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간정
1. 개요
옥간정은 조선 숙종 때 성리학자인 정만양과 규양 형제가 제자를 양성하기 위해 1716년에 세운 정자이다. 이들은 옥간정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조현명, 정중기, 정간 등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옥간정은 앞면 3칸, 옆면 4칸 반 규모의 ㄱ자형 누각 건물로, 창호 구성 방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 이름 | 옥간정 |
|---|---|
| 국가 | 대한민국 경상북도 |
| 유형 | 유형문화재 |
| 지정 번호 | 270 |
| 지정일 | 1992년 7월 18일 |
| 주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별빛로 122 (횡계리) |
| 시대 | 알 수 없음 |
| 소유자 | 알 수 없음 |
| 참고 사항 | 알 수 없음 |
| 면적 | 알 수 없음 |
| 수량 | 1동 |
| 전승지 | 알 수 없음 |
| 전승자 | 알 수 없음 |
| 문화재청 ID | 21,02700000,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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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의 문화유산 -
영천 조양각
영천 조양각은 금호강 벼랑 위에 있는 누각으로, 고려 공민왕 때 처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재건되었으며, 영천지방 문화의 상징이자 영남 7대 누각 중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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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역
영천역은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한국철도공사 소속의 철도역으로, KTX-이음, ITX-마음, 무궁화호, 누리로 열차가 정차하며 중앙선, 대구선, 동해선이 지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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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외버스터미널
영천시외버스터미널은 경상북도 영천시에 위치하며 천일고속의 서울경부행 고속버스와 충청권 및 영남권 각지로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영천 시내버스도 읍면 지역으로 연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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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조양각
영천 조양각은 금호강 벼랑 위에 있는 누각으로, 고려 공민왕 때 처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재건되었으며, 영천지방 문화의 상징이자 영남 7대 누각 중 하나이다.
2. 역사
옥간정은 조선 숙종 때 성리학자인 정만양·정규양 형제가 1716년(숙종 42년)에 제자를 육성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이들은 옥간정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영의정 조현명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정만양, 정규양 형제는 나라에서 여러 차례 관직을 제안했으나 거절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옥간정은 앞면 3칸, 옆면 4칸반 규모의 ㄱ자형 누각 건물이며, 창호 구성 방법 등에서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2.1. 건립 배경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인 정만양·정규양 형제가 제자를 육성하기 위하여 숙종 42년(1716)에 세운 정자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영의정 조현명을 비롯하여 정중기·정간 등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그 후 나라에서 여러 차례 관직을 권했으나 거절하고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2.2. 건립 및 운영
숙종 때의 성리학자인 정만양·정규양 형제가 제자를 육성하기 위하여 1716년(숙종 42년)에 세운 정자이다.
정만양·정규양 형제는 이곳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영의정 조현명을 비롯하여 정중기·정간 등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그 후 나라에서 여러 차례 관직을 권했으나 거절하고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옥간정은 앞면 3칸·옆면 4칸반 규모의 ㄱ자형 누각건물로 창호구성방법 등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3. 건축
옥간정은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인 정만양·정규양 형제가 숙종 42년(1716)에 제자를 육성하기 위하여 세운 정자이다. 이들은 옥간정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영의정 조현명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이후 나라에서 여러 차례 관직을 제안했으나, 이들은 모두 거절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3.1. 구조
옥간정은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인 정만양·정규양 형제가 제자를 육성하기 위하여 숙종 42년(1716)에 세운 정자이다. 앞면 3칸·옆면 4칸반 규모의 ㄱ자형 누각 건물로, 창호 구성 방법 등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