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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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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문지급은 수나라 말기, 우문화급의 난에 가담한 인물이다. 616년 형 우문화급이 관직을 얻자 장작소감이 되었고, 618년 우문화급 등과 함께 수 양제를 시해하고 양호를 옹립했다. 이후 좌복야에 임명되었으나 왕세충, 이연, 이밀 등의 세력에 막혔다. 우문화급이 허를 건국하고 제위에 오르자 제왕에 봉해졌으나, 619년 두건덕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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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지급
기본 정보
이름우문지급
로마자 표기Yuwen Zhiji
생몰년도567년 ~ 619년
시대수나라
가계
아버지우문술
형제우문사급, 우문화급
주요 활동
관직비서감
작위허국공
주요 사건양제 시해, 우문화급 옹립
사망 및 평가
사망619년
사인두건덕에게 살해됨

2. 생애

616년 우문술의 유언에 따라 형 우문화급이 우둔위장군(右屯衛將軍)이 되자 우문지급은 장작소감(將作少監)을 맡았다.

618년 우문화급 및 사마덕감, 조행추, 설세량, 양사람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양제를 살해하고 양제의 조카 양호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그 뒤 좌복야(左僕射)로 임명되어 우문화급과 함께 북상하였으나 왕세충, 이연, 이밀의 세력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우문화급이 양호를 독살하고 위현에서 허(許)나라를 세워 황제를 칭하고 백관을 임명할 때 우문지급도 제왕(斉王)에 봉해졌다.

619년 우문화급이 요성에서 두건덕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자, 양사람, 허홍인, 맹경, 원무달 등과 함께 붙잡혀 사형당한 뒤 효수되었다.

2. 1. 초기 생애 및 관직

616년, 우문술의 유언으로 형인 우문화급이 우둔위장군을 맡았을 때 장작소감이 되었다.

618년, 형 화급을 수괴로 추대하여 무분랑장의 사마덕감, 무용랑장의 조행추 (지급과 친교가 있었다), 직장의 설세량, 훈시의 양사람 (지급의 외조카) 등과 모의하여 양제를 시해했다. 양제의 동생인 진왕 양준의 아들로, 지급과 친교가 있던 진왕 양호를 옹립한 형으로부터 좌복야에 임명되어 따라 북상했지만, 왕세충, 이연・이밀 등의 세력에 막혔다. 화급이 양호를 독살하고, 위현을 근거지로 삼아 스스로 '''허'''의 황제를 칭하고 백관을 임명할 때도 그 반열에 참여하여 제왕에 임명되었다.

2. 2. 양제 시해와 정변 가담

616년, 우문술의 유언으로 형인 우문화급이 우둔위장군(右屯衛將軍)을 맡았을 때, 우문지급은 장작소감(將作少監)이 되었다.

618년, 형 우문화급을 수괴로 추대하여 무분랑장(武賁郞將) 사마덕감, 무용랑장(武勇郞將) 조행추(우문지급과 친교가 있었다), 직장(直長) 설세량, 훈시(勳侍) 양사람(우문지급의 외조카) 등과 모의하여 양제를 시해하였다. 양제의 동생인 진왕 양준의 아들로, 우문지급과 친교가 있던 양호를 옹립한 형으로부터 좌복야(左僕射)에 임명되어 함께 북상했지만, 왕세충, 이연, 이밀 등의 세력에 막혔다. 우문화급이 양호를 독살하고, 위현을 근거지로 삼아 스스로 '''허'''(許)의 황제를 칭하고 백관을 임명할 때 제왕(斉王)에 임명되었다.

2. 3. 북상 시도와 실패

618년, 형 우문화급을 수괴로 추대하여 무분랑장 사마덕감, 무용랑장 조행추 (지급과 친교가 있었다), 직장 설세량, 훈시 양사람 (지급의 외조카) 등과 모의하여 양제를 시해했다. 양제의 동생인 진왕 양준의 아들 양호를 옹립한 형으로부터 좌복야에 임명되어 함께 북상했지만, 왕세충, 이연, 이밀 등의 세력에 막혔다. 이후 우문화급이 양호를 독살하고, 위현에서 '''허'''(許)나라를 세워 황제를 칭하며 백관을 임명할 때 제왕에 임명되었다.

2. 4. 허나라 건국과 몰락

616년, 우문술의 유언으로 형인 우문화급이 우둔위장군을 맡았을 때, 우문지급은 장작소감이 되었다.

618년, 형 우문화급을 수괴로 추대하여 무분랑장의 사마덕감, 무용랑장의 조행추 (우문지급과 친교가 있었다), 직장의 설세량, 훈시의 양사람 (우문지급의 외조카) 등과 모의하여 양제를 시해했다. 우문지급은 양제의 동생인 진왕 양준의 아들 양호와 친교가 있었는데, 우문화급은 양호를 옹립하고 우문지급을 좌복야에 임명하여 함께 북상했지만, 왕세충, 이연, 이밀 등의 세력에 막혔다. 이후 우문화급이 양호를 독살하고, 위현을 근거지로 삼아 스스로 허나라 황제를 칭하며 백관을 임명할 때 우문지급도 제왕에 봉해졌다.

619년, 우문화급두건덕에게 요성에서 패하자, 양사람, 허홍인, 맹경, 원무달 등과 함께 처형되어 군문 밖에 효수되었다.

3. 역사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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