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베 바인
1. 개요
우베 바인은 독일의 축구 선수로, 1978년부터 1997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분데스리가에서 300경기 출전 91골을 기록했고,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서독 대표팀으로 우승했다. 1990-93 시즌에는 3시즌 연속 분데스리가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키커지가 선정하는 연간 베스트 일레븐에 4시즌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선수 은퇴 후 2005년에는 키커스 오펜바흐의 감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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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우베 바인 |
|---|---|
| 출생일 | 1960년 9월 26일 |
| 출생지 | 헤링겐, 서독 |
| 신장 | 1.78m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 TSV 렌거스 (1968–1975) VfB 헤링겐 (1975–1978) |
|---|---|
| 클럽 | 키커스 오펜바흐 (1978–1984): 153경기, 72골 1. FC 쾰른 (1984–1987): 64경기, 17골 함부르거 SV (1987–1989): 52경기, 22골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89–1994): 150경기, 38골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1994–1997): 68경기, 25골 VfB 기센 (1997–1998): 22경기, 12골 |
| 총 출장 및 득점 | 509경기, 186골 |
| 국가대표팀 | 서독 올림픽 (1983): 2경기, 0골 독일 (1989–1993): 17경기, 3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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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커스 오펜바흐의 축구 선수 -
지크프리트 헬트
지크프리트 헬트는 독일의 은퇴한 축구 선수 및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고 서독 국가대표팀으로 FIFA 월드컵 결승전에 출전했으며, 감독으로서는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도했다. -
키커스 오펜바흐의 축구 선수 -
디터 뮐러
디터 뮐러는 1970년대 독일에서 이름을 날린 공격수로, 키커스 오펜바흐 데뷔 후 1. FC 쾰른에서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우승, 리그 득점왕 2회, 서독 국가대표팀 UEFA 유로 1976 득점왕 등을 차지했으며 은퇴 후 키커스 오펜바흐 회장을 역임했다. -
독일 FIFA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
로만 바이덴펠러
로만 바이덴펠러는 독일의 전 축구 골키퍼로, 1997년 FIFA U-17 월드컵 최우수 골키퍼 선정, 카이저슬라우테른과 도르트문트에서의 프로 생활, 도르트문트 황금기 주역, 독일 국가대표팀 2014년 FIFA 월드컵 우승, 은퇴 후 도르트문트 국제 홍보대사 활동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
독일 FIFA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
라이몬트 아우만
라이몬트 아우만은 독일의 전 축구 선수이자 골키퍼로,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12년간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우승 6회, DFB-포칼 우승 2회를 기록했고, 1990년 FIFA 월드컵 우승 멤버이며 현재는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서포터즈 및 팬클럽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
일본에 거주한 독일인 -
루카스 포돌스키
루카스 포돌스키는 폴란드 태생의 독일 축구 선수로, 독일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며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고, 여러 클럽에서 활동했으며, 자선 활동에도 참여하는 세계적인 선수이다. -
일본에 거주한 독일인 -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피에르 리트바르스키는 1960년생 독일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1. FC 쾰른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뛰어난 드리블과 프리킥 능력으로 1980년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인기 선수 중 한 명이었고, 서독 국가대표로서 1990년 FIFA 월드컵 우승, 1982년 월드컵 도움왕 등 굵직한 족적을 남겼으며, 은퇴 후에는 여러 클럽에서 감독 및 코치로 활동하며 J리그 승격 및 A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발롱도르 7위(1982), 독일 올해의 골(1985) 수상 등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우베 바인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독일을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부드러운 볼 터치와 날카로운 스루 패스가 특징으로, 키커스 오펜바흐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 FC 쾰른, 함부르크 SV,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등 분데스리가 명문 클럽들을 거쳤다. 1994년에는 프란츠 베켄바워의 제안으로 일본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로 이적하여 활약하기도 했다.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서독 대표팀의 일원으로 우승을 경험했으며, 독일 국가대표로 총 17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2.1. 클럽 경력
베인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대중적인 명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팬들과 전문가들은 그를 동시대 독일 미드필더 중 가장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한다. 전성기 시절의 베인은 치명적인 패스를 구사하는 최고의 독일 선수로 여겨졌다.
베인의 프로 경력은 1978년 키커스 오펜바흐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1. FC 쾰른, 함부르크 SV,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거쳤다. 그는 총 300번의 분데스리가 경기에 출전하여 91골을 기록했다. 또한 쾰른이 1986년 UEFA컵 결승전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으며, 그의 골에도 불구하고 레알 마드리드에 패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 독일을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다. 부드러운 볼 터치로 상대 수비수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스루 패스를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분데스리가의 1. FC 쾰른, 함부르크 SV,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등 강호 클럽을 거치며, 프랑크푸르트 소속 시절인 1990-91 시즌에는 15개, 1991-92 시즌에는 16개, 1992-93 시즌에는 17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3시즌 연속 분데스리가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키커지가 선정하는 연간 베스트 일레븐에 4시즌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1990년 월드컵 이후에는 ACF 피오렌티나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았지만 이적하지 않았다.
프란츠 베켄바워의 이적 제안을 받아 1994년부터 기드 부흐발트와 함께 일본의 우라와 레즈로 이적했다. J리그 첫 골(이때 2골을 기록)은 11월 2일, 세컨드 스테이지 제17절의 요코하마 플뤼겔스전에서 기록했으며, 이듬해 1995년에는 4월 12일 요코하마 마리노스전에서 2골을 넣는 등 38경기에 출전하여 18골을 기록하여 우라와의 상위 진출에 기여했다. 특히 에이스 스트라이커 후쿠다 마사히로와의 조합은 절묘하여, 후쿠다가 이 시즌에 득점왕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인의 정확한 킥에서 나온 스루 패스 덕분이었다. 1996년, 이미 퇴단이 결정된 상태에서 리그 최종전의 요코하마 플뤼겔스전에 출전하여 골을 넣었다. 그 후에도 천황배에서는 4회전의 세레소 오사카전, 준준결승의 벨마레 히라츠카전에서 각각 1골을 기록했지만, 준결승에서 베르디 가와사키에 패하여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그 경기를 마지막으로 귀국했다. J리그 리그전에서는 통산 68경기 25골의 성적을 남겼다.
1994년 일본으로 이적하여 1996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에는 VfB 기센에서 출전했다. 우라와 퇴단 후에는 독일 5부 리그에서 뛰었다.
| 클럽 | 시즌 | 리그 | FA컵 | 리그컵 | 대륙 | 합계 | ||||||
|---|---|---|---|---|---|---|---|---|---|---|---|---|
| 경기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 키커스 오펜바흐 | 1979-80 | 2. 분데스리가 | 9 | 1 | – | 9 | 1 | |||||
| 1980-81 | 38 | 25 | – | 38 | 25 | |||||||
| 1981-82 | 35 | 12 | – | 35 | 12 | |||||||
| 1982-83 | 37 | 20 | 1 | 1 | – | 38 | 21 | |||||
| 1983-84 | 분데스리가 | 34 | 14 | 1 | – | 35 | 14 | |||||
| 합계 | 153 | 72 | 2 | 1 | 0 | 0 | 155 | 73 | ||||
| 1. FC 쾰른 | 1984-85 | 분데스리가 | 27 | 8 | 2 | 4 | 2 | 33 | 10 | |||
| 1985-86 | 20 | 5 | 5 | 2 | 25 | 7 | ||||||
| 1986-87 | 17 | 4 | 1 | – | 18 | 4 | ||||||
| 합계 | 64 | 17 | 3 | 0 | 9 | 4 | 76 | 21 | ||||
| 함부르크 SV | 1987-88 | 분데스리가 | 24 | 7 | 3 | 4 | 0 | 31 | 7 | |||
| 1988-89 | 28 | 15 | 3 | 1 | – | 31 | 16 | |||||
| 합계 | 52 | 22 | 6 | 1 | 4 | 0 | 62 | 23 | ||||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1989-90 | 분데스리가 | 33 | 9 | 1 | – | 34 | 9 | ||||
| 1990-91 | 31 | 8 | 8 | 1 | 1 | 40 | 9 | |||||
| 1991-92 | 34 | 8 | 2 | 3 | 4 | 2 | 40 | 13 | ||||
| 1992-93 | 25 | 7 | 5 | 1 | 0 | 31 | 7 | |||||
| 1993-94 | 27 | 6 | 2 | 1 | 7 | 1 | 36 | 8 | ||||
| 합계 | 150 | 38 | 18 | 4 | 13 | 4 | 181 | 46 | ||||
|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 1994 | J1 리그 | 10 | 2 | 0 | 0 | 2 | 0 | – | 12 | 2 | |
| 1995 | 38 | 18 | 3 | 2 | - | – | 41 | 20 | ||||
| 1996 | 20 | 5 | 4 | 2 | 7 | 1 | – | 31 | 8 | |||
| 합계 | 68 | 25 | 7 | 4 | 9 | 1 | 0 | 0 | 84 | 30 | ||
| 합계 | 487 | 174 | 36 | 10 | 9 | 1 | 26 | 8 | 558 | 193 | ||
2.2. 국가대표 경력
우베 바인은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서독 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하여 4경기에 출전, 1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조별 리그 2차전 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에서 4-1 상황일 때 골을 넣어 5-1 승리를 만들었다.
1990년 FIFA 월드컵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베르티 포크츠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UEFA 유로 1992에는 참가하지 못했고, 1993년에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여 1994년 FIFA 월드컵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바인은 1989년 10월 4일 월드컵 이탈리아 대회 예선 핀란드전에서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였고, 1993년 9월 22일 튀니지전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였다. 그는 독일 국가대표로 총 17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득점 |
|---|---|---|---|
| 독일 | 1989 | 2 | 0 |
| 1990 | 10 | 3 | |
| 1991 | 1 | 0 | |
| 1992 | 1 | 0 | |
| 1993 | 3 | 0 | |
| 합계 | 17 | 3 | |
| No. | 날짜 | 경기장 | 상대팀 | 득점 | 결과 | 대회 |
|---|---|---|---|---|---|---|
| 1 | 1990년 5월 26일 | 라인슈타디온, 뒤셀도르프, 독일 | 1–0 | 1–0 | 친선 경기 | |
| 2 | 1990년 6월 15일 | 주세페 메아차 경기장, 밀라노, 이탈리아 | 4–1 | 5–1 | 1990년 FIFA 월드컵 D조 | |
| 3 | 1990년 10월 31일 | 요지 바르텔 경기장, 룩셈부르크 | 3–0 | 3–2 | UEFA 유로 1992 예선 |
3. 은퇴 후 경력
현역에서 은퇴한 후, 2005년 반년 동안 키커스 오펜바흐의 감독을 맡았다. 이후 오펜바흐 키커스의 매니저를 맡고 있으며, 직접 축구 스쿨을 창설하여 축구 선수 육성에 힘쓰고 있다.
4. 경기 스타일
베인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팬들과 전문가들은 그를 당대 독일 미드필더 중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한다. 전성기 시절 베인은 치명적인 패스를 구사하는 최고의 독일 선수로 여겨졌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독일을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다. 부드러운 볼 터치로 상대 수비수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스루 패스를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1978년 키커스 오펜바흐에서 프로 데뷔를 하였으며, 분데스리가의 1. FC 쾰른, 함부르크 SV,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등에서 활약했다. 분데스리가에서는 300경기에 출전하여 91골을 기록했으며, 프랑크푸르트 소속 시절인 1990-91 시즌에는 15개, 1991-92 시즌에는 16개, 1992-93 시즌에는 17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3시즌 연속 분데스리가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또한 키커지가 선정하는 연간 베스트 일레븐에 4시즌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1994년부터 기드 부흐발트와 함께 일본 우라와 레즈로 이적했다. 특히 에이스 스트라이커 후쿠다 마사히로와의 조합은 절묘하여, 후쿠다가 이 시즌에 득점왕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인의 정확한 킥에서 나온 스루 패스 덕분이었다.
5.1. 클럽
우베 바인은 1978년 키커스 오펜바흐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1. FC 쾰른, 함부르크 SV,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거쳤다. 분데스리가에서 총 300경기에 출전하여 91골을 기록했다. 쾰른 소속으로 1986년 UEFA컵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1994년에는 일본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로 이적하여 1996년까지 활약했다. 우라와에서는 에이스 스트라이커 후쿠다 마사히로와의 콤비 플레이로 팀의 상위 진출에 기여했다. J리그 통산 68경기 25골을 기록했다.
| 클럽 | 시즌 | 리그 | FA컵 | 리그컵 | 대륙 | 합계 | ||||||
|---|---|---|---|---|---|---|---|---|---|---|---|---|
| 경기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 키커스 오펜바흐 | 1979-80 | 2. 분데스리가 | 9 | 1 | colspan="2"|– | 9 | 1 | |||||
| 1980-81 | 38 | 25 | colspan="2"|– | 38 | 25 | |||||||
| 1981-82 | 35 | 12 | colspan="2"|– | 35 | 12 | |||||||
| 1982-83 | 37 | 20 | 1 | 1 | – | 38 | 21 | |||||
| 1983-84 | 분데스리가 | 34 | 14 | 1 | – | 35 | 14 | |||||
| 합계 | 153 | 72 | 2 | 1 | 0 | 0 | 155 | 73 | ||||
| 1. FC 쾰른 | 1984-85 | 분데스리가 | 27 | 8 | 2 | 4 | 2 | 33 | 10 | |||
| 1985-86 | 20 | 5 | 5 | 2 | 25 | 7 | ||||||
| 1986-87 | 17 | 4 | 1 | – | 18 | 4 | ||||||
| 합계 | 64 | 17 | 3 | 0 | 9 | 4 | 76 | 21 | ||||
| 함부르크 SV | 1987-88 | 분데스리가 | 24 | 7 | 3 | 4 | 0 | 31 | 7 | |||
| 1988-89 | 28 | 15 | 3 | 1 | – | 31 | 16 | |||||
| 합계 | 52 | 22 | 6 | 1 | 4 | 0 | 62 | 23 | ||||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1989-90 | 분데스리가 | 33 | 9 | 1 | – | 34 | 9 | ||||
| 1990-91 | 31 | 8 | 8 | 1 | 1 | 40 | 9 | |||||
| 1991-92 | 34 | 8 | 2 | 3 | 4 | 2 | 40 | 13 | ||||
| 1992-93 | 25 | 7 | 5 | 1 | 0 | 31 | 7 | |||||
| 1993-94 | 27 | 6 | 2 | 1 | 7 | 1 | 36 | 8 | ||||
| 합계 | 150 | 38 | 18 | 4 | 13 | 4 | 181 | 46 | ||||
|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 1994 | J1 리그 | 10 | 2 | 0 | 0 | 2 | 0 | – | 12 | 2 | |
| 1995 | 38 | 18 | 3 | 2 | - | – | 41 | 20 | ||||
| 1996 | 20 | 5 | 4 | 2 | 7 | 1 | – | 31 | 8 | |||
| 합계 | 68 | 25 | 7 | 4 | 9 | 1 | 0 | 0 | 84 | 30 | ||
| 합계 | 487 | 174 | 36 | 10 | 9 | 1 | 26 | 8 | 558 | 193 | ||
5.2. 국가대표
우베 바인은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부상으로 인해 7경기 중 4경기에 출전했다. 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에서 1골을 기록했으며, 조별 예선 3경기와 체코슬로바키아와의 8강전에 모두 선발 출전했지만,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유로 92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베르티 포크츠 독일 대표팀 감독의 지원을 받지 못한 베인은 결국 1993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이로 인해 1994년 FIFA 월드컵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1989년 10월 4일 월드컵 이탈리아 대회 예선 핀란드전에서 대표팀 데뷔를 하였고, 1990년 월드컵 이탈리아 대회에 출전하여 4경기 출전 1득점(1차 리그 2차전 UAE전 득점)으로 서독의 세 번째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대표팀에서 제외되었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1993년에 다시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그러나 베르티 포크츠 감독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1993년 9월 22일 튀니지전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되어, 월드컵 미국 대회 멤버에서 탈락했다.
독일 대표팀에서 통산 17경기 3골을 기록했다.,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득점 |
|---|---|---|---|
| 독일 | 1989 | 2 | 0 |
| 1990 | 10 | 3 | |
| 1991 | 1 | 0 | |
| 1992 | 1 | 0 | |
| 1993 | 3 | 0 | |
| 합계 | 17 | 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