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석기
1. 개요
왕석기는 고려 충혜왕의 서자이며, 은천옹주 임씨의 아들이다. 이복형 충정왕의 명으로 승려가 되어 원나라에서 거주하다가 공민왕 즉위년에 만덕사에 유폐되었다. 왕위 추대 역모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으며, 이후 처형당하고 아들 또한 살해당했다.
| 이름 | 왕석기 |
|---|---|
| 원래 이름 | 왕석기 (王釋器) |
| 작위 | 고려 왕족 종실 (高麗 王族 宗室) |
| 출생일 | 1341년 전후 |
| 출생지 | 고려 개경 |
| 사망일 | 1375년 |
| 사망지 | 고려 교주강릉도 안협에서 사형 집행됨. |
| 종교 | 불교 |
| 왕조 | 개성 왕씨 |
|---|---|
| 아버지 | 고려 충혜왕 |
| 어머니 | 은천옹주 임씨 |
| 친인척 | 고려 충숙왕(조부), 고려 공민왕(숙부) |
| 배우자 | 미상 |
| 자녀 | 슬하 1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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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5년 사망 -
조반니 보카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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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5년 사망 -
전록생
고려 후기 문신 전록생은 충혜왕 때 등과하여 공민왕 때 기거사인, 전라도안렴사 등을 지냈고 홍건적의 난 당시 공민왕을 호종한 공으로 2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나, 우왕 즉위 후 이인임 세력에 의해 유배 도중 사망한 인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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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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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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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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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
2. 생애
왕석기는 충혜왕의 서자로, 어머니는 은천옹주 임씨이다. 이복형 충정왕의 명으로 승려가 되어 원나라에서 거주하였다. 1351년(공민왕 즉위년) 음력 12월 공민왕에 의해 부산광역시 만덕사에 유폐되었다가 원나라에서 석기를 데려갈까봐 다시 불려왔다. 1356년(공민왕 5년) 석기를 왕위에 올린다는 역모가 고해져 관련 인물들이 참형을 당하고, 석기는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석기는 수정사에 숨었다가 제주도를 탈출하여 백언린의 집에 숨어들어 민간 여성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1373년(공민왕 22년) 음력 12월 평양윤 전녹생이 석기를 사칭한 자의 목을 베어 개경으로 보냈다. 1375년(우왕 원년) 음력 5월 석기는 처형되었고, 1382년(우왕 8년) 음력 4월 석기의 아들도 살해되었다.
2.2. 역모 연루와 유배
충혜왕의 서자였던 왕석기는 어머니 은천옹주 임씨와 함께 이복형 충정왕의 명으로 승려가 되어 원나라에서 거주하였다. 1351년(공민왕 즉위년) 음력 12월, 공민왕은 왕석기를 현재의 부산광역시 만덕사에 유폐시켰다. 공민왕은 원나라에서 왕석기를 데려갈 것을 우려하여 다시 데려왔다.
1356년(공민왕 5년), 왕석기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가 발각되어 관련자들이 참형을 당하고, 왕석기는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왕석기는 제주도로 유배되기 전 수정사라는 절에 숨었던 적이 있었으며, 제주도를 탈출하여 백언린의 집에 숨어들어 민간 여성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2.3. 최후
1373년(공민왕 22년) 음력 12월, 평양윤 전녹생이 왕석기를 사칭한 자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개경으로 보냈다.
1375년(우왕 원년) 음력 5월 왕석기는 처형되었고, 1382년(우왕 8년) 음력 4월에는 왕석기의 아들도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