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엽
1. 개요
원엽은 북위의 황족으로, 효장제 원자유 시기에 장광왕에 봉해지고 태원군 태수를 역임했다. 530년 이주씨 일족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으나, 황실의 방계 자손으로 지지 세력이 부족하여 531년에 폐위되었다. 이후 동해왕으로 봉해졌으나, 이듬해 효무제의 명으로 살해되었다.
-
531년 사망 -
카바드 1세
카바드 1세는 488년부터 496년, 498/9년부터 531년까지 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통치한 왕으로, 혼란스러운 제국을 물려받아 마즈다크교를 지지하며 사회 개혁을 시도하고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는 등 사산 왕조의 재건에 힘썼다. -
531년 사망 -
게이타이 천황
게이타이 천황은 일본의 26대 천황으로,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기록에 차이가 있으며, 부레쓰 천황 사후 호족들의 추대로 즉위하여 야마토 왕권 강화와 대외 관계에 힘썼고 그의 혈통이 이후 천황 계보로 이어진다고 전해진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폐위된 중국의 황제 -
건문제
건문제는 명나라의 제2대 황제로, 유교적 이상 정치를 추구하며 개혁을 시도했으나 숙부들의 반란으로 실종되었고 사후 복권되었다. -
폐위된 중국의 황제 -
당 애제
당 애제는 당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며, 주전충에 의해 옹립되어 황위에 올랐으나 선양을 강요당해 당나라가 멸망하고 독살되어 사후 애황제로 추시되었다.
2. 생애
원엽은 북위의 황족으로, 기거랑(起居郎)을 거쳐 통직산기상시(通直散騎常侍)에 이르렀다. 효장제 원자유 때 장광왕(長廣王)에 봉해지고, 태원태수(太原太守)로 부임하여 병주자사(幷州刺史)를 겸했다.
530년, 북위의 실권자 이주영이 효장제에게 살해되고, 효장제마저 이주영의 일족에게 살해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이때 이주영의 일족인 이주세륭 등은 원엽을 황제로 옹립하였다. 그러나 그는 황실의 방계 혈통이었고, 그를 지지하는 세력도 없었기에, 531년 이주세륭 등에 의해 폐위되고 말았다. 그 뒤 즉위한 절민제 원공(元恭)은 그를 동해왕으로 봉하였다. 하지만 532년, 후환을 없애려는 효무제의 명으로 살해당하고 말았다.
2.1. 황제 즉위 전
북위의 황족으로, 기거랑(起居郎)이라는 관직을 받아 관료가 되었다. 후에 통직산기상시(通直散騎常侍)가 되었다. 효장제 원자유 때 장광왕(長廣王)으로 책봉되고, 태원태수(太原太守)로 부임하여 병주자사(幷州刺史)를 겸하였다.
530년, 당시 북위의 실력자였던 이주영이 효장제에 의해 살해되었고, 그 후 효장제가 이주영의 일족에게 살해된 뒤, 이주영의 일족인 이주세륭 등에 의해 북위의 황제로 옹립되었다.
2.2. 황제 즉위와 폐위
530년 이주영이 효장제에게 살해되고, 효장제가 이주영의 일족에게 살해된 후, 이주세륭 등이 원엽을 북위 황제로 옹립했다.
그러나 원엽은 북위 황실의 방계 혈통이었고 인망도 부족하여, 531년 이주세륭 등에 의해 폐위되었다. 이후 절민제 원공이 원엽을 동해왕으로 봉했다. 532년 원엽은 후환을 없애려는 효무제에 의해 살해되었다.
3. 가족 관계
* 배우자: 얼주씨
* 자녀: 원량(元良) - 진양후(晉陽侯)에 봉해졌다.
4. 평가
제민제는 원엽을 동해왕으로 봉했는데, 이는 그가 원래 가지고 있던 창광왕보다 높은 지위였다. 제민제는 전반적으로 그를 존중했지만, 실제 권력은 미미했고, 얼주 세력은 부패로 인해 백성들의 분노를 사면서 대부분의 정부 및 군사 업무를 장악하고 있었다. 531년, 장군 고환은 얼주 세력에 반란을 일으켰고, 황족의 또 다른 구성원인 원랑을 황제로 선포했다. 532년까지 고환은 얼주 세력을 물리치고 제민제를 투옥했다. 원랑 역시 최근 황제 계보와 거리가 멀었기에, 고환은 그를 폐위시키고 원수 평양왕(元懷)의 아들이자 효문제의 손자인 원수를 효무제로 옹립했다. 532년 여름, 효무제는 먼저 제민제를 독살했다. 532년 겨울, 그는 마찬가지로 원엽과 원랑에게 독약을 마시게 하여 자살하게 했다. 원엽이 죽었고, 그의 동해왕 작위는 누구에게도 상속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