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삼광터널 열차 충돌 사고
1. 개요
원주 삼광터널 열차 충돌 사고는 1971년 10월 14일 중앙선 원주-제천 구간 삼광터널(현 원주터널) 부근에서 발생한 열차 충돌 사고이다. 청량리역 출발 제77호 보통열차와 제천역 출발 제1508 화물열차가 정면으로 충돌했으며, 수학여행 중이던 서울 시내 고등학생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열차 집중 제어장치(CTC) 조작 오류로 인해 14명이 사망하고 59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사고 이후 CTC 신호 담당 직원 2명이 구속되었고, 전국적으로 수학여행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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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철도 사고 -
모산 수학여행 참사
모산 수학여행 참사는 1970년 경서중학교 학생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장항선 열차와 충돌하여 45명이 사망하고 30명이 중상을 입은 대형 열차 사고로, 건널목 관리 소홀, 운전기사의 안전 불감증, 열차 운행 통제 미흡 등이 원인으로 추정되며, 전국 수학여행 금지 조치 등 교육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
원주시의 역사 -
원주 왕국회관 화재
1992년 원언식이 아내의 여호와의 증인 집회 참석에 대한 반감으로 원주 왕국회관에 휘발유를 뿌려 15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당한 화재 사건이 발생했으며, 범인 원언식은 사형 확정 판결 후 최장기 사형수로 복역 중이다. -
원주시의 역사 -
제1·2차 원주 전투
제1·2차 원주 전투는 한국 전쟁 중 북한군이 29번 국도 확보를 위해 전략적 요충지인 원주 일대에서 유엔군과 벌인 격전으로, 유엔군이 대유격전을 통해 북한군을 격퇴하고 전선을 안정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
1970년 대한민국 -
정인숙 피살사건
1970년 3월 17일 밤, 정인숙이 서울 합정동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이 사건은 정관계 고위층 염문설과 숨겨진 아들 존재 등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범인으로 지목된 오빠 정종욱의 진술 번복으로 미스터리로 남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스캔들이다. -
1970년 대한민국 -
1970년 보은 지진
2. 사고 개요
1971년 10월 14일, 청량리역을 출발하여 제천역으로 향하던 제77호 보통열차와 제천역을 출발하여 청량리역으로 가던 제1508호 화물열차가 중앙선 원주-제천 구간의 삼광터널(현재의 원주터널) 부근에서 정면으로 충돌한 사고이다.
사고를 당한 제77호 보통열차는 객차 12량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청량리역을 출발하여 울산 공업단지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갈 예정이던 서울 시내 3개 고등학교 학생 및 교사들이 주로 탑승하고 있었다. 7호차부터는 일반 승객이 탑승했다. 충돌한 제1508호 화물열차는 화차 28량으로 구성되어 석탄과 목재를 싣고 제천역을 출발하여 청량리역으로 가던 중이었다.
제77호 보통열차가 원주역을 출발한 직후 사고 지점인 삼광터널을 통과하던 중, 터널 끝부분에서 마주 오던 제1508호 화물열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충돌의 반동으로 보통열차의 객차가 기관차 위로 올라타면서 크게 파손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3. 사고 원인
결정적인 사고 원인은 열차 집중 제어장치 (CTC)의 조작 착오로 밝혀졌다. 사고를 일으킨 CTC는 1968년 당시 물가 기준으로 약 900의 비용을 들여 설치 및 가동된 설비였다. 열차 운행을 중앙에서 통제하는 망우지휘탑 상황판에서 사고 직전 두 열차의 충돌 위험 신호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당 기관사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아 결국 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4. 피해 규모
이 사고로 14명이 사망하고 5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망자 가운데에는 인창고등학교 교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고는 모산 수학여행 참사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하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5. 사고 여파
사고 원인을 조사한 철도 당국과 원주경찰서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CTC 신호 사령장, 조정자 등 철도 직원 2명을 직무 태만과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긴급 구속하였다. 이 참사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수학여행 자체가 금지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사고가 발생한 삼광터널은 현재 원주터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