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베 란
1. 개요
우베 란은 은퇴한 독일의 축구 선수로,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그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분데스리가 107골을 기록하며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1986-87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득점왕과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에 선정되었다. 란은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14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넣었고, 1984년 하계 올림픽과 1986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클럽 경력으로는 1. FC 쾰른, 헤르타 BSC,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일본의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 이름 | 우베 란 |
|---|---|
| 출생일 | 1962년 5월 21일 |
| 출생지 | 만하임, 서독 |
| 신장 | 1.84m |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 1970–1975: TSV 쇠나우 1975–1980: 발트호프 만하임 |
|---|---|
| 클럽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80–1988) |
| 출장 (골) | 227 (81) |
| 클럽 | 1. FC 쾰른 (1988–1990) |
| 출장 (골) | 43 (13) |
| 클럽 | 헤르타 BSC (1990–1991) |
| 출장 (골) | 21 (5) |
| 클럽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91–1992) |
| 출장 (골) | 15 (5) |
| 클럽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92–1993) |
| 출장 (골) | 12 (3) |
| 클럽 | 우라와 레즈 (1993–1994) |
| 출장 (골) | 7 (1) |
| 총 출장 (골) | 325 (108) |
| 국가대표팀 | 서독 U-21 (1982–1984) |
|---|---|
| 출장 (골) | 3 (0) |
| 국가대표팀 | 서독 올림픽 (1984) |
| 출장 (골) | 5 (4) |
| 국가대표팀 | 서독 (1984–1987) |
| 출장 (골) | 14 (5) |
-
1962년 출생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1962년 출생 -
원유철
원유철은 고려대학교 졸업 후 5선 국회의원,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핵무장을 주장하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
분데스리가의 축구 선수 -
손흥민
손흥민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윙어 또는 스트라이커로 뛰며 함부르크 SV,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거쳐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활약, 아시아 선수 최초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 등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세계적인 축구 스타이다. -
분데스리가의 축구 선수 -
마크 슈워처
마크 슈워처는 독일계 호주인 골키퍼로,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109경기에 출전했고, 미들즈브러에서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첼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레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독일의 남자 축구 선수 -
메흐메트 숄
메흐메트 숄은 독일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바이에른 뮌헨에서 분데스리가 8회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등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UEFA 유로 1996 우승을 경험한 후 지도자와 방송 해설가로 활동했다. -
독일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르빈 콤퍼
마르빈 콤퍼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으로도 활동한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코치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등 여러 클럽에서 수비수로 뛰었으며 은퇴 후 RB 라이프치히 등에서 코치직을 수행했다.
2. 클럽 경력
란은 TSV 셰나우와 SV 발트호프 만하임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배웠다. 1980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눈에 띄어 공격형 미드필더로 두각을 나타냈다. 1987년 뤼트 휠릿의 대체 선수로 PSV 에인트호번에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이적은 무산되었다. 이후 1. FC 쾰른, 헤르타 BSC,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일본의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로 이적하였다.
2.1.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란은 1980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 입단하여 8년간 뛰면서 분데스리가 318경기 출전, 107골을 기록했다.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지도 아래 공격형 미드필더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서독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했다. 1986-87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최다 득점자에게 수여되는 키커-토르예거카노네 상을 수상했고(24골), 시즌 마지막 9주 동안 14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쳤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87년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었다.
2.2. 1. FC 쾰른
란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8년간 뛰면서 분데스리가 318경기에 출전해 107골을 기록했다. 이 시기에 서독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했고, 1986-87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최다 득점자에게 수여되는 키커-토르예거카노네 상을 수상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그는 그 시즌에 24골을 기록했고, 시즌 마지막 9주 동안 14골을 넣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87년 올해의 축구 선수에 선정되었다. 이후 뤼트 휠릿의 대체 선수로 PSV 에인트호번에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이적은 무산되었다.
그 후 득점력이 눈에 띄게 감소하면서 란의 경기력은 크게 하락했고, 1. FC 쾰른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1. FC 쾰른을 비롯하여, 헤르타 BSC,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일본의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로 이적하며 선수 생활을 마칠 때까지 그는 예전의 경기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2.3. 후기 경력
란은 프로 선수로서 318번의 분데스리가 경기에 출전했으며, 107골의 분데스리가 골 중 대부분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8년간 뛰면서 기록했다. 그곳에서 그는 서독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했고, 1986-87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최다 득점자에게 수여되는 키커-토르예거카노네 상을 수상했다. 이 공격형 미드필더는 그 시즌에 24골을 기록했고, 시즌 마지막 9주 동안 14골을 넣었다. 이 업적 이후 란은 1987년에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뤼트 휠릿의 대체 선수로 PSV 에인트호번에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이적은 무산되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다음 시즌에 득점력이 눈에 띄게 감소하면서 란의 경기력은 크게 하락했고, 1. FC 쾰른, 헤르타 BSC,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결국 일본의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로 이적하며 선수 생활을 마쳤다. 이 모든 클럽과 기간 동안 그는 예전의 경기력(및 선수 경력)을 되찾지 못했고, 이는 그의 재임 기간이 짧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로 스트라이커로 기용되기도 했던 란은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서독 대표팀 소속으로 총 14경기에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 그는 5골을 기록했고, 그 중 가장 중요한 골은 1984년 10월 17일 스웨덴과의 월드컵 예선 데뷔전에서 펠릭스 마가트를 대신하여 후반 교체 투입된 지 몇 초 만에 터뜨린 골이었다. 부상으로 인해 그는 1986년 FIFA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토너먼트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란은 또한 1984년 하계 올림픽에서 서독 대표로 출전했다.
란은 1954년 FIFA 월드컵 우승 득점자인 서독의 헬무트 란과는 친척 관계가 아니다.
2.4.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1993년 도중에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로 이적했다. 공격의 핵심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컨디션 조절 부족으로 나비스코컵에서 결과를 내지 못했고, 시즌 후반에는 센터백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1994년에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여름에 기어 부흐발트, 우베 바인이 레즈에 합류하게 되면서 외국인 선수 쿼터 문제로 퇴단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란은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서독 대표팀 소속으로 총 14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 1984년 10월 17일 스웨덴과의 월드컵 예선 데뷔전에서 펠릭스 마가트를 대신하여 후반 교체 투입된 지 몇 초 만에 첫 골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 연도 | 출전 | 골 |
|---|---|---|
| 1984 | 2 | 1 |
| 1985 | 7 | 3 |
| 1986 | 2 | 1 |
| 1987 | 3 | 0 |
| |14||5 |
1986년 FIFA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토너먼트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984년 하계 올림픽에도 서독 대표로 출전했다. 1986-87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24골을 기록하며 최다 득점자에게 수여되는 키커-토르예거카노네 상을 수상했고, 1987년에는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었다.
4. 수상 내역
Uwe Rahn독일어은 선수 시절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였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소속으로 1983-84 시즌 DFB-포칼 준우승을, 1. FC 쾰른 소속으로 1988-89 시즌 및 1989-90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서독 국가대표팀에서는 1986 FIFA 월드컵 준우승을 기록했다. 개인적으로는 1987년 올해의 독일 축구 선수와 1986-87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수상했고, 같은 시즌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에 이름을 올렸다.
4.2. 국가대표팀
Uwe Rahn독일어은 서독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1986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해 준우승을 기록했다.
4.3. 개인
* 올해의 독일 축구 선수: 1987
* 분데스리가 득점왕: 1986–87
* 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1986–87
5. 통산 기록
| 연도 | 출전 | 득점 |
|---|---|---|
| 1984 | 2 | 1 |
| 1985 | 7 | 3 |
| 1986 | 2 | 1 |
| 1987 | 3 | 0 |
| | 14 || 5 |
란은 1984년 서독 대표팀에 선출되어, 10월 17일 월드컵 멕시코 대회 예선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후반에 펠릭스 마가트와 교체되어 출전하여 첫 볼 터치로 득점을 기록했다. 1986년 월드컵 멕시코 대회에 출전하였고, 1987년까지 국제 A매치 14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였다.
5.1. 클럽 기록
|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 컵 | 리그 컵 | 합계 | |||||
|---|---|---|---|---|---|---|---|---|---|---|
| 디비전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1980–81 | 분데스리가 | 14 | 3 | 14 | 3 | ||||
| 1981–82 | 30 | 2 | 30 | 2 | ||||||
| 1982–83 | 24 | 3 | 24 | 3 | ||||||
| 1983–84 | 31 | 14 | 31 | 14 | ||||||
| 1984–85 | 34 | 14 | 34 | 14 | ||||||
| 1985–86 | 28 | 9 | 28 | 9 | ||||||
| 1986–87 | 31 | 24 | 31 | 24 | ||||||
| 1987–88 | 25 | 12 | 25 | 12 | ||||||
| 1988–89 | 10 | 0 | 10 | 0 | ||||||
| 합계 | 227 | 81 | 227 | 81 | ||||||
| 1. FC 쾰른 | 1988–89 | 분데스리가 | 20 | 7 | 20 | 7 | ||||
| 1989–90 | 23 | 6 | 23 | 6 | ||||||
| 합계 | 43 | 13 | 43 | 13 | ||||||
| 헤르타 BSC | 1990–91 | 분데스리가 | 21 | 5 | 21 | 5 | ||||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 1991–92 | 분데스리가 | 15 | 5 | 15 | 5 | ||||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1992–93 | 분데스리가 | 12 | 3 | 12 | 3 | ||||
|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 1993 | J1리그 | 7 | 1 | 2 | 0 | 4 | 0 | 13 | 1 |
| 1994 | 0 | 0 | 0 | 0 | 0 | 0 | 0 | 0 | ||
| 합계 | 7 | 1 | 2 | 0 | 4 | 0 | 13 | 1 | ||
| 통산 기록 | 325 | 108 | 2 | 0 | 4 | 0 | 331 | 108 | ||
5.2. 국가대표팀 기록
| 연도 | 출전 | 득점 |
|---|---|---|
| 1984 | 2 | 1 |
| 1985 | 7 | 3 |
| 1986 | 2 | 1 |
| 1987 | 3 | 0 |
| | 14 || 5 |
란은 1984년 서독 대표팀에 선출되어, 10월 17일 월드컵 멕시코 대회 예선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후반에 펠릭스 마가트와 교체되어 출전하여 첫 볼 터치로 득점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1986년 월드컵 멕시코 대회에 출전하였고, 1987년까지 국제 A매치 14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