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
1. 개요
조현명은 1719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 영조 시대에 여러 요직을 두루 거치며 활약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이인좌의 난 진압에 기여하고 영조의 신임을 받아, 동부승지, 부제학, 대사성,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경상도, 전라도 관찰사를 거쳐 한성부판윤을 지냈으며,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영돈녕부사로 물러난 후 좌의정에 다시 임명되기도 했으며, 최종적으로 영돈녕부사로 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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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0년 출생 -
이중환
이중환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로, 관료 생활 중 옥사에 연루되어 유배를 간 후 전국을 유랑하며 지리 등을 연구했고, 《택리지》를 저술하여 실학 사상 발전에 기여했으며, 사대부 비판과 상공업 발달 주장 등 개혁적인 사상으로 북학파 실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
1690년 출생 -
크리스티안 골트바흐
크리스티안 골트바흐는 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 출신의 수학자로, 당대 수학자들과 교류하며 수학 연구에 기여했고, 특히 골드바흐 추측으로 유명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에서 활동하고 러시아 정부에서 공헌했다. -
1752년 사망 -
정상기
정상기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로, 이익의 제자로서 경세치용학파의 중심 인물이었으며, 정확한 측량법을 이용한 지도 제작과 조선 전역을 답사하여 제작한 팔도도로 조선 시대 지리학 발전에 기여했다. -
1752년 사망 -
쇼케이왕
쇼케이왕은 쇼에키왕의 아들이자 쇼보쿠왕의 아버지이며, 키코에오오기미 모씨 콘코를 어머니로, 키코에오오기미 바씨 진시쯔를 왕비로 두고 쇼씨 칸시쯔, 쇼씨 준세이, 쇼씨 쟈쿠쇼, 쇼보쿠왕, 쇼와(윤탄자왕자 쵸켄)를 가족으로 두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조현명은 1719년(숙종 45)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영조 즉위 후 병조좌랑, 용강현령, 지평, 문학 등을 역임하며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인좌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워 동부승지로 발탁되었고, 부제학, 대사성, 대사헌,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 예조참판, 도승지, 참찬관, 부제조 등을 역임했다.
경상도 관찰사, 한성부좌윤, 전라도 관찰사 등 외직과 내직을 오가며 민정을 다스렸다. 공조참판으로 지경연사를 겸하고, 이조판서로 승진, 동지경연사, 어영대장, 형조판서, 평안도 관찰사, 수어사, 빈객, 세자좌부빈객,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했다.
이후 제조, 좌참찬, 이조판서, 우빈객, 예문관제학,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거쳤다.
영조 때 우의정으로 임명되어 영경연사, 도제조, 호위대장을 겸하고 영돈녕부사로 물러났다가 다시 도제조, 존숭도감도제조를 겸직하며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좌의정에 임명된 후, 도제조를 겸하며 사은 정사로 중국에 다녀온 뒤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영의정을 역임한 후, 영돈녕부사로 물러났다가 다시 좌의정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영돈녕부사로 치사하였다.
2.2. 영조 시대의 활동
1719년(숙종 45)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겸설서가 되었고, 영조 즉위 후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후 외직으로 나가 현감을 거쳐 용강현령이 되었고, 지평, 문학을 역임하며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인좌의 난 때 민심 수습에 기여하였고, 부교리, 이조좌랑, 교리, 시독관, 종사관 등을 역임하였다. 도순무사 오명항의 종사관으로 난 진압에 공을 세워 동부승지로 초배되었다. 이후 부제학, 대사성, 대사헌,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2.3. 외직과 내직의 반복
171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영조 즉위 후 병조좌랑 등 여러 내직을 거쳤다. 이후 외직으로 나가 현감, 용강현령 등을 역임했다.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지평, 문학 등을 지내며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인좌의 난 때는 민심 수습에 기여하였고, 종사관으로 난 진압에 참여한 공으로 동부승지로 초배되었다. 이후 부제학, 대사성, 대사헌,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 예조참판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도승지에 임명된 후 참찬관, 부제조를 겸직했고, 영조의 총애로 부제학과 도승지를 다시 지냈다. 경상도 관찰사로 나가 민정을 살폈으며, 이후 한성부좌윤으로 내직에 복귀했다가 다시 전라도 관찰사로 나가 외직에서 백성을 다스렸다.
2.4. 고위 관직 역임
171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영조 즉위 후 병조좌랑을 거쳐 외직인 용강현령을 지냈다. 이후 지평, 문학 등을 역임하며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부교리, 이조좌랑을 거쳐 이인좌의 난 때 민심 수습에 기여했고, 교리, 문학, 시독관을 역임했다. 종사관, 도순무종사관으로 난 진압에 공을 세워 동부승지로 발탁되었고, 부제학, 대사성, 대사헌,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 예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다시 부제학과 대사성을 거쳐 도승지가 되었다. 참찬관과 부제조를 겸직했고, 이후 부제학과 도승지를 다시 지냈다.
경상도 관찰사를 거쳐 대사성이 되었다가 다시 경상도 관찰사를 거쳐 한성부좌윤으로 내직에 들어왔다가, 전라도 관찰사가 되어 외직으로 나가 민정을 다스렸다. 공조참판으로 지경연사를 겸하고, 다시 부제학이 되었다가 이조판서로 승진했다. 이후 동지경연사를 겸한 뒤, 어영대장으로 임명되고, 연이어 형조판서가 되었다가 평안도 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 거기서 민정을 돌보다가 이후 이조판서로 다시 임명되고, 수어사를 거쳐 빈객이 되고 이조판서를 다시 하고, 세자좌부빈객을 겸했다. 이조판서로 지경연사를 겸임, 그리고 동지경연사, 우부빈객을 겸임하다 예조판서가 되었다. 그리고 지경연사를 겸하다 예조판서가 되고, 연이어 다시 어영대장에 이어 우참찬, 형조판서를 역임했다.
이후 제조로 있다가 좌참찬이 되고, 이조판서로 우빈객을 겸하고, 수어사를 하다 예문관제학이 되고, 이조판서와 판의금부사를 하다가 형조판서, 예문관제학, 판의금부사를 하고 제조에 이어 이조판서를 다시 하고 형조판서로 지경연사를 겸하다 다시 좌참찬이 되었다.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호조판서를 거쳐 우참찬, 병조판서를 하고 이후 제조로 있다가 병조판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