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비 퉁기야씨 (천명제)
1. 개요
원비 퉁기야씨는 누르하치의 첩으로, 그의 데릴사위 시절에 혼인하여 자녀를 낳았다. 1577년 18세의 나이로 누르하치와 혼인하여, 딸 넌저거거, 아들 추연과 다이샨을 낳았다. 누르하치는 퉁기야씨 가문의 데릴사위였으며, 명나라에서도 '퉁 누르하치'라고 불렸다. 1592년 하하나자칭 사망 후 누르하치는 본성인 아이신기오로를 회복했다. 홍타이지가 즉위하면서 생모 효자고황후를 황후로 추존했으나, 원비 퉁기야씨는 추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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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기야 할라 -
효의인황후
효의인황후는 청나라 강희제의 황후이자 옹정제의 양모로, 귀비에서 황귀비를 거쳐 황후가 되었으나 자녀는 없었고 옹정제 교육에 힘썼으며, 옹정제 즉위 후 시호를 받고 태묘에 배향되었다. -
퉁기야 할라 -
각혜황귀비
각혜황귀비는 강희제의 후궁으로, 효의인황후의 여동생이자 효강장황후의 조카이며, 귀비에 책봉된 후 황귀비, 황조수기황귀태비로 추존되었고, 숙혜라는 시호를 받았다. -
천명제 -
순치제
청나라의 제3대 황제인 순치제는 6세에 즉위하여 도르곤의 섭정을 받다가 친정 후 명나라 잔존 세력을 평정했으나, 24세에 천연두로 사망했다. -
천명제 -
탁시
탁시는 건주좌위지휘사 맹특목의 아들이자 누르하치의 아버지로, 부족 통합과 세력 확장을 통해 자립적인 세력 기반을 구축하려 했으며 사후 청나라 현조 선황제로 추존되었다. -
청나라의 황후 -
효경헌황후
효경헌황후 울라나라씨는 옹정제의 원비이자 황후로, 옹정제의 적복진으로 책봉된 후 황후가 되었으며, 요절한 아들 홍휘를 두었고 사망 후 효경헌황후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청서릉 태릉에 안장되었다. -
청나라의 황후 -
효정경황후
2. 생애
퉁기야 하하나자칭(佟佳哈哈納扎青)은 탑본파안(塔本巴晏)의 딸이자 다다파극십(多多巴克什)의 손녀이다. 만력 5년(1577년), 18세의 누르하치와 혼인하였다. 그녀는 누르하치와의 사이에서 장녀 동고거거(東果格格, 훗날의 단장고륜공주), 장남 추연(褚英), 차남 다이샨(代善, 훗날의 예친왕)을 낳았다.
누르하치는 퉁기야씨 집안의 췌서(贅婿, 데릴사위)였으며, 당시 명조(明朝)에서도 그를 '퉁누르하치(佟努爾哈赤)'라고 칭할 정도였다. 누르하치 본인도 이 사실을 숨기지 않았으나, 만력 20년(1592년) 하하나자칭이 사망한 후에는 본래 성인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를 다시 사용하였다.
훗날 청나라 황실에서는 한족 관습의 영향을 받아 개국 황제인 누르하치가 데릴사위였다는 사실을 언급하기를 꺼렸다. 이 때문에 천명 11년(1626년) 홍타이지(皇太極)가 즉위했을 때, 자신의 생모 몽고저저(孟古哲哲)는 황후로 추존했지만 누르하치의 첫 부인이었던 퉁기야씨는 추존하지 않았다.
2.1. 초기 생애
탑본파안(塔本巴晏)의 딸이자 다다파극십(多多巴克什)의 손녀이며, 륙십니(六什呢)의 증손녀이다. 선조는 파호특극신(巴虎特克愼)이다. 만력(萬曆) 5년(1577년), 하하나자칭은 18세의 누르하치와 혼인하였다.
만력 6년(1578년) 음력 2월 22일 술시(戌時), 하하나자칭은 누르하치의 장녀 넌저거거(嫩哲格格)를 낳았다. 이 딸은 훗날 동고거거(東果格格)라고도 불린 단장고륜공주(端莊固倫公主)이다. 1580년에는 누르하치의 장남 추연(褚英)을 낳았고, 1583년에는 차남 다이샨(代善)을 낳았다. 다이샨은 훗날 예친왕(禮親王)이 된다.
누르하치는 퉁기야씨 집안의 췌서(贅婿, 데릴사위)였으며, 누르하치 본인도 이를 숨기지 않았다. 당시 명조(明朝) 역시 누르하치를 성과 함께 부를 때 '퉁누르하치(佟努爾哈赤)'라고 칭하였다. 만력 20년(1592년) 하하나자칭이 사망한 후, 누르하치는 본래 성인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를 다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후 청나라 황실에서는 한족 관습의 영향을 받고, 개국 황제가 데릴사위였다는 사실을 좋지 않게 여겨 이러한 경력을 언급하기를 꺼렸다.
천명(天命) 11년(1626년) 음력 8월,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皇太極)가 황제로 즉위하였다. 홍타이지는 자신의 생모인 몽고저저(孟古哲哲)를 황후(皇后)로 추존하였으나, 아버지 누르하치의 첫 부인인 원비 퉁기야씨와 또 다른 적모(嫡母)인 계비 푸차씨(繼妃富察氏)는 추존하지 않았다.
2.2. 자녀
만력(萬曆) 6년(1578) 음력 2월 22일 술시(戌時), 누르하치의 장녀 넌저거거(嫩哲格格)를 낳았다. 넌저거거는 후에 동고거거(東果格格)라고 불렸으며, 단장고륜공주(端莊固倫公主)로 봉해졌다. 1580년에는 누르하치의 장남 추연(Cuyen, 褚英)을 낳았고, 1583년에는 차남 다이샨(Daišan, 代善)을 낳았다. 다이샨은 후에 예친왕(禮親王)이 되었다.
2.3. 누르하치의 데릴사위 시절
누르하치는 퉁기야씨 가문의 췌서(贅婿, 데릴사위)였다. 누르하치 본인도 이 사실을 숨기지 않았으며, 당시 명조(明朝)에서도 누르하치를 성과 함께 부를 때 '퉁누르하치(佟努爾哈赤)'라고 칭했다. 만력 20년(1592년), 하하나자칭이 사망하자 누르하치는 본래 성인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이후 황실에서는 한족 관습의 영향을 받고, 개국 황제가 데릴사위였다는 사실을 좋지 않게 여겨 이를 언급하기를 꺼렸다.
2.4. 사후
만력(萬曆) 20년(1592) 하하나자칭(퉁기야씨)이 사망하자, 누르하치는 본래 성씨인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이후 청 황실은 한족 관습의 영향을 받고, 개국 황제인 누르하치가 췌서(贅婿, 데릴사위)였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를 꺼렸다.
천명(天命) 11년(1626) 음8월,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皇太極)가 즉위하였다. 홍타이지는 자신의 생모인 몽고저저(孟古哲哲)를 황후(皇后)로 추존하였으나, 아버지 누르하치의 원비(元妃)였던 퉁기야씨와 계비(繼妃)였던 푸차씨(富察氏)는 황후로 추존하지 않았다. 이는 황실에서 누르하치가 데릴사위였다는 과거를 감추려 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