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고려인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우크라이나 고려인은 1922년부터 우크라이나에 거주하기 시작하여, 소련 시기 인구가 증가했으며, 1992년 대한민국-우크라이나 관계 수립 이후 대한민국으로 이주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2014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많은 고려인들이 대한민국으로 피난했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은 한국어 학교 설립, 한국 문화 축제 개최 등 한국 문화를 보존하고 있으며, 주요 인물로는 올렉산드르 신과 비탈리 킴 등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계 우크라이나인 - 파울로 리
파울로 리는 고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 배우이자 성우로, 영화, 연극,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에 입대하여 전투 중 사망했다. - 고려인 - 허가이
허가이는 소련파 북한 정치인으로, 해방 후 북한 정권 수립에 핵심 역할을 했으나 김일성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사망했으며, 그의 죽음에는 암살 의혹이 있다. - 고려인 - 김병화 (1905년)
김병화는 1905년 연해주 출생으로 러시아 내전과 동청철도 사건에 참여하고, 우즈베크 SSR에서 집단농장 농장장으로 34년간 재직하며 농업 발전에 기여하여 사회주의 노동영웅 훈장을 두 차례 받았으며, 우즈베크 SSR 최고 소비에트 대의원을 역임하다 1974년 사망했다. - 우크라이나의 민족 - 우즈베크인
우즈베크인은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민족으로, 기원전 2천년기부터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이고 러시아 제국과 소련을 거쳐 1991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을 수립했으며, 농업, 목축, 수공업, 상업에 종사하며 튀르크어족의 우즈베크어를 사용하고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다. - 우크라이나의 민족 - 타지크인
타지크인은 중앙아시아에 주로 거주하며 페르시아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란계 민족으로, 타지키스탄의 주된 민족이며 아프가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도 거주하고, 역사적으로 소그드인과 박트리아인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우크라이나 고려인 | |
---|---|
기본 정보 | |
![]() | |
인구 | 10,000–40,000 (2023년) |
사용 언어 | 러시아어 한국어 우크라이나어 |
관련 민족 | 한민족 |
역사 | |
기원 | 한반도 |
소련 시기 강제 이주 | 스탈린의 소수 민족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됨 |
우크라이나 정착 |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로 이주 또는 정착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고려인 사회에 큰 영향 |
문화 | |
언어 | 대부분 러시아어 사용, 일부는 한국어 보존 노력 |
종교 | 다양한 종교 (전통 신앙, 기독교 등) |
특징 | "고려인"으로 불림 구 소련 지역의 한인 디아스포라의 일원 |
관련 정보 | |
특징 | 구소련 지역의 한인 디아스포라 우크라이나 사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 |
기타 |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고려인 사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재정착 및 문화 보존 노력이 필요함 |
2. 역사
고려인은 1922년 이래로 최소한 우크라이나에서 거주해왔다. 1926년에는 103명의 고려인이 우크라이나에 거주했다. 그 수는 점차 증가하였다.
1967년경부터 상당한 수의 고려인들이 흐루쇼프 해빙 이후 소련 내 이동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면서 우크라이나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992년 대한민국-우크라이나 관계가 수립된 후,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일부 고려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이주했다. 그 이후, 일부는 우크라이나로 돌아왔고, 다른 이들은 두 나라를 오가며 이동하고 있다.
1995년, 칸 덴 시크(Kan Den Sik)는 키이우 폴리테크닉 연구소에 한국어 학과를 조직했다. 2017년까지 한국어 문헌학의 완전한 별도 학과로 발전했다. 칸은 2010년에 한국 문화 센터를 설립하고 그 회장이 되었다. 칸은 부모가 사할린 한인인 2세 고려인이었다.[3]
2. 1. 초기 정착
고려인은 1922년부터 최소한 우크라이나에 거주해왔다.[1] 1926년 우크라이나에 거주한 고려인은 103명이었다.[1] 이후 고려인 수는 점차 증가하여 1959년에는 1,341명, 1970년에는 4,480명, 1989년에는 8,669명, 2001년에는 12,711명에 달했다.[1]1967년경부터 상당수의 고려인이 우크라이나로 이주하기 시작했다.[2] 흐루쇼프 해빙 이후 소련 내 이동 제한이 완화되면서, 고려인들은 여러 소련 공화국 사이를 이동했다.[2] 이들은 처음에는 계절별 농업 노동자로서 주로 남부 지역에 왔다.[2]
2. 2. 대한민국-우크라이나 관계 수립 이후
1992년 대한민국-우크라이나 관계 수립 후,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일부 고려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이주했다. 그 후, 일부는 우크라이나로 돌아왔고, 다른 이들은 두 나라를 오가며 이동하고 있다. 2019년에는 상당수의 고려인이 이러한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한 인터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고려인 가족 중 한두 명은 일자리를 위해 대한민국에 다녀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현상은 재외동포 근로자에 대한 취업 비자 발급이 용이하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2. 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14년 크림 공화국 지위 국민투표 이후, 크림반도에 거주하던 약 3,000명의 고려인들이 러시아 시민이 되었다.[4]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특히 심각한 불안정을 야기하여, 많은 고려인들이 대한민국으로 피난했다.[4]
일부 고려인들은 우크라이나의 불안정한 상황으로 인해 대한민국에 남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4]
대한민국 정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외국인 용병으로 참전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다.[13] 2023년, 이를 위반하면 최대 1년의 징역형과 7500USD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고 보도되었다. 2023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복무한 4명의 용병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13] 이 중 한 명인 전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 대원 이근은 우크라이나에서 3개월간 활동 후 귀국하여 체포되었다. 그는 수사에 협조했으며,[14] 유죄 판결을 받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근은 법을 어긴 것에 대해 사과했지만, 자원봉사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13] 그는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시민권과 토지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14]
2. 3. 1. 대한민국으로의 피난과 정착 지원
2014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많은 고려인들이 대한민국으로 피난했다.[4]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4] 대한민국 내 한 설문조사에서는 우크라이나 고려인의 42.8%가 전쟁 중 가족을 잃었다고 응답했다.[7]대한민국 정부는 고려인 난민들에게 90일 단기 G-1 비자를 발급하여 입국을 지원했다.[8] 이 비자는 6개월마다 갱신해야 했다.[8] 2022년 11월에는 수백 명이 난민 지위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으며,[8] 난민들은 대한민국 체류 신청 비용을 부담해야 했으나, 2023년 3월 26일에 이 요구 사항은 폐지되었다.[5]
2022년 12월,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5,205명의 우크라이나인 중 3,438명이 고려인이었다.[5] 2023년 3월까지, 전쟁 발발 이후 1,200명의 우크라이나 고려인 난민이 대한민국에 입국한 것으로 보고되었다.[9] 이들은 주로 땟골 마을과 광주 고려인 마을에 모였으며,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었다.[4][5] 남성들은 국외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4] 2023년에는 비자 갱신 요청이 거부된 사례가 발생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가족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무국적자 상태였고, 출생 증명서 외에는 신원을 증명할 문서가 없었다.[10]
대한민국 국민들은 난민들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생활비로 수십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11][8][5] 2022년 11월까지 기금이 고갈되고 있다는 보고도 있었지만, 새로운 모금 활동이 진행되었다.[8] 그러나 난민들은 비자 갱신 문제, 언어 장벽, 일자리 찾기, 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 등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5][12][7] 대한민국 활동가들은 난민들을 위해 재외동포에게 일반적으로 발급되는 F-4 취업 비자 발급을 추진했고,[8] 난민 자녀들을 위한 학교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조직 및 운영되었다.[11]
3. 문화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은 한국 문화와 우크라이나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고려인 음식 문화를 공유하며, 주요 반찬인 모르코브차를 즐겨 먹는다. 우크라이나 요리 또한 널리 소비된다.[1]
3. 1. 언어
우크라이나의 고려인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한반도와 멀어졌고, 조상들이 소련 정부에 의해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15] 우크라이나의 상당수 고려인들은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한다.[1]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한국어 학교들이 생겨났으며, 키이우, 하르키우, 오데사 등지에 학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1] 키예프 언어 대학교는 전문적인 수준의 한국어 강좌를 제공한다. 타라스 셰우첸코 키이우 국립 대학교는 2019년경 한국어 강좌를 제공하기도 했다.[1]3. 2. 축제 및 문화 단체
1995년부터 매년 코레아다라는 축제가 우크라이나의 여러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이 축제는 처음 키이우에서 열렸으며, 2019년에는 포드니프로비야와 자포리자 지역에 가장 많은 고려인들이 거주하는 크리비 리흐에서 열렸다. 이 축제는 한국 문화를 기념한다.[1] 이 축제와 관련된 전통 한국 단체로 토라디가 있다. 토라디는 매년 축제에서 공연을 해왔으며, 레퍼토리를 확장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방문하기도 했다.[1] 우크라이나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15]우크라이나의 많은 한국 문화 활동과 단체는 대한민국 정부의 후원과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1] 여기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우크라이나 고려인 협회도 포함되며, 2019년 현재까지 칸이 회장을 맡고 있다.[1] 2017년에는 한국계 우크라이나인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사진전이 대한민국에서 열렸다.[16]
3. 3. 음식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은 고려인 음식 문화를 공유하며, 김치를 변형하여 당근을 주재료로 만든 모르코브차를 주요 반찬으로 즐겨 먹는다.[1] 우크라이나 요리 또한 널리 소비된다.[1]4. 한-우크라이나 관계에 미치는 영향
우크라이나 고려인 사회는 대한민국-우크라이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한국 사회의 인도적 지원과 고려인 사회에 대한 관심은 양국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2년 대한민국-우크라이나 관계가 수립된 후, 일부 고려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이주했다. 그 이후, 일부는 우크라이나로 돌아왔고, 다른 이들은 두 나라를 오가며 이동하고 있다. 2019년에는 상당수의 고려인이 이러한 행위를 하고 있으며, 재외동포 근로자에 대한 취업 비자 발급이 용이하다는 점이 이러한 현상에 기여하는 요인으로 보고되었다.[4]
2014년 크림 공화국 지위 국민투표 이후, 크림반도에 거주하던 약 3,000명의 고려인들이 러시아 시민이 되었다.[4]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특히 심각한 불안정을 야기했다.[4] 대한민국 내 한 설문조사에서 우크라이나 고려인의 42.8%가 전쟁 중 가족 구성원을 잃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7]
일부 고려인들은 대한민국으로 피신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고려인 난민들에게 90일 단기 G-1 비자를 발급했다. 이 비자는 6개월마다 갱신해야 했다.[8] 2023년 3월까지, 전쟁 발발 이후 1,200명의 우크라이나 고려인 난민이 대한민국에 입국했다고 보고되었다.[9] 많은 사람들이 땟골 마을과 광주 고려인 마을의 고려인 공동체에 모였다.[4][5]
대한민국 국민들은 난민들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를 했고, 그들의 생활비로 수십만 달러를 기부했다.[11][8][5] 2022년 11월까지 기금이 고갈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새로운 모금 활동이 진행 중이었다.[8] 대한민국 활동가들은 난민들을 위해 더 많은 F-4 취업 비자(일반적으로 재외동포에게 발급) 발급을 추진했다.[8]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외국인 용병으로 참전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다.[13] 2023년, 위반자는 최대 1년의 징역형과 7500USD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고 보도되었다.[13] 이러한 용병 중 한 명인 전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 대원인 이근은 우크라이나에서 3개월간의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체포되었다. 그는 이후 유죄 판결을 받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근은 법을 어긴 것에 대해 사과했지만, 자원봉사에 대해서는 후회의 뜻을 밝히지 않았다.[13]
5. 주요 인물
5. 1. 정치
올렉산드르 신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자포리자 시장을 역임했다.[17] 그는 시장 재임 기간 동안 여러 논란에 휩싸였으며, 정치적 입지도 불안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비탈리 킴은 2020년부터 미콜라이우주 주지사로 재직 중이다.[18]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킴 주지사는 침착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으로 주목받았다.
는 우크라이나의 배우이자 군인으로, 이르핀 전투에서 전사했다.[6] 그의 희생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우크라이나를 위한 헌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5. 2. 교육 및 문화
1995년, 칸 덴 시크(Kan Den Sik)는 키이우 폴리테크닉 연구소에 한국어 학과를 조직했다.[4] 2017년까지 이 학과는 한국어 문헌학을 다루는 별도의 학과로 발전했다.[4] 2010년에는 칸 덴 시크가 한국 문화 센터를 설립하고 회장이 되었다.[4] 칸 덴 시크는 부모가 사할린 한인인 고려인 2세였다.[4]5. 3. 기타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대원 출신 이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여 논란이 되었다.[13] 대한민국 정부는 자국민의 우크라이나 참전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시 최대 1년의 징역형이나 7500USD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13] 이근은 우크라이나에서 3개월간 복무 후 귀국하여 체포되었고, 이후 유죄 판결을 받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는 법을 어긴 것에 대해 사과했지만, 우크라이나에서의 자원봉사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13]참조
[1]
웹사이트
Koreans of Ukraine. Who are they? • Ukraїner
https://ukrainer.net[...]
2023-10-08
[2]
서적
http://www.mofa.go.k[...]
Ministry of Foreign Affairs
2022-08-21
[3]
웹사이트
국가/지역 검색 국가정보(우크라이나)
https://www.mofa.go.[...]
2023-10-08
[4]
웹사이트
A Land They Never Knew: Ethnic Koreans From Ukraine Seeking Help in the ROK
https://sinonk.com/2[...]
2023-10-08
[5]
웹사이트
Ukrainian Refugees of Korean Descent Seek Fresh Start in South Korea
https://www.asiapaci[...]
2023-10-08
[6]
웹사이트
Ukrainian actor Pasha Lee killed during fighting in Kyiv Oblast
https://kyivindepend[...]
2022-03-07
[7]
웹사이트
Modifying Visa Laws for Korean-Ukrainian Students
https://gppreview.co[...]
2023-10-08
[8]
웹사이트
광주 고려인 마을, 우크라 동포 입국 돕기 나서
https://www.hani.co.[...]
2023-10-08
[9]
간행물
The Influx of the Ukrainian War Refugees and the Expansion of the ‘Koryoin Village’ in Gwangju
https://www.kci.go.k[...]
2023
[10]
웹사이트
우크라이나서 피난 온 고려인 동포들, 결국 쫓겨나나
https://www.sedaily.[...]
2023-10-08
[11]
웹사이트
우크라이나 탈출 고려인 동포들,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안식 6개월…
http://world.kbs.co.[...]
2023-10-08
[12]
웹사이트
Koryoin from Ukraine find safe harbor in Korea
https://koreajoongan[...]
2023-10-08
[13]
웹사이트
Why South Korea Is Prosecuting Its Citizens Who Joined the Fight in Ukraine
https://time.com/630[...]
2023-10-08
[14]
뉴스
Injured South Korean fighter back from Ukraine faces investigation
https://www.reuters.[...]
2023-10-08
[15]
뉴스
Stalin took their grandparents' home away. Now Korean Ukrainians are standing up against Putin
https://www.abc.net.[...]
2023-10-08
[16]
웹사이트
Life of Deportation and Settlement: Koryo-saram, Samosely and Abandoned Places in Ukraine
https://www.koreana.[...]
2023-10-08
[17]
뉴스
Why has Ukraine become disillusioned?
https://www.bbc.co.u[...]
2023-10-08
[18]
웹사이트
Президент назначил Виталия Кима главой Николаевской ОГА
https://www.presiden[...]
2020-11-26
[19]
인용
[20]
인용
[21]
인용
[22]
인용
[23]
인용
[24]
인용
[25]
인용
[26]
인용
[27]
인용
[28]
인용
[29]
인용
[30]
인용
[31]
인용
[32]
인용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