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왕후
1. 개요
원화왕후는 고려 성종의 딸로, 현종의 비이다. 어머니는 연창궁부인 최씨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왕비 책봉 후 항춘전왕비, 상춘전왕비로 불렸다. 1010년 거란의 침략으로 현종과 함께 나주로 피난했으며, 사후 원화왕후의 시호를 받았다. 현종과의 사이에서 아들 왕수와 효정공주, 천수전주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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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현종의 왕비 -
원용왕후
원용왕후는 고려 현종의 비로, 대종과 선의왕후의 손녀이자 경장태자의 딸이며, 현종과는 근친혼 관계이고, 1013년 비로 책봉되었으나 자녀는 없었다. -
고려 현종의 왕비 -
원평왕후
원평왕후는 안산 김씨로 현종의 왕비이며, 김은부의 딸이자 원성왕후, 원혜왕후의 동생으로, 원혜왕후 사후 입궁하여 왕비가 되었고 효경공주를 낳았으며, 1028년 원평왕후 시호를 받았고 능은 의릉이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고려의 왕녀 -
정녕원비
정녕원비는 고려 충렬왕과 정신부주의 딸로, 1274년 정녕궁주에 책봉되었고 종실 제안공 왕숙과 혼인한 인물이다. -
고려의 왕녀 -
명순원비
명순원비는 충렬왕과 정신부주의 딸로, 한양공 왕현과 혼인하여 계양후 왕광을 낳았으며, 1320년에 사망한 고려의 왕족이다.
2. 생애
원화왕후는 성종의 딸로, 어머니는 성종의 제3비 연창궁부인이다. 본래 성은 왕이나 어머니의 성을 따라 최씨가 되었다. 문화왕후 소생이자 현종의 왕비인 원정왕후와는 이복 자매이다.
왕비에 책봉되어 항춘전왕비(恒春殿王妃)의 호를 받았으며, 이후 상춘전왕비(常春殿王妃)로 고쳤는데, 이는 그녀가 살던 전각의 이름을 딴 것이다.
1010년(현종 1년) 거란의 침략으로 현종과 함께 나주까지 피난을 갔다가, 거란군이 물러난 후 개경으로 돌아왔다.
1017년(현종 8년) 12월, 현종은 원화왕후의 외조부 최행언에게 상서좌복야를, 외조모 김씨에게 풍산군대부인의 호를, 어머니 연창궁부인에게 낙랑군대부인의 호를 추증하였다.
사망 후 시호는 원화왕후(元和王后)이며, 생몰년과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현종과의 사이에서 아들 왕수와 효정공주, 천수전주 두 딸을 두었다.
2.1. 가계
| 항목 | 내용 |
|---|---|
| 출생 | 성종의 딸 |
| 가계 | |
| 외척 |
2.2. 왕비 책봉과 호칭
원화왕후는 성종의 딸로, 어머니는 성종의 제3비 연창궁부인이다. 원래 성은 왕이나 어머니의 성을 따라 최씨가 되었으며, 본관은 경주이다. 문화왕후 소생이자 현종의 왕비인 원정왕후와는 이복 자매이다.
왕비에 책봉되어 항춘전왕비(恒春殿王妃)의 호를 받았으며, 이후 그 호를 상춘전왕비(常春殿王妃)로 고쳤다. 이는 원화왕후가 살던 전각의 이름을 딴 것이다.
2.4. 가족 추증
1017년(현종 8년) 음력 12월, 현종은 원화왕후의 외조부 최행언에게는 상서좌복야를, 외조모 김씨에게는 풍산군대부인의 호를, 어머니 연창궁부인에게는 낙랑군대부인의 호를 추증하였다.
2.5. 사망과 자녀
원화왕후는 사망 후 시호를 원화왕후(元和王后)라 하였으며, 생몰년과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남편 현종과의 사이에서 아들 왕수와 효정공주, 천수전주 등 두 딸을 두었다.