 있다. 평안 시대의 역사서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実録)』에는 조관 대분화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으며, 평안 시대 중기의 『카가미노니키(更級日記)』에는 후지산의 분기와 화영 현상을 나타낸 묘사가 있다.
보에이 대분화에 대한 기록은, 신정백석(新井白石)의 『오리타쿠시바노키(折りたく柴の記)』를 비롯한 문서, 그림 등에 의해 다수 남아 있다.
그 후에도, 분연이나 굉음의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만, 기록으로 보아 단기간에 걸친 소규모 활동으로 끝났다고 추정된다.
보에이 대분화 이후 300년 동안 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 초등학교 등에서는 후지산을 휴화산으로 가르쳤다. 그러나 기상청이 휴화산이라는 구분을 폐지한 것도 더해져, 현재는 활화산으로 분류되고 있다.
2013년 7월 20일, 산업기술종합연구소는 1999년부터 약 15년간의 탐사 데이터와 지질 조사 데이터를 정리하여 후지 화산 지질도 제2판(Ver.1)으로 발표했고,[112] 2016년에는 수정 보완이 완료되었다.[111] 동시에, 용암이 흘러나오는 규모의 분화는 지난 2000년간 최소 43회 있었다고 하고 있다.
6. 1. 2. 산체 붕괴
지진 및 화산 활동을 수반한 산체붕괴가 남서쪽으로 5회, 북동쪽으로 3회, 동쪽으로 4회, 총 12회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113], 발생 시기가 불확실한 경우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직하에 존재가 시사되고 있는 활단층의 활동에 의한 규모 7급 지진에 의한 붕괴도 우려되고 있다.주요 발생 이력
- 약 2900년 전(고텐바(御殿場)니류(泥流)):동쪽 사면에서 대규모(약 18억 m3)의 산체붕괴[114][115]가 발생하여, 니류(泥流)가 고텐바(御殿場) 주변에서 동쪽으로는 아시가라(足柄) 평야로, 남쪽으로는 미시마 주변을 지나 스루가(駿河)만으로 흘러내렸다. 산체붕괴의 발생 원인은 불명.
- 1331년의 겐코(元弘) 지진에 수반하여 발생.[116]
- 1891년의 노우비(濃尾) 지진에 수반하여 발생.[117]
6. 1. 3. 재해 대책
2011년 도호쿠 대지진 이후, 언론에서는 그 충격이 후지산의 화산 활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추측을 제기했다. 2012년 9월, 국립지진방재과학기술연구소(NIED)는 후지산의 마그마 방 압력이 1707년 마지막 분화 이전보다 1.6 메가파스칼 높을 수 있다는 수학적 모델 결과를 발표했고, 일부 언론은 이를 후지산 분화가 임박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53] 그러나 화산 마그마 방의 압력을 직접 측정하는 방법은 없으므로, NIED의 계산은 추측적이며 검증할 수 없다. 활동적인 분기공과 최근 발견된 단층과 같이 분화 위험 증가를 시사하는 다른 지표는 이러한 유형의 화산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다.[54]분화 우려는 202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2021년에는 주민 대피 계획을 돕기 위해 새로운 위험 지도가 만들어졌고, 용암 흐름과 추가적인 분출구에 대한 추정치가 증가하여 우려를 증폭시켰다.[55] 직후 규모 4.8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후지산 분화"라는 문구가 트위터에서 트렌드가 되었다.[56] 그러나 일본 기상청은 지진이 분화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았다고 대중에게 안심시켰다. 2023년에는 2021년 위험 지도 업데이트를 고려한 새로운 대피 계획이 개발되었다.[57]
- 화산분화예지연락회(火山噴火予知連絡会)는 일본의 화산 활동을 검토하고 상황에 따라 의견을 발표하지만, 화산 분화 시각을 특정하여 발표하지는 않는다. 정례회는 연 3회, 화산 분화 시에는 수시로 개최된다. 2000년 10월 후지산의 저주파 지진 증가 시 워킹 그룹이 설치되어 후지산 관련 기초 데이터 수집·정리, 감시 체제 검토, 화산 정보 발신 방법 등이 집중적으로 검토되었다.
- 내각부(内閣府)는 웹사이트 「후지산의 화산 방재 대책[118]」을 개설하여 후지산 위험 지도(ハザードマップ) 검토 위원회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후지 직할 사방 사업은 오자와 붕괴(大沢崩れ)를 원인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토석류(土石流)로부터 하류의 보전 대상을 지키는 사방 사업을 실시 중이다.
- 야마나시현과 시즈오카현은 「후지산 분화 시 피난 루트 맵」을 작성했다[119][120].
- 타나베 노부히로(田辺信宏) 시즈오카 시 시장은 2016년 1월 2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시 소방 항공대가 2013년 후지산에서 추락한 등산객을 구조하던 중 헬리콥터에서 낙하하여 사망한 사고를 받아 재발 방지책으로 시 소방국이 헬기로 구조할 수 있는 산의 높이에 상한선을 3200m로 설정한 것을 밝혔다[121].
정부 기관(국토지리원, 기상청, 방재과학기술연구소, 산업기술종합연구소) 및 지방자치단체([http://www.mfri.pref.yamanashi.jp/ 야마나시현 후지산과학연구소]), 대학(도쿄대학 지진연구소) 등에서 관측이 이루어지고 있다.
- 국토지리원: 지자기 관측점[122]이 가노야마 측지관측소, 미즈사와 측지관측소 및 에사시 관측소에 설치되어 있다. 또한, 정상에는 GPS 전자기준점이 있다.
- 기상청 관측소[123]: 지진계(정상, 고덴바구치 8합목, 요시다구치 6합목, 나루사와 토리즈카 동, 타로보), 경사계(타로보), 공진계(타로보, 카미이데), GSP(타로보), 원격카메라(하기와라)
- 방재과학기술연구소[124]: 화산 활동 가시화 시스템(Visualization system for Volcanic Activity)
- 국토교통성 중부지방정비국 후지사방사무소가 시즈오카현, 야마나시현과 연계하여 화쇄류, 용암류 등의 화산 활동에 따른 재해를 막기 위한 조사·검토를 실시하고 있다.[125] 위험지도를 작성하고 있으나, 산체붕괴를 상정한 위험지도는 2012년 시점에서는 미작성이다.
- 중앙방재회의가 도쿄 등 수도권에 대한 화산재 강하를 상정한 대책 검토를 2018년에 시작했다.[126]
7. 자연환경
후지산 기슭의 천연기념물로는 「후지산 원시림 및 아오키가하라」(천연기념물: 1926년 2월 24일 지정, 2010년 3월 8일 추가 지정·명칭 변경), 「후지 풍혈」(천연기념물: 1929년 12월 17일 지정) 등이 있다.
후지산에 내린 비와 눈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지하수맥을 따라 흐르는 복류수가 되어 용출된다. 가장 높은 지점에서 용출되는 용출수로 확인된 예는 해발 1670m(후지노미야구 이합목 부근)이며, 그 외에도 산록을 띠 모양으로 분포하고 있다. 1968년 당시 후지산 산록에서의 용출수 총 용출량은 하루 154만 m3 이상이었으나, 최근에는 용출량 감소가 확인된 사례가 있다.[144]
일부 복류수는 스루가만이나 후지 5호의 사이호(수심 25m 부근)에서 용출된다고 알려져 있다.[144]
후지산을 수원으로 하는 복류수를 이용하여 주변 지역에서 제지업이나 의약 관련 제조업 등의 공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후지산의 복류수는 바나듐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미네랄워터로 페트병에 담아 판매되고 있다.
지역 | 명칭 |
---|---|
남동산록 | 가키다가와(일본 3대 맑은 시내), 코하마이케 |
남산록 | 요시와라 용천군 |
서산록 | 유키다마이케(특별천연기념물), 백사의 폭포(국가지정 명승 및 천연기념물), 이노가시라 용천군 |
북산록 | 시노노하치카이(국가지정 천연기념물) |
후지산 기슭 주변에는 크고 작은 100개 이상의 용암동굴이 형성되어 있다.[58] 총 연장 2139m의 미쓰이케아나(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는 일본에서 가장 긴 용암동굴이다. 서호박쥐굴(야마나시현 민토루군 후지카와구치코정)과 나루사와빙굴(야마나시현 민토루군 나루사와무라)은 규모가 큰 용암동굴로,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58]
후지산은 높이가 높지만, 일본의 다른 고산에 비해 고산식물 등의 식생이 부족하다.[145] 이는 빙하기가 끝난 후 정상에서 대규모 분화가 반복되어 산의 생태계가 파괴되었고, 또한 독립봉이기 때문에 다른 산맥에서 식물이 유입되는 것도 늦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에이산(宝永山) 주변에서는 약간의 고산식물이 볼 수 있다.[145] 산 정상부에는 마디풀과 다닥냉이속의 온타데(御蓼), 산 중턱에는 국화과 엉겅퀴속의 후지아자미(富士薊)가 자생한다.[145] 중부 산악 지대의 고산의 삼림 한계선 위에는 눈잣나무대가 펼쳐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후지산에는 눈잣나무대가 없고, 그 대신 낙엽송숲이 펼쳐져 있다.[145]
7. 1. 복류수
후지산에 내린 비와 눈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지하수맥을 따라 흐르는 복류수가 되어 용출된다. 가장 높은 지점에서 용출되는 용출수로 확인된 예는 해발 1670m(후지노미야구 이합목 부근)이며, 그 외에도 산록을 띠 모양으로 분포하고 있다. 1968년 당시 후지산 산록에서의 용출수 총 용출량은 하루 154만 m3 이상이었으나, 최근에는 용출량 감소가 확인된 사례가 있다.[144]일부 복류수는 스루가만이나 후지 5호의 사이호(수심 25m 부근)에서 용출된다고 알려져 있다.[144]
후지산을 수원으로 하는 복류수를 이용하여 주변 지역에서 제지업이나 의약 관련 제조업 등의 공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후지산의 복류수는 바나듐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미네랄워터로 페트병에 담아 판매되고 있다.
지역 | 명칭 |
---|---|
남동산록 | 가키다가와(일본 3대 맑은 시내), 코하마이케 |
남산록 | 요시와라 용천군 |
서산록 | 유키다마이케(특별천연기념물), 백사의 폭포(국가지정 명승 및 천연기념물), 이노가시라 용천군 |
북산록 | 시노노하치카이(국가지정 천연기념물) |
7. 2. 용암 동굴
후지산 기슭 주변에는 크고 작은 100개 이상의 용암동굴이 형성되어 있다.[58] 총 연장 2139m의 미쓰이케아나(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는 일본에서 가장 긴 용암동굴이다. 서호박쥐굴(야마나시현 민토루군 후지카와구치코정)과 나루사와빙굴(야마나시현 민토루군 나루사와무라)은 규모가 큰 용암동굴로,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58]7. 3. 식생
후지산은 높이가 높지만, 일본의 다른 고산에 비해 고산식물 등의 식생이 부족하다.[145] 이는 빙하기가 끝난 후 정상에서 대규모 분화가 반복되어 산의 생태계가 파괴되었고, 또한 독립봉이기 때문에 다른 산맥에서 식물이 유입되는 것도 늦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에이산(宝永山) 주변에서는 약간의 고산식물이 볼 수 있다.[145] 산 정상부에는 마디풀과 다닥냉이속의 온타데(御蓼), 산 중턱에는 국화과 엉겅퀴속의 후지아자미(富士薊)가 자생한다.[145] 중부 산악 지대의 고산의 삼림 한계선 위에는 눈잣나무대가 펼쳐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후지산에는 눈잣나무대가 없고, 그 대신 낙엽송숲이 펼쳐져 있다.[145]8. 문화
고대부터 후지산은 산악 신앙의 대상이었으며, 후지산을 신체산(神体山)으로 여기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가리켜 후지 신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74][75] “신성한 장소”였기 때문에 메이지 시대까지 여성 금제의 전통이 있어 여성이 등산하는 것은 오랫동안 금지되었다. 특히 후지산의 신령으로 여겨지는 아사마 대신(浅間大神)과 코노하나사쿠야히메를 주祭神으로 하는 것이 아사마 신사이며, 섭말사가 전국에 산재해 있다. 아사마 신사의 총본궁이 산기슭의 후지노미야시에 있는 후지산본궁아사마대사(아사마대사)이며, 후지노미야 시가지에 있는 “본궁”과 후지산 정상에 있는 “옥궁”에서 후지산의 신을 모시고 있다.[146] 이러한 역사에서 후지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도 세계자연유산이 아니라 세계문화유산(후지산-신앙의 대상과 예술의 원천)으로서였다.
신토 신화에서 쿠니노토코타치는 지구가 혼돈 상태였을 때, "땅에서 솟아오른 갈대와 같은 것"에서 태어난 두 신 중 하나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니니기의 아내인 코노하나사쿠야히메는 후지산 홍구 센겐 신사가 그녀를 위해 봉헌된 후지산의 여신이다.
헤이안 시대(794~1185)에 화산 활동이 수그러들면서 후지산은 산악 숭배와 불교를 융합한 종교인 수행도의 근거지로 이용되었다. 숭배자들은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했고, 12세기 초에는 마쓰다이 쇼닌이 정상에 사찰을 세웠다.
후지코는 하세가와 카쿠교(1541~1646)라는 수행자가 창시한 후지산을 중심으로 한 에도 시대의 종교였다. 이 종교는 후지산을 여성 신으로 숭배하고 신자들이 후지산에 오르도록 권장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자들은 "정화되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재생을 경험하게 된다고 믿었다. 이 종교는 메이지 시대에 쇠퇴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신토 종파에 흡수되었다.
신불습합은 후지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산정부는 불교의 세계로 여겨지게 되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유례로는 정가 3년(1259년)의 기년명인 목조좌상이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것은 대일당(무라야마)의 옛 본존이었다. 가마쿠라 시대의 서적 『아즈마가가미』에는 신불습합에 의한 “후지 대보살”이나 “아사마 대보살”이라는 호칭이 확인된다. 후지산 정상의 8개의 봉우리(팔신봉)를 “팔엽”이라고 부르는 것도 신불습합에 유래하며, 분에이 연간(1264년 – 1275년)의 『만엽집 주석』에는 “정상에 팔엽의 봉우리가 있다”라고 적혀 있다.
후지산은 회화, 조각, 문학, 음악,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도자기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76] 특히,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후가쿠 삼십육경"과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후지 삼십육경"은 후지산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후지산 그림은 헤이안 시대에 가마쿠라 시대로서 읊어진 여러 지방의 명소를 그린 명소 그림의 성립과 함께 시작되었으며,[195]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후지산 그림은 법륭사 헌납 보물인(1069년)의 『성덕태자 영전』(도쿄국립박물관 소장)이다.[196] 가마쿠라 시대에는 산정이 세 봉우리로 나뉜 삼봉형 후지산 묘사법이 확립되었고, 『이세 이야기 화권』, 『소가 이야기 후지산 말타기 사냥도』 등 이야기 문학의 성립과 함께 무대가 되는 후지산이 그려졌으며, 후지 신앙의 성립과 더불어 예배 그림으로서 『후지 만다라도』도 그려졌다.[195]
에도 시대에는 1767년(메이와 4년)에 가와무라 민세쓰가 그림책 『백후지』를 출판하여 후지산 그림의 연작이라는 스타일을 제시했다.[197][198]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후가쿠 삼십육경』(1831년 - 1834년)과 그림책 『후가쿠 백경』(전 3편. 초편 1834년)을 출판했다. 우타가와 히로시게도 1850년대에 『후지 삼십육경』, 『후지 삼십육경』, 『후지산 100도』를 출판했다.[199] 공예품으로는 혼아미 고에쓰가 직접 제작한 락요의 다완에 후지산의 정취를 찾아내어 "후지산"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근대에는 지폐나 우표 디자인에도 사용되고 있다. 후지산이 지폐 디자인에 사용되는 예는 많다. 옛날에는 1913년 발행의 50전 정부 지폐가 있으며, 아이타카산에서 본 후지산이다. 그 후의 1951년과 1969년 발행의 구 오백 엔 지폐는 오쓰키시의 간가하라스리야마에서 본 후지산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1984년 발행의 구 오천 엔 지폐와 2004년 발행의 천 엔 지폐는 본사 호수의 호반에서 본 후지산이다.[203]
thumb 50엔 우표의 도안(요코야마 다이칸『영봉 후지』)]]
후지산을 묘사한 우표가 우체국에서 발매되었다.[204]
- 연하우표 쇼와 11년용 와타나베 가잔『후가쿠도』(1935년)[205]
- 제1차국립공원 후지하코네(새벽의 후지산, 아시노코에서, 미쓰토게에서, 도카이도의 후지산)(1936년)[206]
- 국제관광년 요코야마 다이칸『영봉 후지』(1967년)[209]
- 가츠시카 호쿠사이(1999년)
- 큰달맞이꽃·야마나시현(2005년)
후지산은 와카의 가마쿠라로서 자주 등장하며, 『만엽집』에는 후지산을 노래한 시가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210] "다고의 우라를 나가 바라보니 눈은 희게도 후지의 높은 봉우리에 내리고 있네" (권 3·318)는 야마베 아카히토의 유명한 단가(반가)이다.[210] 또한 이 반가의 다음에는 다카하시 무시마로가 후지를 찬양하는 긴 시가 있으며, 그 한 구절에 “…타오르는 불을 눈이 녹이고 내리는 눈을 불이 녹이면서…” (권 3·319·대의: (화산의) 타오르는 불을 (산꼭대기에 내리는) 눈으로 녹이고, (산꼭대기에) 내리는 눈을 (화산의) 불로 녹이면서) 라고 하여 당시 후지산이 화산 활동을 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210]
『신고긴와카슈』에서 후지산의 연기가 노래되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후지산의 연기 하늘에 사라져 가는 곳도 알 수 없는 나의 마음이여 사이교 (# 1613)
도쿄 사람들에게 후지산은 멀리 떨어져 신비로운 산으로 인식되었고, 고전 문학에서는 도요라카의 『후지일기』가 후지산의 모습과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210] 『다케토리모노가타리』는 이야기 후반부에서 후지산이 무대가 되고, 당시 천황이 카구야히메로부터 받은 불로불사의 약을, 달의 암석과 많은 무사들에게 명하여 하늘에 가장 가까운 산의 정상에서 태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산은 많은 무사들의 이름을 따서 후지산(富士山)이라고 명명되었다는 설화를 적고 있다.[210]
그 밖에 『겐지모노가타리』나 『이세모노가타리』에서도 후지산에 언급되는 부분이 있지만, 주요 무대가 되는 경우는 적다.[210] 『츠츠이나고넨모노가타리』에서는 카이국 쪽 후지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210] 또한 "팔면영롱(八面玲瓏)"이라는 말은 후지산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211]
중세부터 근세에 걸쳐 후지산 북쪽 기슭 지역에는 후지산 참배객들이 왕래하였고, 에도 시대에는 지역 문예로서 하이카이가 성행하였다.[210] 근대에는 철도 등 교통기관의 발달과 후지산 기슭의 관광지화의 영향을 받아 많은 문인과 민속학자들이 피서 목적으로 후지산을 방문하게 되었고, 신다 지로, 쿠사노 신페이, 호리구치 다이가쿠 등이 후지산을 테마로 한 작품을 쓰고, 산악 문학을 비롯한 많은 기행문 등에 그려졌다.[210]
다자이 오사무가 1939년(쇼와 14년)에 집필한 소설 『후가쿠백경』의 한 구절인 "후지산에는 달맞이꽃이 잘 어울린다"는 잘 알려져 있으며, 야마나시현 후지카와구치코정의 오사카 고개에는 그 비문이 세워져 있다.[212] 직키상 수상 작가인 신다 지로는 후지산 정상 기상대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후지산 강력(고우리키)의 삶을 그린 직키상 수상작 『강력전』과 『후지산 정상』[212]을 비롯해 수많은 후지산과 관련된 작품을 집필했다.
다카하마 쿄시는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의 누마쿠보 역에서 내렸을 때 아름다운 후지산을 보고 시를 지었다. 역 앞에는 그 시비가 세워져 있다.[210]
"어떤 역 후지산 기슭에서 대나무의 가을/누마쿠보에서 내리는 아이 동반한 꽃 할머니"
8. 1. 신앙
고대부터 후지산은 산악 신앙의 대상이었으며, 후지산을 신체산(神体山)으로 여기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가리켜 후지 신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74][75] “신성한 장소”였기 때문에 메이지 시대까지 여성 금제의 전통이 있어 여성이 등산하는 것은 오랫동안 금지되었다. 특히 후지산의 신령으로 여겨지는 아사마 대신(浅間大神)과 코노하나사쿠야히메를 주祭神으로 하는 것이 아사마 신사이며, 섭말사가 전국에 산재해 있다. 아사마 신사의 총본궁이 산기슭의 후지노미야시에 있는 후지산본궁아사마대사(아사마대사)이며, 후지노미야 시가지에 있는 “본궁”과 후지산 정상에 있는 “옥궁”에서 후지산의 신을 모시고 있다.[146] 이러한 역사에서 후지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도 세계자연유산이 아니라 세계문화유산(후지산-신앙의 대상과 예술의 원천)으로서였다.신토 신화에서 쿠니노토코타치는 지구가 혼돈 상태였을 때, "땅에서 솟아오른 갈대와 같은 것"에서 태어난 두 신 중 하나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니니기의 아내인 코노하나사쿠야히메는 후지산 홍구 센겐 신사가 그녀를 위해 봉헌된 후지산의 여신이다.
헤이안 시대(794~1185)에 화산 활동이 수그러들면서 후지산은 산악 숭배와 불교를 융합한 종교인 수행도의 근거지로 이용되었다. 숭배자들은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했고, 12세기 초에는 마쓰다이 쇼닌이 정상에 사찰을 세웠다.
후지코는 하세가와 카쿠교(1541~1646)라는 수행자가 창시한 후지산을 중심으로 한 에도 시대의 종교였다. 이 종교는 후지산을 여성 신으로 숭배하고 신자들이 후지산에 오르도록 권장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자들은 "정화되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재생을 경험하게 된다고 믿었다. 이 종교는 메이지 시대에 쇠퇴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신토 종파에 흡수되었다.
신불습합은 후지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산정부는 불교의 세계로 여겨지게 되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유례로는 정가 3년(1259년)의 기년명인 목조좌상이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것은 대일당(무라야마)의 옛 본존이었다. 가마쿠라 시대의 서적 『아즈마가가미』에는 신불습합에 의한 “후지 대보살”이나 “아사마 대보살”이라는 호칭이 확인된다. 후지산 정상의 8개의 봉우리(팔신봉)를 “팔엽”이라고 부르는 것도 신불습합에 유래하며, 분에이 연간(1264년 – 1275년)의 『만엽집 주석』에는 “정상에 팔엽의 봉우리가 있다”라고 적혀 있다.
8. 2. 예술
후지산은 회화, 조각, 문학, 음악,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도자기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76] 특히,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후가쿠 삼십육경"과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후지 삼십육경"은 후지산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후지산 그림은 헤이안 시대에 가마쿠라 시대로서 읊어진 여러 지방의 명소를 그린 명소 그림의 성립과 함께 시작되었으며,[195]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후지산 그림은 법륭사 헌납 보물인(1069년)의 『성덕태자 영전』(도쿄국립박물관 소장)이다.[196] 가마쿠라 시대에는 산정이 세 봉우리로 나뉜 삼봉형 후지산 묘사법이 확립되었고, 『이세 이야기 화권』, 『소가 이야기 후지산 말타기 사냥도』 등 이야기 문학의 성립과 함께 무대가 되는 후지산이 그려졌으며, 후지 신앙의 성립과 더불어 예배 그림으로서 『후지 만다라도』도 그려졌다.[195]
에도 시대에는 1767년(메이와 4년)에 가와무라 민세쓰가 그림책 『백후지』를 출판하여 후지산 그림의 연작이라는 스타일을 제시했다.[197][198]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후가쿠 삼십육경』(1831년 - 1834년)과 그림책 『후가쿠 백경』(전 3편. 초편 1834년)을 출판했다. 우타가와 히로시게도 1850년대에 『후지 삼십육경』, 『후지 삼십육경』, 『후지산 100도』를 출판했다.[199] 공예품으로는 혼아미 고에쓰가 직접 제작한 락요의 다완에 후지산의 정취를 찾아내어 "후지산"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근대에는 지폐나 우표 디자인에도 사용되고 있다. 후지산이 지폐 디자인에 사용되는 예는 많다. 옛날에는 1913년 발행의 50전 정부 지폐가 있으며, 아이타카산에서 본 후지산이다. 그 후의 1951년과 1969년 발행의 구 오백 엔 지폐는 오쓰키시의 간가하라스리야마에서 본 후지산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1984년 발행의 구 오천 엔 지폐와 2004년 발행의 천 엔 지폐는 본사 호수의 호반에서 본 후지산이다.[203]
thumb 50엔 우표의 도안(요코야마 다이칸『영봉 후지』)]]
후지산을 묘사한 우표가 우체국에서 발매되었다.[204]
- 연하우표 쇼와 11년용 와타나베 가잔『후가쿠도』(1935년)[205]
- 제1차국립공원 후지하코네(새벽의 후지산, 아시노코에서, 미쓰토게에서, 도카이도의 후지산)(1936년)[206]
- 국제관광년 요코야마 다이칸『영봉 후지』(1967년)[209]
- 가츠시카 호쿠사이(1999년)
- 큰달맞이꽃·야마나시현(2005년)
8. 3. 문학
후지산은 와카의 가마쿠라로서 자주 등장하며, 『만엽집』에는 후지산을 노래한 시가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210] "다고의 우라를 나가 바라보니 눈은 희게도 후지의 높은 봉우리에 내리고 있네" (권 3·318)는 야마베 아카히토의 유명한 단가(반가)이다.[210] 또한 이 반가의 다음에는 다카하시 무시마로가 후지를 찬양하는 긴 시가 있으며, 그 한 구절에 “…타오르는 불을 눈이 녹이고 내리는 눈을 불이 녹이면서…” (권 3·319·대의: (화산의) 타오르는 불을 (산꼭대기에 내리는) 눈으로 녹이고, (산꼭대기에) 내리는 눈을 (화산의) 불로 녹이면서) 라고 하여 당시 후지산이 화산 활동을 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210]『신고긴와카슈』에서 후지산의 연기가 노래되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후지산의 연기 하늘에 사라져 가는 곳도 알 수 없는 나의 마음이여 사이교 (# 1613)
도쿄 사람들에게 후지산은 멀리 떨어져 신비로운 산으로 인식되었고, 고전 문학에서는 도요라카의 『후지일기』가 후지산의 모습과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210] 『다케토리모노가타리』는 이야기 후반부에서 후지산이 무대가 되고, 당시 천황이 카구야히메로부터 받은 불로불사의 약을, 달의 암석과 많은 무사들에게 명하여 하늘에 가장 가까운 산의 정상에서 태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산은 많은 무사들의 이름을 따서 후지산(富士山)이라고 명명되었다는 설화를 적고 있다.[210]
그 밖에 『겐지모노가타리』나 『이세모노가타리』에서도 후지산에 언급되는 부분이 있지만, 주요 무대가 되는 경우는 적다.[210] 『츠츠이나고넨모노가타리』에서는 카이국 쪽 후지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210] 또한 "팔면영롱(八面玲瓏)"이라는 말은 후지산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211]
중세부터 근세에 걸쳐 후지산 북쪽 기슭 지역에는 후지산 참배객들이 왕래하였고, 에도 시대에는 지역 문예로서 하이카이가 성행하였다.[210] 근대에는 철도 등 교통기관의 발달과 후지산 기슭의 관광지화의 영향을 받아 많은 문인과 민속학자들이 피서 목적으로 후지산을 방문하게 되었고, 신다 지로, 쿠사노 신페이, 호리구치 다이가쿠 등이 후지산을 테마로 한 작품을 쓰고, 산악 문학을 비롯한 많은 기행문 등에 그려졌다.[210]
다자이 오사무가 1939년(쇼와 14년)에 집필한 소설 『후가쿠백경』의 한 구절인 "후지산에는 달맞이꽃이 잘 어울린다"는 잘 알려져 있으며, 야마나시현 후지카와구치코정의 오사카 고개에는 그 비문이 세워져 있다.[212] 직키상 수상 작가인 신다 지로는 후지산 정상 기상대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후지산 강력(고우리키)의 삶을 그린 직키상 수상작 『강력전』과 『후지산 정상』[212]을 비롯해 수많은 후지산과 관련된 작품을 집필했다.
다카하마 쿄시는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의 누마쿠보 역에서 내렸을 때 아름다운 후지산을 보고 시를 지었다. 역 앞에는 그 시비가 세워져 있다.[210]
"어떤 역 후지산 기슭에서 대나무의 가을/누마쿠보에서 내리는 아이 동반한 꽃 할머니"
9. 관광
매년 7월 1일부터 9월 상순까지 후지산 등반이 가능하다.[217] 후지산 등반에는 등산 지식과 경험, 장비가 필수적이다.[216] 기간 외에는 완벽한 준비를 하지 않은 자의 등반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특히 적설기·잔설기의 등반은 매우 위험하다.[217]
2009년에는 약 30만 명이 후지산에 올랐으며,[65] 가장 인기 있는 시기는 산장과 기타 시설이 운영되고 날씨가 가장 따뜻한 7월부터 8월까지이다.[65] 등반객들이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등산로 입구까지의 버스는 7월 1일에 운행을 시작한다.[66]
정상까지 이르는 주요 등반로는 네 개이며, 각각에는 번호가 매겨진 역이 있다. 시계 방향으로 북쪽부터 시작하여 가와구치코, 스바시리, 고템바, 후지노미야 등반로이다.[69] 등반객들은 보통 자동차나 버스로 갈 수 있는 5합목에서 등반을 시작한다. 각 등산로의 합목은 고도가 다르다. 가장 높은 5합목은 후지노미야에 위치하며, 요시다, 스바시리, 고템바가 그 뒤를 잇는다. 산기슭에서 시작하는 등반로는 쇼지코, 요시다, 스야마, 무라야마 등 네 개가 더 있다.[70]
요시다 등반로는 넓은 주차장과 많은 대형 산장이 있어 가장 인기 있는 등반로이며, 여름철에는 대부분의 후지산 등반 투어 버스가 이곳에 도착한다. 후지노미야 등반로는 5합목이 가장 높아 두 번째로 인기 있으며, 스바시리와 고템바 등반로가 그 뒤를 잇는다.[69] 새로운 5합목에서 정상까지의 등반에는 5~7시간이 걸리고, 하산에는 3~4시간이 걸릴 수 있다.[69]
등반로에는 트랙터 길이 있는데, 산장에 음식과 기타 물품을 운반하는 데 사용된다. 트랙터는 일반적으로 이 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경로의 측면에서 큰 바위를 밀어내기 때문에, 등반 또는 하산 경로와 합쳐지지 않은 구간에서는 등반객에게 금지되어 있다.
산기슭에서 시작하는 네 개의 등반로는 역사적 유적지를 제공한다. 무라야마 등반로는 가장 오래된 등반로이며, 요시다 등반로에는 여전히 많은 오래된 신사, 다실, 산장이 남아 있다. 요시다 등반로에서는 아시아흑곰이 목격되기도 한다.
5합목 이상의 산장은 일반적으로 등반 시즌 동안 직원이 배치되지만, 5합목 이하의 산장은 등반객을 위해 직원이 배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등반로에 있는 개방된 산장의 수는 등반객의 수에 비례하며, 요시다는 가장 많고 고템바는 가장 적다. 또한 후지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5합목 이상의 야영은 불법이다.
정상 분화구 주변에는 여덟 개의 봉우리가 있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겐가미네에는 예전에 후지산 레이더 시스템이 있었다(2004년 자동 시스템으로 교체됨).
2024년 2월 1일, 야마나시 현 정부는 여름 시즌부터 요시다 등산로를 이용하는 등산객들에게 2,000엔(약 13달러)의 의무적인 이용료를 부과했다.[71] 이는 혼잡 완화와 안전 규약을 위한 자금 마련 노력의 일환이다.[71] 이후 야마나시 현 정부는 등산로 이용객을 하루 4,000명으로 제한하고, 산장 투숙객을 제외하고는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등산로를 폐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72] 이어 시즈오카 현 정부도 혼잡에 대한 우려를 들어 같은 기간 동안 수바시리, 고템바, 후지노미야 등산로를 동일한 예외 조항을 적용하여 폐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73]
9. 1. 후지 등산
매년 7월 1일부터 9월 상순까지 후지산 등반이 가능하다.[217] 후지산 등반에는 등산 지식과 경험, 장비가 필수적이다.[216] 기간 외에는 완벽한 준비를 하지 않은 자의 등반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특히 적설기·잔설기의 등반은 매우 위험하다.[217]2009년에는 약 30만 명이 후지산에 올랐으며,[65] 가장 인기 있는 시기는 산장과 기타 시설이 운영되고 날씨가 가장 따뜻한 7월부터 8월까지이다.[65] 등반객들이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등산로 입구까지의 버스는 7월 1일에 운행을 시작한다.[66]
정상까지 이르는 주요 등반로는 네 개이며, 각각에는 번호가 매겨진 역이 있다. 시계 방향으로 북쪽부터 시작하여 가와구치코, 스바시리, 고템바, 후지노미야 등반로이다.[69] 등반객들은 보통 자동차나 버스로 갈 수 있는 5합목에서 등반을 시작한다. 각 등산로의 정상은 10합목이다. 각 등산로의 합목은 고도가 다르다. 가장 높은 5합목은 후지노미야에 위치하며, 요시다, 스바시리, 고템바가 그 뒤를 잇는다. 산기슭에서 시작하는 등반로는 쇼지코, 요시다, 스야마, 무라야마 등 네 개가 더 있다.[70]
요시다 등반로는 넓은 주차장과 많은 대형 산장이 있어 가장 인기 있는 등반로이며, 여름철에는 대부분의 후지산 등반 투어 버스가 이곳에 도착한다. 후지노미야 등반로는 5합목이 가장 높아 두 번째로 인기 있으며, 스바시리와 고템바 등반로가 그 뒤를 잇는다.[69] 새로운 5합목에서 정상까지의 등반에는 5~7시간이 걸리고, 하산에는 3~4시간이 걸릴 수 있다.[69]
등반로에는 트랙터 길이 있는데, 산장에 음식과 기타 물품을 운반하는 데 사용된다. 트랙터는 일반적으로 이 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경로의 측면에서 큰 바위를 밀어내기 때문에, 등반 또는 하산 경로와 합쳐지지 않은 구간에서는 등반객에게 금지되어 있다.
산기슭에서 시작하는 네 개의 등반로는 역사적 유적지를 제공한다. 무라야마 등반로는 가장 오래된 등반로이며, 요시다 등반로에는 여전히 많은 오래된 신사, 다실, 산장이 남아 있다. 요시다 등반로에서는 아시아흑곰이 목격되기도 한다.
5합목 이상의 산장은 일반적으로 등반 시즌 동안 직원이 배치되지만, 5합목 이하의 산장은 등반객을 위해 직원이 배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등반로에 있는 개방된 산장의 수는 등반객의 수에 비례하며, 요시다는 가장 많고 고템바는 가장 적다. 또한 후지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5합목 이상의 야영은 불법이다.
정상 분화구 주변에는 여덟 개의 봉우리가 있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겐가미네에는 예전에 후지산 레이더 시스템이 있었다(2004년 자동 시스템으로 교체됨).
2024년 2월 1일, 야마나시 현 정부는 여름 시즌부터 요시다 등산로를 이용하는 등산객들에게 2,000엔(약 13달러)의 의무적인 이용료를 부과했다.[71] 이는 혼잡 완화와 안전 규약을 위한 자금 마련 노력의 일환이다.[71] 이후 야마나시 현 정부는 등산로 이용객을 하루 4,000명으로 제한하고, 산장 투숙객을 제외하고는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등산로를 폐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72] 이어 시즈오카 현 정부도 혼잡에 대한 우려를 들어 같은 기간 동안 수바시리, 고템바, 후지노미야 등산로를 동일한 예외 조항을 적용하여 폐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73]
9. 2. 기타 관광
후지산은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해 주변 지역이 유명 관광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코네는 후지산이 보이고 도쿄에서 가까워 온천, 역사, 미술관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어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으며, 여름에는 피서지로도 유명하다. 후지고코는 후지산 주변의 유명 관광지이며, 혼바시호의 거꾸로 보이는 후지산은 일본은행권에 채택되어 있다. 시라이토노타키는 상류에 강이 없고 후지산의 눈 녹은 물이 용암 단층에서 솟아나는 드문 형태의 폭포로, 오토메노타키와 함께 일본의 폭포 100선에 지정되어 있다. 아사기리 고원은 후지산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명소로, 자연과 광대한 땅 덕분에 과거 제13회 세계 잼보리가 개최되기도 했다. 다이아몬드 후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타누키호나 야마나카호와 같은 명소도 유명하며, 특히 사진 촬영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관광객도 많다. 후지 스바루 라인이나 후지산 스카이라인을 이용하면 5합목까지 자가용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성수기에는 자가용 규제 기간이 있고 겨울에는 폐쇄된다.10. 지역 진흥
후지산 일대의 종교 시설과 피서, 후지산 등산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관광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후지산 기슭에는 온천지로 성립할 만한 규모의 온천수가 용출되지 않는다.[213]
후지산 이용에 대해, 시즈오카현 측은 자연·문화의 보호를 중시하는 반면, 야마나시현 측은 전통적으로 관광 개발을 중시하고 있다. 산정 소유권 문제, 산장 화장실 문제, 자가용 규제 문제[214], 세계유산 등록 문제[215] 등,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양측의 이해관계 차이가 표면화되고 있다.
2월 23일은 "후지산의 날"로, 야마나시현과 시즈오카현에서 제정되어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이는 '2(후지)・2(지)・3(산)'으로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착안되었다.
야마나시현 후지카와구치코정(당시에는 가와구치코정)에서 2001년 조례를 제정하였고, 2009년에는 시즈오카현 의회에서 조례가 가결되었다. 후지산은 일상생활에 익숙한 존재이지만, '후지산의 날'을 통해 일본의 상징으로서 후지산을 재인식하고, 세계유산 등록을 위한 움직임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시즈오카현 교육위원회는 2011년부터 '후지산의 날'을 학교 휴업일로 지정하도록 요청했으나, 후지시 교육위원회는 특정일을 휴업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지정하지 않았다. 대신, 후지산 어린이 나라 무료 개방, 도서관 및 박물관 등에서 관련 사업을 실시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후지산의 날은 1996년 1월 1일 PC통신 "NIFTY-Serve" 내의 "산의 전망과 지도의 포럼(FYAMAP)"에서 처음 선언하였다.
시즈오카 운수지국 관내의 4개 시와 2개 정, 그리고 야마나시 운수지국 관내의 1개 시, 2개 정, 4개 촌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번호판으로서 2008년 11월 4일부터 '''후지산 번호판'''의 발급이 시작되었다.[218][219] 관할 지국이 두 개 현에 걸쳐 있는 번호판은 드문 경우이다.[218][219]
「후지산 검정 실행위원회」가 주최하는 후지산 검정이 후지 상공회의소, 후지요시다 상공회의소, 시즈오카 신문사·시즈오카 방송, 야마나시 니치니치 신문사·야마나시 방송, NPO법인 후지산 검정 협회의 5개 기관에 의해 시행되고 있다.
후지산의 용출수를 비와호에, 비와호의 물을 후지산 정상에 붓는 교류가 1957년 이후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와 시가현 오미하치만시 사이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오미의 흙을 파서 후지산을 만들고 그 구멍이 비와호가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후지산의 용출수를 비와호에 붓는 것을 “물 돌려주기(お水返し)”, 비와호의 물을 후지산 정상에 붓는 것을 “물 길어오기(お水取り)”라고 한다.[220][221]
2014년에는 일본 후지산 협회와 중화민국 산악협회 사이에 후지산과 유산의 우호 산 제휴가 체결되었다.[222] 해발 3952m의 유산은 타이완의 일본 통치 시대에 '''신고산(新高山)'''이라고 불리며, 일본의 최고봉이었다.
10. 1. 후지산의 날
2월 23일은 "후지산의 날"로, 야마나시현과 시즈오카현에서 제정되어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이는 '2(후지)・2(지)・3(산)'으로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착안되었다.야마나시현 후지카와구치코정(당시에는 가와구치코정)에서 2001년 조례를 제정하였고, 2009년에는 시즈오카현 의회에서 조례가 가결되었다. 후지산은 일상생활에 익숙한 존재이지만, '후지산의 날'을 통해 일본의 상징으로서 후지산을 재인식하고, 세계유산 등록을 위한 움직임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시즈오카현 교육위원회는 2011년부터 '후지산의 날'을 학교 휴업일로 지정하도록 요청했으나, 후지시 교육위원회는 특정일을 휴업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지정하지 않았다. 대신, 후지산 어린이 나라 무료 개방, 도서관 및 박물관 등에서 관련 사업을 실시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후지산의 날은 1996년 1월 1일 PC통신 "NIFTY-Serve" 내의 "산의 전망과 지도의 포럼(FYAMAP)"에서 처음 선언하였다.
10. 2. 후지산 넘버
시즈오카 운수지국 관내의 4개 시와 2개 정, 그리고 야마나시 운수지국 관내의 1개 시, 2개 정, 4개 촌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번호판으로서 2008년 11월 4일부터 '''후지산 번호판'''의 발급이 시작되었다.[218][219] 관할 지국이 두 개 현에 걸쳐 있는 번호판은 드문 경우이다.[218][219]10. 3. 후지산 검정
「후지산 검정 실행위원회」가 주최하는 후지산 검정이 후지 상공회의소, 후지요시다 상공회의소, 시즈오카 신문사·시즈오카 방송, 야마나시 니치니치 신문사·야마나시 방송, NPO법인 후지산 검정 협회의 5개 기관에 의해 시행되고 있다.10. 4. 지역 간 교류
후지산의 용출수를 비와호에, 비와호의 물을 후지산 정상에 붓는 교류가 1957년 이후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와 시가현 오미하치만시 사이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오미의 흙을 파서 후지산을 만들고 그 구멍이 비와호가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후지산의 용출수를 비와호에 붓는 것을 “물 돌려주기(お水返し)”, 비와호의 물을 후지산 정상에 붓는 것을 “물 길어오기(お水取り)”라고 한다.[220][221]2014년에는 일본 후지산 협회와 중화민국 산악협회 사이에 후지산과 유산의 우호 산 제휴가 체결되었다.[222] 해발 3952m의 유산은 타이완의 일본 통치 시대에 '''신고산(新高山)'''이라고 불리며, 일본의 최고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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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等の指定等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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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跡等の指定等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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季刊 伊能忠敬研究 第9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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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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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アルプスの登山と探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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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で見る日本登山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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浅間神社の歴史
古今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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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歩いてみたい日本の名山
西東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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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20年振りの悲願達成 皇太子さま、富士山にご登頂
産経新聞
200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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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富士山夏山閉鎖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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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コロナで夏の富士山、閉鎖へ
共同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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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富士山、今夏閉山へ コロナ感染防止で登山道閉鎖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
202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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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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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山町史 第2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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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士宮市立中央図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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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士山、県境定めず」山梨と静岡、両知事が明言
https://archive.is/a[...]
201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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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士山頂は静岡県? 国土地理院ネット地図で住所表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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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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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富士山頂住所非表示に 地理院がHP“訂正”
https://archive.is/L[...]
201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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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冊(内国郵便約款第79条及び第97条関係) 交通困難地・速達取扱地域外一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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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富士山をペンキで赤く塗り潰す作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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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富士をめぐる しずおか・やまなし文化財ガイドブック
静岡県教育委員会文化課 山梨県教育庁学術文化財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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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山梨の文化財 : 国指定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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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特別名勝富士山保存管理計画
静岡県教育委員会文化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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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富士山、関西から見えた 3年がかりで撮影成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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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経済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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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士山、見える範囲広がった?都心からの観測は増加 - 環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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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士山が見える最遠の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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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歌山県那智勝浦町観光産業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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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花塚山から「富士山」撮影成功 北限を9キロ更新『308キ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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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都から富士山の撮影に成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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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夜の富士山、奈良で撮った 遠望の限界に挑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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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経済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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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土交通省 関東地方整備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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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UBI 富士吉田市歴史民俗博物館だより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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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士吉田市歴史民俗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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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解剖 先端拠点】山梨県富士山科学研究所/噴火や植生・資源まで調査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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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Harv citation - needs more information to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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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士三保清見寺図の図様伝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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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別展「北斎と広重 ふたりの冨嶽三十六景」: 山梨県立博物館 -Yamanashi Prefectural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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横山大観とは?波瀾万丈な生涯と代表作をたどる | 藝大アートプラ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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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勲章受章】片岡球子『富士』木版画・本金泥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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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千円札にも富士山の絵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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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梨日日新聞社・YBS山梨放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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切手と風景印でたどる百名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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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賀切手 昭和11年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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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次国立公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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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郵便趣味協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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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次国立公園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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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郵便趣味協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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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次国立公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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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郵便趣味協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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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際観光年 50円額面 霊峰不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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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郵便趣味協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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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採公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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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士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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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列島100万年史 大地に刻まれた壮大な物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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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年一剛:箱根カルデラ− 地質構造・成因・現在の火山活動における役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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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士山有料道路マイカー通行規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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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梨日日新聞社・YBS山梨放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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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富士山 잠정리스트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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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山の前に必ず知っておく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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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士山」ナンバー:11月4日から交付開始…国交省 - 毎日jp(毎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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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富士山の湧き水を琵琶湖に ダイダラボッチ伝説にちなみ「お水返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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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케이 WEST
201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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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士の湧き水、琵琶湖に 近江八幡で静岡の市民ら「お水返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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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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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富士山協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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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 산(富士山), 성스러운 장소 그리고 예술적 영감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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気象庁 / 平年値(年・月ごとの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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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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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상징' 후지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종합)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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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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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230]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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